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p kosta 전야, New Year's Eve에.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는 그 첫 순간만큼은 하나님께 내어 드리는 것을 언젠가부터 자연스럽게 당연시 여기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새해 첫 순간의 문턱을 넘어 내딛는 나의 첫걸음을 무슨 말씀으로 인도해주시려나 하는 기대를 갖고 하나님께 얼굴 도장도 찍을 겸 해마다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던 기억이, 그것도 가족이 함께 섬기던 Northern Virginia의 워싱턴 중앙 장로교회에서 온가족이 매년 송구영신 예배를 다같이 드리던 기억이, 가족들과 뚝 떨어져서 혼자 연말연시를 보내는 이번 겨울엔 더욱 새삼스러울 만치 그립다. 그 시절을 그리움으로 돌아보노라니, 해마다 설날이 시작됨과 동시에 시작되곤 하던 1박 2일의 전교인 신년 금식 기도회에 가기 위해서 차를 몰고 속속 수양관으로 올라가던 낯익은 성도들의 무리들 속에 한데 묻혀 앞서거니 뒤서거니 올라가던 나의 모습도 언뜻 보인다. 마음에 받아올 하나님의 말씀을 고대하고 그분께 올릴 나의 기도 제목을 하나하나 가다듬어 보던 표정이 떠올라 공연히 마음만 아련해진다. 내게는 제 2의 고향인 정든 버지니아의 집과 교회를 떠나 이 곳 미시간까지 온 게 벌써 5년째. 그래도, 올해는 GP KOSTA가 1월 1일부터 2박 3일간 열리니까, 오랜만에 신년 초를 하나님과 제대로 보낼 수 있겠군 하는 생각에 이르자 요 근래 가라앉듯 지쳐가던 내 마음자락에 한 움큼의 위로가 그나마 들어앉는 것 같다. 정초에 있을 GP KOSTA를 준비하는 부담 때문에, 몇 달 전부터 가족들과 한자리에 모여 보내려고 고대해왔던 겨울방학 계획도 결국은 취소하고 혼자 Ann Arbor에서 지내야했다. 그래서일까, 미시간의 우울한 연말을 내내 홀로 지내며 GP KOSTA를 준비하게 하신 이유가 있겠지 하며 하나님이 내게 주실 남모를 은혜가 기대되기도 한다.
새해 아침에 하나님을 만나러 올라갑니다
아, 설날이지, 참! 혼잣말까지 해가며 새벽에 벌떡 일어났다. 미시간은 지리적으로는 중부지만, 시간은 동부 time zone을 따르기에 환해야 할 아침이어도 어둑어둑한 날이 대부분이다. 게다가 흐린 날도 잦은 편이니 일찍 일어나 봤자 바깥이 캄캄하다는 걸 핑계삼아, 환할 때 기분 좋게 일어난다는 것이 그만 늦잠 자는 고약한(?) 버릇을 키워버렸다. 그러고 보니 새벽을 깨우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내게 들려주실 하나님의 음성을 고대하며 새벽잠에서 스프링 튕겨나오듯 가뿐히 일어나곤 하던 시절도, 마치 늦잠 잘 때 꾸는 꿈인 양 여겨질 정도다. 이제는 몸을 비틀어가며 괴로워하다가 간신히, I love you, Lord, My strength (Psalm 18:1)--수 년 전 코스타에서 말씀을 전하신 이 동호 목사님의 간증을 듣고 그때부터 목사님처럼 나도 이 구절을 하나님께 7 년 전부터 아침인사로 드려왔다--를 외치듯 탄식하듯 하나님께 아침 인사를 하고 나서야 겨우 일어나 일상을 시작하곤 한다. 그래도 오늘은 어렵지 않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아직도 밖은 어두컴컴하지만 일찌감치 선발대로 여럿이 모여 함께 떠나기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아, 새해다. 새 날이 동터온다. 나도 덩달아 새로워질 수 있으면 좋으련만... 뜨거운 커피를 mug에 가득 담아 홀짝홀짝 마셔가며 하얗게 서리맞은 채 얼어있는 집 앞 파킹장에 나갔다. 어둑어둑하고 인적도 없는 새해 벽두부터, 하나 둘 모여든 차가 꼭 무슨 접선하러 나온 자들 같다. 설날 이른 아침부터 이렇게 부지런히 움직이는 사람들은 Gp kosta를 준비해온 우리들밖에 없을 거다, 누구보다도 먼저 일어나 새해 아침을 시작하고, 하나님께로 올라간다는 사실이, 코스타 막바지 준비로 밤을 꼬박 새서 피곤은 했어도 내심 뿌듯하다. 자, 출발!
