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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스타 2004년 6월


요 즘은 아침에 일어나 아파트 뒤에 있는 야산을 오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서울에 있는 집뿐만 아니라 주중에 머무는 부모님 댁 뒤에도 다행히 야트막한 산이 있어서 아침운동을 하기에 안성맞춤이다. 그런데 더 더욱 좋은 것은 두 곳 모두 다 약수터가 있어서 운동 하기 전과 후에 신선한 물을 마실 수 있다는 것이다.

주 말에는 태어난 아기와 시간을 보내느라 뒷산을 가지 못하고 있다가 오늘은 벼르고 별러서 아내와 아침 산책 겸 운동을 다녀왔다. 아내와 함께 하는 아침 산책 길이 어찌나 행복하고 달콤하던지. 손을 잡고 걸으면서 아직 조금 남아 있는 아카시아 향기를 맡기도 하고 푸르름이 짙어가는 나뭇잎 내음도 맡으며 사는 얘기를 가만가만 하기도 했다. 비가 많이 오지 않는 주 중에는 거의 매일 들러서 상쾌한 공기와 물을 마시고 체력도 단련하고 걸으면서 기도와 묵상도 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되고 있다.

그 런데 한국에 돌아와서 느낀 것은 그간 도시화가 빠르고 폭 넓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가령 예를 들면, 20여년 전 필자의 고등학교 시절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을 비교해 보면 필자가 일하고 있는 곳인 청주는 도시면적이나 인구의 면에서 거의 네 배나 늘어났다고 할 수 있다. 인구증가 측면에서 보면 도시인의 자연증가보다는 농촌인구의 유입이 주된 도시화의 요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그리고 도시면적의 증가는 이론의 여지 없이 산과 논 개발을 통해 일어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오랜만에 가 본 고향은 도심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곳이 새로 개발된 곳들이라서 아주 생소하게 느껴졌다. 현재 주중에 필자가 거처하고 있는 부모님 댁도 예전에는 야산이고 들판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시멘트로 지어진 아파트와 잘 계획된 아스팔트 도로로 변해있다.

세 계화의 위력이 우리의 농촌과 도시의 모습을 이렇게까지 변하게 했구나 하는 감상에 젖기도 하면서 주위를 둘러보니 새로 생겨난 도시에 녹지 공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도시 크기로 가히 세계적인 수준에 올라 있는 서울도 여기에서 예외라고 할 수 없으며, 필자가 일하고 있는 청주도 여전히 녹지 공간이 부족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녹지가 차지하는 비율이 낮고 아스팔트와 시멘트가 차지하는 비율이 높으면 보존된 녹지에서만 얻을 수 있는 보온, 보습, 방한, 방풍, 공기정화 등의 혜택을 얻지 못하게 된다. 서울의 도심과 부도심이 그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서울의 거리를 지나다 보면 숨을 쉬기 힘들만큼 공기가 오염되어 있고 여름에는 훨씬 무덥고 겨울에는 훨씬 춥다. 잘 알려진 외국의 예로서 남미의 아마죤 원시림은 하루에 축구장만한 넓이로 무참히 베어지고 있어 전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 이에 대해 많은 학자들은 지구 온난화와 전 지구적인 산소 공급량 감소를 우려하기도 한다. 이러한 염려들은 지나치게 환경적인 측면만 고려한 것이고 아마죤과 관련된 사람들과 아마죤 자체가 가지고 있는 셀 수 없는 가치들 (원주민의 문화, 약품제조에 쓰이는 재료들, 희귀 동식물, 홍수 조절 능력, 생태계, 등)은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나마 부모님 댁이 있는 곳과 서울에 있는 필자의 거처는 다른 곳과는 달리 조금의 녹지 공간이 남아 있어 다행스럽게 생각된다. 아마도 두 곳 다 외곽지역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이는 그나마 땅값이 상대적으로 싸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간에 도시화의 문제를 지적해 온 학자들과 시민들의 노력이 만들어 낸 귀한 산물이라고도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에 건설된 일명 신도시들을 살펴 보면 난 개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곳도 있지만 몇 곳은 녹지를 많이 확보하여 좋은 생활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고 보고 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도시들도 자연적인 녹지를 그대로 살렸다기보다는 오히려 인공적으로 호수를 만들고 나무를 심어 가꾸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도시화의 단점 중의 하나인 녹지 공간 부족을 해소하려는 점만을 보면 이러한 시도가 물론 필요하다. 그러나 아예 아무 것도 없는 곳이라면 모르겠지만 오랜 기간 동안 유지되어 오던 해당지역의 고유한 생태계와 문화와 역사를 고스란히 없애고 많은 돈을 들여 인공의 녹지와 휴식공간을 제공한다는 것은 왜 그런지 인간의 오만함이나 무지가 드러나는 것 같아 못내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뒷 산 지키기로 대표되는 도시의 녹지 공간 확보 및 녹지 축 보존은 장차 우리 후세들이 이 땅에서 살아갈 마지막 희망을 담보하는 일이기에 중요하다. 이제껏 의식 무의식적으로 인간이 자연과 동료 사람에게 행해 온 오만에 대한 생태계의 준엄한 심판을 조금이라도 피해가려면 최소한의 녹지 공간을 확보해야만 한다. 이 것은 어쩌면 자연을 위한다기보다는 사람이 살기 위한 마지막 보루로서 인식하고 사회전체의 합의를 이끌어내야 하는 소중한 일이다.

최 근에 서울에서는 Green Trust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이 운동을 통해 2006년까지 마을공원, 근린공원 같은 생활권 녹지 100만평을 확충하려고 한다. 영국의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을 모방한 ‘그린 트러스트’는 시민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적극적이고 지속적인 녹지 확대사업을 펼쳐가는 도시녹화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동네별로 휴식과 운동을 겸할 수 있는 마을공원이 우선적으로 조성되며, 근린공원도 17개소 정도 건설될 예정이다. 그리고 학교의 담을 허물고 공원화해 인근주민이 이용하도록 하는 학교 공원화 사업과 개발제한구역 내(그린벨트)에 숲을 회복시키고 수목원, 생태탐방로, 농촌체험시설을 갖춘 소풍공원 등도 조성한다고 한다. 시의 적극적인 지원에 힘입어 건물옥상에도 녹지공간이 생겨난다고 한다. 시민들이 집에서 5분 거리에 공원을 접할 수 있는 공원녹지를 제공하며, 공원과 공원을 녹지로 연결하는 생태통로를 만들어서 도시 전체가 생태적인 조화를 이루어 가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문화일보 2004년 1월 12일). 시민들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는 영국 및 미국의 경우와 같지는 않지만 사단법인 서울그린트러스트가 결성돼서 민간이 주도적으로 이 사업을 이끌어 가고 서울시가 적극적으로 행정적인 뒷받침을 하겠다고 한다. 늦은 감이 다소 없지 않지만 이왕 시작되었으니 서울시는 지나친 간섭을 피하고 민간 단체는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여 명실상부한 시민주도의 숲 가꾸기 운동이 되기 바란다.

녹 지가 없는 도시 지역에는 인공적으로라도 녹지를 확보하도록 시민 전체가 의지를 모아야 한다. 그리고 이미 녹지가 있는 곳에서는 그곳 자체의 미와 전통과 이야기가 살아나도록 보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내셔널 트러스트처럼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없어질 위기에 놓은 녹지와 문화유산을 사서 더 이상 개발되지 못하도록 영구히 보존하려는 노력이 각 마을마다 생겨나면 좋겠다. 최소한 남아 있는 마을 뒷산이라도 더 이상 사라지지 못하도록 마을 전체의 의견을 모아 트러스트를 구성하고 영구히 보존하면 어떨까?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이러한 운동을 통하여 사라져 가는 공동체 의식도 다시 회복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웃 마을과 나라 전체에 이러한 운동이 펼쳐지도록 관심을 기울이면서 자그마한 정성이라도 함께 보태보면 어떨까?

숲 은 과거 우리의 선조들이 노동하고, 휴식하고, 명상하고, 먹을 것을 구하던 생명의 보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시민들에게 깊은 숲은 없을지 몰라도 야트막한 뒷산이라도 있다면 아침마다 또는 지치고 힘들 때 찾아서 새롭게 하루를 시작도 하고, 남몰래 한숨도 지으며 위로도 얻을 수 있고, 나태해진 몸과 마음을 가다듬을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아침마다 뒷산을 찾아서 기도도 하고, 명상도 하며, 새소리, 바람소리, 풀벌레 소리를 통해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으며 하루를 시작할 수 있으니 이보다 더한 이득이 어디 있을까? 우리 주 예수께서 새벽 미명에 산에 올라 기도하시던 것을 생각하며…

우 리 그리스도인은 사회를 구성하는 중요한 존재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더 더욱 점점 이기적으로 변해가는 현대 사회에서 닫혀진 집 문을 열어 젖히고 이웃을 초대하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겸손히 보여줄 수 있는 시발점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마을 단위의 중요한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서 모범을 보이며 공동의 관심사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는 역할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특히 자발적으로 이러한 뒷산 지키기 같은 마을 중대사를 제안하고, 의견을 모아가며 행정관청과 연결하여 가능성을 찾아가는 일도 주께서 명령하신 이웃 사랑의 한 부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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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스타 2004년 5월

미 국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에 들어온 지도 벌써 두 달이 되어가고 있다. 가족과 함께 지내면서 스위트 홈을 꾸려 보려는 알뜰한 욕심을 주께서 아셨는지,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그간 그렇게 닫혀있던 한국 행 문을 열어 주셨다. 그 동안 아내와 아이는 물론 부모님과도 오래 떨어져 지냈었는데, 주중에는 부모님과 함께 지내고 주말에는 가족과 함께 있을 수 있는 장소에 직장을 주셨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내도 양가 부모님도 모두 기뻐하시며 가족이 함께 살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하고 있다.

귀 국하자마자 직장에 출퇴근하는 문제로 고민을 하다가 직장 근처에 사시는 부모님께 신세를 지기로 했다. 아니 어머니의 강력한 엄포에 눌려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 사실은 지난 몇 년 동안 어머니께서 무릎 신경통, 허리 디스크로 많이 편찮으시기 때문에 학교 근처에 살면서 주중에 들러 보살펴 드리려고 했는데, 자식의 생각과는 달리 당신께서 힘드시더라도 밥 한 끼라도 손수 차려주고 싶으시다는 사랑의 명령에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었다.


부모님 댁에서 걸어서 약 25분 정도 걸리는 위치에 직장이 있고, 오가는 길에 나무도 많이 있어 학교를 걸어 다니기에 안성맞춤이다. 주로 월요일 아침에 버스를 타고 내려와서 금요일까지 있다가 오후에 아내와 아이가 있는 집에 가서 주말 내내 아이의 재롱에 시간가는 줄 모르곤 한다.

주 중에 저녁 또는 아침 시간을 부모님과 함께 하면서 눈에 띄게 두 분의 기력이 쇠하신 모습을 발견한다. 건장하시던 아버지도 이제 키가 많이 작아지셨고 얼굴에 주름이 많이 생기셨다. 어머니께서도 발목 부분과 무릎 관절과 허리의 통증으로 많이 괴로워하신다. 25년 전 필자가 고등학생으로 식물 인간이 되어 병원을 전전하던 시절에, 누워 지내던 자식을 붙들고 하염없이 우시며 어떻게든 살길을 마련하려고 동분서주 하시던 어머니를 생각할 때면 더욱 더 마음이 아프고 괴롭다. 당신께서 그렇게 아프고 힘드시면서도 다 큰 자식이 20년이 넘는 세월을 지나 이제 함께 살게 되니, 한 편으로는 너무나 기뻐하시며 또 다른 한 편으로는 괴로워하신다. 왜냐하면 이제 당신의 몸이 힘들어서 자식에게 주고 싶고 먹이고 싶은 것을 하실 수 없기 때문에 눈물짓곤 하신다. 아, 나는 언제나 어머니의 그 깊은 사랑을 이해할 수가 있을까? 주께서 주신 아이를 키워가면서 그 사랑의 깊이와 넓이를 조금이라도 만져 볼 수는 있을까?

부 모님과 함께 살면서 어머니의 생활 속에 환경을 생각하고 아끼시는 모습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우리의 일상 생활, 특히 가정 생활 속에 환경을 보호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로 외치지만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는 안타까움을 지난 호에 고백한 적이 있는 필자에게, 어머니의 생활은 좋은 본보기가 될 듯하여 외람되지만 여기에 소개하고자 한다.


어머니께서는 학벌이나 학식 면에서 내세울 것이 없는 아주 평범한 가정 주부이시다. 어릴 때부터 보아 온 어머니는 늘 청결하고 근면하고 검소하신 분이셨다. 지금도 그 때나 다름없이 그 모습 그대로인 것에 놀라곤 한다. 너무 깔끔하고 단정하셔서 자랄 때는 조금만 옷을 더럽히거나 집을 어지럽히면 야단을 맞은 적이 많이 있었던 기억이 새롭다. 요즘도 그 깔끔함이 옛날 그대로인 것 같아 어머니의 건재하심을 느끼고 새삼 하나님께 감사 드리고 있다. 그러나 원래 깔끔함과는 좀 거리가 있는 필자로서는 그런 어머니와 함께 사는 것이 한 편으로 힘든 면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 이러한 시간도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면서 어머니의 사랑에 듬뿍 젖어보며 어리광도 부리곤 한다.

어 머니의 하루 일과는 아주 단순하다. 무릎과 허리가 아프셔서 운동을 많이 하지 못하시는 관계로, 체중을 줄일 목적으로 새벽 네 시에 일어나 반신욕 (욕조에 더운 물을 받아놓고 가슴 위는 내놓고 하반신을 물속에 담그는 목욕)을 하시면서 그 시간 동안 기도도 하신단다. 30분 정도 반신욕을 마치시면 받아놓은 물로 목욕을 하시고 그 물로 바닥과 변기를 닦으신단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약한 샴푸로 머리를 감으셨는데 환경을 공부하는 아들이 샴푸를 쓰면 물이 많이 오염되니 그 대신 비누로 머리를 감고 식초를 약하게 물에 타서 머리를 헹구면 머리도 부드럽고 비듬도 잘 안 생기게 된다는 말을 들으시고는 그대로 실천하고 계시다. 사실 이 부분이 필자가 꾸준히 실천해 오는 환경보호 중의 하나이기에 자신 있게 권해드린 것인데 아들보다 더 열심히 실천하고 계신다.


아침이 되어 필자가 동네 야산으로 운동을 나가고 나면, 어머니께서는 간밤에 방에 두었던 요강을 씻으신다. 필자는 그간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것인데 이제껏 부모님께서는 밤에 요강을 이용하고 계신다. 아들이 학교에서 퇴근하던 첫 날 저녁, 어머니께서는 요강을 방에 들여 놓으시면서 밤 중에 화장실에 가지 말고 요강을 이용하라고 하셨다. 처음에는 좀 당황스러웠는데 어머니의 하시는 말씀이 너무 일리가 있어서 순종할 수 밖에 없었다. “소변을 볼 경우 수세식 변기의 물을 여러 번 틀게 되는데 물 낭비가 너무 심하니까 요강을 이용해서 나중에 한 번에 물을 조금 이용해서 씻자”고 하시는 말씀이 그냥 물이 아까워서가 아니라는 것을 깊이 느낄 수 있었다. 뒤통수를 크게 얻어 맞은 느낌이었다. 필자를 비롯한 현대인들의 첫 번째 덕목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편리함’의 추구라고 할 수 있는데, 어머니는 분명 세상의 덕목과는 반대로 사시는 것 같이 느껴졌다. 두 분께서 삼십 년이 넘게 사시던 단독 주택을 정리하고 아파트로 옮기신 것은 물론 편리함을 찾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것 보다는 오히려 기력이 쇠잔해지셨기 때문이라고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된다. 적어도 어머니의 그러한 자세를 통해 더더욱 그런 확신을 갖게 된다.

아 주 오랜만에 어머니께서 차려주시는 아침을 먹으며 보이지 않는 눈물을 흘리면서 어머니의 건강이 빨리 회복되길 기도하고 있다. 아침을 먹는 시간 동안 어머니께서는 사십이 넘은 아들에게 이것 저것 먹을 것을 챙겨주시면서, 가끔씩 빨래하는 것이라든지, 설거지 하는 것이라든지, 설거지 하고 남은 쓰레기 처리하는 것이라든지, 폐식용유를 처리하는 것이라든지, 집 안 청소하는 것이라든지, 에너지 사용하는 것 등에 대해 이야기를 하시곤 하신다. 여쭤보지도 않은 것들이지만 자식이 밥 먹는 동안에 심심하지 않도록 배려하시는 어머니의 사랑의 표현이리라. 들은 말씀들을 몇 가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빨래는 아직도 손빨래를 하고 계시는데 폐식용유로 손수 만든 비누를 사용하신다. 빨래하고 남은 물은 화장실 변기를 청소할 때나 바닥을 청소할 때 사용하시고, 헹군 물은 화분에 주신다. 그리고 이제 연세가 드셔서 짜는 힘이 부족한 탓에 짤순이를 이용하여 물만 빼신다. 세탁기를 사용하면 전기도 많이 소비될 뿐만 아니라 빨래가 깨끗하게 되지 않는다고 하시면서 굳이 손빨래를 고집하고 계신다.

둘 째로, 설거지 하실 때는 싱크대에서 하수구로 가는 구멍에 신문지 같은 것을 군데군데 잘라 넣고 음식 찌꺼기를 거르게 한 다음 설거지가 끝나면, 신문지를 펴서 말린 후에 쓰레기를 배출하신다. 아파트로 이사하시기 전에는 단독 주택에 사셨는데 태울 만한 쓰레기를 옥상에서 태우시다가 주위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하는 일이 있어 혼이 나기도 하셨다고 한다. 말씀을 듣고 왜 그러셨냐고 했더니 쓰레기를 너무 많이 내보내는 것 같아서 쓰레기 양을 줄이려는 맘에 그러셨다고 한다. 그래서 어머니께 아무런 조치 없이 쓰레기를 태우면 공기도 오염되고 나쁜 화학 물질이 공기 중에 나와서 안 좋다고 말씀 드렸다. 그리고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어머니께서 아직 부엌세제를 사용하신다는 점이다. 그래서 가루나 쌀뜨물이나 비누로 만든 환경 친화적인 부엌세제를 소개해 드리고 사용을 권해 드렸더니 그렇게 해 보겠다고 하신다.


