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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공동체/미주지역 학생사역

[이지혜]목적이 이끄는 삶

 이코스타 2007년 9월호

목적이 이끄는 삶...이것은 전 세계적으로 몇백만부가 팔린 릭 워렌 목사님의 책 제목...이 아니라, 이곳에서 잠시 나누고 싶은 제 삶의 이야기 마당의 제목입니다. eKOSTA 원고 청탁을 받고서 무엇을 어떻게 나누어야 하나 생각하던 중, 뭔가를 일부러 생각해내기보다 그저 저의 삶을 함께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올해로 벌써 미국에 온지 7년이 되었습니다. 2000년 7월 31일과 8월 1일의 경계 즈음에 낯선 아이오와라는 땅에 도착하던 날, 태어나 처음으로 정해진 주소지가 없이 막연히 보낸 그날의 밤을 저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사실 제가 미국에 오게 된 것은 하나님의 치밀하신 계획과 반복된 깜짝 파티의 연속이었습니다. 유학을 결심하고 어드미션을 기다리기 전까지, 제 인생에서 소위 '실패'라는 걸 경험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공부에 관한 고민을 별로 하지않아도 될 만큼 성적이 좋았고, 원하는 대학을 갈 수 없어서 고민한 적이 없었고,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학비를 걱정해본 적도 없었고, 세상의 눈으로 볼 때 안정된 직업을 보장하는 치과대학을 졸업했습니다. 그런데, 문득 대학을 졸업하기 전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것이 정말 제가 과연 평생을 바쳐 하고 싶은 일인가...대답은 아니었습니다. 인턴시험을 포기하고, 관심 있어 했던 공부를 더 해보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 즈음에도 제게 모든 일은 잘 풀리는 듯 보였습니다. 제 삶에 하나님께서 들어오실 필요가 없어보였습니다. 다니던 학교 대학원에 얘기도 다 끝나고 모든 일정이 순조롭게 잡혀있었습니다. 1997년 9월, 대학원 시험을 1달여 앞둔 어느 하루, 교수님께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저를 받아주시지 못하겠노라고...막막했습니다. 마치 하나님은 저기 멀리 계신 분인 양 그렇게 살았으면서도 하나님이 원망스러웠습니다. 며칠 후, 학교 선배님께 연락이 왔습니다. 다른 학교 대학원에서 마침 대학원생을 모집하는 중이라고. 저는 또 언제 그랬냐 싶게 좋아서 '하나님, 감사합니다!'를 연발했습니다. 이런 양은 냄비 같은 저를 그렇게 하나님께서는 다음 3년을 또 계획하시고 제가 상상했던 것보다 더 풍성하게 책임져주셨습니다.

대학원 석사 과정을 마쳐가는 중에 유학을 가보지 않겠냐고 하는 얘기들이 하나 둘씩 들려왔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물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뭔가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기분, 그것을 얻었을 때 맛보는 짜릿함, 거기에 '나 정도면 충분하지'하는 끝이 보이지않는 자만심이 합쳐져 유학준비를 시작했습니다. 한국에서 제일 좋다는 의대 대학원을 나오고, 외국 저널에 논문도 내고, 게다가 DDS학위까지 있으니 문제 없겠지 하는, 지금 생각해보면 참 어리석기 짝이 없는 자만심 하나로 미국 내 Neuroscience로 유명하다는 대학원들에 지원서를 하나씩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다 된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1월초부터 4월초까지, 지원한 학교 중 거의 대부분의 학교에서 rejection letter가 왔습니다. 처음 한 두번은 '그럴 수도 있지'하는 심정으로 넘겼지만, 그 횟수가 반복될 수록 저의 삶은 피폐해져 갔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한꺼번에 절망들이 다 몰려올 수 있는지, 숨이 쉬어지지 않았습니다. 다시 하나님을 원망하고, 그분의 뜻을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묻지도 않았으면서 '원하는 마음을 주셨으면 끝까지 책임져 주셔야지 이렇게 중간에 포기 시키시는 게 어딨냐'고 매일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2000년 4월 19일 아침,절망적인 심정으로 이메일을 열었습니다. 이제는 포기하겠노라, 하나님께서 저를 이끄신다는 말을 못 믿겠노라는 말이 목 끝까지 올라오는 심정으로 연 이메일들 중에 발신자가 'University of Iowa'인 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제는 이메일로도rejection letter를 보내나 하는 실패한 사람의 심정으로 열었던 그 글은, 사실 3달 여동안 저를 그 고통의 시간 가운데서 단련시키셨던 하나님의 깜짝 선물이었습니다. 아직도 기억합니다, 그 메일의 글귀들을...Neuroscience program에 extra fund가 생겨서 계획에 없었던 외국 학생을 선발할 수 있게 되었노라고, 아직도 관심이 있느냐고...그리고 지금 이곳, Iowa City로 하나님께서 저를 이끌어오셨습니다.