새해 꼭두새벽부터 GP KOSTA로 모여드는 당신의 자녀들을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배려덕분인지 화창한 햇볕을 하나님이 잔뜩 몰아다 주셨나보다. 미시간에서 오하이오까지 운전하고 가는 3시간 내내 주말에 여유부리며 드라이브 나온 것 마냥 운전하기에 너무나 쾌적하다. 안 그래도 근래 들어 독감이 극성인데다가 으레 있을 법한 폭설이나 강추위라도 오면 어쩌나해서 코스타를 준비하는 섬김이들이 기도들은 해왔지만, 정말 날씨가 이상스러울 만치 온화하다. 동요 노랫말대로 햇볕은 쨍쨍, 하이웨이는 반짝 할 만큼 눈부실 지경이었다. 자, 이제 좀 있으면 gp KOSTA가 시작된다… 지금 운전하는 이 시간이야말로 바삐 돌아갈 집회가 시작되기 전, 마지막으로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는 혼자만의 시간인 셈이다… 요 근래, 그동안 지고 있던 마음의 짐들에 눌려 도저히 혼자서는 덜어내지 못할 것만 같은 무력감에 지쳐있는 나를 보곤 한다. 이제는, 복잡하게 얽히고 설키다 생각 덩어리들과 그동안 나의 심령을 할퀴던 예민한 감정들의 무게를, 하나님께서 하나하나 내려주시고 벗겨 내주시기를 바라면서, 가만가만 짚어 가는 시간을 갖고 싶다.
영적 무력감이라고 해야 할까? 불감증이라고 해야 할까? 하나님의 코드를 읽어낼 때마다 살아 반응하는 세포의 호흡이 아니라 하나님께조차 경직되어 가는 내 심령의 세포에 내심 당혹스러워지는 요즘이다. 알고도 묵인한 사이에 내 영성에 달라붙기 시작한 군살과 그때그때 떼어내지 않은 게으름이 어느 새 굳은살이 되어 내 살이 되어버린 걸까? 왠지 내 자신이 버겁기까지 하다. 받아야 할 훈련을 게을리 해오던 군사 마냥 경건의 능력을 체험하지 못하는 영적 비만의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노상 활기차있던 내가 어쩌다 이렇게 심드렁해졌지? 하며 내심 놀라는 척도 한다. 하긴 학생으로 살아가는 시간이 7년째로 들어서면서, 지겹다고까지 느끼고 있다. 만나와 메추라기를 받아들 때마다 신기해하고 기뻐하며 필요한 양식을 제때에 기가 막히게 내려주시는 하나님께 마음으로 드리던 감사가, 언제까지 이런 만나와 메추라기만 먹어야 하는지 물리는 양 싫증나기까지 한다. 다시 이전에 누리던 물질적으로도 여유 있고 넘보기에도 그럴듯하게 두려움과 걱정 없는 양 살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 더욱 이 생활이 불만스러워지기도 한다. 이 광야만 벗어나면 지금보다 훨씬, 아니 광야 이전보다도 더 풍요롭고 남부러워 할 만치 멋있게 살아갈텐데...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마음은 조급해지는데, 광야의 끝은 과연 올까 아니 가나안은 정말 주어지는 걸까 싶어 두려워진다. 그렇게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를 바라보며 충동을 받았을 이브를 십분 이해한다고, 하나님께서 들으시라고 이브를 편들어주고도 싶어진다. 나의 아버지 되어주시는 선하신 하나님 때문에 또 선배 이브의 실수와 그 이후 그녀가 톡톡히 치른 consequence를 알고 있는 부담감 때문에 차마 그 나무의 열매를 아직까지 따먹지는 못했어도, 때때로 아직도 그 앞을 서성이고 있는 나를 본다. 하나님께서 그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고 했지만 이 나무를 만지는 거 갖고는 뭐라 안 하셨지? 하면서, 이 걸 먹어, 말아? ?으? 신음소리까지 흘리며,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은 그 나무를 여전히 만지작거리고 있다. 차마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열매까지는 못 따먹는 나의 처지가 아쉬워 공연히 입맛까지 텁텁해지고 쓰다. 이렇게 괴로워하면서까지 불순종을 두려워해야 하나 싶어 하나님께도 은근히 삐진다. 남들은 잘도 따먹는데, 따먹고는 좋아들 하는데...