셋째로, 집안 청소를 할 때는 세제를 사용하지 않고 주로 비누를 사용하고 전기 진공 청소기를 사용하지 않으시고 걸레와 빗자루를 이용하고 계신다. 살면서 여러 집을 다녀 보았지만 어머니의 깨끗함에 견줄만한 집을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다. 어쩌면 괴벽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물 사용을 많이 하지 않으면서 집안을 깨끗하게 유지하였기에 가족의 건강을 이만큼 지키지 않으셨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이젠 무릎도 아프시고 허리도 아프시니 그만 쉬셨으면 하는 바람으로 대신 청소라도 할라치면 손도 못 대게 하신다. 아들을 생각하는 것도 있지만 두 번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주된 이유이다. 그래도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이 어머니의 높은 기준을 어느 정도 만족시키신단다. 함께 살면서 이젠 자식에게 효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도 좋으련만 그런 것은 말도 못 꺼내게 하신다. 어머니를 생각하면 가끔씩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떠올리게 된다.

넷 째로, 새벽에 일어나서 문안 인사를 드리면 어느새 두 분은 청소도 하시고 아침 식사 준비도 하고 계신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모든 일들을 어둠 속에서 하고 계시다는 것이다. 이제 함께 산 지 두 달이 다 되어가는데 새벽이나 밤중에 거실이나 방이 환하게 밝혀진 것을 본 적이 없다. 거실에서도 형광등을 다 돌려놓으시고 한 개만 불이 들어오도록 하신다. 여쭤보지 않아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것이지만 한 번 그 이유를 여쭤보니 먼저는 전기 세를 아끼기 위함이고 그 다음은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의 에너지 현실을 인식하여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함이라고 하신다. 혹시라도 전열기를 사용하고 나면 반드시 코드를 뽑으시는 어머니의 삶의 지혜에서 경외감마저 들기도 한다.


어머니를 옆에서 지켜보면서 작은 원칙을 실천하는 삶의 아름다움을 느껴보곤 한다. 필자가 고등학교 때 아팠던 것이 계기가 되어 예수를 믿게 된 어머니께서는 아들을 고쳐 주신 하나님에 대한 의리로라도 교회에 꾸준히 다니신다. 속칭 하나님의 일을 많이 하지 못한다는 말씀으로 당신께서 신앙이 좋지 못하다는 말씀을 하시기에, 지금 하고 계신 일들이 바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라고 위로의 말씀을 드리곤 한다. 우리가 교회에서 배워 온 일면적인 신앙의 모습으로 평가되고 자책하는 모습이 안타까운 뿐이다. 사실상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한다는 것은 평범한 일상의 일들을 사명감을 가지고 주님의 뜻에 맞게 잘 해 나가는 것이 아닐까? 사랑과 희생과 순종과 정의의 정신을 가지고 가정과 직장과 여러 공동체에서 구성원들과 화목하며 서로 존경하며, 수행하는 일들을 공평하고 정의롭게 처리해 나가는 것이 주께서 진정으로 기뻐하시는 예배가 아닐까? 그 중의 하나가 바로 환경을 생각하며 우리의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한다. 필자의 어머니께서 그저 남들이 알아주건 알아주지 않건 상관하지 않고 환경을 생각하는 삶의 원칙을 꾸준히 지켜가시듯이……

어머니, 주님의 사랑을 듬뿍 받으면서 건강하게 사시길 기도합니다. 어머니의 삶에서 좀 더 많이 배우고 싶습니다. 어머니,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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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스타 2004년 4월

사실 지금까지의 글들은 조금은 이론적인 것에 불과하다. 글에 담긴 내용이 실제로 필자 자신에게 생활 속에 얼마나 적용이 되고 있는지 한 번 조심스럽게 살펴볼 필요를 느낀다. 따라서 학교에서의 생활을 제외한 출근 전과 퇴근 후에 집에서 하는 생활을 한 번 살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부끄러운 면이 많이 있지만 회개하는 의미에서 한 번 적어보면서 글을 시작하고자 한다.

침대에서 졸린 눈을 부비고 일어나서 찬물을 한 컵 가득 들이킨다. 학부 시절 일반화학 선생님께서 해 주신 당신의 경험담이 계기가 되어서 나름대로 실천하고 있는 건강 유지법 중의 하나인 것으로서 잠에서 깨고 나서 찬물을 두 세컵 마시면 위장에도 좋고 변비도 걸릴 염려가 없다고 하시는 말씀이다. 잠시 기도와 묵상을 하고 성경을 읽고나면 한국에 있는 아내에게 전화를 해서 저녁 인사를 나누고 막 백일이 지난 아들의 하루 일을 들으며 가슴 가득히 메어오는 아쉬움을 간직한 채 하루를 시작한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한국에 돌아가겠지만 그래도 아들 녀석의 냄새와 웃는 얼굴과 막 시작한 옹아리 모습이 그립기만 하다.

얼마 자라지 않은 수염에 비누칠을 하고 몇 달 전부터 사용하고 있는 일회용 면도기로 면도를 한다. 비누를 두 세 번 칠하고 물 세기를 약하게 해서 샤워를 하고 나면 조금씩 허기가 밀려온다. 요즘 가뜩이나 운동을 안한 탓에 체중이 많이 불어서 지방간이 있다는 경고를 받고 식사량을 조절하려고 애쓰고 있지만 여전히 왕성한 식욕을 절제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체중조절 노력의 일환으로 아침을 토마토 한 개, 사과 한 개, 작은 빵 하나, 지방을 제거한 우유 한 잔 정도로 간단하게(?) 하고 학교로 향한다. 처음 학교에 왔을 때는 차가 없기도 하고 딴에는 도보출근을 실천하며 건강을 유지한다는 생각에 25분 정도 걸어다녔는데 최근에 학교 건물을 옮기고 나서 거리가 좀 더 멀어진 이후로는 많이 나태해진 탓에 35분 정도 되는 거리를 차를 타고 4분만에 출근한다. 출근할 때마다 마음이 괴롭다. 학교로 가기 전에 요즘 조금 추워진 탓에 조금 높게 맞춰놓은 난방기와 백열등이 꺼져 있는지 확인한다.


가끔씩 잊고 학교에 갈 때는 하루 종일 자동조절 온도계의 도움으로 주인 없는 방이 훈훈해지곤 한다. 이렇게 생각과 글과 말과 생활이 달라서야 어디 글 쓰고 가르칠 자격이 있나하는 자책감에 시작하는 하루가 늘 괴롭게 느껴지곤 했는데 요즘은 바쁘다는 핑계로 안위를 삼고 있다.

그러나 가슴 한 구석에서는 게으름을 채찍질하고 있다. 자신이 미국 영화나 텔레비젼에 나오는 배불뚝이 주인공처럼 돼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학교에서 일을 하고 오후 퇴근시간이 되면 체육관으로 향한다. 작심 삼일이 되지 않기 위해 체육관에서 50분 이상 걷기도 하고 윗몸 일으키기도 하고 체조도 하면서 체중을 줄이려고 애쓰고 있다. 땀이 비오듯 하여 입고 간 옷이 땀으로 흠뻑 젖어 버린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도 여전히 차를 몰고 있다. 사실 체육관에 등록을 한 것은 벌써 지난 학기 초인데 본격적으로 걷기운동을 실시한 것은 한국에 갔다가 나름대로 경고를 받고나서 미국으로 돌아온 두 주 전부터이다. 이렇게 게으르니까 생긴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하고 부끄러운 맘에 그저 숨고만 싶어진다. 집으로 돌아와서 젖은 옷들을 모아 며칠 째 쌓여 있는 빨래통의 옷들과 함께 세탁기에 넣고 합성세제인 세탁액을 적정량의 3분의 2 정도를 넣고 세탁기를 돌린다. 목욕할 때 샴푸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가능한데 빨래를 할 때 천연세제를 구하거나 만드는 것이나 비누를 칠해서 빨래를 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손쉽게 구할 수 있는 합성세제를 사용하곤 한다. 빨래하는 마음 한 켠이 늘 아리고 죄송스럽다. 세탁기가 돌아가는 동안 현미와 잡곡을 고루 섞은 쌀을 씻고 쌀을 씻은 물을 모아 둔 후 압력솥에 넣고 밥을 한다. 현미밥을 장기적으로 먹으면 여러 질병이 없어진다는 연구보고를 읽은 이후 식단의 일부로 자리하고 있다. 장모님과 어머니의 배려로 미국에 올 때 가져온 김치와 밑반찬들과 된장찌개로 저녁을 먹는다. 된장찌개를 끓일 때 넣는 야채들은 대부분 South Side Produce라는 곳에서 거의 도매값으로 산 것들인데 유기농산물은 아니다. 대규모로 지은 농산물들인데 대부분 주변 지역에서 온 것들이지만 오렌지를 비롯한 몇몇 농산물들은 캘리포니아나 멀리 다른 지역에서 온 것들도 있었다. 교통이 발달해서 가능해지긴 했지만 농산물은 가능하면 주변지역의 유기 농산물을 이용해야 사람의 건강을 지키고 땅의 힘을 보다 강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혼자서 먹는 식탁이 재미가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 빨리 많이 먹으려는 경향이 있어서 늘 위험을 느낀다. 식사를 하면서 가끔씩은 음악을 듣기도 하고 텔레비전을 보기도 하는데 식구가 함께 둘러 앉아 오손도손 음식도 나누고 하루를 지낸 이야기도 하며 저녁 시간을 보내는 것이 꿈같이 느껴지곤 한다. 언제나 이러한 꿈이 나와 우리 가족, 그리고 현대를 살아가는 바쁜 가족들에게 실현될지 자못 기대된다. 물론 다분히 우리 개개인들의 강한 의지와 사회적인 분위기가 형성되어야하겠지만…

위 글은 필자가 학교를 한국으로 옮기기 전인 지난 해 12월경에 써 놓은 글인데 게을러서 제 때에 투고하지 못하고 상황이 많이 변한 지금에서야 글을 내보내게 되어서 송구스럽다. 한국으로 옮긴 후 필자는 가족과 주말에 상봉하면서 나름대로 감사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물론 생활을 함에 있어서 무늬만 결혼 신세를 면한 것은 물론 빨래도 이제 손수 하지 못하게 된 것은 좀 서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까지 우리는 집에서 할 수 있는 환경보호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들을 살펴 보았다. 줄이기, 다시 쓰기, 다시 만들어 쓰기, 다시 생각하기 등으로 나누어서 각각에 대해 좀 더 자세한 설명과 함께 실천방안들을 알아보았다. 그러나 여전히 부족한 부분들이 많이 있어 보완이 필요함을 인정한다. 따라서 이번 호에서는 한국적인 상황에 맞는 체크 리스트를 만들어 보면서 지금까지의 글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종합 체크 리스트는 줄이기, 다시 쓰기, 다시 만들어 쓰기 중에서 실천 가능하고 실제적인 항목을 중심으로 작성하고 실천여부를 묻는 여백은 표의 맨 마지막에 넣는다.


 

 

수질 오염 줄이기

기름류

쓰고 기름은 그냥 흘려 보내지 않고 모아서 비누를 만들거나 분리수거통 (만일 있다면) 넣는다.

음식

찌꺼기

분리 수거

반드시 체로 거른 따로 모아서 분리수거통 (만일 있다면) 넣는다. 

수분제거

분리 수거통이 없을 경우는 짜거나 신문지에 펴서 수분을 제거한 다음 배출한다.

퇴비화

썩을 있는 것은 퇴비화 발효용기를 사용하거나 땅에 파묻어서 퇴비로 만든다.

정화조

일년에 이상 정화조를 점검하고 보수한다.  아파트에 사는 경우 이러한 사실을 확인 또는 요청한다.

쌀뜨물 또는 국수 삶은 이용

쌀을 씻거나 국수를 삶을 나오는 물을 모아서 기름묻은 그릇을 씻거나 화분이나 정원에 뿌린다. 

합성세제사용자제

샴푸를 비롯한 가정용 합성세제의 사용을 가능한 자제한다. 대신 비누나 천연세제 (밀가루, 쌀뜨물, 또는 약한농도의 식초 등)를 이용한다.  

음식 쓰레기 줄이기

반찬 가지 줄이기

계획 식단을 실시하여 식사 때마다 나오는 반찬의 수를 제한한다. 가족의 영양공급에 무리가 가지 않는 한도 내에서.

뷔페형 잔치상 차리기

가족에서 잔치를 상에다가 음식을 각각 차리지 않고 뷔페형으로 음식을 차려서 음식낭비를 줄인다. 

냉장고

냉장고에 보관하는 음식의 수를 줄이고 가능한 싱싱한 음식을 먹도록 식단을 짠다.  계절에 나는 음식을 때에 적당히 먹으면 냉장고가 필요없게 된다.

덜어 먹는 음식 문화 가꾸기

음식을 먹을 때 빈 그릇에 덜어먹으므로써 불필요하게 음식을 남기지 않도록 한다.

기타 쓰레기

플라스틱 일회용 제품

물건을 구매할 플라스틱 용기로 것들이나 일회용으로 만들어진 것들은 가능한 피한다. 만일 구매해야만 하는 경우 여러 사용하고 가능한 재활용하도록 한다.

자원 절약

수세식 변기

수세식 변기를 사용하는 경우에는 수조 안에 벽돌 1장을 넣어서 물의 낭비를 막는다.

수도

필요할 때만 틀고 사용하지 않을 경우에는 잠근다. 

- 샤워: 샤워할 때는 물의 세기를 중간정도로 한다. 

- 세수 양치: 이를 닦거나 세수를 때는 컵이나 넓은 접시를 이용하여 필요한 만큼의 물만 사용.

- 설겆이: 그릇을 처음 씻을 때는 물을 받아놓고 하며 적당한 양의 물을 틀어서 헹군다.

전기

냉난방 시설

여름: 에어컨의 온도를 너무 춥지 않게 하고 선풍기도 적당한 만큼 사용한다.

겨울: 실내의 온도를 낮게 하고 옷을 입고 생활하도록 한다.

전열기구

사용하지 않는 전열기구 (전기장판, 전기난로, 전기렌지 ) 꺼둔다.

조명기구

집안이나 복도의 조명등을 필요하지 않을 때는 꺼둔다.

냉장고

묵은 음식은 정리하고 적당한 양의 음식을 넣어 두도록 한다. 그리고 계절에 맞는 음식을 먹도록 한다.

가스

가스렌지

음식을 하지 않을 때는 언제나 가스렌지의 밸브를 잠가둔다.

교통수단

걷기와

대중

교통

가까운 거리는 가능한 걸어다니고 자가용 차의 운행은 가능한 자제한다. 일하러 갈 때나 사무 약속이 있을 경우 가능한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토양오염방지

유기농업육성

유기농산물 구매

건강한 땅에서 건강한 먹거리가 나오는 것을 알아서 값이 조금 비싸더라도 유기 농산물을 구매한다. 유기농을 하고 있는 농가와의 직거래를 통해서 좀더 신뢰성 있는 먹거리를 유통하여 농지의 토양오염을 원천적으로 방지한다.

유해 쓰레기

쓰레기 처리

가정에서 나오는 유해 쓰레기들을 농가나 빈터에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버려서 토양 오염을 시키지 않는다.

다시쓰기

생활용품

가구류 , 주방용품

나무로 만든 제품을 버리거나 다시 사려고 다시 있는 지를 확인한 가능하면 중고제품  판매처에 넘기거나 중고제품판매처에서 구매한다.

다시 만들어 쓰기

생활용품

종이, , 기타

종이, 알루미늄, , 유리, 플라스틱, 등으로 제품을 사용한 버릴 경우 다시 만들어 있도록 분리하여 모은다. 

         
----- 위의 표는 좀 더 구체적으로 우리의 삶 속에서 일어나는 일반적인 일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관계로 각 개인의 특수한 상황에 맞지는 못한다. 따라서 각자 자신에게 맞는 표를 만들어서 실제의 삶에 적용하면 좋겠다.

글을 마무리하면서 필자는 자괴감으로 인해 많이 괴롭다. 왜냐하면 환경보호가 말로 되는 것이 아니라 실제의 삶에서 구체적으로 나타나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돌아본 필자의 삶은 환경보호와는 아주 거리가 먼 생활을 하고 있다고 자인할 수 밖에 없다. 굳이 핑계를 대자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시스템이 무한소비를 조장하고 편하고 빠른 문화를 향해 나아가고 있기 때문에 한 시민으로서는 어찌 할 수 없는 형편이라고 스스로 위로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세상을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우리가 이러한 핑계를 대고 있을 만큼 세상은 한가롭게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고 있음을 알게 된다. 벌써 미국에서는 먹는 물값이 기름값보다도 비싸게 되었고, 우리의 강은 물놀이는커녕 냄새가 나서 접근하기 어려운 지경이 된지 오래되었고, 공기는 점점 탁해지고 오염되어가고 있다. 일례로 서울하늘은 일년 대부분 스모그에 시달리고 있으며 우리의 어린 아이들이 기관지 질병을 앓는 빈도가 많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새롭지 않은 사실이 되어가고 있다. 땅이 좁은 한국에서는 쓰레기 처리장이나 기타 우리 생활의 부산물을 처리하는 시설들이 들어갈 곳을 찾지 못해 온 국민의 근심거리가 되고 있다.

조금 부유하여서 좋은 공기와 맑은 물을 마실 수 있다고 자만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삶의 행태를 바꾸지 않고 지금 이 상태 그대로 앞으로 몇 십년이 지나면 환경문제는 전 지구적인 문제가 되어 부메랑처럼 온 인류를 향해 돌진해 올 것이기때문이다. 그 때는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문제가 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 아직 늦지 않은 이 시기에 가능한 한 편함과 빠름을 추구해가는 개인의 가치관을 변화시키면서 절실하게 필요한 것을 중심으로 소비하도록 삶을 정돈해야 한다. 지금까지 익숙한 생활을 근본적으로 되돌이켜 볼 수 있는 여유가 아직 남아있을 때에…


환경계획 및 정책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필자는 한국에 돌아와 몇 가지의 각오를 하고 있다. 첫째, 집과 일터에서의 생활을 간소하게 한다. 둘째, 가능한 한 개인 차를 갖지 않고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여 출퇴근한다. 셋째, 먹는 음식을 최대한 친환경적인 것을 선택한다. 넷째, 생활 후에 나오는 쓰레기의 양을 최소화 한다. 다섯 째, 사용하는 에너지를 최대한 절약하며 가능하면 재활용한다.

