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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초점

[이정희, 김진태] 몇 권의 책으로 살펴 본 물질주의의 위협

이코스타 2007년 4월호

로날드 사이더의 책들 (김진태)

예레미야 35장에는 성경 전체를 통털어 딱 한번 등장하기 때문에 성경을 여러번 통독했어도 무심코 지나칠 수 있을 만한 족속인 레갑 족속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약간은 특이하게 전개되는 예레미야 35장의 이야기 가운데에서, 결론적으로 레갑 족속은 하나님의 칭찬을 듣고, 불순종한 이스라엘 민족에게 순종의 모델과 같은 존재로 세움받는다. 레갑 족속이 그렇게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술을 마시지 말라는 요나답의 명령을 순종한 데에 있었다. 당대의 선지자 예레미야가 권하는 포도주를 거절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텐데도 그들은 자기 조상이었던 요나답의 명령에 신실했다. 성경 어디에도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술을 마시는 것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구절은 찾을 수 없다. 그러나 레갑 족속이나 혹은 세례 요한과 같이 술을 평생 마시지 않으며 더 높은 기준을 세운 사람들은 성경에 종종 등장하고 하나님은 그들을 사용하셨다. 이것은 비단 술만으로 한정된 이야기는 아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거룩한 기준을 세우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주님께서 귀하게 보시고 높이신다는 사실은 수많은 믿음의 조상을 통해 확인된 사실이다.

로날드 사이더는 그리스도인의 삶에 관심이 많은 저자이다. 진정한 신앙은 삶의 변화를 필연적으로 동반한다고 믿는다는 점에서 그는 야고보서의 신앙을 강하게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비교적 최근인 2005년에 쓰여진 '그리스도인의 양심선언 (The Scandal of the Evangelical Conscience)'에서 그는 소위 거듭난 그리스도인의 삶이 그렇지 않은 사람의 삶과 통계학적으로 유의미한 차이가 없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비록 미국의 통계자료이기는 하지만, 이혼, 인종차별의 문제를 넘어서 가정폭력마저도 차이가 없다는 사실은 한국 그리스도인의 상황이 그리 나을 것 같지 않다는 점에서 더욱 충격적이다. 그는 이와 같은 현상이 교회가 복음을 전적으로 강조하지 않은 채 값싼 은혜만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생겼다고 진단하면서, 그리스도인이 상대주의, 물질주의, 개인주의와 같은 대중문화의 흐름에 동화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교회의 회복, 보다 구체적으로는 예수님의 중심되심을 강조하는 반대중문화적인 공동체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보다 10년 정도 전에 쓰여진 '이것이 진정한 기독교다 (Genuine Christianity)'에서도 로날드 사이더의 어조는 그다지 다르지 않다. 현대 그리스도인의 삶이 무너져 있음을 드러내고 그에 대한 성경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려는 의도가 강한 '그리스도인의 양심선언'에 비해서, '이것이 진정한 기독교다'는 보다 구체적인 원칙을 제공하고 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이 책에서 그는 11가지 원칙을 통해 개인, 가정, 교회, 사회 등 그리스도인의 삶의 전 영역에서 어떻게 균형잡힌 신앙을 가질 수 있으며, 그 신앙이 또한 어떻게 드러나야 할지를 고민하며 제시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의 삶이 달라야 함을 강조한 저자는 사실 로날드 사이더 이외에도 많이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비슷한 점을 강조한 또다른 저자들과 로날드 사이더를 다시금 구분지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바로 사회정의를 향한 그의 관심이다. '이것이 진정한 기독교다'에서도 드러났듯이, 그는 균형잡힌 신앙을 가진 그리스도인이라면 자연스럽게 사회정의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사회정의의 여러 가지 측면 중에서 로날드 사이더가 특별히 관심을 갖고 있는 주제는 경제적인 정의, 즉 가난의 문제이다. 그를 유명하게 만들었던 1977년의 저작 '가난한 시대를 사는 부유한 그리스도인 (Rich Christians in an Age of Hunger)'에서 그는 전세계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훨씬 부유한 서구사회와 그 안의 그리스도인, 가난에 대한 성경적 관점, 그리고 현대 사회에 만연한 경제적 불평등의 구조적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 책에서 그는 물질주의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거의 하지 않고 있다. 물질주의 세계관에 대한 그의 견해는 '그리스도인의 양심선언'에 오히려 더 명확히 드러나 있다.

