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개인적으로 이번학기에 박사과정 종합시험이 있어서 연재를 한참 쉬다가 오랫만에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이번에는 최근에 뉴스의 초점이 되었던 빈 라덴 사살과 관련해 글을 써보려고 합니다.
빈 라덴의 죽음과 숨겨진 역사 1
지난 5월 1일 오바마 대통령은 오사마 빈 라덴이 사살되었다고 발표했고, 뉴스에서 연일 이와 관련된 기사들을 내보내고 있습니다. 백악관 앞에서는 수백명이 “U.S.A.”를 외치는 등, 많은 미국인들이 이에 대해 환호를 하며 기뻐하고 있습니다. 2001년 알카에다가 일으킨 9.11 테러로 미국의 심장부인 뉴욕의 세계무역센터와 워싱턴D.C.의 펜타곤 등이 공격당하고 약 3천명의 시민들이 목숨을 잃었던 것을 생각하면 미국인들의 이러한 반응이 어느 정도 이해는 되지만, 과연 빈 라덴의 죽음과 지난 10년간 진행되어 온 테러와의 전쟁을 어떻게 볼 것인가는 쉽지 않은 문제이고, 답하기 힘든 질문들이 많이 남아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를 들어, 아무리 엄청난 범죄를 저지른 테러리스트일지라도, 기독인의 입장에서 한 사람의 죽음을 기뻐하는 것이 적절한가, 그리고 체포후 법정에 세워서 공정한 법의 심판을 받게 하는 것이 아닌, 당시 비무장이었던 그를 일종의 암살에 가까운 방법으로 살해하고 시신을 바다에 유기하는 것이 정당한 방법이었나, 또한 근본적으로 미국은 선이고, 테러리스트 혹은 이슬람을 악이라고 단순하게 규정할 수 있는가, 테러리즘의 원인은 무엇이고 현재의 미국의 대테러전쟁이 과연 테러의 위협을 근본적으로 제거 할 수 있는가, 마지막으로 이러한 미국의 정책이 이슬람권 선교에 도움이 될 것인가 등등의 질문들이 떠오릅니다. 이러한 질문에 다 답하기는 불가능 하겠지만, 이번 글에서는, 빈 라덴이라는 인물의 과거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배경을 살펴봄으로서, 위의 질문들에 대해 접근해 보려고 합니다.
빈 라덴 사살 발표이후 백악관 앞에 모여 환호하는 미국 시민들 (연합뉴스)
먼저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도입차원에서 이번 사건과 관련해 두가지 간단한 질문을 해보겠습니다. 첫번째는, 빈 라덴을 포함해 9.11에 가담한 테러리스트들의 대부분(90%이상)의 국적이 어디냐는 질문이고, 두번째는, 빈 라덴이 살해된 지역이 어디이며 그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느냐는 질문입니다.
첫번째 문제의 답은 '사우디 아라비아'로, 비교적 쉬운 질문이지만, 미국에서 진행된 설문조사 (Program on International Policy Attitudes Survey)에 따르면 불과 설문자의 27%만이 답을 맞췄다고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사우디아라비아는 중동에서 미국의 가장 중요한 동맹국중 하나이며, 미군이 엄청난 규모로 주둔해 있는 국가인데, 9.11 테러리스트들의 대부분이 이라크나 이란, 아프가니스탄 같은 반미 국가, 혹은 소위 불량국가 출신이 아닌 미국의 동맹국인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이라는 것이 말해주는 것은 무엇일까요?
