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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신앙/이시훈의 살며 생각하며

[이시훈] 감사의 이유

2003년 5월호

가끔 저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마음을 나누는 친구인 한 자매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그녀의 편지를 받을 때마다 저는 이번엔 어떤 따뜻한 글이 있을까 기대를 하곤 합니다. 그녀의 글 속에는 제가 평소 깨닫지 못하는 감사의 의미가 늘 담겨있어 제 자신이 부끄러움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십여 년 전 교통사고로 전신장애를 갖고 살게 된 그녀는 휠체어에 의지한 생활에 어느덧 익숙해질 정도가 되었습니다. 음악 듣는 것과 책 읽는 일을 무척 좋아하는 그녀의 감사는 자신이 가장 즐겨 하는 일에 지장이 없는 장애를 하나님이 허락하셨다는 것입니다. 온갖 고통과 어려움을 짐작할 수 있는 상태에 있는 그녀의 감사는 어리둥절할 정도로 진실하기에 더욱 귀하게 느껴집니다.

성악가의 꿈을 키우던 젊은 시절 늘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고 콧대가 무척 높다는 평을 듣곤 했다는 그녀의 아름다웠을 시절을 상상해 보면 모란꽃이나 다알리아 꽃처럼 수려하고 당당했을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런 그녀가 느꼈을 절망과 분노를 상상해 보면 얼마나 처참했을지 마음이 아파 옵니다. 그러나 그녀가 보내는 편지에는 늘 밝고 온화한 모습만이 느껴집니다. 교만했던 자신을 겸손케 하시는 분, 쉽게 분노하고 모든 일에 성급하던 자신에게 인내를 가르치신 분, 헛된 욕망의 굴레에서 벗어나 참된 가치관을 갖게 하신 분, 캄캄한 절망의 늪에서 자신을 건져내신 손길에 대한 깊은 사랑을 언제나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많은 것을 가진 사람들이(저 자신을 포함해서) 늘 불만 불평을 늘어놓는 일에 더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것이 우리의 모습인 것 같습니다. 자신과 남들을 비교하며 상대적인 빈곤과 열등감을 이끌어 내어 자신과 주변 환경에 대한 분노를 품거나, 이웃의 작은 결함을 확대하여 자신의 열등감을 회복하려는 교만으로 다른 이들을 상처 입히는 행위를 알면서 모르면서 저지를 때가 얼마나 많은지요. 건강한 육신과 일용할 양식,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 안전한 사회에서 이웃들과 즐거움을 나누는 일상을 당연한 것으로 느끼며, 채울 수 없는 욕망의 덫에 걸린 채, 감사한 마음은 너무 멀리 있는 것 같습니다. 한 가지를 성취하면 다른 한가지를 얻고자 하는 욕망이 우리 안에서 샘솟듯 일어나 갈증은 점점 더 심해지기만 합니다. 감사보다는 원망과 탄식이 자주 우리를 찾아옵니다.

그 자매가 음악을 듣다 말고 감격하여 써 보낸 편지에는 하나님이 그 음악가에게 주신 재능에 대한 감탄과 그 재능으로 많은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에 대한 감사, 자신의 귀를 온전히 지켜주신 주님께 대한 감사가 있습니다. 책을 읽다 말고 써 보낸 편지에는 진리에 대한 온갖 질문과 온전한 판단력을 지켜주신 주님께 대한 감사가 있습니다. 날씨가 궂으면 아파 오는 관절과 독신 생활의 외로움과 생활의 온갖 어려움을 통해 다른 이들의 고통을 이해하게 되었다는 감사마저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보다 훨씬 더 열악한 상태에 있는 형제, 자매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현하곤 합니다.

분명히 내적인 갈등과 번민이 수없이 그녀를 괴롭혔을 그녀의 삶에 주님의 만지심이 없었다면 결코 가능하지 않았을 빛나는 감성을 대할 때마다, 그녀 안에 빛나는 소중한 무엇을 발견합니다. 우리가 신앙을 통해 사모하는 것은 물질과 명예와 힘을 가지고 살아가는 세상에 대한 꿈이 아니라 참된 지혜와 정결한 영혼에 대한 소망일 것입니다. 순수한 영혼을 느끼는 자는 현실에서 듣지 못하는 아름다운 소릴 들을 것이며, 세상에서 얻을 수 없는 기쁨을 누릴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 안에서나 홀로 드리는 기도 중에 간구하는 축복이 얼마나 즉물적이고 가시적인 안정과 가치에만 치중하고 있는 것인지 가끔 반성하곤 합니다. 내가 사는 세상이 아름답고 정의로워지는 것, 나의 삶이 기쁨과 감사로 가득 차는 것은 내 자신이 전적으로 변화되어 성숙한 영혼을 가질 때 가능한 것이 아닐까요. 물질적이고 현상적인 획득이 우리 삶에 반드시 필요하고 절실한 것임에 틀림없지만, 그것이 우리에게서 사랑을 이끌어 내거나 진정한 평강을 누리게 하지는 못하므로 삶은 늘 공허한 상태로 우리를 몰고 갑니다. 내 안에 성숙한 자아의 눈이 열리고 작고 사소한 일들에도 감사를 느낄 때, 더불어 사는 사회, 아름답고 공평한 인간관계에 대한 적극적인 소망이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조금 부족한 환경 때문에 도전하는 마음을 갖게 되고, 아플 때 비로소 건강함에 감사하게 되며, 외로움은 벗과 가족에 대한 소중함과 감사를 일깨우게 합니다. 각 지체마다 다르게 소용되어짐을 알기에 내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게 됩니다. 범사에 감사할 수 있음은 범사에 그분의 손길이 닿고 있음을 믿기 때문입니다. 기쁨과 감사는 주님께 대한 우리 사랑의 표현입니다.

"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 나 남이 못 본 것을 보았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것 나 없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 " 송명희 시인의 놀라운 고백을 통해 감사의 이유가 얼마나 많은지를 다시 헤아려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