그리고 그 나무의 열매를 맛있게 따먹는 나무 주변의 사람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곤 했다. 그리고는 속상했더랬다.
수년간의 안정된 직장 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재충전을 하기 위해서라며, 보아란 듯이 나의 20대의 매력적인 무대가 되어준 Washington DC 와 Northern Virginia라는 대도시, 그리고 익숙한 일상과 정든 모든 인간 관계를 미련 없이 뒤로하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시골스러운 학교 타운으로 떠나던 날이 기억난다. 더 이상 사회인이 아닌 홀가분한 풀타임 학생 신분으로 돌아가는 것을 자축하면서도 기대에 찬 설레임과 불러오는 긴장감을 수시로 드나들며 겨울비 내리던 날, 그렇게 가고 싶었던 버지니아 대학으로 훌훌 떠나갔다. 운전하고 2시간을 내려가는데, 차밖에는 주룩 주룩 겨울비가 내리고 그 빗물 마냥 차안에서도 하염없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눈물 없이는 드릴 수 없는 나의 신앙 고백을 전심으로 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다 들어주시고 받아주시며, 조금의 빈틈도 없이 꾸역꾸역 짐을 싣고 University of Virginia (UVa)로 내려가는 내 좁디좁은 차안에 내내 동승해주셨다. 7년 전의 나는, 미국의 수준 있고 매력적인 대도시 환경에서 보통의 세상 사람들이 누리고 싶어하는 양질의 삶과 능력 있는 싱글 라이프의 멋을 누릴 만큼 누려봤다는, 그래서 더 이상 아쉬울 게 없다는 그럴듯한 자족 감마저 갖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나한테 언제 그런 시절이 있었나 여겨질 만큼, 어느 새 단조롭고 사소로와 보이기까지 하는 대학원생 생활에 너무 안주 해버린 듯 먼 옛날 얘기같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러나, 당시에 갖고 있던 일종의 자족감 덕분에, 비록 닥칠 수 있는 두려운 순간들을 각오하고라도 수년 간 일궈온 안정된 테두리를 과감히 벗어나 새로운 곳으로 모험을 해서라도 시냇물을 찾는 목마른 사슴처럼 변화와 발전을 찾아 떠날 수 있었기에, 나 자신을 스스로 대견히 여기기도 했다. 그토록 원해서 자초한 환경의 변화는 겸허한 마음으로 하나님만 바라보는 생활의 pattern을 신년 금식기도 이후에 곧 있었던 개강과 함께 대학원 첫 학기부터 어렵지 않게 잡아갈 수 있었다. 점차로 눈에 보이는 가시적이고 물질적인 것들에 대해서는 마음을 비워가고, simple life를 스스로에게 되뇌어가며 사회인이었을 때와는 달리 물질이나 시간의 씀씀이도 소박하고 절제 있게 관리해 가는 훈련도 기꺼이 받아들였다. 덕분에 모처럼의 학생신분은 불만과 불안이 아닌, 내게는 오히려 새로운 즐거움이요 특권으로까지 느껴지기도 했다. 원해오던 학업의 길을 내가 서른 살이 되었을 때 비로소 활짝 열어주신 하나님의 time table의 완벽한 섭리를 수시로 생각하며, 하나님이 내게 주신 약속과 나를 UVa에 있게 하신 그분의 목적을 기대하며, 하나님 없이는 하루를 시작하지 못할 만큼, 그렇게 하나님과 친밀히 지낼 수 있는 단조로운 시간과 환경 속에 살아가는 것이 소중하기만 했다… 그렇게 하나님께 민감하게 살아있던 나였는데, UVa에서 또 다시 하나님의 인도하심만 붙들고, 10시간을 운전해서 앤아버의 미시간 대학까지 올 때만 해도, 아니 지난 몇 년간도 나의 임마누엘 하나님께 감격해서 뛰어다니며 호흡하던 내가, 어쩌다 숨을 쉬어도 제대로 쉬는 것 같지 않는 가슴 답답증까지 느끼며 터벅터벅 신발을 끌듯 걷고 있는 걸까?