두번째 질문의 답인 빈 라덴이 발견되고 살해된 지역은, 최근 뉴스보도를 통해 잘 알려진 대로, 아프가니스탄의 산간지역이 아닌,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불과 38마일 떨어져있고 파키스탄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는 아보타바드(Abbottabad)라는 부유한 교외지역이었습니다. 파키스탄 역시 미국의 동맹국으로, 테러와의 전쟁에서의 중요성 등으로 인해, 미국에서 해마다 10억 달러 이상씩의 엄청난 원조를 받아왔는데, 이 사건 이후, 자기네 수도 근처에 빈 라덴이 살고 있는 것을 몰랐다면 무능한 것이요, 빈 라덴을 숨겨주거나 묵인해 왔다면 동맹관계를 배신한 행위라며, 미국은 파키스탄을 엄청나게 압박하고 있습니다. CIA 국장 레온 파네타는 최근 미 하원에서 빈 라덴의 은거지 위치로 볼 때, 파키스탄이 "정말 무능하거나 아니면 빈 라덴에 연루되어 있다(either incompetent or involved)"고 볼 수 밖에 없고, 둘 중에 어떤 경우든 심각한 책임을 피할 수 없다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그렇다면 정말 어떻게 빈 라덴은 파키스탄의 수도 근방에 숨어 있을 수 있었을까요?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답하기 위해서는 과연 이 테러조직들의 뿌리가 어디에서 시작하는 가를 살펴봐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조금 시간을 거슬러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던 시점으로 돌아가 볼 필요가 있습니다.
1979년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자, 미국은 이를 소련이 아프간을 통과해 중동의 석유에 접근하고 부동항(겨울에도 얼지않는 항구)을 확보하고자 하는 '팽창 전략'으로 해석하여, 당시 카터 대통령은 유명한 '카터독트린(외부세력이 페르시아만을 통제하는 것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고 필요하면 군사력을 동원해 막겠다는)'을 발표합니다. 그리고 소련을 약화시키고 아프간에서 철수하게 하기 위해 79년부터 3천만달러의 예산을 책정해 '사이클론 작전(Operation Cyclone)'을 시작하였고, 1985년 3월 후임자인 레이건 대통령은 국가안보 결정 명령166호에 서명하여 지원액을 2억5천만달러로 늘렸고, 2년 뒤인 1987년엔 6억3천만달러까지 증액하여 무자헤딘에 대한 비밀 군사지원이 총 10년간 지속됩니다. 그 기본 전략은 파키스탄 정보국인 Inter-Services Intelligence(ISI)를 통해 근본주의 이슬람세력인 무자헤딘 게릴라를 지원해 소련에 맞서 싸우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전 대통령 레이건(왼쪽)과 파키스탄의 지아 대통령 (오른쪽)
이에 따라 1986과 1992년 사이 10만명이 넘는 이슬람 전사들이 CIA와 MI6(영국 첩보부)의 감독하에 파키스탄에서 훈련받았고 영국 특수부대 SAS는 미래의 알카에다와 탈레반 전사들에게 폭탄제조법을 가르쳤으며, 무자헤딘 고위 지도자들은 버지니아에 있는 CIA캠프에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사우디에서 온 빈 라덴을 포함, 전세계 43개국에서 온 3만5천명의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아프간 무자헤딘과 함께 싸웠고, 수만명의 새로운 자원자들이 ISI와 CIA가 후원하는 파키스탄의 마드레사(이슬람학교)에 몰려들었습니다. 또한 엄청난 규모의 재정과 스팅어 미사일을 비롯한 무기들이 지원되어 전쟁의 판도를 바꿔 놓았는데, 예를 들어 무자헤딘 게릴라들이 스팅어미사일을 쏠 때마다 거의 70%의 확률로 소련 헬기와 비행기들을 격추시켰고, 한발에 6~7만달러 하는 스팅어 미사일로 소련군에 거의 2천만 달러의 손실을 입혔습니다. 결국 소련은 14,427명의 군인, 118대의 전투기, 333대의 헬기와 다른 엄청난 손실을 입고 아프간에서 철수하였고, 이는 소련의 붕괴에 도화선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에 대해 카터정부의 국가안전보좌관이었던 브레진스키는 1998년 프랑스의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아프간에서 수행한 미국의 비밀작전은, 소련을 미국의 베트남전에 비견되는 수렁으로 끌고 들어간 뛰어난 아이디어였다”고 자랑한 바 있습니다. [i]
대 소련 투쟁 당시 무자헤딘 게릴라들
미국이 지원한 스팅어 미사일을 사용하는 장면