우리는 매 예배 때마다 주기도를 암송하면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시길 바란다.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가 곧 하나님의 통치가 우리 생활 구석구석에 임하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실감나게 느끼고 기도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왜냐하면 주기도문이 예배의 형식으로 전락한지 너무도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루터도 이러한 탄식을 하고 있다. 우리가 진심으로 하나님 나라가 임하시길 바란다면 바로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살아가야 할 것이다. 구체적인 행동 하나하나에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담아내야 한다. 필자를 비롯하여 독자들 모두 가족과 함께 환경보호에 대해 함께 얘기하면서 대안을 찾아가면 좋겠다. 가정예배 시간에 그리고 가족회의 시간에 적극적으로 가정에서 할 수 있는 환경보호를 의제로 채택하여 보다 건강한 가정의 삶을 꾸려갔으면 한다.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삶의 현장에 임하시길 기도하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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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과연 실생활에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궁금했는데, 막연했던 것을 깔끔하게 정리한 글이 여기 있었네요. 다는 못하더라도 많은 부분 따라해 보겠습니다!

이코스타 2004년 1월


지금까지 우리는 가정에서 할 수 있는 환경보호의 방안으로서 3R, 즉 Reduce (줄이기), Reuse (다시 쓰기), Recycle (다시 만들어 쓰기) 등에 대해 살펴보았다. 위에서 언급된 3R은 주요한 환경보호 방안으로서 널리 인정받고 있으며 구체적인 실천 방안들까지 제시되고 있다. 그런데 종종 위의 3R에 한 가지를 덧붙여 4R이라고 하는 경우를 보곤 한다. 3R은 모든 곳에서 일정하게 사용되는 반면 이 네번째 R은 경우에 따라서 ‘Rethink’, ‘Respond’, ‘Refuse’, ‘Recover’ 등으로 다양하게 사용된다. 이중에서 Refuse와 Recover는 주로 산업현장과 관련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가정의 차원에 Refuse와 Recover를 적용해 보자면 Refuse는 소비자로서 각 개인이 상품을 선택할 때 환경과 인체에 해로운 제품을 선택하지 않거나, 쓰레기 처리방법을 선택할 때 보다 환경친화적인 대안을 선택하는 것을 말하고, Recover는 다시 사용할 수 없거나 다시 만들어 쓸 수 없는 쓰레기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으로서 썩을 수 있는 쓰레기를 이용하여 퇴비를 만들어서 반응열을 이용한다든지 또는 만들어진 퇴비를 밭이나 논에 뿌려서 거름으로 이용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다음에는 위에서 간략하게 살펴 본 Refuse와 Recover를 제외한 처음 두 가지 R인 Rethink와 Respond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다시 생각하기 (Rethink)

존 모리스 박사 (Morris 1997)는 네번 째 R로서 Rethink를 덧붙이면서 그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To the concept of 3Rs, another is sometimes added, a fourth R: Rethink. Serious rethinking has to occur before any serious attempt occurs to reduce and reuse. Recycling has caught favor with the public because it does not require a rethinking of lifestyle in how we use resources. To reduce and reuse is to drastically change peoples’ lifestyles. It is only through a change in lifestyles that the oppressive heartland-hinterland relationship might be altered. www.publicconcern.org/adams_mine_digest/timto/drjohnmorris.html

모 리스 박사는 위 글에서 네 번 째 R인 Rethink (다시 생각하기)의 필요성을 강력하게 역설하고 있다. 즉 ‘다시 쓰기’와 ‘다시 사용하기’를 하기 전에 ‘다시 생각하기’가 선행되어야만 한다고. 특히 ‘다시 만들어 쓰기 (Recycle)’에 대해 대중적인 관심이 쏠리고 있는 것은 바로 현재 자원을 소비하는 생활방식에 대해 다시 생각할 필요가 없도록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사실상 네 번 째 R이라고 불리우긴 하지만 ‘다시 생각하기’를 가장 먼저 두어서 우리의 생활 방식에 대해 질문하고 바꿀 필요가 있으면 과감하게 바꾸어 가는 용기있는 행동이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앞의 글에서도 언급했던 것처럼 사실상 현재 우리의 생활 방식은 다분히 대량소비의 문화에 길들여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은 무한하고 사람의 욕망은 결코 자제되거나 길들여져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으면 자연히 우리의 자원 사용방식이나 생활방식에 대해 다시 생각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사 람의 경제생활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것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따라서 각 개인이 돈을 사용할 때에는 그 돈으로 사는 것이 어떤 제품인지 면밀히 따져 보아야만 책임있는 경제생활을 한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시장에서 소비자나 생산자는 경제적 이윤만 생기면 그 제품이 환경적으로 안전한지 질문하지 않고 만들고 구매하곤 하기 때문이다.

소 비자로서 각 개인의 책임있는 경제생활에는 무슨 제품을 선택하는가도 포함하고 있다. 즉 구매하려는 제품에 환경을 오염시키는 물질이 포함되지는 않았는지, 사람의 건강을 해치는 물질이 포함되지는 않았는지, 값이 싸다면 왜 그렇게 값이 싼 것인지 꼼꼼하게 따져서 물건을 구매해야만 한다. 결국 소비자의 구매행위가 공급자의 생산행위를 결정짓기때문에 무조건 싼 값에 현혹되어서는 안되며 오히려 환경친화적인 의지가 담긴 소비행위를 통해 환경적으로 안전한 세상을 만들어 갈 수도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다시 생각하기’는 자원의 소비를 줄이는 것이나 사용한 물건을 다시 쓰는 것이나 사용된 물건을 이용해서 다시 만들어 쓰는 것을 고려하기 전에 해야 할 최우선적인 요소이다.

반응하기 (Respond)

미 국 환경청 (US EPA)은 네 번 째 R로서 반응하기 (Respond)를 들고 있다. ‘반응하기’는 위에서 살펴 본 ‘다시 생각하기’와 비교해 볼 때 쓰레기 생산행위에 대하여 재고한다는 면에서는 비슷한 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쓰레기를 적게 만드는 것에대한 홍보와 교육 그리고 창의적으로 쓰레기를 줄이는 방법을 찾아가는 면에 있어서는 조금 더 적극적인 면을 포함하고 있다. ‘반응하기’는 크게 ‘교육하기’와 ‘창의적 방법 추구’ 등의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먼 저, ‘교육하기’는 자원 줄이기와 다시 만들어 쓰기 등의 구체적인 방법들을 알리는 것으로서 생태적으로 환경적으로 안전한 상품에 대한 선호를 소비자로서, 지역사회의 일원으로서 생산자에게나 지역사회 지도자들에게 분명하게 표현하는 것을 포함한다. 이 일을 위해서는개인에서 출발해서 지역공동체와 국가 공동체가 함께 움직여져야만 하는 중요한 것이라는 문제의식을 가진 개인이 자원절약과 다시 만들어 쓰기와 가정에서 할 수 있는 퇴비만들기 등에 대한 정보를 다른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나눌 필요가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바로 우리 개인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우리가 살기 원하는 세상의 모습을 가꾸어 갈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말이 조금은 교만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어쩌면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의 모습이 바로 우리의 선조들이 그리고 우리 자신이 선택한 경제행위의 결과라는 사실을 생각할 때 보다 깊이 생각해 볼 의미 심장한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것이야말로 하나님을 중심으로 신뢰하지 않는 데서 오는 결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들을 통해 우리의 반응을 나타낼 수 있을까?

-   특정 제품의 생산자에게 불필요한 포장과 제품에 사용된 위해요소 사용을 줄일 것을 요구하는 편지나 이메일을 보낸다. 덧붙여서 만일 회사의 제품이 긍정적인 변화를 보이면 그에 대한 반응도 보여준다.
-   지역사회에서 적극적으로 자원 줄이기, 다시 만들어 쓰기, 그 외 다시 쓰기 등의 방법 등의 장점을 알리고 동참을 격려한다.
-   가정이나 일터에서 적절한 곳에 다시 사용가능하고 다시 만들어 쓰거나 다시 만들어 쓸 수 있는 제품을 사용하도록 한다.
-   인터넷의 게시판이나 직접방문 또는 편지 등을 이용하여 학교 교육의 내용 속에 환경교육을 담고, 그 교육 내용 속에 3R의 내용을 담도록 교육관계 기관이나 의사결정자들에게 요구한다.
-   각 지역사회마다 환경적으로 건강한 쓰레기 프로그램을 갖도록 요구하거나 현재 진행 중인 프로그램을 점검하고 부족한 것들에 대해 대안과 함께 의견을 제시한다.

다 음으로는 쓰레기의 양이나 독성을 줄이는데 창의적인 방법을 찾아서 적용해 보는 것이다. 사실 찾아 보면 쓰레기의 양이나 독성을 줄이기 위한 방법들은 많이 있다. 창의적으로 생각해 보면 원천적으로 쓰레기를 줄이거나 다시 만들어 쓰기 위한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다. 각자의 생활 영역에서 작은 부분들에 신경을 쓰다 보면 적쟎은 방법들을 찾아내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것들을 생각해 볼 수 있다.

-   물건을 담았던 큰 종이 상자를 아이가 놀 수 있는 집으로 꾸밀 수 있다.
-   플라스틱 아이스 크림 박스를 꽃을 키울 수 있는 화분으로 바꿀 수 있다.
-   계란을 담았던 종이 상자를 이용하여 씨를 심어 싹을 틔울 수 있다.
-   폐 타이어 (쇠가 포함된 타이어는 제외)를 이용하여 아이들이 탈 수 있는 그네나 놀이터 기구들을 만들 수 있다.
-   폐 타이어를 적당한 높이까지 쌓아 올려서 감자나 나무 등을 심을 수 있다.
-   잉크나 미술 용품을 살 때 유해 성분이 포함되지 않은 제품을 구입한다.
-   원천적으로 쓰레기를 줄이는 방법을 찾는다. 예를 들어 커피를 사서 보관할 때 빈 커피 깡통에다가 다량을 사서 보관한다.
-   물이나 우유 등의 음료수를 살 경우 다시 사용 가능한 용기 속에 담긴 것을 산다.
-   물건을 주문할 경우 돈을 절약하고 포장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서 단체로 우편을 주문한다.

환 경을 보호하기 위한 대안을 창의적으로 찾다보면 위에서 든 예들 이외에 보다 다양한 방법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에서 이렇게 생활과 깊이 관련된 논의가 생겨나고 구체적인 방법을 찾아가려는 시도를 창의적으로 해 보는 것도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각 소그룹 별로, 구역모임 별로 구체적인 적용방법을 찾아 공동의 노력을 기울이다 보면 전도의 대상으로만 보아오던 이웃에 대해 함께 살아가야 할 공동운명체로서의 존재인식을 갖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솔선해서 마을의 일이나 이웃의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대안을 제시하고 함께 살아가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글을 마무리하며

위 에서 지적된 것처럼 환경보호를 위해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다시 생각’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건강한 성경이해와 상식과 양심에 따라 이제껏 길들여진 사고와 습관과 행동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생각해온 것들과 들어온 말들이 과연 성경적인가를 질문해 보아야 한다. 특히나 “실제 우리 생활에 적용되는 삶을 성경에 바탕을 두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필자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산상수훈의 황금률을 환경보호와 관련하여 다시 생각해 봐야할 구절들 중의 하나의 예로 삼아 설명하려고 한다. 다소 어색한 부분이 있긴 하지만 그저 부족한 시도로 생각하고 읽어 주기 바란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마태복음 7장 12절)

위 마태복음 7장 12절은 산상수훈 중에서 황금률로 널리 알려져왔다. 이 구절은 마태복음 7장 7절부터 11절까지 나오는 내용의 결론으로 보인다. 자칫 이 구절들이 기복적으로 이용되어서 많은 이들에게 거부감을 주는 것도 사실이지만 우리의 가치관이 성경적으로 변하면 이 문단만큼 실제적으로 우리의 마음을 위로하며 채찍질하는 구절들도 많지 않다. 7절과 8절에서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행위에 대한 정확한 약속이 제시되어 있고 9절에서 11절까지는 아버지의 예를 들어서 아버지가 아들의 필요를 얼마나 잘 아시는가, 그리고 그 필요를 얼마나 충실히 채워주실 의지가 있으신가를 역설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즉 아버지 (하나님)만을 신뢰할 때 이러한 간구는 하나님의 신실하심만으로 충분히 이루어 주실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듯 하다.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우리는 위 구절에서 말하는 내용의 결론으로 황금률을 해석할 필요가 있다. 필자의 부족한 견해로 볼 때 황금률은 무엇을 구할 것인가에 대한 간구의 내용을 총체적으로 정리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버지의 신실하심을 믿고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대로 남을 대접하는 것을 지금까지는 우리의 일반적인 삶의 자세로 이해해왔는데 다시 생각해 보면 이것은 우리가 아버지께 간구하는 내용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무슨 내용을 담아 구할 것인가? 그것은 바로 성경전체를 통해, 그리고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을 통해, 예수님의 제자들과 우리 신앙의 선배들의 삶을 통해 나타나는 본을 따라 구체적으로 우리의 삶의 현장을 반영한 간구가 되어야 할 것이다. 때로는 아주 현장성이 있는 것이어야 하며 관계적인 것이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후 13절에 나타나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는 명령이 바로 간구의 내용과 연결된 시금석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의 의사결정이 과연 참으로 이웃을 위하고 내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대접하는 것인지 자로 재보는 판단기준이 되지 않을까?

환 경보호를 위한 시도는 결과가 당장 눈에 보이지 않으며 자칫 혼자서만 바보같은 시도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황금률을 말씀하신 예수의 정신에 의거하면 우리가 깨끗한 환경에서 살고자 한다면 우리는 더 더욱 환경을 깨끗하게 해야한다. 그것이 사람을 포함한 우리 주위의 모든 자연만물을 이웃으로 대하는 자세이다. 나 이외의 다른 존재 즉 자연만물이 나에게 살기 좋은 환경을 제공해 주길 원하면 그만큼 우리 자신은 하나님의 섭리에 맞게 자연만물의 이치를 이해하고 그에 맞게 우리의 삶의 습관과 행위를 바로 잡아가야만 한다. 시편 기자가 누누히 자연의 위대함과 그 속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사랑하심을 노래한 것처럼 환경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속에 하나님을 진정으로 경외하는 모습이 나타나야만 우리의 신앙이 얼마나 건강한 지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혹 자는질문하지 않는 사람은 죽은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성경의 여러 곳에서도 ‘생각해 보라’는 명령을 자주 한다. 성경을 통해 우리의 삶이 얼마나 교만하고 패역한 지 조명하고, 우리의 마음 자세와 행위가 하나님의 섭리에 비추어 어떠한 지 다시 생각하고 회개하면서 환경을 이웃으로 대하는 건강한 삶을 추구해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 가는 과정의 하나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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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스타 2003년 12월

글을 시작하며
 
지난 호까지 우리는 가정에서 할 수 있는 환경보호를 위한 방안으로서 줄이기 (reduce)와 다시 쓰기 (reuse) 살펴보았다. 그런데 사실 우리의 귀에 익숙한 환경보호의 용어는 앞의 두 가지 용어가 아니라 ‘다시 만들어 쓰기-재활용 (recycle)’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는 방송과 교육의 효과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마치 다시 만들어 쓰기를 잘 하면 환경보호에 충실한 생활을 하는 것처럼 사람들의 인식을 형성해 간다.  이러한 대중교육은 아마도 필요한 물건에 대한 욕구는 그대로 두되, 다 쓰거나 흥미를 잃게 된 물건은 다시 만들어 쓰면 된다는 편의주의적 사고를 부추길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앞의 호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사실 환경오염의 방지라는 측면에서 볼 때 ‘다시 만들어 쓰기’가 단연 앞의 두 가지 방안에 비해 그 효과가 뒤처지기 때문이다. 즉, 더러워진 것을 씻고 가공하여 쓸 수 있는 상태가 되도록 하는 과정에서 천연의 재료를 쓸 때와 비교하여 결코 적지 않은 양의 에너지가 소비되고 부수적으로 환경오염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다시 만들어 쓰기는 차선의 환경보호 방안
 
다음은 영국의 맨체스터 메트로폴리탄 대학교의 한 인터넷 사이트에서 옮겨온 글로서 다시 만들어 쓰기에 대해 일반적으로 우리가 들어온 내용이다. 
 
The definition of recycling is to pass a substance through a system that enables that substance to be reused. Waste recycling involves the collection of waste materials and the separation and clean-up of those materials. Recycling waste means that fewer new products and consumables need to be produced, saving raw materials and reducing energy consumption.
(http://www.doc.mmu.ac.uk/aric/eae/Sustainability/Older/Waste_Recycling.html)
 
 
위 글은 다시 만들어 쓰기의 정의를 한 다음, 그 과정과 장점들을 설명하고 있다.  즉 다시 쓰기를 하려면 쓰레기를 모아서 분리하고 깨끗하게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과, 새로운 제품을 적게 만들고 천연원료를 절약하고 에너지 소비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을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글의 어디에서도 쓰레기를 모으고 분리하고 깨끗하게 하고 다시 만드는 과정에서 필요한 에너지의 양과 그 에너지를 사용함으로써 생겨나는 부수적인 환경오염의 우려를 하고 있지 않다. 
 
앞 에서 다시 만들어 쓰기에 대한 조금은 부정적인 설명을 먼저 한 이유는 다시 만들어 쓰기가 줄이기와 다시 쓰기를 동반하지 않는다면 환경보호를 위한 최선의 대안이 되지 못한다는 것과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근본적인 생활의 변화까지 유도하지 못한다는 것 때문이다.  즉 현대 도시사회는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익숙해져 있는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방식은 그대로 유지한 채, 그러한 삶의 방식의 부산물인 오염물질을 화학적으로 또는 생물학적으로 처리하거나 버려지는 쓰레기들 중에서 쓸만한 것을 골라서 다시 만들어 쓰는 방법으로 환경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환경오염의 속도를 조금 늦출 수는 있어도 궁극적으로 맞게될 오염의 결과를 피하게 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만들어 쓰기의 필요성
 
필자가 유학 시절에 살던 필라델피아와 지금 살고 있는 배튼루지의 가정용 쓰레기 처리 시스템을 보면서 미국이 아직은 한국이나 유럽처럼 쓰레기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그렇게 많이 느끼지 않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예를 들면 한국과는 달리 규격 쓰레기 봉투를 사용하지 않는다든지, 쓰레기 종량제를 실시하지 않는다든지, 개인 집이나 아파트 단지 내에 쓰레기 분리 수거를 위한 통은 없고 집에서 나오는 쓰레기들을 버릴 때, 특별히 선별하지 않고 쓰레기 처리회사에서 운영하는 쓰레기 통이나 트럭에 그냥 한꺼번에 넣어서 버린다. 이렇게 한꺼번에 모아서 회사에서 직접 쓸만한 것들만 선별하고 나머지는 쓰레기 매립지에서 매립하거나 소각로에서 불에 태운다. 몇몇 조사에 의하면 매립을 시작한 지 30년 이상이 된 매립지에서 썩지 않은 음식물이나 기타 다시 만들어 쓸 수 있는 물품들이 발견되고 있다고 한다 (미국 환경청).  이렇게 다시 만들어 쓸 수 있는 제품이 그냥 쓰레기로 매립되고 있는 것과 매립된 것들 중에서 썩을 수 있는 것들이 썩지 못하는 문제들 때문에 다시 한 번 다시 만들어 쓰기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켜야할 필요를 느낀다.
 