오직 예수 그리스도
첫날 저녁에 주신 이 일형 권사님의 그리스도인의 세계관 강의는 그동안 struggle해온 나의 갈등의 뿌리와 이유를 충분히 설명해주는, 은혜로운 단비 같았다. 말씀을 듣는 매초 매순간, 나를 의기소침하게 만들던 온 신경이 하나님께로 한 가닥 두 가닥 차례로 반응하며 살아 오르는 것 같았다. 살 떨리게 동감하며 속으로 울면서 하나님께 순간순간 기도로 응답한 저녁이기도 했다. 온전해져야 할 나의 영성의 회복을 간절히 바라며 이를 향해 성큼 나아간 시간이었다. 하나님께서 오라 하실 때까지는 매일매일 부지런히 정돈해가지 않으면 금새 엉망이 되어버리고 어수선해지는 내면 세계를 위해 다시 열심히 청소해가고 대수롭지 않은 먼지라도 쌓이기 전에 털어 낼 용기를 얻었다.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잠언 4: 23). 이제껏 살아오면서 대체로 반듯하게 살아왔다고 감히 자부했던 나의 가치관의 영역에서도, 아직까지 덫에 발목이 잡힌 듯한 나의 약한 부분을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내려놓기로 작정했다. 영의 세계의 회복 없이 타락하고 왜곡된 육의 세계에 갇혀 사는 자들과 달리, ?나?라는 자는 예수님의 보혈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인식해 갈 수 있는 놀라운 영의 세계를 온전히 회복해 가는 자다. 이 identity를 귀히 여기고, 따라서 육의 세계에만 거하는 자들이 구하는 것과 똑같은 것을 구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했다.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라 (로마 8:5-6).
하나님, 썩어 없어질 밥그릇의 먹이를 두고 그들과 다투는 사람은 결코 되고 싶지 않습니다. 나를 실족케 할 선악과나무를 바라보게 될 때마다,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탐스럽기도 한 그 나무의 열매를 더 먼저 더 많이 따먹기 위해 아옹거리는 주변 사람들을 바라볼 때마다, 그 나무 주변을 서성이고 열매를 만지작거리며 차마 먹지 못해 신음하는 제 모습으로 인해 스스로 정제하게 될 때마다, 그 나무 저편에서 저를 안타까이 바라보고 계실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게 좀 도와주십시오. 거침없이 선악과의 열매를 따먹은 자들이 망해가기는 커녕, 더욱 의기양양해져서 저를 넘어뜨리려고 달려들거나 덤빌 때마다 너무 속상했었습니다. 기가 펄펄 살아있는 그들에게 두들겨 맞거나 악에 찬 비방까지 들어도 묵묵히 견뎌내고 걸어오는 싸움에 져줄지언정 응하지 않으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integrity를 이뤄 가는 순종을 이루어가고 싶지만, 너무 힘들어 순종해가다가도 다 포기하고 싶어질 만큼 맥이 빠집니다. 불순종의 유혹과 위험도 어렵게 피하는데, 하물며 순종을 힘겹게 하는 저로서는 이런 나약한 저를 볼 때마다 자기연민까지 생겨 괴롭습니다…. 모양은 달리해도 결국 본질은 같을 수밖에 없는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라는 그럴듯한 열매들이 주변에 수시로 나타날 때마다 일일이 분별 해 내는 것도 쉽지가 않은데, 과연 도처에 달린 듯한 열매를 따먹게 되는 불순종을 범하지 않을 수 있을는지, 너무 어렵게 느껴집니다. 이렇게 어금니를 악물고 눈을 질끈 감아야 불순종에서 가까스로 돌이킬 수 있는 저로서는, 그렇게 힘들게 지켜 가는 순종의 결과가 그렇게 대단해 보이지 않을 때마다 곧잘 회의와 실망과 분노에 이내 빠지기도 했었습니다.
오히려, 제게 악을 행한 자들이 당당하게 보이고 잘 풀려 가는 걸 볼 때마다 괴로웠었습니다. 하나님, 다 아시죠? 이로 인해 상한 제 맘을 좀 달래주십시오. 번번이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아니 앞으로도 이런 일들은 종종 있을 터인데, 도와주십시오. 이렇게 위축되고 메말라가던 이제까지의 내 심령은 어느 새 터진 뜨거운 눈물샘으로 씻기어지고 있었다.