당시 미국의 최우선순위는 냉전에서의 승리였기 때문에, 소련을 약화시키고 파괴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수단이라도 합리화시켰습니다. 그래서 과격한 이슬람 근본주의세력이었던 무자헤딘은 미국 언론에서 아주 호의적으로 묘사되는데, 이들은 낙후된 무기를 가지고서 외부 침략자들에 저항해온 용맹한 전사들로 그려지고, 반면 소련군은 엄청난 무력으로 양민을 학살하고 저항세력을 토벌하는 잔인한 침략자로 묘사됩니다. 한 예로 우리가 잘 아는 실베스타 스탤론의 영화 ‘람보III(1988)’는 베트남전에서 활약했던 람보가 아프간에 가서 무자헤딘을 도와 소련군에 맞서 싸우는 것이 주 내용입니다. 심지어 이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는 ‘이 영화를 용감한 아프가니스탄인들에게 바칩니다(This Film is dedicated to the gallant people of Afghanistan)’라는 헌사가 나올 정도입니다. 오락영화이긴 하지만, 당시 아프간전쟁에 대한 미국인들의 인식을 잘 보여주고 있지요. 또한 2007년에 나온 영화 ‘찰리윌슨의 전쟁(Charlie Wilson's War)’을 보면, 플레이보이면서 냉전의 전사였던 하원의원 찰리 윌슨이 어떻게 무자헤딘을 지원하기 위해 국내적 국제적 수단들을 동원해 활약하는지를 잘 그리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CIA는 무자헤딘 게릴라의 사기를 진작을 위해 코란 수천권을 인쇄해서 배포할 정도였습니다.[ii] 지금의 관점에서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인데, 쉽게 말해 소련을 물리치는데 도움이 된다면 어떤 수단이든 상관이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이러한 작전은 국가안보라는 차원에서 미국 국민들 대부분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채 진행됩니다.
영화 람보III (상), 영화 찰리윌슨의 전쟁 (중),
무자헤딘들과 함께 촬영한 하원의원 찰리윌슨의 실제 사진 (하)
문제는 이러한 비밀 작전을 수행하면서, 과격파 이슬람으로서의 무자헤딘 게릴라의 성격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또한 파키스탄의 ISI를 대리인으로 사용하면서 ISI가 다른 목적을 위해 이러한 상황을 이용하고 있다는 것도 별로 상관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무자헤딘 지도자 중, 굴부딘 헤크마티아르(Gulbuddin Hekmatyar) 같은 인물은 유명한 6개의 헤로인 공장을 소유한 마약거래상이자 가장 무자비하고 극단적인 이슬람 군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앞에서 언급한 하원의원 찰리윌슨과 CIA 국장 윌리엄 케이시 등이 ISI에 수억달러의 지원을 보낼 때, 그 지원금의 거의 절반을 받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CIA의 윌리엄 케이시는, 전쟁을 아프간을 넘어 소련까지 확대시키고자 하는 헤크마티아르의 극단적 성향으로 인해, 그를 특별히 선호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iii]
이러한 미국의 비밀 작전에서 마약의 역할을 빼 놓을 수 없는데, 미국과 사우디 아라비아의 재정지원과 더불어, 상당량의 자금은 황금 초승달 지역(the Golden Crescent)이라고 불리는 지역의 마약 거래를 통해 확보되었기 때문입니다. CIA가 정부로 부터 받는 예산은 의회에 감사와 보고 의무가 있기 때문에, 불법적이거나 비밀리에 수행되는 작전들에 사용할 수 없고, 따라서 외부 예산을 확보하는데, 여기에 마약이 중요한 재정공급원으로 사용되었다는 주장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은 베트남전 당시 Air America 항공을 통해 마약을 해외로 운송했는데, 이는 영화 아메리칸 갱스터(2007)에서도 묘사된 바가 있습니다. CIA 작전이 시작된 지 2년 안에 파키스탄과 아프간 국경지역은 세계 최대의 헤로인 생산지역이 돼 미국내 수요의 60%를 공급했고, 파키스탄에서 헤로인 중독자는 1979년 사실상 전무했으나 1985년에 120만명에 달했다고 합니다. 미국의 지원으로 무자헤딘이 승리했던 1986년경 아프간은 전세계 헤로인의 40%가까이를 생산하고 있었고, 1999년에는 80%를 생산할 정도였습니다. 1995년에 전직 CIA 아프간 담당자 찰스 코건(Charles Cogan)은 마약거래가 소련을 철수하는 주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예기치 않은 부산물로 어쩔수 없이 나타났다고 합리화 했는데, 결국 마약 자금이 CIA작전에 중요하게 사용되었음을 인정한 셈입니다.[iv] 9.11테러 이후 미국의 아프간 전쟁에서 미국이 파트너로 선택한 북부동맹의 군벌들 역시 마약왕들이었고, 2009년 경에는 전세계 아편의 93%가 아프간에서 생산되었고, 현재 아프간 정부 내 정치인들과 고위층들도 공공연히 마약거래에서 이익을 얻고 있다고 합니다. 심지어 현 대통령 카르자이(Karzai)의 친동생인 아흐메드 왈리가 바로 칸다하르를 지배하는 통치자이며 아프가니스탄의 '마약왕'이며 CIA의 자금 지원을 받고 있었다는 것이 위키리크스를 통해 폭로되기도 했습니다.