 
다시 만들어 쓰기의 방안
 
다시 만들어 쓰기는 천연의 재료를 써서 물건을 만들어 내거나, 생겨난 쓰레기를 무작정 버리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한 환경보호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만일 우리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삶의 방식을 급격하게 바꿀 수 없다면 다시 만들어 쓰기 정도는 실천할 수 있어야 환경보호에 최소한의 참여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따라서 다음에서는 이러한 다시 만들어 쓰기의 한계를 인정하면서 가정에서 할 수 있는 다시 만들어 쓰기의 방안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가정에서 다시 만들어 쓰기를 실천할 수 있는 방안으로는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 째는 다시 만들어 쓸 수 있는 제품을 골라서 다시 만들어 쓰는 것이며, 둘째는 다시 만든 제품을 골라서 사는 것이며, 세째는 개인 집의 뒷마당이나 마을 공동 장소에서 음식물 찌꺼기나 기타 정원 손질한 것들을 썪혀서 퇴비로 만드는 것이다. 
 
첫째로 지역적으로 다시 만들어 쓸 수 있는 물품으로 지정되어 수집되는 물품이 어떤 것인지 확인한 후 그러한 제품을 중심으로 구매를 하는 것이다. 
 
많은 마을에서는 유리, 알루미늄, 철, 신문지를 비롯한 종이와 카드보드와 특정한 종류의 플라스틱 종류 등을 수집한다. 미국의 경우에는 각 community 관리나 자원봉사 단체나 실제로 다시 만들어 쓰기를 담당하고 있는 회사에 연락을 해서 해당 물품의 목록을 확인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한국의 경우에는 아파트 관리 사무소나 시청이나 구청이나 동사무소를 통해 이러한 목록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이러한 시스템이 없으면 사실상 특정한 물품들에 한해서만 다시 만들어 쓰기를 할 수 있을 뿐 대부분의 물품들은 대책없이 매립장으로 향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혹시 지역 공동체에서 다시 만들어 쓰는 시스템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즉, 길 옆에서 분리한 물건을 가져가는 프로그램이거나 주민이 직접 일정한 장소까지 가져가는 프로그램들을 말하는 것으로 각 지역 공동체에서는 어떤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구체적으로 어떤 물품들을 분리 수거하는지 확인한 후 그에 따라 대처한다.  예를 들어 어떤 지역 공동체에서는 신문지에 끼어 온 광고지는 수거하지 않는 경우도 있고, 캔 종류도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진 캔과 기타 철로 만들어진 캔을 분리하여 수거하곤 한다. 한국에 있을 동안 아파트에서 살았는데 각 아파트 단지마다 수거하는 물품과 수거하는 날짜가 정해져 있어서 아파트에 사는 주민이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러나 일반 단독주택이나 연립주택지역에서는 이러한 분리수거가 효과적으로 시행되는 것 같지 않았다.  미 국의 경우 작은 지역 공동체별로 나름대로의 원칙을 가지고 이러한 쓰레기 분리 수거를 시행하는 관계로 집 옆에서 물건을 가져가는 경우에는 정해진 날짜에 맞춰서 지정된 물품을 내어 놓으면 되고, 분리한 물건을 가져다 놓은 경우에는 장소를 알아놓고 그곳까지 가져다 놓아야 한다. 만일 지금 살고 있는 지역 공동체에 이러한 프로그램이 없으면 그냥 있지말고 적극적으로 관련단체나 주민들을 만나서 다시 만들어 쓰기의 필요성을 알리고 적절한 시스템을 도입하도록 요청하는 일도 중요하다. 
 
그렇다면 어떤 물품들을 다시 만들어 쓸 수 있을까?  개략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다시 만들어 쓸 수 있는 제품 목록
 
 
제품 목록
다시 만들어지는 내용
오래된 신문 및 잡지류
오래된 신문은 수거되어서 다음과 같은 용도로 다시 만들어 진다. 신문, 동물을 위한 침대, 섬유단열재, 섬유판, 펄프 제품, 전화번호부 등의 종이 제품 등.
종이 상자류
주름잡힌 판지나 종이 상자용 판지 (피자 박스, 선물용 상자, 기타 상품 상자) 등은 수거되어서 시멘트 부대에 쓰이는 종이, 지붕을 잇는 펠트재, 새로운 상자를 만드는 판지, 종이 티슈와 종이 타월 등으로 다시 만들어진다.
플라스틱 병
수거된 플라스틱 병은 카페트, 플라스틱 덮개, 섬유로된 단열재, 보우트의 선체,  사무실용 바인더 등의 여러 종류의 플라스틱 제품으로 다시 만들어진다.
플라스틱 용기
수거된 플라스틱 용기 (보통 플라스틱 우유통, 쥬스 통)는 플라스틱 판재, 농업용 울타리, 플라스틱으로 된 얇은 판, 해양 말뚝, 그리고 플라스틱 벽돌 등으로 다시 만들어진다.
알루미늄 깡통
알루미늄 깡통은 녹여져서 다른 알루미늄 제품 즉 알루니늄 호일, 새로운 알루미늄 깡통, 알루미늄으로 된 차 부속품 등으로 다시 만들어진다.
철로 만들어진 깡통
철로 만들어진 깡통은 녹여져서 새로운 다른 철 제품, 둥근 쇠막대, 보강 막대, 그리고 차의 부속품 등으로 다시 만들어진다. 
유리병
수거된 유리병은 새로운 유리병, 고속도로에서 쓰이는 페인트, 유리섬유, 그리고 기계절삭용 모래 등으로 다시 만들어 진다. 
건전지
재충전 건전지의 일종인 니켈-카드뮴 건전지는 일단 수거되면 니켈, 크롬, 주철등으로 분리된다. 재생된 니켈은 스텐레스 강 합금을 만드는 데 쓰인다. 그리고 재생된 카드뮴은 새로운 니켈-카드뮴 재충전 건전지를 만드는데 쓰인다. 
 
그 외 가정용 위험 쓰레기 중에서 다시 만들어 쓸 수 있는 것들은 다음과 같다.  페 인트, 살충제, 제초제, 각종 독극물, 휘발유와 각종 연료, 자동차 엔진 오일 및 필터, 방향제, 부동액, 브레이크와 트랜스미션 오일, 차 건전지, 수은 함유제품 (온도계 및 자동온도 조절기 등) 등의 제품들은 특별히 지정된 곳에 가져다 주거나 허가를 받은 회사에게 넘겨서 처리하도록 한다. 일단 넘겨진 제품들은 전문회사에 맡겨져서 독성을 제거하는 과정을 거쳐 새로운 제품을 만드는데 쓰여지거나 매립된다.  참고로 차와 관련된 것들 즉 자동차 오일이나 트랜스미션 오일, 차 건전지들은 일정액의 처리비용을 지불하면 자동차 수리공장에서 일괄적으로 처리한다.  만일 본인이 부품을 교체하는 일을 직접할 경우나 위험 쓰레기가 발견될 경우에는 위험물을 어린 아이의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옮겨 놓고 빠른 시간 내에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좋다. 

둘째로 다시 만든 제품을 사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다시 만들어 쓰기가 성공적으로 운영되려면 위에서 살펴본 다시 만들어질 수 있는 물품이 반드시 새로운 제품이 되는 과정을 거쳐야 하며, 다시 만들어진 제품은 소비자에 의해 구매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다음 네 가지의 원칙을 지키면 좋겠다.

  1. 물건을 구매할 때 제품이 다시 만들어진 재료로 만들어졌는지 확인한다. 많 은 병, 캔, 종이 상자, 포장지, 과자 상자들이 다시 만들어진 재료로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에 물건을 구매할 때 꼼꼼하게 살펴서 다시 만들어진 재료로 만들어진 제품을 구매하도록 한다. 
  2. 할 수 있는 한 다시 만들어진 내용물을 가진 제품을 사용한다. 예를 들어 많은 종류의 종이, 유리, 철, 플라스틱 제품들, 즉 문구류, 포장지, 컴퓨터 인쇄종이, 많은 종류의 유리, 철, 플라스틱 용기들이다시 만들어진 재료로 만들어진다. 이러한 제품들은 식료품점이나 약국이나 여러 상점들에서 구할 수 있다. 문구류 가게나 인쇄소나 우편주문을 통해서도 이러한 제품을 구매할 수 있다.
  3. 다시 만들어진 재료를 사용하고 있는 지를 확인할 때는 반드시 다시 만들어진 재료를 사용했는지를 밝혀주는 문구를 찾고, 가능하면 다시 만들어진 재료의 함량이 가장 많은 제품을 선택한다.  그리고 좀 더 시간과 열의가 있다면 해당 제품의 회사에 수신자 부담 전화를 걸어 그 함량이 얼마나 되는지 확인한 후 구매해도 좋을 것이다.
  4. 각자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개인적으로나, 지역의 국회의원을 통해서나, 지역단위의 조직을 통해서 각 지방정부와 지역 산업체와 기타 관련 업체에서 다시 만들어진 재료로 만들어진 제품을 사용하도록 하는 규정을 제정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한다.  예를 들어, 각 지방 정부에서는 각종 사무용품이나 차량관련 제품이나 건축관련 제품 등을 구매할 때 정해진 규정에 맞게 구매하도록 한다.  미국의 경우 연방정부에서는 대부분 이러한 다시 만들어진 제품을 사용하도록 하는 지침을 가지고 있다.

셋째로 개인 집의 뒷마당이나 마을 공동 장소에서 음식물 찌꺼기나 기타 정원 손질한 것들 (개인 집이 있는 경우)을 썩혀서 퇴비로 만드는 것이다. 

퇴비를 만드는 것의 장점과 방안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만일 음식물 찌꺼기와 정원이나 뜰을 정리하면서 생긴 나뭇가지, 풀 등을 퇴비로 만들면 상당한 양의 쓰레기가 줄어들어서 결국 매립을 덜하게 되는 장점이 있다. 퇴비를 만드는 과정에서 땅이 기름지게 되어 잡초가 잘 자라지 못하게 되고 토양의 손실을 막게되고 화학비료를 적게 사용하게 되는 장점이 있다. 
  2. 적절하게 퇴비가 만들어지면 다시 정원이나 잔디에 뿌려서 토양을 기름지게 하는 거름으로 사용할 수 있다.  혹 화분을 키우면 화분의 흙갈이에 쓰이는 좋은 퇴비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아파트에 살 경우에는 아파트 공동 정원이나 화단에 가져다가 퇴비로 뿌려줄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람이 아주 많이 모여 사는 곳에서는 썩히는 일을 삼갈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퇴비를 만드는 중에 쥐나 다른 해충들이 모여들기 때문이다. 
  3. 만일 퇴비를 만들 공간이 없으면 퇴비를 만들 수 있는 재료를 수거해 가는 프로그램을 찾아서 참여하거나 실제로 퇴비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는 가까운 지역 공동체에게 재료를 제공한다. 만일 그러한 프로그램이 속한 지역공동체에 없으면 해당 공공기관에 연락을 하거나 주민 대표를 통하여 퇴비재료 수거 프로그램을 만들거나 해당 지역공동체에서 퇴비만드는 작업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 
 
글을 맺으면서
 
간혹 기독교인들 중에 이세상은 죄악으로 가득차서 곧 멸망할 것이며 더 이상 미련을 가질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곤 한다.  이런 이들은 현세를 등진 채 미래에 다가올 천국을 준비하는데 여념이 없어 한다.  그렇다면 기독교는 정말로 현실을 부정하는 것인가?
 
필자의 이해로는 기독교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인해 우리가 하나님을 배반한 죄를 사함받고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과 예수께서 다시 사셨듯이 우리도 다시 살 것이라는 사실을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으로 아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 복음의 내용이 자신의 양심 깊은 곳에서부터 더욱 깊어지면서 우리의 삶은 완전하지는 않지만 현세에서 부활의 삶과 천국의 삶을경험하게 된다. 따라서 예수께서도 그러셨듯이 기독교는 철저히 현실에 기반을 두고 현실 속에서 구원을 경험하며, 고난을 통한 천국의 소망과 기쁨을 이땅에서 경험하는 것이다.
 
이제 이러한 신앙의 내용을 현실 속에서 구체화시켜가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하나님의 이름을 인정하는) , 예배가 우리에게 숙제로 남아있다고 있다.  그렇다면 어떤 생활을 내용으로 채워갈 것인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 중에 이웃을 몸과 같이 사랑하라 명령이 명제가 되리라 믿는다.  여기서 말하는 이웃사랑의 범주는 단지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포함한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자연 만물을 포함한다고 믿는다. 
 
따라서 지금까지 몇 차례에 걸쳐 살펴보고 있는 환경보호의 노력은 아주 구체적인 이웃사랑의 방법이자 만물의 관리자로서 사람에게 부여된 중요한 책임을 다하는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중에서도다시 만들어 쓰기’는 환경보호의 방안 중에서 최선은 아니라 할지라도줄이기다시 쓰기 실천한다는 전제하에 우리가 있는 하나의 환경보호 방안이다.  조금은 귀찮고 힘든 과정이 있긴 하지만 좀 더 적극적으로 ‘다시 만들어 쓰기’ 실천함으로써 한 걸음 더 가까이 주께서 명령하신 이웃 사랑의 편린이라도 경험해 보길 소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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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스타 2003년 11월


글을 시작하면서

아 내가 아이를 가진 지 8개월이 되면서 아내는 태어날 아이를 위해 필요한 물품을 준비해야한다고 마음이 많이 바빠지고 분주해졌다. 그렇다고 구체적으로 무얼 사는 것도 아니면서 여기 저기 아기 용품을 수소문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얼마 전 출산한 친구에게서 천 기저귀, 요람, 젖병, 속옷 등을 받아 오더니, 얼마 전에는 예비 아빠를 통해 처형 네가 쓰던 아기 이불, 목욕통 등을 가져오게 했다. 오래 쓰지 않을 물건이니까 그런다고 하면서....

아 내의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필자가 유학하던 필라델피아에서 받은 신선한 충격이 생각났다. 필자가 필라델피아에 있을 때 살던 집은 학교와 주변 지역의 경계에 있었는데 학생들을 제외하면 주민들의 대부분은 흑인들이었다. 유학 초기에 집 근처 분위기도 익힐 겸해서 걸어서 (미국의 대도시 지역에서는 지금도 그렇지만 흑인가에 걸어 다니는 것을 좀 위험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음) 주변 상점과 주택가를 돌아 본 적이 있다. 조금은 경계도 하면서 이곳 저곳 살펴보는 것이 꽤 재미가 있었다. 길가에 피어있던 무궁화 꽃을 보니 갑자기 한국이 생각나기도 하고 높지 않은 집들이 줄지어 다닥다닥 붙어있는 것도 흥미로웠다. 그런데 한 군데 Second -Mile Center라는 간판에 눈이 끌려 들어가서 이것저것 보면서 진열해 놓은 물건들이 대부분 집에서 쓰던 물건들이거나 입던 옷들이었다. 어떤 것들은 많이 낡은 것도 있지만 어떤 것들은 아주 쓸만한 것들도 있었다. 가구를 비롯해서 집안 잡동사니들이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었다. 그리고 손님들도 상당히 많이 들어와서 물건을 보고 사곤 하는 것이었다. 그 때까지 필자의 경험 상 한국에서는 쓰던 물건을 내어다 파는 경우를 잘 못 본 터라 좀 생소하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 가게에 있는 손님들의 표정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보였다. 손님 중에는 백인도 있고 흑인도 있고 가끔 씩 동양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한국 사람을 볼 수는 없었다. 물론 한국 사람이 주변에 그렇게 많이 사는 것은 아니라서 기대하기는 어려웠겠지만....

우 리 한국 사람에게 있어서 자신이 쓰던 물건을 가까운 사람에게 나눠주거나 빌려주는 경우는 간혹 있어도, 시장에 내다 파는 경우는 흔치 않은 탓에 필라델피아에서의 첫 중고가게 경험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차츰 그곳을 스스럼없이 애용 (?)하고 주위에 소개도 하면서 그 곳의 이름이 산상수훈의 5장 41절에서 유래하고 있는 것과 그 곳의 수익의 대부분을 선교헌금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물건값이 아주 싸고 물건들도 쓸만할 뿐만 아니라 가게의 운영목적이 마음에 들어 유학생활을 마무리할 때까지 적극적으로 이곳을 이용했던 기억이 새롭다.

흔 히 쓸 것은 쓰고 남은 것을 이용하여 재활용을 하면 환경을 보호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이미 만들어진 물건을 다시 쓰면서 환경을 보호한다고 생각하는 경우는 그리 많은 것 같지 같다. 특히 생활용품이나 옷 종류는 안 쓰거나 안 입는 한이 있어도 남이 쓰던 것을 다시 쓰지 않는 것 같다. 아주 잠깐 쓸 것들을 제외하면. 이러한 경우는 우리 한국 사람들에게 좀 더 강한 것 같다. 아마도 위생을 고려하면서 생긴 습관이기도 하지만 다분히 체면을 따지는 경향에서 생긴 것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다시 쓰기의 효과들

가 정에서 할 수 있는 여러 환경보호 대안 중에서 줄이기가 에너지 사용을 어느 정도 용인하는 것이라면 다시 쓰기는 원천적인 의미에서 필요한 물건을 생산하기 위해 자원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도록 하는 보다 근본적인 대안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다시 쓰기를 생활화하게 될 경우 필요한 물건을 새롭게 생산하거나 다시 만들어 쓰지 않아도 되므로 에너지와 자원을 절약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처리 할 쓰레기의 양이 현저하게 줄어들게 된다.

구체적으로 다시 쓰기를 통해 얻게 되는 환경보호의 효과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 째로 쓰레기의 양이 현저하게 감소하게 될 것이다. 즉 쓰고 나서 버리게 될 물건들이 쓰레기더미에 쌓이는 양이 줄어들어서 다양한 환경보호의 효과를 얻게 된다. 쓰레기를 태우거나 매립할 경우 나오게 되는 유독가스나 침출수 등으로부터 지하수를 보호할 수 있게 된다. 경제적으로는 매립비용이나 소각비용을 줄이게 되어 결국 납세자의 부담이 한결 가볍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둘 째로, 자원보호의 효과를 가져오게 된다. 다시 쓰기는 그 자체로 새로운 물건을 생산하거나 재활용하는 것보다 에너지와 자원을 덜 쓴다. 미국의 예를 들면, 유리병을 다시 쓰면 새로운 병을 만들어 내는 데 드는 것보다 93 퍼센트의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다. 또한 1991년 통계에 따르면 미국 비즈니스 업계에서만 매년 2천 1백만 톤의 종이를 사용하는 데 이는 나무의 양으로 약 3억 5천만 그루에 해당한다고 한다. 만일 복사하는 데 종이를 양면으로 사용하는 비율을 26퍼센트에서 60퍼센트로 높이면 약 1천 5백만 그루의 나무를 살릴 수 있다.

