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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타 사역/KOSTA 세미나

"교회" - 김두화 목사

이 세미나는 2002 KOSTA/USA에서 뉴저지 지구촌교회 김두화 목사의 '기독입문 - 교회'를 eKOSTA 편집부에서 녹취한 것입니다.


우리 삶의 현장으로 돌아가면 무엇보다 신앙의 공동체인 교회생활에서 실질적인 삶에 부딪칩니다. 왜 교회생활이 그처럼 중요한 것인지 생각하려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거듭난 크리스챤은 하나의 공동체가 되었으며 그것은 교회이며 한 가족이고 더 이상 손이 아니고 외인도 아니라는 말입니다. 내가 이런 삶을 살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교회관이 정립되어 있어야 합니다. 교회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교회생활이 왜 중요한가, 어떻게 하면 건강한 교회생활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런 교회생활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먼저 교회는 헬라어로 에클레시아라고 합니다. 에는 out of 클레아는 called라는 뜻입니다. 이 세상으로부터 불러냄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세상에서 복음을 듣고 믿어 새로운 공동체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교회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가족에 속하게 된 공동체를 교회라고 합니다. 이 교회는 세상을 향해서 증거하러 나가는 공동체가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믿고 세상에서 불러냄을 받아 그리스도에 속한 백성들의 공동체를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불러냄을 받았고 속하였습니다.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고 천국의 시민으로 성도라고 부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칼빈이 “교회를 어머니로 받들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자격이 없다”라고 했죠. 이 세상은 바벨론 문화, 바벨론 정신입니다. 이 세상에 있을 때 두 가지 종류의 사람이 살아갑니다. 하나님께 속한 사람과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자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이전에 구원받기 전에 우리는 사탄의 자녀였습니다. 이 세상을 요람으로, 이것이 모든 것인 것처럼, 세상의 끝인 것처럼 살도록 만든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어머니이고 사탄이 아버지입니다. 이에 비해 구원을 얻으면 교회는 어머니 역할이라는 것입니다. 신앙 생활에 있어서 교회에 대해서 바른 시각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교회의 본질에 대해서 생각해보겠습니다. 교회 건물이 교회는 아닙니다. 예배당, 장소이죠. 저희 교회는 강당을 빌려서 예배를 드리는데, 이것은 학교 건물이죠, 이 자체가 교회가 아니에요. 초대교회는 주로 내 집에 있는 교회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둘째 교파가 아닙니다. 성경은 교파를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저는 침례교 목사인데, 우리가 폐교파주의로 나갈 필요는 없습니다. 각 교파가 기여하고 있는 것을 인정해야합니다. 본질적인 것은 공통적인 것이지만 비본질적인 분야는 다양성을 인정해야할 것같습니다. 예를 들어 침례가 더 성경적이라고 저는 생각하지만 그것이 영혼을 구원하는 것은 아닙니다. 장로교,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지요, 그것이 우리의 신앙에 도움을 주는 점이 있습니다. 한편 웨슬리안처럼 인간에게도 자유의지를 주셨다, 인격적인 책임을 강조할 필요가 있습니다. 함께 균형을 이룰 때 신앙이 균형을 이루겠습니다. 서로 기여하는 것입니다. 서로 배워서 주님의 몸을 이루어나가야 합니다. 여기서 포인트는 교파자체가 교회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 교회는 의식은 아닙니다. 세례, 꼭 교회에서만 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찬을 꼭 교회에서만 해야하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의 본질은 믿는 자들의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두 유형을 생각해보면, 우주적 교회와 지역교회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은 구원받은 자들인데, 이 모든 구원받은 성도들, 그리스도의 몸에 접붙임을 받은 모든 사람들의 공동체, 비가시적인 공동체, 무형교회입니다. 지역교회는 불완전하지요. 아직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 누구나 올 수 있습니다. 불완전한 사람들이 모이기 때문에 불완전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민교회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교회 안에 갈등, 불완전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 자신을 잘 보면 그렇죠. 우주적 교회는 승리한 교회입니다. 지역교회는 전투하는 교회에요. 영적 전쟁을 하고 있는 교회입니다. 상처받고 상처 입히고 넘어지고 그런 교회입니다. 하나님은 지역교회를 통해서 우주적 교회를 확장시키고 계신 것입니다.