CIA와 ISI의 지원을 받은 헤크마티아르는 또한 오사마 빈 라덴과 아주 가까운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v] 오사마 빈 라덴이 CIA에서 직접적인 지원을 받았느냐는 아직도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이지만, 결국 그도 미국의 지원 하에 치러진 아프간전쟁의 와중에 성장하고 적어도 간접적 지원을 받은 인물임은 분명합니다. 또한 빈 라덴 개인도 중요하지만, 파키스탄의 ISI, 탈레반, 알 카에다의 동맹 관계가 결국 냉전기 미국 패권 전략의 산물이라는 것이 주목해야할 사실입니다.
미국이 직접 지원이 아닌, 파키스탄의 ISI를 중개자로 해서 비밀리에 무자헤딘을 지원한 것은 소련의 파괴라는 궁극적인 목표가 드러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였는데, 여기서도 여러 부작용들이 나타났습니다. 먼저 파키스탄은 이 비밀작전에서 얻은 자원과 경험을 자신의 적대국인 인도와 싸우는데 이용했고, 카슈미르 등의 분쟁지역에서 아프간전쟁에서 체득한 게릴라 전술을 활용했습니다. 또한 파키스탄 군부와 ISI는 무자헤딘을 교육하면서 이슬람을 완벽한 사회정치적 이념으로 가르치고, 무신론자인 소련 정부에 맞서 지하드를 일으키며 소련의 해체와 구소련 국가들에서의 무슬림 공화국 건설까지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교육했습니다. 실제로 파키스탄은 아프간 전쟁 이후에도 소련의 해체와 중앙아시아 지역 6개 무슬림 국가 건설을 지원하고 개입한 바 있습니다. 파키스탄 내부에서도 CIA와 ISI의 관계는 지아 울 하크 장군(Zia Ul Haq)이 부토 총리를 쿠테타로 축출하고 세운 군사정권을 강화시켰습니다. 결국 파키스탄 내에서 누구도 통제할 수 없는 권력집단이 된 ISI와 파키스탄 군부는, 현재 아시프 알리 자르다리 대통령과 민간 정부가 어쩌지 못하는 실질적인 파키스탄의 실세가 되어있고 핵무기도 이들의 통제하에 놓여있습니다. 이렇게 80년대에 미국의 지원하에 무자헤딘 네트워크와 극단주의 이슬람운동이 급속히 성장하자, 파키스탄의 전 총리였던 부토 여사는 미국을 방문했던 1989년 당시, 부시 대통령(아버지 부시)에게 “당신들은 지금 프랑켄슈타인을 만들어 내고 있다”고 경고할 정도 였습니다.[vi] 다시말하지만, 냉전기 미국의 비밀작전을 진행하면서 형성된 파키스탄 ISI와 탈레반, 알카에다간의 견고한 동맹관계는 쉽게 통제할 수 없는 네트워크가 되어 버렸고, 오늘 미국이 골치를 않는 테러조직의 뿌리가 여기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입니다.[vii]
알카에다(Al-Qaeda)는 빈 라덴과 압둘라 아잠(Abdullah Azzam)이 파키스탄 페샤와르(Peshawar)에서 소련에 대항하기 위한 외국인 출신의 무자헤딘을 모집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한 단체(Maktab al-Khidamat)에서 유래합니다. 미국이 아프간에서 철수한 후 미국에 의해 소위 ‘자유의 투사’라고 불리었던 이들은, 1991년 사우디의 이슬람성지인 메카에 미군이 주둔하기 시작한 사실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를 비롯한 미국의 중동정책에 불만을 가지고, 이제 서방세계를 향해 테러를 시작합니다. 1993년 세계무역센터에 폭탄 테러를 하고 CIA 요원들을 살해하기 시작합니다. 심지어 93년 이들의 폭탄 테러에는 과거 무자헤딘 게릴라들을 위해 쓰여졌던 CIA의 폭파 교본이 사용되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viii] 상당히 의미심장한 내용이지요. 여론이 악화되자 알카에다 본부를 제공하고 있던 수단은 이들을 추방하기로 결정하고, 알카에다는 마침내 과거 대소련 투쟁의 동지였던 탈레반이 지배하는 아프가니스탄으로 본부를 옮기게 됩니다. 1998년 8월 7일 알카에다는 동아프리카의 미대사관을 공격하고, 2001년 마침내 9.11 테러가 발생합니다.