셋 째로, 에너지 효율이 높아진다. 하나의 물건에 들어 있는 에너지는 그것을 처음에 생산하는데 필요한 에너지의 양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쓰기는 이렇게 물건에 들어있는 에너지의 양을 보존한다. 예를 들어 자동차 타이어의 바닥을 갈아붙이는 것이나, 건축 폐 자재를 이용해서 건물을 짓는 것이나, 자동차 부품, 복사기, 프린터 카트리지 등을 비롯한 여러 제품을 재 가공하는 것을 통해 상당히 높은 효율의 에너지 보존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넷 째로, 오염을 줄일 수 있다. 다시 쓰기를 통하면 쓰레기를 태우거나 매립하면서 생겨나는 대기오염 및 수질 오염을 피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종이생산을 할 경우 매년 수백만 파운드의 유독성 화학물질을 강이나 바다로 흘려보내게 되는 데 이때 수질이 악화되면서 먹이사슬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또한 대기 중으로 이산화 황, 아세톤, 메탄올 등을 비롯한 각종 연기들을 내뿜게 되면서 공기오염은 물론 산성비의 원인을 제공하기도 한다. 재활용 종이를 생산하는 경우에는 종이를 처음 생산하는 것보다 환경에 적은 부담을 주지만 그래도 잉크를 제거하면서 생겨나는 슬러지를 처리하기 위해 매립을 하거나 소각을 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공기나 수질을 오염시키게 된다. 종이를 다시 쓰면 이러한 환경부담을 줄이게 된다. 종이를 이용해서 만든 기저귀나 쇼핑백, 공기필터, 커피필터 등을 사용하기보다는 천으로 만들어서 물로 빨아 쓸 수 있는 것들을 사용하면 다시 쓸 수 있어 종이 사용을 현저히 줄이게 되며 아울러 나무 사용이 줄게 될 것이다.

다 섯 째로, 다시 쓰기를 실천하게 되면 경제적인 면에서 많은 이점이 있다. 즉 다시 쓰기를 통해 많은 직업과 경제활동이 생겨날 잠재력이 있다. 만일 다시 쓰기가 대중적인 관심을 끌게 되면 버려질 물건을 다시 쓰는 데 비즈니스와 고용 기회가 생겨날 것이다. 가령 위에서 예로 든 중고 가게 전문점이 특정분야마다 생겨날 수 있다. 그리고 다양한 분야에 전문 대여점이 생겨날 수도 있다. 또 소비자로서 개인은 필요한 물건을 싼값에 사용할 수 있어서 필자처럼 경제적으로 긍정적인 효과를 얻게 된다. 나아가 국가 전체로 보면 상당한 경제효과를 얻게 될 것이다.

다시 쓰기를 위한 방법들

그렇다면 가정에서 다시 쓰기를 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들은 무엇이 있을까? 다음에 몇 가지의 원칙과 함께 좀 더 구체적인 것들을 살펴본다.

1. 제품을 다시 사용할 수 있는 지 생각한다.
어떤 제품이든지 한 번 이상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다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잘 돌이켜 보면 흔히 일회 용품이라고 하는 것들도 사실은 몇 번 씩 쓸 수 있다는 것을 경험상 알 수 있을 것이다. 하물며 일회용품으로 만들지 않은 것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제품을 살 때 다시 쓸 수 있는 것인지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음식을 위한 용기를 다시 사용할 때는 적절한 위생을 확보해야만 한다.

 a. 사기나 유리로 만들어진 컵은 다시 씻어서 오래 쓸 수 있으므로 일할 때나 집에서 커피를 마시거나 음료수를 마실 경우 자기 자신의 컵을 사용한다.
 b. 집에서나 일할 때, 파티를 하거나 소풍 또는 여행을 갈 때 씻어서 다시 쓸 수 있는 견고한 주방용품 즉, 포크나 수저, 접시, 그릇 등을 사용한다.
 d. 일할 때나 집에서 레이저 프린터와 복사기와 팩스 기계 등의 카트리지가 재충전 가능한 지 확인 후 구입한다.
 e. 종이가 아닌 천으로 된 냅킨, 스펀지, 행주 등을 사용한다.
 f. 음료수나 세제 등을 구입할 때 다시 담을 수 있는 용기에 들어 있는 제품을 고른다. 어떤 제품은 소비자가 직접 다시 담을 수 있게 되어 있다.
 g. 가능하다면 건전지를 살 때 재충전 가능한 것을 고른다. 그렇지 않다면 유해 물질이 적게 든 건전지를 고른다.
i. 만일 어쩔 수 없이 일회용을 쓰게 될 경우 필요한 것을 딱 한 번만 쓴다. 예를 들면 일회용 케첩 봉투나 냅킨의 경우 하나 이상이 필요하지 않을 경우 단 하나만 쓴다. 맥도널드에 갔을 경우 하나의 케첩을 달라고 한다.

2. 오래 쓸 수 있는 제품은 잘 보관하고 고쳐 쓴다.
오래 쓸 수 있는 옷과 타이어와 가구들은 잘 보관하고 고쳐 쓰면 잘 닳지 않고 부서지지 않아서 자주 바꾸지 않고 버리지 않아도 된다. 비록 제품 값이 처음에는 좀 나가더라도 장기적으로 볼 때 오래 쓸 수 있는 장점으로 인해 그 비용이 상쇄되거나 훨씬 경제적이다. 그렇다면 어떤 제품을 어떻게 구매하고 관리할 수 있을까?

j. 오랜 기간 동안 품질을 보증하는 오래 가는 가구와 가전제품을 구매한다. 소비자들의 제품 평가보고서를 확인해보는 것도 중요하다. 그리고 제품을 쉽게 고칠 수 있는 지도 알아보아야 한다.
k. 가전제품을 사용할 때 제품 설명서를 따라 적절히 사용하고 관리한다.
l. 차나 자전거 등의 타이어를 살 때 질 좋고 오래 가는 제품을 구입함으로써 타이어를 자주 갈거나 버리는 경우를 줄인다. 타이어의 수명을 연장하려면 타이어의 압력을 한 달에 한 번 씩 주기적으로 체크하고 타이어를 정기적으로 바꿔 끼운다. 가능하다면 재생 타이어나 재 가공한 타이어를 사용한다.
m. 옷이나 구두, 핸드백이나 서류 가방 등을 가능한 대로 고쳐서 쓴다.
n. 가구나 스포츠 용품, 장난감이나 연장 등을 살 경우 제품을 오래 사용할 경우를 고려하여 견고한 제품을 산다.
o. 전구를 살 경우 백열등보다는 에너지가 적게 드는 형광등을 산다. 형광등은 백열등보다 훨씬 오래 사용할 수 있어서 전구를 자주 갈아 끼지 않아도 된다.

3. 봉지와 저장 용기를 다시 쓴다.
매일 사용하는 제품들의 대부분은 한 번 이상 사용 가능한 것들이다. 가방이나 저장 용기들을 버리기 전에 위생적으로 실제적으로 다시 쓸 수 있는 지 검토하는 것이 중요하다. 제품을 다시 사용하면 그 수명을 연장하게 되고 아울러 쓰레기를 줄이는 효과도 얻게 된다. 각 개인의 특수성에 맞게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일터에서나 공동체적으로 함께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는 것도 추천할 만하다.

 p. 종이봉지나 플라스틱 봉지를 다시 쓴다. 잘 살펴보아서 그 봉지들이 쓸만하면 다음 번에 장을 보러 갈 때 다시 사용한다. 또는 끈으로 만들거나 천으로 만든 봉지를 가져간다. 만일 재사용 봉지가 없고 한 두 가지의 물품을 구입할 경우 정말로 봉지가 필요한 지 재고해 본다.
 r. 한 번 쓴 종이나 봉투를 다시 사용한다. 복사하거나 쓴 종이의 다른 쪽 면도 사용한 후 재활용할 수 있게 한다. 선물 상자, 리본, 포장지 등을 보관했다가 다시 사용한다. 집안에 모아둔 것들 중에 다시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을 검사하고 목록을 작성해 두었다가 필요한 때 사용한다.
 s. 신문지나 상자, 포장용 땅콩 등을 모아 두었다가 물건을 싸서 부칠 때 다시 사용한다. 또한 신문지는 유리창을 닦을 때 쓰면 효과가 좋다.
t. 빈 병, 플라스틱 병, 우유 잔, 커피 캔 등의 저장 용기를 버리지 않고 씻어서 다시 사용한다. 이러한 용기들은 단추나 못, 압정 등을 보관하는 데 제격이다. 그리고 필자의 작은 경험이지만 커피 캔이나 큰 플라스틱 우윳병을 위 부분을 잘라내고 흙을 부어넣으면 꽃이나 작은 식물을 키울 수 있다.
 w. 자동차 기름이나 제초제 등이 들었던 병은 다시 쓰지 말고 분리해서 모아 두었다가 따로 처리한다. 이를 위해 지역자치단체에서 가정용 위험쓰레기 수집센타를 운영해야 한다. 그리고 위험한 저장물들은 표시를 해서 아이들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보관해야 한다.

4. 자주 쓰지 않는 물품은 빌리거나 나누어 쓴다.
자주 쓰지 않는 물품들은 집안에 있으면 공간을 차지하거나 먼지를 끌어 모으다가 결국 쓰레기로 버려진다. 이러한 제품들은 필요할 때 빌려 쓰는 것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비정기적으로 쓰이는 물품들은 이웃끼리 친구끼리 가족끼리 나누어 쓰는 것도 좋은 대안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천연자원도 절약하고 돈도 절약할 수 있다.

x. 혹시 파티를 할 경우에는 파티용품을 사지 않고 전문회사에서 빌리도록 한다. 즉 장식이나 파티에 필요한 용품들을 빌려쓰고 돌려주도록 한다.
bb. 집관리 필요한 물품들은 필요할 때 빌려쓰거나 마을에서 공동으로 구입한 후 필요할 때 돌아가면서 사용한다.
cc. 오래 쓰던 도구들이나 카메라 장비 등의 물건들을 버릴 때 친구나 이웃 등에게 필요한지 물어본 연후에 정말 아무도 필요하지 않을 때 버린다.
dd. 신문이나 잡지를 다른 사람들과 나누어서 본다.

5. 중고제품을 사거나 물건을 버리기보다는 팔거나 기부한다.
한 사람의 쓰레기가 다른 사람에게는 보물이 될 수도 있다. 불필요한 가전제품, 연장, 옷을 버리기 전에 그것들을 팔거나 기부하도록 하면 좋겠다. 또한 필요한 물품이 있을 때 중고제품을 선택하는 것도 좋은 생각이다. 이를 통해 자원을 절약할 수 있고 새 제품을 살 때 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필요한 물품을 구할 수 있게 됨으로써 아직 쓸 수 있는 물건들이 쓰레기가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ee. 필요하지 않는 물품들을 필요한 기관에 기부하거나 중고제품 판매점에 다시 판다. 기부를 하게 되면 어떤 경우에는 면세혜택을 얻기도 한다. 그리고 다시 팔 경우 현금을 받기도 한다. 기부를 받는 기관들은 주로 옷과 가구나 가전제품들을 받는다. 단 기부하는 물품들은 깨끗하고 품질이 양호해야만 한다.
ff. 쓰던 물품들을 바자회나 벼룩시장이나 집 마당에 놓고 팔 수 있다.
gg. 입을 수 있는 옷이나 쓸 수 있는 제품들을 가족들에게, 이웃에게, 또는 필요한 이들에게 나누어준다. 나누어주기 전에 제품의 질을 확인하여야 한다. 가령 옷의 경우 세탁을 하고 얼룩이나 구멍이 없어야 한다.
hh. 지역 공동체가 함께 격려하여서 옷이나 음식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주는 행사를 갖는 것도 생각해 볼 일이다. 이웃끼리 옷과 음식을 모으거나 근처의 상인들에게 흠이 났지만 먹을 만한 음식이나 아직 쓸만한 제품들을 기부 받아서 직접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주거나 그들을 돌보는 기관에 기부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ii. 필요한 책이나 전자제품, 가구, 그림 등을 중고 제품이 있을 경우 중고제품으로 구매한다.

글을 맺으면서

하 나님의 백성으로서 그리고 사회의 일원으로서 우리 그리스도인은 생활 속에서 주께 예배를 드려야 한다. 그 예배는 우리의 생활 전체를 주께서 원하시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며, 우리에게 주신 자연과 이웃에 대한 청지기의 책임을 다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다시 쓰기는 개인이나 공동체가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아주 효과적인 일이다. 어쩌면 다음 호에서 살펴 볼 재활용 (Recycle)보다도 먼저 생각해야 할 것으로서 그 경제적, 환경 적인 효과는 아무리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이다. 그러나 아무리 다시 쓰기의 중요성을 인식한다 해도 각 개인의 실행 의지가 굳건하지 않으면 소용없는 일이다. 먼저는 각 개인이 가정에서 일터에서 책임 있는 개인의 역할을 다 해내고, 공동체가 의지를 모아 구체적인 대안을 찾아갈 때 가능한 일이다. 특히 이 다시 쓰기는 개인만의 의지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개인과 공동체가 함께 해야만 가능한 영역이다. 그리스도인 개인과 공동체는 이면에서 중요한 사명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각 가정의 일원으로서 개인은 각 가정에서 환경보호의 중요성을 공유하고, 생활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각 개인과 가정은 이웃과 함께 그 중요성을 나누고 함께 대안을 찾아가도록 힘써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인 가정이 앞장서서 아파트나 지역의 반상회 모임에 참여하여 의견을 개진하고 공동의 노력을 기울여 나가면 좋겠다.

요 한은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목적이 선한 일을 위함이라고 하셨는데 (물론 여기의 선한 일에 대한 해석에 차이가 있겠지만) (엡 2:8-10) 분명히 환경을 보호하는 일을 위한 노력 또한 주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아닐까? 다시 쓰기를 통해 주께서 그리스도인에게 주신 적극적인 사명을 조용히 적극적으로 실천해 나가는 삶을 살아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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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스타 2003년 8월호

들어가는 말

'환경보호' 또는 '생태적인 삶 살기'를 위해 가정은 너무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각 개인은 가정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태어나고 교육되어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생명의 근원이 하나님임을 분명히 해 주고, 인간을 포함한 모든 자연 만물이 그리스도의 속죄로 구원을 얻어서, 주어진 생명을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도록 가르쳐 주는 기독교를 가정의 주된 중심으로 삼고 있는 그리스도인 가정은 말 그대로 사회의 소금과 빛으로서 그 책임을 다해야만 한다고 할 수 있다. 그 책임 중에서 가장 중심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과 사람을 하나님의 뜻대로 섬기고 사랑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혹자는 그 섬김과 사랑이 전도, 즉 영혼구원이라고 말할 지 모르나 이는 좀 치우친 표현처럼 들린다. 왜냐하면 흔히 전도는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도록 하는 영혼구원을 말하기 때문이다. '예수는 구세주'라는 고백 속에 들어 있는 전 우주적인 내용을 간과한 채…

그리스도인 가정은 바로 구원의 전우주적인 보편성과 각 개인의 특수성이 복합적으로 내포되어 있는 유기적인 인격적 관계의 총화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즉 하나님께서 각 가정에 그리스도 예수로 인한 구원을 선물로 주시고 각 가정마다 구체적으로 구원받음에 합당한 모습을 요구하시고 계신다. 성경에 구체적으로 요구한 적은 없으나 성경의 정신에 비추어 본 상식적인 의미에서 자연을 (환경을) 돌보아야 할 이웃으로서, 우리의 생존을 위한 마지막 보루로서 인식하고 그에 적절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 제일 먼저 가정에서 식구들과 함께 성경을 읽으면서, 기도를 하면서 '하나님께서 만드시고 인간에게 관리를 부탁하신 하나뿐인 지구'라는 인식이 함께 생겨나길 바란다. 그리스도인 가정에 오만이 아닌 사랑과 섬김에서 출발한 '환경보호'에 대한 동기부여가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지난 호에서 제안한 대로 정기적인 가정예배에서는 판에 박힌 예배형태를 지양하고 내용이나 형식 면에서 변화를 주어 성경을 바탕으로 한 폭넓은 주제를 소화해 가는 것도 좋을 듯 하다. 가족회의에서는 다양한 주제를 놓고 토론도 하면서 구체적으로 환경문제에 대한 토론과 그에 대한 가족 단위의 해결책을 찾아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가족회의를 통하면 온 가족이 가족의 일원이라는 단합심도 키우면서 중요한 문제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여 해결책을 모색할 때도 온가족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할 수 있다. 부모들이 신앙을 빙자하여 자녀들에게 무분별한 순종을 요구하기 전에 모든 가족들이 하나가 될 수 있는 장을 마련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할 것 같다.

이번 호에서는 지난 호에서 살펴 본대로 가정에서 할 수 있는 환경보호의 대안 중에서 먼저 '줄이기 (Reduce)'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줄이기는 안 쓰기와는 좀 차이가 있다. 필요한 것을 사용하되 불필요한 것을 없애고 꼭 필요한 것을 필요한 양만큼 사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줄이기는 쓰레기 양과 독성을 줄인다든지, 자원 절약 등을 포함한다.

쓰레기의 양과 독성 줄이기

쓰레기란 인간이 생활하고 활동하는 문명사회로부터 배출되는 폐물질(廢物質) 중에서 고체 형태로 버려지는 것으로서, 쓰레기를 적절하게 처리하지 않을 경우, 사람의 생활공간을 더럽히고 경관을 해칠 뿐만 아니라 환경을 오염시킴으로써 인간을 포함한 생태계의 보존을 위협할 수도 있다. 쓰레기는 생활폐기물과 각종 슬러지(sludge:汚泥)와·산업폐기물 등으로 분류한다. 이 중에서 가정과 연결된 폐기물은 생활폐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생활폐기물은 한국의 경우, 연탄재, 부엌찌꺼기, 일반쓰레기 등으로 구성되며, 도시의 규모와 계절에 따라서 다르다. 부엌 찌꺼기는 음식물의 준비과정에서 생기는 것과 식사 후 버려지는 것으로 플라스틱, 헝겊, 나무, 고무, 가죽, 유리, 금속 및 기타 물질들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도시 주변 등지에서는 쓰레기 종말처리 후 매립하여야 할 매립지의 확보 난에 직면하고 있다. 특히 서울의 경우 천연 매립지인 난지도가 1993년 2월 28일 폐쇄되고 김포 매립지로 이전하였지만, 매립지 확보가 새로운 도시문제로 등장하는가 하면 소각장 설치 및 운영 등, 쓰레기 처리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각 사회 이익집단 간에 심각해지고 있다. 이로인해 많은 시간과 비용을 낭비하게 되고 국가적으로나 개인적으로 경제적인 면에서나 환경보호와 공중보건의 면에서 상당한 부담을 지게 되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 가정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문제의 심각성을 공유한 후 각 가정마다 생활 쓰레기의 양을 줄일 수 있는 대안을 찾아야 한다.