여기까지가 2004년 이전의 제 시각으로 보았던 저의 삶의 고백입니다. 2004년 코스타, 고난받는 공동체, 그 시간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비로소 제가 이 곳에 있어야할 이유를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원하셨던 것은, 바로 저 자신이 하나님께 다시 돌아오는 것이었고, 그러기 위해 저를 이곳 저곳, 이모양 저모양으로 다듬어 이 곳, 아이오와로 부르신 것이었습니다. 한국에서 그저 편안하고 세상적인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었다면 제 육신은 좀 더 편안하고 풍요롭게 살 수 있었겠지만, 제 영혼은 매순간 죽어가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2004년 7월에 저는 다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2007년 7월, 제 나침반의 바늘이 제 자리를 찾았습니다. 태어나서 초등학교를 들어가기 전 6년을 빼고는 늘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던 공부, 그 공부를 왜 하고 있는지를 하나님께서는 5박6일의 시간을 통해 분명하게 보여주셨습니다. 저를 치과대학에 보내셔서 생명의 소중함, 모방할 수 없는 창조의 섭리를 더 구체적으로 알게 해주시고, 한국에서의 대학원 과정을 통해 제게 연구를 사랑하는 마음을 주시고 크리스쳔 지도 교수님을 통해 멘토의 모델을 보여주시고, 3달여의 기간동안 수많은rejection letters를 받으면서 제가 믿고 있었던 능력이라는 것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지를 깨닫게 하시고, 그로 인해 이 곳 아이오와로 유학의 길을 열어주신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를 깨달아 알게 하신, 그리고 너무나 감사하게도 제 손을 다시 잡아 일으켜주신 하나님.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지난 30여년 동안 제 인생이라는 퍼즐에 쓰신 한 조각 조각임을 이번 코스타를 통해 보여주셨습니다.

목적이 이끄는 삶...다시 돌아가봅니다. 제 삶에는 하나님께서 가지신 분명한 목적이 제가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습니다. 그 목적을 모른 채 눈먼 사람으로 살아온 저의 삶도 결국은 하나님의 손에 의해 그 목적을 향해 끊임없이 달려가고 있었다는 것을 하루하루 깨닫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조금씩 저의 눈을 열어가고 계심도 느낍니다. 삶의 목적을 조금씩 알아가며, 저의 생각의 나침반은 이전과는 다른 곳을 향하고 있습니다. 나의 성취, 나의 욕망, 내 편안함과 풍요를 위해 달려가지 못하게, 나침반의 바늘이 다른 곳을 향하고 있습니다. 제 삶에 가지고 계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목적, 그 곳을 향해 흐트러짐 없이 나아가도록 매 순간 저를 강하게 끌어당기고 있음을 느낍니다. 물론 아직도 저의 삶의 많은 부분이 예전에 가리키던 방향으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그래도 그 싸움이 예전과 다른 것은, 그 싸움에서 이긴다 할지라도 어디로 가야할 지를 몰랐던 시간이 예전의 삶이라면, 이제는 그 싸움 이후에 제가 바라볼 곳이 생긴 것입니다. 제게 주신 비전을 이루기 위해 살아가는 삶 대신, 다른 길을 선택할 때마다 제가 다시금 바라보고 돌이킬 이정표가 생겼습니다.

목표가 있고, 삶의 목적을 분명히 아는 사람은 결코 길을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그 길에서 넘어질 수도 있고 다칠 수도 있고 지칠 수는 있어도, 그래도 그 길 외에 다른 길로 잘못 들어서지는 않습니다. 이 깨달음이 지난 7년의 시간동안, 옥수수밭이 끝없이 펼쳐진 아이오와에 저를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신 가장 큰 선물입니다. 이제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는 제 인생의 날들 가운데 넘어질 수도 있고 상처받을 수도 있고 지쳐 주저앉을 수도 있지만, 제게 주신 이정표만 따라가면 언젠가 제 삶을 통해 하나님의 목적을 반드시 이루실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동일하게 역사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 땅에서 Diaspora로 살아가는 모든 믿음의 씨앗들 위에 동일한 나침반이 되어주신다는 것을 또 믿습니다.

모든 삶의 목적이 되시는 하나님을 제게 주신 모든 것으로 찬양 드리며, 늘 제게 힘주시는 말씀으로 이 글을 마칠까 합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욥기 2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