9.11을 비롯한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의 테러가 일어나면서, 이들에 대한 평가는 극적으로 달라지는데, 소련의 제국주의에 저항하는 영웅적 전사들에서, 인권을 유린하고 테러를 자행하며 마약거래를 일삼는 공공의 적으로 묘사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사실, 이런 어두운 면들은 미국이 이들을 지원하던 80년대에부터 동일하게 존재했던 문제들이고, 단지 냉전하에서 소련과 싸우는 미국의 필요에 의해 감춰져왔을 뿐이지요. 이와 유사하게, 유명한 노암 촘스키는 파나마의 독재자 노리에가가 미국의 하수인 역할을 할 때는, 온갖 범죄행위들을 눈감아주다가, 독자노선을 가기 시작하고 파나마 운하에서 미국의 이익에 위협을 가하자, 바로 그를 깡패이자 마약장사꾼으로 비난하고 결국 침공해서 체포했다는 것을 예로 드는데, 사실상 그는 CIA 고용되어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 일할 때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고 지적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사담 후세인도 이라크 전쟁시는 악당중의 악당으로 묘사되었지만, 사실 80년대에 이란-이라크 전쟁시, 이란을 약화시키고자 했던 미국은 후세인을 지지해 무기를 지원했었는데, 미국의 하수인 역할을 했던 후세인은, 전쟁 후에 석유기업을 민영화하라는 미국의 요구를 거절하고 쿠웨이트를 침공하는 등, 미국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시작한 후부터, 비난 받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루즈벨트 대통령이 니카라과의 독재자 소모사 가르시아(Somoza Garcia)에 대해 했다는 다음의 말은 상당히 의미심장 합니다. “He may be an S.O.B., but he’s Our S.O.B.” 외국의 지도자가 독재자냐 아니냐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가 미국의 이익에 합치하느냐라는 것이지요. 결국 미국 외교정책의 가치판단과 윤리는 상당부분 미국의 국익을 위해 쉽게 조작될수 있음을 잘 보여주는 예들입니다.
1983년 이라크의 독재자 후세인과 악수하는 젊은 시절의 럼스펠드. 80년대의 이란-이라크 전쟁시 미국은 이란을 약화시키기 위해 이라크를 지지하고 무기를 판매하였다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서 빈 라덴이 파키스탄 수도에서 가깝고 군부대까지 주둔하고 있는 아보타바드에서 발견된 것에 대해, 최근 미국 정치인들과 언론은 엄청나게 분개하면서, 파키스탄내에 빈 라덴을 지원한 세력이 있다며 파키스탄 때리기에 나서고 있습니다. 아직 정확히 확인된 바는 없지만, 군부대까지 있는 파키스탄 수도 근처에서 빈 라덴이 5년이상 은거하고 있었다면, 어떤 형태로는 파키스탄 내의 지원세력이 있다는 것(아마도 군부와 ISI내에 협력세력)이 거의 분명하겠지요. 이전에도 빈 라덴 이외에 상당수의 알 카에다 고위 지도자들이 파키스탄 영토 내에서 체포 된 바가 있었습니다.