첫째로 소비의 행태를 살펴보아야 한다. 쓰레기를 줄이려면 원천적인 의미에서 쓰레기를 적게 소비하고 적게 버려야 한다. 왜냐하면 쓰레기 양은 각 가정에서 소비한 물품의 양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각 가정에서는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의사를 결정하여 쓰레기의 양을 줄여갈 수 있다.

- 물건을 구매하는 행위는 가정에서 발생하는 쓰레기의 양을 결정하므로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물건을 구매하여 쓰레기 양을 줄인다. o 물건을 구매하기 전에 물건의 필요성에 대해 질문해 보고, 필요한 물건일 경우 그 양을 결정함에 있어 경제성을 고려하면서 현실적으로 가장 필요한 양을 구매한다. o 오래가고 견고한 물품을 산다. o 물건을 구매할 때 산 물건을 담아 올 바구니를 미리 준비한다. o 과도한 포장이 되어있는 제품의 구매를 삼간다. o 재활용한 물품을 이용한 제품을 구매한다. o 사용 후 버리도록 되어 있는 일회용 물품의 구매를 삼간다. o 음식물을 살 때 포장을 줄이기 위해 대량으로 구매한다. o 구매 후 같은 용기를 이용할 수 있는 곳에서 물건을 구매한다. o 원 자재를 덜 사용하는 제품을 구매하도록 한다. o 음식물을 살 때 편리하게 포장해서 집으로 가져오는 제품을 피하고 가능한 집에서 음식을 만들어 먹는다. o 음식물에 포장을 적게 사용하는 물품을 우선적으로 고려한다. o 가족이나 친구들을 위해 선물이나 카드를 사지 않고 스스로 만들어 본다. o 가능한 만큼 필요한 채소를 재배해서 먹도록 시도해 본다 (주말 농장 이용).

- 가정에서 나오는 음식 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실천방법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o 음식은 양보다는 질에 중점을 두고 반찬 가지 수를 줄인다. o 양도 꼭 먹을만큼만 만들어 먹고 버리는 일이 없도록 한다. o 냉동실, 냉장고만 믿고 식품을 방치하여 버리는 일이 없도록 한다.

- 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실천방법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o 쓰레기는 반드시 분리수거를 한다. 젖은 쓰레기와 마른 쓰레기, 재활용 가능한 쓰레기와 불가능한 쓰레기 등. o 주방 싱크대에서 걸러진 음식물쓰레기는 체 등에서 담아 1차로 물기를 제거한 후 꼭 짜서 버린다. 물기가 남아 있으면 헌 신문지에 짜서 물기가 흘러나오지 않도록 한다. 젖은 음식물 쓰레기를 베란다나 정원에 펴 말린 다음 배출하거나, 과일껍질 등은 실내에서 어느 정도 말린 후 배출한다. 태울 수 있는 것은 소각장에서 태운다. o 썩는 쓰레기는 구덩이를 파고 모아 퇴비로 만드는 것이 좋다. 음식물 쓰레기를 퇴비나 사료로 이용하는 것도 환경을 보호하는 한 방법이다. 가정에서 가정용 퇴비화 발효용기에 음식물쓰레기와 미생물 발효제를 넣어 퇴비원료를 만든다. 가정에서 퇴비화 발효용기를 사용하면 썩는 냄새가 나지 않으며, 음식물쓰레기를 매일 손쉽게 처리할 수 있다. 만들어진 퇴비는 주말농장이나 텃밭, 정원에 유용한 거름으로 사용 가능하다. 가정에서 배출된 퇴비원료는 공동 수거용기로 수집. 운반하여 퇴비로 이용할 수 있다. 음식물쓰레기에 수분 조절제 (톱밥 등)와 발효제를 투입하여 하루 정도 혼합 발효한 후 부숙시키면 퇴비가 생산된다. 발효된 음식물쓰레기를 밭갈이할 때 혼합하여 1주일간 썩히면 토양에 유용한 거름이 된다.

둘째로 집안의 독성을 줄여야 한다. 집안의 독성을 줄이려면 먼저 유해 제품의 사용을 줄여야 한다. 다음과 같은 제언을 따르면 독성이 적은 제품을 선택하고 가정에서 사용되는 유해한 물질을 줄일 수 있다.

- 물건을 구매할 때 가능하면 독성이 없는 포장과 물건을 사도록 해야 한다. 독성이 있는 포장에는 제조과정이나 분배과정에서 간혹 납, 카드뮴, 수은이나 6가 크로뮴 같은 독성물질 등이 포함되어 있어서 소비자의 건강을 해칠 수 있다. 따라서 가능한 한 포장지의 사용을 줄이거나 포장되어 있지 않은 제품을 구매할 필요가 있다. - 페인트를 사용할 때 유성페인트 보다는 수성페인트를 사용하여 페인트 세척제의 필요를 없앨 수 있다. - 수명이 다 된 수은 건전지는 반드시 따로 모아 두었다가 지정된 장소에 버린다. - 수질 오염을 막기 위해서 가정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은 다음과 같다.

o 쓰고 남은 기름류는 절대로 하수구로 흘려 보내지 말고 모아서 비누를 만들어 쓴다. o 음식 찌꺼기는 반드시 걸러서 내보낸다. o 정화조는 1년에 1회 이상 보수 점검하고 청소한다. o 합성세제의 사용량을 최대한 줄이고 천연세제를 사용한다. 가정용 화학 세척제 대신에 베이킹 소다 (baking soda)나 식초, 쌀뜨물, 비누 등을 이용하여 독성을 줄일 수 있다. 이를 통해 물의 오염도 원천적으로 낮출 수 있다. o 쌀 뜨물이나 국수 삶은 물 등은 정원수로 사용한다.

자원 (Resources) 절약

사전적으로 자원이란 인간 생활에 도움이 되는 자연계의 일부라고 정의되는데 기초자원과 천연자원을 가공한 것을 1차 자원, 이것을 가공한 것을 2차 또는 3차 자원이라고 할 수 있다. 기초 자원에는 지하자원, 토지자원, 수자원 등이 포함되며 천연자원에는 산림자원, 동물자원, 수산자원 등이 포함된다. 식량자원과 공업원료 자원과 에너지 자원은 관계되는 기초자원과 천연자원을 가공하여서 얻게 되는 1차 자원이라고 할 수 있다.

환경보호를 위해 가정에서 할 수 있는 자원 절약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에서 취사용 연료 및 전기, 수돗물, 종이, 금속 등의 에너지 자원의 절약이 단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를 위한 실천적인 방법을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 취사용 연료 절약 취사용 연료, 즉 전기와 도시가스를 절약하려면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온 가족이 함께 식사하는 것과 조리기의 불꽃을 적절히 조절하는 것과, 열 흡수가 잘되는 밑바닥이 넓은 조리기를 사용하거나 압력밥솥 (냄비)을 사용하는 경우로 할 경우로 나눌 수 있다. 위와 같이 함으로써 상당한 양의 전기와 도시가스를 절약할 수 있다. 가스용 압력솥은 전기용 압력솥보다 열 효율 면에서 훨씬 우수하므로 밥을 지을 때 고려해 보면 어떨까 한다.

- 수돗물 절약 집에서 음식을 만들고 씻고 청소를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물이 필요한데 수돗물을 아껴쓰면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물부족 현상을 다소간 줄일 수 있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사항을 주의하여 점검하고 실천하면 좋겠다.

o 물이 흐르고 있는 수도꼭지가 있는지 확인하고 반드시 잠그는 습관을 기른다. o 매번 욕조에 물을 받아 목욕을 하기보다는 가능한 짧은 시간 동안 샤워를 한다. o 한 번 쓴 물은 다시 이용하는 습관을 기른다. 쌀뜨물을 국을 끓일 때 이용한다든지 기름제거용으로 사용하는 것은 물론 한 번 세탁한 물이나 세수한 물 등은 바닥 청소용이나 화장실 변기 세척용 등의 다른 용도로 사용한다. o 물을 틀어놓은 채로 음식이나 그릇을 씻지 않도록 한다. o 세차는 호스로 하지 말고 물을 받아서 사용한다. o 화장실 물탱크에 벽돌을 넣는다. o 지붕에서 내려오는 빗물을 지하탱크나 기타 용기에 모아 두었다가 화장실 변기 세정 용수나 공조용 냉각수나 나무 물주기 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 아파트 같은 경우에는 관리 사무소에 이와 같은 방법을 사용하도록 건의할 수 있으며 개인 주택의 경우에도 큰 통을 몇 개 준비하면 시도해 볼 수 있다.

- 종이 절약 가정에서 사용하는 종이는 사무실에서 사용하는 것에 비하면 그 양이 많지 않지만 포장용지의 사용이나 가정으로 배달되는 불필요한 광고지 등을 고려하면 상당한 양이 된다.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가정에서의 종이 절약을 실천해 보면 좋겠다.

o 선물할 때나 물건을 구매할 때 가급적 포장용지를 사용하지 않는다. o 불필요한 광고지나 메일이 배달되지 않도록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가령 문 앞에 '광고지 사절'이라든지 인터넷이나 회사를 통해 물품을 구입할 때 불필요한 뉴스나 광고지의 배달을 원치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o 컴퓨터나 여타의 인쇄, 복사기를 이용할 때 반드시 필요한 것만 인쇄하거나 복사한다.

나오는 말

지금까지 가정에서 할 수 있는 환경보호 중에서 '줄이기'에 대해서 살펴 보았다. 그런데 위에서 제시된 것들은 어떤 면에서는 일반적인 환경보호 방법과 큰 차이가 없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선물로 허락하신 인간의 이성에 맞는 것들이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즉 하나님께서 지으신 자연과 인간세계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이성을 활용하여 적합한 방법을 찾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과학이라든지 각종 학문을 하는 행위도 다 이러한 이성을 이용한 것임은 두말 할 나위도 없다.

환경보호를 위한 방법 중 '줄이기'는 성경에서 말하는 성령의 열매 중 절제와 예수께서 말씀하신 새 계명인 이웃사랑의 구체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원천적으로 환경 파괴는 인간의 소비행위와 연결되기 때문에 인간의 소비를 줄이면 소비와 연결된 각종 환경문제가 줄어들게 된다. 자연의 정화능력 또는 지지력 (Carrying Capacity)를 고려한 소비 조절이 환경보호의 중요한 관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의 환경보호 노력은 곧 바로 이웃 사랑의 구체적인 표현이자 문화명령과 지상명령의 실천임을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단 하나뿐인 하나님의 걸작이고 그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과 자연은 서로 사랑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숙명적인 관계에 놓여 있다. 그 책임을 하나님은 인간에게 맡기셨기에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아니 감사한 마음으로, 보다 창의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로 이 책임을 감당하길 소망해 본다. 나 한 사람부터, 그리고 가정에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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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스타 2003년 5월호

환경과 환경문제

일반적으로 환경은 우리를 둘러싼 인문적이고 자연적인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성경적인 의미에서 환경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인간을 포함한 모든 세상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환경이란 말은 어찌 보면 지나치게 인간 중심적인 사고 속에서 등장한 말인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환경을 사람을 둘러싼 모든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혹자는 사람도 하나님이 지으신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에서 '환경'보다는 '생태'라는 말을 써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러한 주장은 인간의 위치가 생태계의 일부라는 면을 강조함으로 인간의 오만을 지적하고 결과적으로 조화로운 삶을 추구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환경이라는 말을 쓰든 생태라는 말을 쓰든 중요한 사실은 성경에 하나님께서 인간을 마지막 여섯 째 날 만드셨고 인간에게 당신이 지으신 만물을 관리하고 돌보도록 하셨다는 것이다. 즉 인간은 환경에 대한 청지기로서의 책임을 부여 받았다는 사실을 깊이 생각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의 환경은 인간에 의해 많이 파괴되었고 결국 인간의 생존마저 위협하고 있다.

일반적인 의미에서 환경문제 란 산업화에 따라 자연이 파괴된 현상이라고 한다. 자본주의의 등장으로 인하여 자연 (환경)을 오로지 인간의 편의를 위해 이용하는 대상으로 생각하게 되면서 자연에 대한 인간의 관계를 주인과 객체의 관계로만 생각하고 지배하게 되었다. 즉 인간과 자연의 관계가 지배와 종속의 관계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환경문제가 발생하게 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사람의 존재 자체가 환경에 부담이 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성경적으로 환경문제를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성경에서 말하는 환경문제 란 하나님이 지으신 창조질서가 인간으로 인해 파괴되는 현상을 말한다. 즉 사람이 하나님처럼 되면서 더 이상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지 않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하나님께서 세워 두신 인간의 역할을 넘어서서 인간의 이기심을 만족시키기 위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관계와 질서와는 정반대로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가 파괴되자 사람들은 서로 미워하고, 죽이고 착취하는 관계가 되었으며 (창세기 4장 이후의 인간의 역사) 사람과 자연과의 관계 또한 착취 및 지배의 관계로 변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사람이 섬김과 사랑이 아닌 이윤추구와 욕심에 기반을 두고 자연 및 과학기술을 오용한 것이 성경적인 관점에서 본 환경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환경정의 (Environmental Justice)

'환경'과 '정의'를 붙여서 '환경정의'라는 말이 미국에서 생겨났다. 이는 원래 인간을 포함한 모든 자연만물이 오염되지 않은 환경에서 살 권리와, 어떤 오염원으로부터 오염되지 않을 권리가 공평하게 있음을 일컫는 말이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생겨난 말이다. 즉 사람이 자연을 착취하면서 대책 없이 오염시키고, 사람들 사이에도 어떤 사람들은 보다 좋은 환경 (덜 오염된 환경)에서 사는 반면 어떤 사람들은 열악한 환경 (오염된 환경)에서 살고 있는 문제를 원천적으로 지적하고 있는 말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자원낭비와 환경오염을 수반하는 생산활동에서 이익은 자본가나 경영자에게 많이 돌아가는 반면 피해는 '생물적 약자'와 '사회적 약자'에게 많이 분배되는 현상이 생겼다. 여기서 생물적 약자란 태아를 포함한 아이들, 노인 등 환경오염에 쉽게 영향을 받는 사람들을 말하며, 사회적 약자란 저소득층, 노동자, 농민, 어민 등을 말한다. 생물적 약자의 범위에는 인간만이 아닌 자연 생태계가 포함되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을 어떻게 만드는 가에서부터 모든 의사결정에 노동자나 주민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고 경영자나 전문가 및 공무원에 의해 일방적으로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경향이 있었다. 전자의 것을 분배의 부정의라고 하면 후자는 절차의 부정의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둘을 합하여 환경부정의라고 하고 이러한 부정의가 해결된 상태를 '환경정의'라고 한다.

미국에서의 환경정의

미국에서 환경정의에 대한 논란이 심화된 것은 1980년대 초의 일이다. 산업화가 본격화되면서 나오는 유해 폐기물의 처리를 둘러싸고 1960년대부터 문제가 되었다. 환경오염의 문제에 눈을 떴던 중산층의 백인들은 자신들의 주위에 폐기물 처리장이 들어 오지 못하도록 정치적인 힘을 발휘하였다. 따라서 유해 폐기물 처리장은 조용히 저소득 아프리카 흑인과 미국 원주민이 사는 지역에 위치하게 되었다. 1982년에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의 워런 카운티 (Warren County)에서 처음으로 유해 폐기물 매립에 대한 저항운동이 일어났다. 즉, PCB (Polychlorinated Biphenyl)를 담은 6천 톤의 흙을 매립하려고 했을 때, 스스로를 보호한다는 생각으로 시작하여 약 5 백 명의 사회 운동가들이 투옥되었다. 또한 1983년에는 Robert Bullard라는 흑인 학자가 미국 텍사스 휴스턴에서 고형폐기물 처리장의 위치가 저소득층이면서 흑인계층의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리고 1987년에는 그리스도 연합교회 (United Church of Christ, UCC)의 인종과 정의 위원회 (Commission for Race and Justice)에서 미국 최초로 전국을 대상으로 유해 폐기물 처리장이 어디에 위치하는지를 조사했는데 바로 Robert Bullard의 연구 결과를 보다 심층적으로 뒷받침 하게 되었다. 이 연구를 기화로 하여 미국에서는 환경정의에 대한 논의가 심화되었고 이후 약 10여 년간 많은 연구가 진행되었다. 연구의 결과가 다소 엇갈리기는 하지만 실제조사를 곁들인 상당수의 연구가 환경부정의의 사례들을 지적하고 있다. 아울러 이 문제가 미국의 특수한 상황 중에 하나인 인종차별(Racial Discrimination) 문제와 맞물리면서 환경문제의 뜨거운 감자로서 부상하게 되었다.

일본에서의 환경정의

일본에서도 1960년대 이후 산업화와 함께 각종 공해문제가 발생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공해의 피해가 대부분 '생물적 약자'와 '사회적 약자'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음이 미야모또 겡이찌 (宮本憲一)에 의해 지적되었다. 예를 들어,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의 후유증으로 추정되는 사망자의 대부분이 아이들이었다. 일본의 공해문제의 심각성을 알렸던 미나마따 병의 가장 큰 피해자는 영세 어민들이었다. 식품공해 또한 그 중의 하나로서 어육 햄, 소시지, 두부 등의 살균제로 쓰여지고 있는 식품 첨가물 AF2가 간암의 원인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러한 음식은 주로 저소득 층이 많이 먹고 있었다. 세계 공통적인 현상이긴 하나 무 농약, 무 첨가 식품의 값이 농약을 치거나 방부제 등의 식품첨가물을 넣은 것보다 좀 더 비싸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은 미나마따의 경우 생물적 약자의 범위에 인간만이 아닌 자연 생태계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미나마따에서 유기수은에 중독된 것은 사람이 먼저 가 아니라 어패류나 고양이였으며, PCB 중독증으로 알려진 카네미유증을 알린 것은 닭들의 집단 폐사였기 때문이다.