Gideon의 소수 정예 군사로 자원합니다.
나는 종종 출애굽 이후에 어쩔 수 없이 하나님을 의지하며 광야 길을 가던 이스라엘 민족들과 나를 동일시하곤 했다. 하루하루 일용한 만나를 주시는 하나님이 내일도 모레도 만나를 주실 거라는 믿음으로 썩어 없어질 만나를 쌓아두지 않는 훈련, 아직 내리지 않은 내일의 만나로 인해 오늘부터 혹은 어제부터 불안해하지 않는 훈련, 그리고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한 스텝 한 스텝 인도해 가시는 하나님을 따라가며 그분보다 앞서가지 않는 훈련, 나의 가나안 입성을 위해 하나님이 계획하신 time table의 진행속도를 답답히 여기지 않는 훈련을, 매일의 삶에서 체득해갔을 이스라엘 민족처럼 나도 내 인생의 광야 길을 걸어가며 훈련을 받고 있다고 생각해오곤 했다. 그러다, 불손과 불순종의 모습을 그들에게서 발견할 때마다, 게다가 그로 말미암아 벌까지 받아야 했던 그들의 미련함을 보면서, 어떻게 저렇게 악하고 어리석을 수 있을까 신기해하며 그들을 맘놓고 한심하게 보곤 했었다. 그들과 묵묵히 함께 걷는가 했던 순간들은 어느 새 걷혀지고 나는 그들과 나 사이에 분명한 선을 긋고는 건너편에 서서 딱하게 그들의 추한 모습을 바라보곤 했다. 난, 당신들과는 달라. 나는 그런 속물이 아냐. 내게는 고상한 꿈이 있고 포기할 수 없는 선한 목적이 있어. 이렇게 선하고 깨끗해 보이는 나의 모습은 분명히 지저분한 그들과는 겉보기엔 분리되어 있었다. 그런데, 출애굽 이후에 누리게 된 자유된 자의 감격과 갈라진 홍해를 건넜다는 기적을 몸소 체험한 그 흥분마저 어느 새 다 까먹고 광야 길을 지겨워하며 불평도 수시로 터뜨려 가며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는 이스라엘 무리들의 무표정 속에, 언젠가부터 나와 닮은 얼굴이 발견되는 때가 있었다. 부인하려 해도 문득 문득 내 눈에 굳이 띄는 그런 나의 모습은 처음엔 경악으로, 그 다음엔 그럴 수밖에 없다는 변명으로, 그리고 이제는 무덤덤한 체념과 무표정으로 침몰해가듯 꺼져 가는 듯했다…. 그뿐인가! 그네들처럼, 공연히 나까지 미시간 땅에서 뻉뺑이 돌려지고 있는 거 아냐? 하며 의심스런 눈초리로 하나님을 흘낏 치켜보고 슬금슬금 째려도 보면서 불신하고 두려워하고 원망도 했었다….
I am the LORD your God; consecrate yourselves and be holy, because I am holy (Lev. 11:44) 그래요, 하나님! 하나님에게서 오는 만나와 메추라기 외에는 세상의 것들을 바라지 않는 순결함을, 거룩함을 주세요. 어떤 만나든, 나의 것을 남의 것과 비교하지 않게 해주세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시는 만나에 자족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그리 되기 원합니다. 어느 새 바람 난 여자 마냥, 하나님과 눈 마주치기 싫증난 듯 그럴듯한 선악과를 바라보며, 그리고 나 자신을 바라보며, 하나님 아닌 다른 대안을 찾기까지 하려했던 나의 물리지도 않는 끝도 없는 듯한 가치관의 전쟁.... 그 상흔을 안고 갈급함과 무력감속에, 혼돈 아닌 혼란 속에 터벅터벅 올라왔었는데 아, 좋으신 하나님... 저는 요, 하나님이 주시는 만나에 울고 웃는 인생이 아니라 만나를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당신을 신뢰하는 인생이 되고 싶습니다. 진정 그리 되기 원합니다.