2001년 9.11 테러 아흐마드 슈자 파샤 (오른쪽 끝) ISI 부장과
마이크 멀린 (왼쪽 끝) 미 합창의장 (사진: 한국일보)
결국 9.11테러의 주범인 빈 라덴을 동맹국인 파키스탄의 어떤 세력이 숨겨주었다면 미국 입장에서는 당연히 문제가 되겠지만, 이제까지 살펴본 80년대 미국의 비밀작전의 역사가 말해주듯이, 파키스탄 ISI를 통해 80년대에 무자헤딘을 훈련하고 무장시킨 것은 사실 미국이라는 것, 그리고 무자헤딘의 후신으로 나타난 것이 알카에다와 탈레반이라는 것을 기억해 본다면, 지금와서 그 관계가 깨끗하게 청산되었기를 바란다는 것이 오히려 우습기도 합니다. 이런 점에서 국제정치를 공부하다 보면, 미국인들은 상당히 ‘선택적인’ 기억력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은데, 미국의 개입에 대한 과거 역사에 무지하거나, 아니면 자신들의 어두운 역사를 의도적으로 무시하고자 하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과거 아프간에 대한 미국 개입의 역사를 설명했다면, 다음 글에서는 그 의미에 대해서 좀더 깊이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주>
[i] Le Nouvel Observateur, Paris, Jan, 1998
[ii] Steave Coll ‘Anatomy of a Victory: CIA’s Covert Afghan War,’ a article in the Washington Post, on July 19, 1992
[iii] Robert Dreyfuss, Devil's Game: How the United States Helped Unleash undamentalist Islam, New Work: Metropolitan books, 2005, p.268
[iv] Alfred McCoy, Drug fallout: the CIA's Forty Year Complicity in the Narcotics Trade. The Progressive; 1 August 1997.
[v] Steave Coll, Ghost War, The Secret History of the CIA, Afghanistan, and bin Laden, from the Soviet Invasion to September 10, 2001, New York: the Penguin Press, 2004. p.119.
[vi] Evan Thomas, 'The Road to Sept. 11,' Newsweek, October 1, 2001.
[vii] Steve Coll’s interview at the University of Berkeley (the Conversation with History) on March 15, 2005.
[viii] Michael Powelson, ‘U.S. support for anti-Soviet and anti-Russian guerrilla movements and the undermining of democracy,’ Demokratizatsiya, Spring 2003
'기독교적 세계관 > 이인엽의 예수의 국제정치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이인엽] 일방적 이스라엘 지지가 하나님의 뜻? 2. 이스라엘은 왜 인종주의 군사국가가 되었나? (0) | 2012/05/15 |
|---|---|
| [이인엽] 목사가 된 이근안, 그리고 개독교,기득교,괴독교 (5) | 2011/12/31 |
| [이인엽] 나꼼수 열풍과 기독교 (26) | 2011/12/31 |
| [이인엽] 일방적 이스라엘 지지가 하나님의 뜻? 1.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의 역사 (9) | 2011/09/18 |
| [이인엽] 빈 라덴의 죽음과 숨겨진 역사 2 (1) | 2011/05/14 |
| [이인엽] 빈 라덴의 죽음과 숨겨진 역사 1 (3) | 2011/05/13 |
| [이인엽] (3) 율법의 정신을 대표하는 희년 제도 (1) | 2010/07/18 |
| [이인엽] (2) 혈연 공동체 vs. 언약 공동체 (7) | 2010/06/01 |
| [이인엽] (1) 가나안 정복과 이집트 심판에 대한 오해 (2) | 2010/05/15 |






댓글을 달아 주세요
Thank you for your clear essay.
긴 역사를 잘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런 주장에도 몇 가지 한계와 모순이 있습니다.
우선 이 주장대로라면 미국은 한국전쟁에 개입할 근거가 없었습니다.
미국이 좋아하는 석유가 나는 나라도 아니고,
소련과 중국을 대항해서 싸울 수 있는 종교근본주의자 게릴라가 넘치는 나라도 아니었는데도.
미국은 개입했습니다. 그리고 3만5천~5만의 젊은이들이 죽었습니다.
공산화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저나 이곳에 글을 올리는 분들이
이렇게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미국의 일부는 한국의 민주화에 계속 관심을 가지고 한국의 민주화를 응원했습니다.