At the same time, a new kind of materialism has taken root. Historic Christianity had been profoundly materialistic. The created world is good. God wants us to create wealth and delight in the bounty of the material world. But historic Christianity also placed firm boundaries on this materialism. Nothing, not even the whole material world, matters as much as one's relationship with God. The Sabbath reminded people that once every seven days we should forget productive work and focus especially on worship of God. Happiness comes first of all not from material things, but from tight relationships with God and neighbor, and then thirdly from a generous sufficiency of material things. (From p. 88 of 'The Scandal of the Evangelical Conscience')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난한 시대를 사는 부유한 그리스도인'에서 로날드 사이더가 제안하고 있는 서구사회의 그리스도인의 책임 및 실천사항은 이 세계의 경제적 불평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중요할 뿐만 아니라 물질주의에 맞서기 위한 좋은 대안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첫번째로 누진 십일조를 제안한다. 소득의 10%를 내는 십일조와는 달리, 소득이 많아질 수록 더욱 많은 부분을 후하게 나누자는 원리이다. 안타깝게도, 서구사회가 더 부유해진 지난 30여년동안 그리스도인이 나눈 소득의 평균은 3%에서 2.5% 정도로 줄어든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안타까운 현실에도 불구하고, 재정적인 나눔은 실천의 첫걸음에 불과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로날드 사이더는 개인적인 소위 '주머니의 회심'으로부터 더 나아가서, 공동체적으로도 가난한 자들을 향한 재정적 나눔과 자원봉사의 시간을 점차적으로 늘려나가는 동시에 정부 차원에서의 비슷한 프로그램을 늘려나가기 위한 청원을 할 것을 제안한다. 한 단계 더 나아가, 그는 그리스도인이 개인적인 차원과 교회공동체적인 차원을 넘어서서, 이 세계를 보다 공평하게 만들 수 있는 사회적인 해결책에도 관심을 갖고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그의 사회적인 관심의 일부는 최근에 그가 함께 편집한 'Toward an Evangelical Public Policy'와 같은 책에 반영되기도 하였다.

다른 세계관에 비해서 물질주의는 한국교회를 이미 더욱 강하게 침투한 것으로 보인다. 70-80년대의 기복주의 신앙은 그 시작에 불과한 듯 하다. 현재에도 사회적/경제적으로 성공한 그리스도인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교회 안에서 더욱 주목받고 심지어 신앙의 모델로서 추켜세워지는 모습을 너무나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 결과로 세상의 성공을 통해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는 젊은 그리스도인의 모습 역시도 빈번하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성공을 추구하기 이전에 주님을 위해 거룩한 기준을 세우고 그 기준을 지키면서 살아가는 젊은 그리스도인의 모습은 그만큼 쉽게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 면에서 로날드 사이더의 메시지는 우리 각자와 공동체에게 큰 도전을 던져준다. 당신의 삶은 비그리스도인의 삶과 비교하여 어떤 거룩한 차이점이 있는가? 하나님께서 이미 허락하신 부유함을 당신은 얼마나 거룩하게 사용하고 있는가?

Jacque Ellul, "뒤틀려진 기독교, The Subversion of Christianity", 1986 (이정희)

기독교의 왜곡은 나쁜 의도에서 시작되지 않았다. 그것은 더 많은 사람들을 교회로 불러모으고 성경에 노출시키고 기독교 종교 의식에 참여하도록 의도되었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옳은 것이며 바람직한 것인가? 자크 엘룰의 설명에 따르면 그것은 오히려 교회에 해로운 것이었다. 3세기에서부터 시작되어 현재에까지 계속되고 있는 복음의 메시지의 왜곡은 교회 지도자들의 권력, 도덕적 우위, 혼합주의 등에 대한 유혹에 철저하지 못한 태도로 제도 교회에서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져 왔다. 그것은 신약 성서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것이었으며 교회에 성공을 위해 그 자신의 중심 메시지를 포기하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그것은 항상 나쁜 의도로 시작된 것은 아니었지만 성경의 메시지의 뒤틀림은 그 자체로서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변화된 복음은 기본적으로 세상 속에 우리 자신을 그대로 두는 것과 똑 같은 것이었다.

교회가 영향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공동체로서 사회의 기대에 부응하는데서 벗어나 원래의 복음의 메시지에 충실해야한다. 세상의 질서에 거스르는 것은 사람들의 기대에 어긋나는 것이겠지만 그것이 복음이 능력을 갖기 위한 기본적인 전제조건인 것이다.

Tom Wright, "Simply Christian", 2006 (이정희)

역사적 예수에 대한 관심이 자유주의 진영이나 복음주의 진영를 막론하고 기독교 공동체 전체에 커져가고 있다. 한편 하나의 산업이 된 예수를 둘러싼 이야기가 그럴듯한 상품으로 미디어를 타고 진실을 호도하고 있어 신자와 비신자에게 혼란을 야기하고 있고 다른 한편 굳어져 가고 있는 현대의 교회의 갱신은 역시 교회의 기초인 역사적 예수, 나사렛 예수가 제공하기 때문이다.

역사적 예수에 대한 복음주의권의 학문적 선봉에 서있는 Tom Wright의 신앙 입문서 Simply Christian은 저자의 역사적 예수에 대한 연구 성과를 반영한다는 점에서 다른 책과 다른 특징을 갖고 있다. 2부에서 제시되고 있는 God, Israel, Jesus and the coming of God’s kingdom 등의 주제가 역사적 사실이 최대로 복원된 상태에서 그를 둘러싼 다양한 견해들이 충돌하고 그 의미가 확인되는 상황을 잘 설명하고 있다. 예수가 이스라엘의 역사에 계시된 하나님의 약속을 현재화하여 자신의 삶 자체로 보여주고 있다는 해석을 광범위한 증거로 제시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의 나라의 기본전제는 자기 부인과 좁은 길로 감이다. 세상의 질서로서 강함과 부유함과 명예로움은 멀리해야하는 가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