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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과 예배/이유정의 예배를 이야기하자

[이유정] 선교보다 예배가 궁극적 목표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사 43:21)

고상돈은 1977년 9월 15일, 한국인 최초로 에베레스트 산 정상에 올랐다. 출발한 지 무려 7시간 20분간의 사투 끝에 해발 8,848m 세계 최고봉을 정복한 것이다. 등정을 마치고 본부를 향해 무전으로 “여기는 정상, 여기는 정상이다. 더 이상 오를 데가 없다”고 했던 당시의 말이 유명하다.

인류는 산을 정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왔다. 그러나 이 정복은 산을 지배하기 위한 정복이 아니라 인간의 끝없는 가능성에 도전하기 위함이다.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 산을 정복했다 해서 인간이 이 산을 다스릴 능력은 없다. 정상은 목표의 끝이다. 그곳에 오르면 있을 것만 같은 행복은 사실 신기루이다. 마침내 정상에 도달해보면 여전히 또 다른 산봉우리에 걸려 있는 무지개와 같다. 그래서 차라리 누군가가 말한 “산이란 정복하기 위해 오르는 것이 아니요, 보듬고 만끽하려 찾아가는 것”이라는 표현이 훨씬 가슴에 다가온다.

존 파이퍼는 그의 책 《열방을 향해 가라》에서 교회의 궁극적인 목표는 선교가 아니라 예배라고 했다. 1장 첫 단락부터 나온 그의 주장이 섬뜩하다. “선교는 교회의 궁극적인 목표가 아니다. 예배가 없기 때문에 선교가 필요한 것이다.” 현재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복음주의자요 개혁신학의 기수인 그가 한 말치고는 사뭇 도발적이다. 하지만 필자는 이 말에 100퍼센트 동의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피조된 이유는 하나님을 찬송하고 예배하게 하기 위함이다. 파이퍼가 말한 것처럼 궁극적인 존재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이 시대가 끝나고 구속받은 셀 수 없이 많은 이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게 될 때 선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일시적으로 필요한 것일 뿐이다. 그러나 예배는 영원하다.

그동안 우리는 교회의 가장 중요한 사명을 선교로 알고 뛰어왔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그래서 건강한 교회는 선교에 교회의 재정을 아낌없이 투자하는 교회로 여겼다. 물론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궁극적인 본질인 예배를 놓치면 위험하다. 그동안 지상교회, 특히 한국교회는 지상명령이라는 높은 산봉우리의 정상을 향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달려왔다. 영혼을 살리는 선교를 성과 지향적으로 변질시켜서는 안 된다. 예수님의 마지막 유언인 지상명령을 결코 폄하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이 유언을 더 온전히 지키기 위해서 치우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진정한 선교는 목표를 성취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예배가 없는 곳에 예배를 회복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만끽하기 위해 하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통치하시나니 땅은 즐거워하며 허다한 섬은 기뻐할지어다.” (시 97:1)

새해가 밝았다. 인간 존재의 궁극적인 이유를 밝히는 것은 그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이다. 내 삶의 이유를 발견할 때 우리 삶에 열정의 불이 타오른다. 존 파이퍼의 말처럼 “예배는 선교의 연료요, 목표다.” 올해도 많은 교회가 선교에 큰 비중을 두고 새해를 연다. 선교가 선교되기 위해서 예배를 살려야 한다. 예배의 불이 뜨거우면 뜨거울수록 강력한 사랑의 연료 되어 선교의 불길이 피어오르게 될 것이다. 결국 선교의 목표는 모든 열방이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보고 예배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