어쩌면 미국은 대한한국의 가치를 6.25전쟁을 하면서 깨달았을지 모릅니다.
공산군 몇 십만명이 죽어야 할 정도로 중요한 전략적 요지라고요.
사실 가장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도대체 오사마 빈 라덴과 같은 행동을 하는 분(진영)들이
이런 식의 논리를 이렇게 잘 설명하려고 노력한 적이 있나요? 힘 없는 대한제국/상해임시정부
사람들이 국제회의 석상에서 어떻게 대한독립을 전해 보려고 애쓴 것처럼 말이죠.
대신 그들은 혁명전사를 뽑아서 수천명의 민간인을 죽이는 일을 감행했습니다.
전쟁을 한다고 인터넷에서 선전포고를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아마...
다른 사람을 죽이는 일을 누가 더 쉽게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면,
어쩌면 아주 쉽게 답이 나올지 모릅니다.
한편 (미국의 지배를 받을지 모르는) 외신에 의하면
오사마 빈 라덴을 100% 총살하라는 지령이 아니었다고 나옵니다.
"반항하면"이라는 전제가 있었습니다. 미국은 어쨌든 오사마 빈 라덴과 전쟁 중입니다.
그날 생중계를 보면서 미국 대통령과 측근들의
표정을 보셨는지요? 만세 하면서 환호성을 지르면서, 서로 손을 마주쳤나요?
만약 선생님이 현장에 있었다면 그렇게 많이 고민을 했을까요?
절대로 총살하지 말고 오사마를 생포하라고 결정했을까요?
주변에는 오사마 빈 라덴의 병력이 언제 올지 모르는 불확실한 상황이었지요.
병사들 자신의 목숨을 걱정해야 하는 위급상황이었습니다. 나중에 보니까, 작전이
100% 원하는대로 집행되지도 않았습니다.
제 상상일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편하게 자판에서 글자를 넣는 사람의 입장에서
그들의 심리상태나 판단을 심판할 수 있을까요? 혹시 오사마의 5(?)번째 부인이
자식과 같이 목숨을 건졌고 파키스탄의 보호를 받고 있다는 기사 보신 적은 있으신지요?
많은 전쟁 영화/기록을 보면, 위기상황이 닥치면 사람들의 행동은 크게 제한되게 되고,
그다지 합리적이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전쟁과 같은 위기상황이 없어야 한다고 저는 굳게 믿지만,
실제 상황에서 자신의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경우에 사람들의 반응은 기계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저는 성경에도 이런 문제에 대한 답들이 많이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1) 다윗과 일행은 제사장이 먹는 빵을 먹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들을 율법에 의해서 심판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예수님도 다윗의 위급상황을 인정해 주시면서, 그것은 율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율법을 좋아하는 바리새인들이 얼마나 위선적인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2) 다윗은 블레셋 사람들과 같이 살면서, 그들을 속이고 주변 마을을 침탈하고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그렇다면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크게 범죄를 한 셈이 될까요? 솔직하게 블레셋 왕에게 자신이 도망왔지만, 사실은 블레셋 족속을 미워한다고 고백한 다음 자신이 그들의 칼에 죽어야만 했을까요? 하나님이 다윗이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십계명을 어겼다고 심판하셨나요?
(3) 다윗은 죽으면서 솔로몬에게 시므이와 요압을 죽이라고 유언합니다. 왜 그랬는지는 여러가지 설명이 있겠지만, 저는 믿음의 사람 다윗이 오랜 고민 끝에 그랬어야만 했던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현실적입니다. 그게 상식적이고, 많은 경우 그게 맞습니다. 하나님의 예언하신대로 솔로몬이 왕위에 올랐을 때, 솔로몬을 위협할만한 세력이었기에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우리가 성경을 잘못 인용해서 "사람을 죽이지 말라"는 말을 문맥을 떠나 인용할 때, 우리는 (하기 싫은) 전쟁 상황에서 적군을 향해 총을 쏘지 못하게 됩니다. 과연 성경이 그렇게 하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일까요? 그랬다면, (그렇게 오랫동안 후회와 회한의 인생을 살았던) 다윗은 솔로몬에게 "그들이 어떻게 나오든지 용서하고" "하나님께 맡기고" "너는 성전 건축에 전념하라"고 하지 않았을까요?