아침 조별모임 시간에 가진 QT 모임은, 말씀 본문에 담긴 생명력이 내 안에 성육신 할 수 있기에 충분할 만큼 깊이 있는 시간이 되었다. 코스탄들이 주어진 시간 안에 은혜로운 묵상과 나눔을 가질 수 있도록 섬세하고도 깊이 있게 QT 본문을 다뤄주신 황 지성 집사님의 영성과 지혜가 엿보인다. QT 본문 말씀인 마가복음 5:25-34에는 회당장 야이로의 아이를 살리러 급히 가시는 예수님의 일행과 예수님을 보러 나온 수많은 무리들, 이런 밀리는 인파 속에 묻혀서도 손을 뻗어 가까스로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는 여인이 등장한다. 오랜 세월동안 혈우병에 시달리느라 있던 물질도 다 없애고 몸은 몸대로 망가질 대로 망가졌다. 옆에 있어줘야 할 그녀의 가장 가까운 사람들마저도 오랜 병을 앓는 그녀 곁을 지쳐 하나 둘씩 떠났다. 어디 몸뿐인가, 마음은 마음대로 얼마나 다쳤을까. 이런 여인이 예수님으로 인해 병 고침을 받고 온전하게 회복되었다는 이야기다. 진정으로 예수를 믿고 구하는 자의 절실한 모습이 상대적으로 예수를 구경하러 혹은 호기심에 만지러 나온 다른 숱한 이들과의 대조를 통해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렇게 전심으로 예수님의 능력을 믿고 구하는 자를 위해, 예수님은 바삐 가시던 길을 멈추시면서 까지 애써 찾으시고 기꺼이 시간을 내어주시는 모습이 실감 있게 다가온다. 게다가, 그 현장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무리들 가운데 오직 이 여인만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은 예전에 분명히 읽었던 내용인데도 새로운 조명을 밝힌 방처럼 내 마음에 확연하게 들어선다. 예수님은 당신을 전적으로 trust하며 그분만을 전심으로 구하며, 예수님 외에는 아무것에도 의지할게 없는 한 여인을 찾으셨다는 얘기가 나의 마음을 울린다. 예수님도 당신을 전심으로 찾으시는 자를 애써 찾으시는구나. Daughter, your faith has made you well; go in peace and be healed of your affliction. (Mark 5:34)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돌아오는 길…
GP KOSTA가 열리는 동안엔 운치 있게(?) 겨울비가 내리더니, 앤아버로 돌아오는 늦은 밤길은 짙은 비안개와 폭우의 연속이다. 그래도 코스타가 끝나는 다음날부터는 함박눈이 펑펑 내리고 기온이 뚝 떨어진단다. 추위까지 잠시 내쫓아주신 하나님의 배려가 느껴진다. 설날 아침에, GP Kosta에 터벅터벅 올라가던 길은 무겁고 갑갑하기만 했었는데, GP Kosta에서 내려오는 길은 병 고침을 받은 여인 마냥 가볍고 매인 것에서 자유케 된 자의 잔잔한 감격마저 있다. 예수님의 제자 되기를 원하면서도 두려워해 오던 내게, 이번 코스타는 이미 제자 되어 살아가기로 작정하고 애쓰시는 귀한 분들과 가까이서 지내면서 그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지혜를 배울 수 있었던 시간이기도 했다. 하나님을 존귀히 여기고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을 깊이 사모한다는 자들의 삶 속에 나타나는 진지한 말씀 연구와 철저한 준비, 깊은 묵상의 힘과 경건한 기도의 능력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간접 경험하기도 했다. 그렇게 헌신되고 훈련된 예수님의 제자들 덕분에, 그들이 거하는 자리마다 주변의 지체들이 그들을 통해 은혜로운 영향과 도전을 받는 모습들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공동체가 예수님을 통해 오늘도, 2004년 정초에도 그분의 제자 되기 원하는 자들을 통해 여전히 쉬지 않고 세워져가는 모습을 보는 기쁨 또한 크다. 생명을 살리고 transform시켜 예수의 또 다른 제자를 키워내는 사역을 사모하게 하시고 허락하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할 뿐이다. 몸은 무너지듯 피곤해도 감사한 맘뿐이다. 귀한 분들과 동역의 즐거움을 누린 지난 1달 반이었다. 참, 좋으신 하나님...
여러분은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로마 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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