정책적인 면에서 환경정의 구현

환경오염으로부터 생물적 약자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그들의 환경권을 보호하려면 법에 근거를 둔 실제적인 장치들이 필요하다. 그 장치들은 곧 각종 산업, 개발, 의료, 에너지, 환경관리 등의 분야에 환경정의의 개념을 반영한 정책을 입안하고 실행하도록 하는 정책 개발을 말한다.

따라서 미국에서는 환경정의에 대한 요구가 사회 각계 각층에서 일어나고 환경부정의의 사례가 인종차별과 궤를 같이 하면서 급기야 1994년에 클린턴 대통령이 "환경정의 특별 행정명령 (Executive 12898)"에 사인하게 되었다. 이로써 환경정의의 개념이 법제화되고 각종 국가 정책에 환경정의의 개념이 실현되게 되었다. 즉, 모든 정책을 수행할 때는 반드시 환경정의를 고려하여 절차적인 면에서 공평하고 투명하게, 그리고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환경오염의 분배의 면에서 형평성을 찾도록 정책 대안을 만들어 가야 한다. 그러나 클린턴의 행정명령 12898에는 생물적 약자로서 생태계를 고려하고 있지 않다 (아래 글 참조).

"To the greatest extent practicable and permitted by law, and consistent with the principles set forth in the report on the National Performance Review, each Federal agency shall make achieving environmental justice part of its mission by identifying and addressing, as appropriate, disproportionately high and adverse human health or environmental effects of its programs, policies, and activities on minority populations and low-income populations in the United States and its territories and possessions, the District of Columbia, the Commonwealth of Puerto Rico, and the Commonwealth of the Mariana Islands" (Executive Order 12898, Section 1 1-101 Agency Responsibilities).

그저 문제가 되고 있는 소수 인종과 저소득 층에게 분배면에서 공정하고, 절차적으로 환경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다. 이것만으로 라도 현재까지 문제가 되고 있는 환경부정의의 문제에 대한 정부 정책의 진일보한 면을 읽을 수 있으나 역시 인간 중심적인 시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아쉬움이 있다. 따라서 본질적인 환경정의를 실현하려면 말 그대로 '생물적 약자'와 '사회적 약자'가 불공평하게 취급되지 않도록 세심하게 배려해야 한다.

환경문제는 지역적이고 국부적인 경우도 있지만 나라를 넘어서 발생하는 경우가 빈발하고 있다. 이러한 성격에 비추어 볼 때 환경정의의 논의는 이제 한 나라만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국가 간, 세대 간, 내부 사회 간, 종간의 정의를 생각하여 국내법이나 국제법을 만들고 각 정책을 구체적으로 입안하고 실행하는 데 맞추어져야 한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는 환경 기본법에 환경정의의 개념을 넣으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이는 환경정의의 개념도 미국의 것보다 좀 더 포괄적으로 적용하려고 애쓰고 있다. 만일 환경기본법이 환경정의의 정신에 의해 개편되면, 많은 부분에서 각종 개발 정책이나 환경관리 정책, 기타 인간의 복지와 관계된 정책들의 입안 과정에서부터 실행계획까지 검토를 받도록 해야 한다. 첫째로 우리 국민과 다른 나라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국가 간에 필요한 조약을 체결하고 유해폐기물을 수출하거나 수입하지 않도록 하며 물이나 공기를 통해 타 국가에 해를 끼치지 못하도록 규제해야 한다. 둘째로 다음 세대가 필요로 하는 자원이나 에너지를 고려해서 현세대의 계획을 세우고 집행해야 하며, 다음세대에게 현 세대의 오염이 계승되지 않도록 하는 지속 가능성을 확보해야만 한다. 셋째로 사회 내부적으로 어느 한 계층이나 집단이 편파적으로 특별한 이익이나 피해를 보거나 당하지 않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넷째로 생태계의 조화를 고려하여 지나치게 인간 중심적인 계획을 하지 않고 자연 친화적인 방법으로 모든 정책과 계획을 세워야 한다. 그리고 멸종위험이 있는 동물과 식물들을 적극적으로 보호하여 가능한 한 생태계의 균형을 이루도록 노력해야 한다.

성서적 입장에서의 환경정의 구현

이제까지 환경정의를 어떻게 정책적으로 이루어 갈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어 살펴보았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다분히 인간적인 지혜에 근거한 것이다. 그러나 만일 인간이 이러한 원칙과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실천할 의지가 없으면 이러한 논의는 거의 필요 없게 된다. 왜냐하면 역사적으로 우리 인간이 걸어온 발자취에서 너무나 명백하게 이기적이고 파괴적인 모습을 보아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 자신도 생각과 입으로 내뱉는 것과 실제 행동이 많이 다름을 볼 때 인간적인 시도의 절망을 느낀다.

그렇다면 어떻게 환경정의를 성경적으로 이뤄내는가 하는 질문이 생긴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성경적인 입장에서 환경정의를 이루기 위한 정책적인 대안 뿐 아니라 근본적인 삶의 방향을 찾아가야 한다. 성경에 환경정의 문제에 대한 세세한 대안이 있지는 않지만 어떠한 정신으로 환경정의와 같은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들을 찾아 볼 수 있다.

첫째로, 총체적인 구원의 정신이 필요하다. 구원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홀로 열어 놓으신 하나님과의 회복과 화평의 길에 동참하는 것이며, 믿는 순간에 이뤄지는 것만이 아닌 지금 이 순간부터 연결된 영원의 예수를 만나는 것이다. 로마서 8장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의 구원은 흔히 영적인 구원 뿐만 아니라 온 세상 만물과 우주가 함께 구원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이기적이거나 지나치게 인간 중심적인 구원 관은 하나님께서 주신 질서를 깨는 위험한 생각이라고 할 수 있다. 동물도 식물도 가난하고 약한 사람도 하늘도 땅도 모든 피조물이 다 함께 구원을 이뤄가도록 하는 중책을 우리 사람, 특히 하나님의 백성들에 주신 것이 아닐까? 이러한 정신이 우리에게 소화되고 생활화 될 때 우리는 진정한 의미의 환경 지킴이가 되고 서로를 참 이웃으로 생각하게 될 것이다. 심지어 자연도 우리의 이웃으로 생각할 수는 없을까? 만일 우리의 십자가로 인한 구원 관이 그렇게 깊어진다면 우리는 감히 경제적인 불가피성을 이유로 하여 우리의 이웃에게 피해를 전가하지 못하게 될 것이고 오히려 이웃을 위해 우리가 대신 피해를 당하고 예수님처럼 죽음까지도 기쁘게 맞게 되지 않을까?

둘째로, 청지기적인 정신이 있어야 한다. 청지기는 주인의 뜻대로 집안을 관리하는 사람을 말한다. 창세기에 나타나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청지기적인 직분을 허락하고 있다. 구약에서 에덴동산을 관리하고 다스리는 직분이 그것이라면 그리스도인으로서 지금 우리가 관리하고 다스려야 하는 에덴은 어디일까? 바로 우리가 사는 주위와 사회, 국가, 더 나아가서는 세계 구석구석을 말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국적과 인종을 초월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따라서 자녀가 된 우리는 아버지이자 주인이신 하나님의 뜻대로 세상을 다스리고 관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땅을 오염시키지 않도록 주께서 주신 지혜를 동원해야 하는 것이다. 환경적인 부담이 생겨날 경우에는 그 책임을 이웃에게 떠미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자신이 속해 있는 공동체가 함께 나누어지는 것은 정말 무리한 일일까? 점점 더 거세어 지고 있는 지역 이기주의 움직임에 교회공동체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 들도 대거 동참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심한 부끄러움을 느껴야 한다.

셋째로 종말론적 정신이 있어야 한다. 예수께서 세상에 대한 심판자로서 또 어그러진 세상의 완성자로서 다시 오신다는 것을 믿는 정신이다. 그 사상이 있어야 세상 속에서 헛되이 키워오는 욕심의 굴레를 벗을 수 있고 자연과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다. 즉 나그네의 자세로 있어야만 참으로 옳은 것을 선택할 수 있다. 세상을 등지는 무관심으로서의 종말사상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스스로 욕심을 포기하고 참을 추구하는 정신이 너무나 필요하다. 궁극적으로 구원의 완성에 대한 목마름이라고 할 수 있다. 로마서 8장 19 - 23절에는 세상의 모든 피조물이 신음하며 구원을 고대하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요한 계시록 21장 1-7절에는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에는 세상을 새롭게 하시면서 고난을 받아 온 사람들의 눈에서 눈물을 씻어 주시겠다는 약속이 있다. 주께서 오실 때에 임할 새 하늘과 새 땅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환경정의를 이루도록 부탁하시는 것은 아닐까?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결코 이루지 못하는 궁극적인 절망이 여기에 있다. 따라서 환경정의는 우리 그리스도인이 이루어 가야 할 사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넷째로, 환경정의를 이루려면 예수께서 보여주신 이웃사랑의 정신이 있어야 한다. 이웃사랑은 위에서 살펴 본 것처럼 사람뿐만 아니라 환경도 포함한다. 사회의 아픔과 사회의 불평등을 함께 나누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손해를 볼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예수께서 그렇게 사셨듯이. 왜냐하면 그리스도인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삶을 산 제물로 바쳐야 할 제사장이라고 바울은 선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롬 12장 1-2절). 우리가 사회의 아픔을 어떻게 책임질 것이냐의 문제는 제사장의 입장이 아니면 해결되지 않는다. 일부 영웅적인 운동가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세상사람은 희생의 제사를 드릴 근거가 없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영웅이 되지 않더라도, 돈이 생기지 않아도 중요한 것을 소리 없이 할 수 있는 충분한 성경적인 근거와 존재적인 근거가 있다. 이웃을 위해 자기 목숨을 산 제물로 바쳐도 좋을 만큼 예수께서 이루신 구원이 우리에게 소중하기 때문이다. 즉 우리의 삶 전체가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가 될 때 환경정의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예배란 인간이 자연 속에서 노동을 통해 삶의 양식을 얻고, 한 편 자연이 인간의 노동을 통한 섬김으로 풍요로워지도록 하는 조화로운 삶임을 우리는 타락하기 전 에덴에서의 아담을 통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예배당에서 드리는 형식적인 예배에 국한되지 않고 눈을 넓혀서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수하게 삶의 구체적인 영역에 대한 질문을 하고 이웃 사랑의 정신에 비추어서 대안을 만들고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

글을 맺으며

환경문제가 점점 국가간 세대간의 문제가 되어가듯이 환경부정의의 문제도 우리 이웃만의 문제가 아닌 세계의 문제가 되어가고 있다. 이런 문제의 고리를 어떻게 끊을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우리 각자가 최소한의 소비를 실천해야 한다. 그리고 지혜를 다 해서 환경을 해치지 않는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환경문제에 대한 예민한 감시는 물론 현안 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 현재 환경분야에서 중요하게 대두되고 있는 문제 중의 하나가 공공참여 (Public Participation)이다. 이제까지의 환경정책이나 각종 개발정책에 공공의 의견을 듣지않고 전문가들이나 정치가들이 자신들에 맞게 의사결정을 해 옴으로 인해 많은 문제가 생겨난 것에 대한 반성이 일어났다. 따라서 계획의 시작부터 실행 및 관리에 이르기까지 공공이 참여함으로써 문제를 사전에 방지하고 좋은 대안을 찾아가는 계기가 만들어지고 있다. 그리스도인 들도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자연과 사람을 해치지 않고 환경적인 부담과 짐을 함께 나누어 가지면서 우리의 미래 세대들의 권한을 빼앗지 않는 대안 (지속 가능한 발전)을 마련하는 데에 자기 목소리를 내야 한다. 이 일은 환경 전문가들의 몫이 아닌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인으로서 감당해야 할 사명이라고 말하고 싶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면서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중요한 구성원들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세상은 사람 혼자서 살 수 없고 사람과 자연이 서로 사랑해야만 살 수 있게 되어 있다. 사람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며 살기 위한 근본적인 책임은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인에게 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인만이 총체적인 구원 관과 종말적인 정신에 입각하여 청지기적인 삶과 이웃사랑의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누구의 칭찬과 멸시에도 요동치 않고 그리스도로 인한 평화와 구원의 기쁨에 만족하면서 자발적인 가난과 십자가의 길을 걸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듯이 자신과 사람과 자연과 우주를 사랑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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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스타 2003년 4월호

땅과 환경문제

전 세계가 환경위기를 절감하면서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이 제시되고 시도되고 있다. 그 중에서 가장 많은 관심이 인간이 개발한 기술을 가지고 환경문제가 발생하고 난 후에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영역에 쏠려 있다. 그러나 정작 환경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어떻게 근본적으로 환경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억제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이제 눈을 뜨고 있는 단계에 있다. 그리고 그러한 계획적인 시각도 정치적인 싸움에 밀려서 단편적이고 지엽적으로 되어 문제의 근본을 다루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대부분의 환경문제는 경제와 직결되어 있고 모든 경제행위는 땅을 기초로 이루어진다. 왜냐하면 허공 위에서 시작할 수 있는 인간의 행위는 없기 때문이다. 땅 위에 건물을 짓고, 그 건물 속에서 자연의 에너지와 자원을 가지고 물건을 만들고, 만든 물건을 일정한 건물 안에서 팔고, 팔고 산 물건은 일정한 장소에서 사용되고 폐기되고 있다. 이러한 경제 행위의 과정에 땅은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다. 성경은 이미 이 문제에 대해 예견한 듯 땅과 그 위에 존재하는 모든 만물에 대한 주권이 창조 주 하나님께 있고 인간은 단지 관리자에 해당한다는 근본적인 관계 설정을 하고 있다 (창 1: 26-27, 창 2:14-15). 성경의 전체적인 정신에 따르면 아담 이후의 모든 인간이 바로 하나님께서 지으신 땅과 만물의 정복자와 지배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돌볼 책임이 있다고 선언하고 있다. 성경을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허락하신 역사서가 아니라 전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약속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경제문제와 환경문제에 대해서도성경에서 보다 분명한 가르침을 얻어야 하고 얻을 수 있다.

땅에 대한 하나님의 뜻

땅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가장 잘 나타낸 성경 구절은 레위기 25장 23-28절로서 다음과 같다.

"토지를 영영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 임이라. 너희는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너희 기업의 온 땅에서 그 토지 무르기를 허락할지니 만일 너희 형제가 가난하여 그 기업 얼마를 팔았으면 그 근족이 와서 동족의 판 것을 무를 것이요. 만일 그것을 무를 사람이 없고 자기가 부요 하게 되어 무를 힘이 있거든 그 판 해를 계수하여 그 남은 값을 산 자에게 주고 그 기업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그러나 자기가 무를 힘이 없으면 그 판 것이 희년이 이르기까지 산 자의 손에 있다가 희년에 미쳐 돌아올지니 그가 곧 그 기업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본 성경구절은 토지의 주권이 하나님 자신에게 있으므로 한 개인이 영원히 소유할 수 없고 인간은 땅을 일정 기간 동안 사용할 수 있다고 선언하고 있다. 땅과 관련하여 이스라엘 백성이 50년마다 지켜야 할 희년은 모든 것을 원점으로 돌려놓는 것이며, 심지어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의 의미를 희년에 비교하고 있다. 모든 것의 참 주인이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은 종교적인 어떤 행위를 하는 것을 넘어서 삶의 근거인 땅의 주권을 하나님께 내어놓는 것을 의미한다.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삶의 근거인 땅의 주권을 하나님께 드리고 인정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가난과 기근과 환경파괴의 피해자이자 가해자로서 이 세계를 살아가면서 우리는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여기에 대해 헨리 조지 (Henry George)가 성경을 토대로 제안한 지대 조세제도의 도입을 통한 문제 해결의 가능성을 살펴 보기로 한다.

지대 조세제

지대 조세제는 100여 년 전 헨리조지가 '진보와 빈곤 (Progress and Poverty)'이라는 책을 통해 제시한 것으로서 토지의 공공성을 토대로 사유화 된 토지의 이익이 사회로 환원되지 않아서 생겨나는 많은 정치 경제적인 문제를 세제를 통해 토지의 지대 (Rent)를 100퍼센트 환수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좀 더 개략적으로 지대조세제에 대해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건물에서 나오는 이익과 개인과 회사의 수입 등 인간의 노동의 결과에는 세금을 없애고 땅에만 매년 땅의 임대 가격에 세금을 부여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둘째, 주위의 땅을 기존의 상태에서 고려하면서 각 단위의 땅을 개선되지 않은 지가 (unimproved site value)로 평가한다.

셋째, 공지나 농지를 포함한 모든 땅에 세금이 부과되며 토지의 가치 모든 허가와 규제가 고려된 상태에서 가장 적절하게 사용되는 것을 전제로 하여 평가된다.

넷째, 실제로 지대조세제는 현재 운용되고 있는 세금제도와 흡사하나 다만 모든 땅에 세금을 부과하는 것과 빌딩과 다른 시설에는 세금을 적게 부과하는 것이 다르다.

다섯째, 만일 토지 임대 가의 100 퍼센트가 세금으로 부과된다면 토지는 더 이상 현금 가치가 없어지게 된다. 왜냐하면 토지의 매매 가는 임대 수입을 현금화할 때 생겨나기 때문이다.

헨리 조지는 토지를 인류에게 공동으로 허락하신 하나님의 선물로 보고 그 혜택이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토지의 공평성을 보장하기 위해 모든 사람이 똑같이 토지를 나누어 가질 수 없다. 왜냐하면 각 토지의 생산성과 위치에 따라 각 토지의 가치가 다를 뿐 아니라 토지에 대한 소유권이 이미 확립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토지로부터 나오는 수익, 즉 지대를 공유함으로써 공평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지대란?

지대는 생산물 중 토지의 소유자에게 그 토지를 소유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귀속되는 부분을 말한다. 즉 조지에 의하면 지대는 토지를 이용한 생산의 결과 중 일부분을 얻을 수 힘을 말한다. 따라서 일정한 토지 위에 세워진 주택, 공장, 상가를 사용한 대가 중에서 토지 사용에 해당되는 대가만이 바로 지대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땅 위에 세워진 건물을 사용함으로써 지불하는 액수를 자본사용의 대가, 즉 자본 수익으로 본다. 그런데 헨리조지는 이 지대를 토지 소유자 개인이 독점하는 것을 공평하지 않다고 지적하고 있다. 왜냐하면 지대란 인적노력으로는 생산하거나 증가시킬 수 없는 자연요소 (특히 토지)를 개인의 소유로 할 때 생겨나는 독점가격이기 때문이다.

헨리조지의 이러한 사상은 위에서 말한 성경 구절이 주장하고 있는 '땅에 대한 하나님의 독점적 주권'에 근거하고 있다. 따라서 원칙적으로 어느 누구도 토지를 소유할 수 없다. 설령 현실적으로 누군가 토지를 소유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는 그 토지를 창조하는 데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으며 단지 먼저 점령했다는 이유만으로 지대수익을 독점한다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고 한다.