(4)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과 "살인하지 말라"는 말을 문맥을 떠나 적용하면 오사마 빈 라덴을 잡으러 가서도 안되고, 그를 이해하기 위해서 엄청 노력을 해야겠지요. 잡으러 가서 군인 몇 명이 더 죽고 잡혀도 오사마만 멀쩡하게 나오면, 그게 믿음의 선행이 되겠지요. 그리고 피해자 가족을 보고 "저들을 용서하라"고 강요해야 할지도 모르죠. 그러나.....시편 여러 군데서 "원수를 갚아 달라" "원수가 지옥에 떨어지게 해 달라"는 내용의 기도를 청중들과 같이 노래했던 다윗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혹시 그런 피해자들은 다윗의 그런 기도가 마음에 들어서 교회에 나오게 되진 않을까요?
(5) 예수님이요? 그분은 십자가 위해서 "저들의 죄를 용서해 주소서"라고 기도했지, "꼭 용서애 주셔야 한다"고 기도하지는 않으셨습니다. 대신 예수님은 꼭 죄에 대한 심판이 있겠다고 누차 재차 여러번 말씀하셨지요. 특히 인간의 위선에 대해서는 꼭 심판이 있다는 내용이 (위선의 극치) 바리새인들을 정죄한 마태 23장 바로 다음에 나오는게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노아의 홍수 때처럼 그런 심판이 꼭 온다고 합니다. 그 바리새인들은 "남들을 용서하라" "살인하지 말라" "tit-tat-toe"고 남들에게는 가르쳤지만, 속으로는 살인할 마음이 그득했다고 합니다.
(6) 또 바울은 구리장인 알렉산더를 조심하라고 했고, 요한은 거짓 이단과는 교제도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사실 그게 감정을 가진 인간이 할 수 있는 말인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주장이 있을 수 있지만, 아마 6백만명이 죽지 않았다면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탄생할 수 있었을까요? 제가 알기로는 세계사를 보면, 미국조차도 유대인 학살에 관심을 두지 않았고, 영국도 이스라엘의 독립을 크게 원하지 않았다고 나오니까요. 6백만명이 죽었을 때에야, 비로서 자신들이 가졌던 반유대주의(antisemitism=죄)를 보게 되고 결국 이스라엘의 독립을 어느 정도 용인하지 않았을까요? 교회에서도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인 저주 받은 2등족속이라고 아주 오랫동안 가르쳐 오진 않았나요?
저도 미국에서 살아 보았고, 미국에 대한 기록들을 계속 접하지만,
미국이 완전한 나라도 아니고, 미국의 정치가들 중에 부패한 사람들도 있지만,
최소한 위선을 사랑하는 나라는 아닌 것 같습니다.
(잘못 가르쳐진) 역사를 수정해서라도 자신들의 부끄러운 과거를 가르치는 나라라고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 역사책을 읽으면서 감동 받게됩니다.
이스라엘의 부끄러운 역사를 읽으면서 감동을 받는 것처럼요.
솔직히 이런 주장이 오사마 빈 라덴의 진영에서 나왔다면 정말 좋았을텐데
왜 그들은 이런 훌륭한 논리 대신 "죽으면 천국 간다"는 논리로 수 많은 젊은이들을
세뇌시키고 자신들은 뒤에 앉아만 있을까요?
정말 알 수 없는 일이 일어났고,
그 사건에 대한 배경을 길게 잘 설명해 주셨지만,
내용 가운데 어쩌면 성경에서 크게 벗어난 내용이 있는 것 같아서
저도 바쁜 시간에 급하게 적어 보았습니다.
만약 여기가 하나님과 예수님을 아는 자리가 아니라면, 제가 좀 무리를 한 셈이 됩니다.
국제 정치학의 문제는 기존의 도식에 의해서 설명을 하려고 하는데 있을지 모릅니다.
거기에는 종교지도자들의 독점과 독재자의 욕심 아래서
그렇게 좋은 자원을 가진 나라에서
답답하게 살아야만 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빠져 있고,
특정 권력집단에 대한 현황과 설명, 그리고 앞으로의 전망이 더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나오는 평범한 인물들을 저는 좋아합니다.
이해하기가 훨씬 쉬우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