교회의 기초, 마태복음 16장1 3절입니다. 예수께서 마지막 교훈을 주시는 것입니다. 너희들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하는 것입니다. 베드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합니다. 이 믿음의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는 것입니다. 가톨릭에서는 이 반석을 베드로를 가르킨다고 주장하는데, 헬라어 원어를 보면 다른 단어임을 알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작은 돌, 남성을 표현하는 단어가 쓰이고 반석은 큰 돌, 중성을 표현하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다른 것이죠. 내용에서도 다음 사건에 베드로를 책망하는 표현이 나오죠. 이 전후 맥락을 볼 때도 반석을 베드로로 해석할 수는 없습니다. 베드로가 말하는 신앙의 고백으로 보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입니다. 베드로는 베드로전후서에서 비슷한 표현을 쓰는데요, 베드로전서2장 4절, 산 돌이신 예수에게 나와, 머릿돌이 되고, 반석이 되었다, 이런 표현이 나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반석이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반석이라는 것입니다. 교회의 본질이 주님께서 직접 세운, 그 반석이라는 것입니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 주님에 대한 내용입니다. 그리고 사도행전은 예수님에 대한 믿음 하에서 교회가 어떻게 세워지는가 하는 내용입니다. 로마서 등등은 지역교회에 보낸 편지죠. 일반서신이 있고 목회서신이 있습니다. 이 성경을 집으로 그려보면 가장 아래 반석이 사복음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 위에 교회가 서있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중요성입니다. 첫째 성경이 지역교회를 중요시하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일꾼 된 것을 중요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교회가 세례를 받고, 교회의 멤버쉽을 받았습니다. 지금도 많은 미국교회는 신앙고백하고 세례나 침례를 받은 후에 교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로컬의 이름을 갖고 많은 서신이 로컬 교회에 보내진 것이며, 교회의 일꾼이라는 표현 등, 성경은 교회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둘째 교회는 성도들의 인격 형성에 중요한 장입니다. 혼자 신앙생활하면 성도의 인격이 향상될 수 없습니다. 삶의 변화, 인격의 변화가 필요한 것입니다. 주님이 12명의 제자를 부르시고 함께 지내시며 교제하면서 제자들을 빚으신 것이죠. 서로 맞지 않은 사람들을 묶어서 같이 지내면서 고쳐져 가는 것이지요. 교회 안에서 우리의 인격을 빚고 계신 것입니다. 교회는 다른 배경을 갖고 모이는 것입니다. 십자가만 있고 서로 용납해야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으로 자라가기 위해서 입니다. 히브리서 10장 24절, 서로 돌아보아라,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라고 했습니다. 주님의 사역의 중심기관입니다. 교회의 궁극적인 목적은 선교, 복음전파와 사랑의 실천입니다. 복음전파는 다른 기관이 대신할 수 없지요. 교회에 있어서 선교는 가장 중요한 미션입니다. 교회의 생명이 선교입니다. 주님이 성육신의 연장을 교회에 맡기셨습니다. 교회가 이제 그 역할을 해야합니다. 교회를 통해서 선교나 구제를 해야 좋습니다. 개인적으로 하면 자신이 드러나고 유혹에 빠지기 쉽습니다. 파라처치는 지역교회를 지원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신앙의 삶에 중심은 지역교회에 있는 것입니다. 다음은 가정과 불가분의 관계인 유기체 조직이기 때문입니다. 삶에 가정과 교회에 중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 처럼 가정과 교회가 떨어지지 않습니다.

교회는 어떻게 구성되는가. 첫째로 지역교회는 교제입니다. 사도행전에서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아 교제하였다라고 나오죠,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교제하였습니다. 에베소서 3장, 성령의 하나되게 함을 힘써 지켜라, 말씀과 성령의 사역에 중심을 두어야 합니다. 교회에 분파, 갈등을 만드는 일은 그 자체가 죄입니다. 자기 사람 만들고 끼리끼리 지내려고 하는 것은 그 자체가 죄입니다. 화평과 일치가 교회의 핵심입니다. 다양성 속에 unity, 연합 일치입니다. uniformity가 아니고 다양성 속에 연합입니다. 사람마다 갖고 있는 개성을 인정해야 합니다. 두번째 지역교회는 가족입니다. 교회는 사업체가 아닙니다. 비즈니스가 아닙니다. 모이는 분들 하나하나 구령하고 캐어하고 평신도 목자들로서 셀 사역하고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갈라디아서 6장 10절, 믿음의 가족이라고 표현합니다. 히브리서 2장 10절, 형제로 서로 부르라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3장 33절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서로 가족이라는 것입니다. 셋째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라는 것입니다. 에베소서는 몸된 교회, 골로새서는 주님의 머리되심을 강조합니다. 영적 은사는 교회를 세우는데 써야 합니다. 교회는 유기적인 구조를 가져야 합니다. 사역 중심입니다. 교회 성도들이 모두 사역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영적 은사에 근거하여 기능하는 유기적 구조이며 서로가 상관된 지체입니다. 마지막으로 지역교회는 양무리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아침에 제자들을 불렀습니다. 함께 식사하며 교제하셨습니다. 이제는 자신을 발견하고 예수님께 사랑을 고백합니다. 그때 주님은 양을 먹이라라고 부탁합니다. 목자가 되어야 합니다. 평신도, 목사 모두 목자입니다. 교회는 양무리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양, 우리 밖에 있는 양 모두 쳐야 합니다. 교회는 목자들에 의해서 전도되고 양육되고 성숙되어 간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