지대 공유 이유

앞에서 살펴 본대로 지대는 한 사회가 가지고 있는 발전과 정비례의 관계가 있다. 즉 인구가 증가하고 기술이 발전하면 새로운 토지 수요를 일으켜서 지대소득은 더욱 커지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점점 생산성이 낮은 한계지를 이용하게 되면서 지대가 증가된다. 토지 소유자로 하여금 아무런 노력을 투입하지 않고도 높은 지대를 얻게 하는 힘이 인구증가와 기술발전 등의 사회적인 힘에 근거하는 한 사회적으로 창출된 지대가 토지 소유자 개인에게만 돌아가는 것은 공평하지 못하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느 한 지역에 도로가 뚫리고, 기차 역이 생기고, 공원과 학교와 관공서가 들어서면 자연히 그 지역의 지대는 상승한다. 이렇게 상승된 지대를 사회가 공유한다는 것은 정당하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지대 공유화의 주장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Fred Harrison을 들 수 있는데, 그는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이 지대의 공유화를 통해 완전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Harrison, 1983). 지대를 사회 (공공)로 모두 환수하게 될 경우 생겨나는 결과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첫째로 투기적인 목적으로 땅을 놀리지 못하고 땅을 최적의 용도에 사용하여서 그 땅에서 발생할 수 있는 지대에 해당하는 세금을 납부하게 한다. 둘째로 지대를 사회에 환수함으로써 토지의 이용률을 높이고 투기적 목적으로 보유하고 있던 땅이 토지 시장에 나오게 함으로써 토지 시장에 토지의 공급이 늘어나게 되며 그로 인해 지가의 하락을 유도할 수 있게 된다. 세째로 토지 실수요자들이 시장에 나온 값싼 토지를 최적의 용도로 사용하게 된다.

지대 공유개념은 토지의 사적 소유권 중 처분권과 이용권은 인정하되 수익권은 부정하고 있다. 즉 토지로부터 나오는 지대를 가질 수 있는 권리를 사회가 가질 것을 천명하고 있다. 지대 공유 개념이 기초하고 있는 재화의 소유권은 노동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즉 인간은 반드시 자신의 인격을 발현하기 위해 노동을 할 수 있어야 하며 그 노동을 통해 생산과 소비와 교환과 보유의 권리를 갖게 된다. 이처럼 인간의 소유는 반드시 노동을 통해서만 그 정당성을 부여 받게 된다는 면에서 토지는 인간 노동의 산물이 아니므로 어떤 특정인이 독점적으로 소유할 수 없다. 지대 공유의 개념은 바로 토지에 대한 공평하지 못한 소유에서 비롯되는 사회문제 즉, 토지투기, 빈부격차 심화, 경제위기, 환경파괴 등을 해결하는 열쇠를 제공할 수 있다.

지대 조세제를 통해 본 개발과 환경문제

제임스 쿤슬러 (James Howard Kunstler)는Geography of Nowhere에서 현재의 재산세제가 야기시키는 문제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Our system of property taxes punishes anyone who puts up a decent building made of durable materials. It rewards those who let existing buildings go to hell. It favors speculators who sit on vacant or underutilized land in the hearts of our cities and towns. In doing so it creates an artificial scarcity of land on the free market, which drives up the price of land in general and encourages even more scattered development, i.e., suburban sprawl..."

현재의 재산세제는 실제로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세금을 부여하고 오히려 땅을 소유하고 땅을 놀리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많은 이익을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연유로 땅을 투기의 목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건재하게 되고 도회지의 많은 땅들이 사용되지 않고 땅값은 치솟게 된다. 따라서 실제 땅이 필요한 사람들은 값싸고 적당한 땅을 찾아서 교외로 교외로 나가게 된다. 결과적으로 불균형적인 개발이 이루어지고 자연이 파괴되며 교외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이처럼 무분별한 개발을 동반한 환경파괴는 토지 소유제도와 아주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

만일 이러한 문제가 해결되면 사람들과 산업은 정상적인 속도로 적당한 준비 과정을 거치면서 조금씩 도심 밖으로 나가게 될 것이고 결과적으로 쓰레기 문제나 자연을 준비 없이 파괴하는 일이 없게 될 것이다. 지대조세제를 통하면 현재 교외화에서 빚어지고 있는 도시 인구과밀 또는 도시와의 단절과 같은 문제와는 달리 도시 사람들은 시내 가까운 곳에 있는 땅을 보다 싼 값에 얻게 되면서 도시 문화의 이점과 자연과의 친숙함을 동시에 누리게 될 수 있다.

브라질의 열대림이 파괴되어 가는 것의 원인 중의 하나가 바로 토지가 일부 계층에 의해 독점적으로 소유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문제는 바로 농업에 이용돼야 할 절대 농지를 개인이 소유하고 있음으로 인해서 도회지로 몰려 들었던 사람들이 농지를 찾아 열대림으로 들어가서 농지로 쓸 수 없는 열대림에 불을 놓고 땅을 개간하면서 생겨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대 조세제를 도입하면 쓸 수 있는 양질의 많은 땅이 시장에 나오게 되고 필요한 사람들이 싼 값에 이용할 수 있게 됨으로 인해 열대림의 파괴도 급속히 감소될 수 있을 것이다. 인도네시아나 아프리카에서도 토지의 독점으로 인해 비롯되는 동일한 문제를 발견할 수 있다.

종종 이러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각 나라에서는 개인의 자유를 구속하면서 많은 규제와 법을 만들고 있지만 모니터링의 어려움을 실상 환경문제의 근본을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임을 실감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러한 규제를 실행하려면 지속적인 감시와 규제가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대 조세제를 통하게 되면 정부에 의해 만들어진 많은 규제 대신에 시장경제의 시스템에 의해 형성된 공동체 의식과 자발적인 규제 준수를 통해 양질의 환경기준을 설정할 수도 있고 설정된 기준을 지켜갈 수도 있을 것이다.

현대의 환경위기를 에너지 위기라고 할 만큼 에너지 문제가 심각하다. 즉 석유나 석탄 등의 탄화 에너지의 지나친 사용으로 인해 많은 환경 문제가 생겨나고 있다. 이러한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과학자들은 대체 에너지 개발에 한창이다. 지대조세제는 이러한 움직임에도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현재의 세금 제도에서는 땅 (지하)에서 나오는 자원인 석탄과 석유를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 것이 자본 집약적인 기술 개발에서 나오는 대체 에너지 산업인 태양열을 이용하는 것 보다 훨씬 더 경제적인 우위를 점하게 된다. 그러나 땅에서 나오는 에너지에 Ground Tax를 부여하고 자본과 노동 집약적인 에너지인 태양열, 조력, 풍력 등의 산업에는 세금을 면제해 주는 세금제도를 도입하면 좀 더 대체 에너지 산업의 입지를 견고하게 함으로써 환경 파괴적인 에너지 산업을 견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대체 에너지의 기술이 더 개발되고 경쟁력이 높아지게 되면 에너지로 인한 환경문제는 조금씩 개선되게 될 것이다.

지대조세제는 산지나 보존지역의 보존 효과를 높일 수 있다. 100퍼센트의 세율을 적용할 경우 지대를 통한 땅의 경제적인 가치를 잃기 때문에 세금 부담 없이 보존지역을 쉽게 구입할 수 있게 된다. 지금까지 많은 보존 단체들이 몇몇 보존지역을 구입하느라 수많은 돈을 모금해 왔는데 그럴 필요가 없어질 뿐만 아니라, 모금된 돈들로 전보다 더 넓은 지역을 보존하게 되거나 오염된 곳을 복구하거나 관리하는 데에 쓸 수 있게 될 것이다. 아울러 이러한 투자는 오염산업 보다는 오염복구산업이나 연구 및 관리를 활성화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지대조세제 하에서는 쓰지 않고 놀려 두는 땅이 낮은 가치로 평가를 받게 된다. 그러나 땅의 소유주는 정부와 관리계약을 통해 땅에 식재를 한다든지 하는 대체 이용을 하게 될 경우 경제적으로 우위를 점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방식으로 지대조세제는 토지의 효과적인 이용을 장려하고 결과적으로 자연을 보호해 갈 수 있는 길을 제공할 수 있다.

글을 맺으면서

하나님이 주인인 땅을 개인이 독점적으로 소유하여 모든 이익을 독점하는 것은 하나님과 공동체에 대한 죄악의 행위이다. 중세 시대를 비롯하여 현대에 이르기까지 종교 공동체가 소유하고 누려온 많은 토지의 소유와 그로 인한 부의 축적이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 중심의 사상과 정면으로 배치되고 있다는 것은 심각한 회개의 제목이 될 만하다. 이러한 문제로 인해 우리 세대뿐만 아니라 우리의 후세들이 살아가야 할 세상이 병들게 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현대의 교회는 어떠한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리새인들에게 퍼부으신 그 통렬한 꾸짖음의 죄목들이 고스란히 적용되고 있지 않은가? 회칠한 무덤같이 이제는 자신의 부패함 마저 어찌할 수 없는 막다른 상황에 다다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크리스챤이라고 하는 우리의 현재 모습은 어떠한가? 우리가 살고 있는 나라의 정책에 대해 깨어서 파수꾼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가?

이러한 질문들을 솔직하게 자신에게 던지면서 환경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의 하나로 지대조세제의 실현을 그려본다. 자신을 포함한 이웃과 나라의 현재와 미래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의가 우리 삶의 예배를 드리는 현장에 실현되는 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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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스타 2002년 11월

지난 9월 초부터 한 달 동안 프로젝트 수행 차 인도네시아의 자카르타를 방문했었다. 자카르타에서 머무는 동안 신문과 방송매체를 통해 깔리만딴의 열대림이 몇 주 동안 꺼지지 않고 불타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연기가 인근 말레이지아까지 덮여서 한 낮에도 햇빛이 비치지 않고 있으며 비가 오지 않으면 상당량의 열대림이 손실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벌써 깔리만딴의 열대림은 60-70% 정도 유실되고 있다고 보고 되고 있다. 이 현상은 브라질의 아마존 열대림 유실과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서 전 지구적인 환경문제라 아니 할 수 없다.

열대림 화재는 벌채와 함께 흔히 rainforest deforestation (열대림 유실)의 주요한 이유들로 알려져 있다. 열대림 화재는 자연적인 현상에 의한 것과 인위적인 행위에 의한 것으로 나눌 수 있다. 자연적인 현상은 거센 바람에 의해 나무들이 서로 부딪치거나 번개에 의해 발화되는 것을 말한다. 인위적인 현상은 사람들이 경제적인 목적을 위해 방화하여서 화전을 일으키거나 방목을 하는 것을 말한다. 벌채는 상업적인 목적에 의한 합법적인 벌채와 불법적인 벌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합법적인 벌채는 그 용량을 정하여 한계에 맞게 벌채를 하는 반 면 불법적인 벌채는 아무러한 대책도 없이 시간과 장소에 국한하지 않고 나무를 베어서 파는 것을 말한다.

인도네시아의 열대림 유실은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다. 깔리만딴에서 불타고 있는 열대림은 단지 인도네시아의 문제만이 아니라 전세계적인 문제라고 아니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깔리만딴의 원목은 벌써 오래 전부터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어서 아시아는 물론 유럽과 북남미에서 펄프나 가구용으로 수입하고 있다. 가난을 모면하기 위해 화전을 일으키는 것 또한 현재 인도네시아로서는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이러한 현상은 신 자유주의 경제 체제가 빚어낸 결과로서 아마존 열대림에서 보여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다국적 기업들이 값싼 노동력과 원자재를 확보하기 위해 제 3세계로 몰려들고 있는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예를 들어 아마존 열대림에서 소를 방목하기 위해 벌채 또는 방화하여 없어지는 면적이 하루에 축구장 정도라고 한다. 거기서 생산된 소고기는 전세계 맥도날드와 같은 일품 음식점이나 식당과 식료품점에서 소비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아마존에서 사는 원주민들에게는 삶의 근거지인 열대림이 점점 줄어들고 있어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으며, 전세계적으로는 열대림 화재로 인해서 지구 온실가스 중의 하나인 이산화탄소 량이 증가하고 산소 공급 및 생물 종의 다양성이 손실되고 있다.

일견 인도네시아의 한 지역에서 일어나는 문제로 보여질 수 있으나 조금만 넓게 생각하면 이 문제는 우리 전 세계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연루된 공동 범죄임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다. 세계 경제가 하나로 통합되어 가면서 지구 상의 어느 국가도 이 도도한 흐름에서 예외일 수 없게 되었다. 말 그대로 개인 간, 국가 간의 치열한 생존 경쟁이 빚어 낸 결과라고 아니 할 수 없다. 국부적으로는 인도네시아의 공무원이 부패하고 화전민이나 소 방목업자나 벌채업자들과 서로 공모해서 생겨난 문제이지만, 좀 더 넓은 시각으로 보면 세계 경제의 흐름에 의해 생겨난 결과이다. 이 문제에 대한 책임은 방화 당사자에게만 있지 않고 방화의 근본적인 원인을 제공한 세계 신 자유주의 경제와 그 경제 체제에서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있다.

이 문제를 인식하고 UN을 비롯한 국제 기구에서는 열대림을 보호하기 위한 기금을 조성하거나 캠페인을 벌이고 있지만 실제적인 힘을 발휘하지는 못하고 있다. 일례로 전 지구적인 지속 가능한 개발을 위한 회의가 얼마 전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요한네스버그에서 열렸다. 미래세대와 현세대의 필요를 충족하는 환경적으로 건전하고 지속가능한 개발을 이루기 위한 목적으로 열린 회의인데 구체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아직 역부족인 듯 하다. 왜냐하면 환경문제를 해결하려면 각 국가 간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같은 선진국은 자유 경제 시스템의 도움으로 사실상 인도네시아와 같은 개발 도상국이 경제적인 이익을 얻기 위해 치르는 엄청난 희생의 대가를 담보로 하여 현재 경제적으로 부유하게 되었다. 그러한 대가 중에 개발도상국의 환경적인 희생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근본적이고 치명적인 것이다. 단기적으로 얻는 경제적인 대가는 장기적으로 빚어지는 환경문제의 근본적인 폐해에 비하면 아주 적은 것인데도 늘 우선 순위에서 밀릴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우리 크리스챤들은 이 문제에 대해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 것인가? 제일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바로 인식의 전환이다. 깔리만딴에서 타고 있는 열대림이 나와 무슨 관계가 있는 지, 아니 정말 나의 일처럼 여겨져서 우리 집이 타고 있는 것 같은 아픔을 경험하고 있는 지 깊이 성찰해 볼 일이다. 우리가 이제껏 훈련 받아 온 영적인 일은 소위 의식적인 예배를 드리고 종교적인 행위를 하는 것 정도였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조금만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 속에 하나님의 세심하신 인도하심을 보게 된다. 어떨 때는 우리도 이해 할 수 없을 만큼 역사의 중요한 순간 순간에 소위 비 그리스도인들을 사용하시고 계신 것도 보게 된다. 여기서 우리 크리스챤들은 영적인 일의 범위를 넓혀서 속칭 세상의 일 (모두 하나님의 일이지만)까지 우리의 섬김의 영역으로 삼아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하고 있는 학문 분야의 일이 될 수도 있고 심지어는 아무도 관심 쓰지 않는 영역의 일일 수 있다. 만인 제사장의 정신이 보다 충일해 질 때 각자의 소명에 대한 눈도 더욱 넓어 지리라 확신하다.

구체적으로 이러한 열대림 파괴에 우리 크리스챤의 자세와 행동강령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을까? 먼저 나무를 이용한 제품들을 사용하는 소비 주체로서 보다 건강하고 바른 소비행위를 해야 한다. 즉 필요하지 않은 제품을 사지 않아야 하며, 다시 쓸 수 있는 것은 다시 쓰고, 버릴 때는 보다 주의 깊은 고려가 필요하다. 특히나 열대림에서 나오는 소고기를 이용한 일품 요리를 먹는 것을 자제해야 할 것이다. 세계경제가 시장의 원리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 사실이라면 더 더욱 열대림을 무분별하게 개발해야만 얻어지는 제품들을 소비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또한 각자의 전문 분야에서 이러한 환경문제와 연결된 연구 주제를 찾아서 공동의 연대를 도모하는 것이 필요하다. 생물학, 동물학, 경제학, 생명공학, 환경학, 지리학, 국제 정치학 등 관련 분야의 통합적인 연구가 절실히 요청된다.

우리 크리스챤 개인은 연합을 통해 각 지역 단체의 Opinion Leader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 즉 교회를 중심으로 또는 각 각의 관심분야를 중심으로 연합하여서 신앙적인 동지로서의 일도 할 뿐만 아니라 지역 환경문제에 대한 정부의 역할 등에 대한 의견을 개진 할 수 있다. 또한 국가 및 세계 환경문제에 대한 입장을 표명할 수 있다. 사회학적인 용어로 Social Capital이라는 용어가 있다. 이는 한 사회가 어느 정도의 자원적인 단체와 조직을 가지고 공동의 선을 위해 집단적으로 그에 참여하는가를 진단하여 한 사회의 신뢰수준을 평가한다. 사실상 우리 한국의 Social Capital은 매우 낮은 것 같다. 크리스챤들의 종교행사 참여를 Social Capital의 일부로 본다면 아마도 그 수준은 매우 높겠지만 우리 국민의 도덕성과 공동의 선을 위한 참여 수준으로 본다면 크리스챤들의 종교행사는 궤를 달리하는 면이 없지 않다. 지나치게 이기적이고 안심입명적인 모습이 우리들에게 있음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우리 크리스챤들은 빌립보서 2장 5-9절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의 자세를 본받아야 한다. 십자가의 정신이 전도의 현장에 뿐만 아니라 세상의 일 하나하나에 구체적으로 들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노력에 있어서도 개인 뿐만 아니라 크리스챤들이 연합하여야 함은 두말 할 나위도 없다.

성경에서 이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고 한 것은 아마도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교만하고 자기 중심적인 이 세상의 풍속을 두고 한 것이지 물리적인 세상 자체를 무시한 데서 오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지으시고 좋으셨다는 세상을 지키고 가꿀 책임을 인간에게 주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 받은 우리들에게는 어떤 책임을 주셨을까? 두 말할 나위 없이 창세기에서 인간에게 주셨던 동일한 책임과 권한을 주셨으리라 확신한다. 에덴을 돌보고 가꿀 책임을…

우주가 열려가고 인터넷을 통해 지구촌 구석구석이 실시간으로 연결되고 있는 이 시기를 살고 있는 회복된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 크리챤들이 진정으로 가꾸고 돌보아야 할 에덴은 정말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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