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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타 사역/코스타 보이스

[코스타 보이스 2009 - 기획기사] 하나님이 주신 '평화의 약속'


세상 사람들은 평화를 매우 갈구하고 있다. 세상의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은 평화가 교육, 계몽으로 있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전쟁, 힘으로 달성할 있다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인류 역사를 되돌아볼 과연 평화를 달성할 있을 것인가 하는 비관적인 생각도 하고 있다. 기독교의 전통에서 평화를 의미하는 단어-샬롬 (Shalom), 에이레네 (eirene), 팍스 (Pax), 기독교 평화주의(pacifism)- 가지 . 구약성경에서는 샬롬이라는 단어가 쓰였고, 신약성경에서는 에이레네라는 단어가 였다기독교가 말하는예수의 평화 어떤 것인가? 코스타 보이스는 기획기사를 통해예수의 평화 따르는 우리는 어떤 자세로 세상을 살아가야할지 고민해본다.

 

샬롬 (Shalom)

샬롬은 1차적인 의미로 외적인 만족과 내적인 만족 모두를 포괄하는 완전함, 하나됨, 조화, 번영, 건강함, 충만함(wholeness)이다. 전쟁에서 화해함, 전쟁에서 승리함 (return from war in shalom)이라는 의미로도 쓰였다. 일반적인 의미에서 잘삼, 안녕, welfare, well-being 의미이다.

한편 샬롬은 세상의 혼돈에 대한 하나님의 질서의 회복, 하나님의 궁극적인 승리 (blessing of peace) 의미하기도 한다. (시편 29) 샬롬은 관계적 개념으로서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의 관계 속에 하나님이 창조하신 바른 질서가 이루어질 달성된다.( 1:26)

포로기 이후의 이스라엘에게 새로운 차원의 의미가 부각된다. 샬롬은 이스라엘 전체 사회를 이끄는 이념으로서 고통 당하는하나님의 백성 바라보는 미래의 회복된 질서라는 의미이다. (이사야 2:2-4, 미가 4:1-5) 종말론적 비젼(이사야 2:4)으로서의 샬롬은 종말에 야훼가 모든 나라의 심판자가 되어 세상에 이상의 전쟁이 없을 것이고 , 야훼가 다스리는 땅에는 모든 것이 완성되고 야훼의 다스림 안에서 이스라엘은 중심이 것이라는 비젼이다. 그러므로 샬롬은 미래 지향적 기다림이며 평화를 성취할 메시야에 대한 기다림이다. ( 2:2~4, 4:1~3)

 

구약의 샬롬에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기독교의 다는 아니다. 왜냐면, 구약의 샬롬은 다분히 힘에 의한, 폭력에 의한, 이스라엘의 부흥을 통한, 강압을 통한 평화이기 때문이다. 샬롬이 이스라엘의 복수와 신원, 이스라엘의 정복이라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샬롬이 목적은 있어도 수단은 없다.

 

예수의 샬롬 (Shalom, Eirene)

구약의 샬롬의 의미에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고 제시하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다. 예수님은 평화의 왕으로 오셨고, 평화를 전하고 이루시며 사셨다. 구약의 예언을 성취할 아니라 예언의 의미를 분명하게 밝히셨다.

 

평화의 복음

예수님의 복음을 요약하는 여러 가지 개념하나님의 나라’ ‘희년’ ‘복음’ ‘기쁜 소식이런 중에 중요한 가지 개념이 바로평화이다. 예수님의 사역 중에서 병고침과 죄사함은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예수님이 하나님으로서 인간들이 죄의 결과로서 겪게 되는 , 그리고 그보다 근원적인 죄에 대한 용서를 하시며 결과를 평안, 평화라고 말씀하신다. ( 7:48-50; 8:48) 예수님의 메시지의 핵심은 평화이셨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온전하게 다시 정립되는 , 예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병고침과 죄사함이 이루어진 상태, 그것을 평화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제자들에게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할 것을 부탁하실 때도, 자신의 메시지의 핵심이 평화임을 말씀하신다. ( 10:5-6) 그리고, 세상의 거짓된 평화에 속지 말고 자신 안에서 구현되는 진정한 평화를 것을 촉구하는 말씀이다. 말씀은 구약의 예레미아의 거짓된 평화에 대한 비난과 공명한다. ( 12:51)

 

샬롬의 윤리

샬롬의 윤리에 관한 평화에 관한 산상수훈의 말씀이 있다. ( 5:9) 무엇보다도 예수님은 산상수훈을 통하여 자신의 윤리적 비젼을 제시한다. 산상수훈의 말씀은 예수님이 당시 사람들에게 익숙한 유대교 가르침에 대해서 새로운 윤리적 지표를 제시한 것이라고 있다. 구약의 샬롬은 평화를 말하지만 기본적으로 이스라엘이 강국이 되고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인도자,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의미이다. 메시아가 강한 힘으로 그동안 당했던 고통, 한을 풀어주고 새로운 나라를 만들겠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산상수훈 전체에서 의미를 찾아볼 화평케 (peacemaking) 의미가 구약의 샬롬의 의미와 같지만 다르다는 것을 있다. 평화가 목적으로서뿐 아니라 자체가 과정으로, 수단으로서도, 그리고 목적으로서 자체로서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5:38-42 보복하지 말라는 말씀이 연결되는데요, 이런 점에서 특히 평화를 이뤄나가는 과정, 자체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찾고 평화의 태도를 유지해나갈 것을 강조하고 계시다.

 

샬롬, 용기의 근거

예수님은 제자들을 떠날 것을 말씀하시며, 성령을 약속, 평안할 것을 권면하신다.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이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구절은 초대교회가 겪은 상황, 현재 표면적으로 보이는 고통과 탄압 속에서 궁극적인 승리를 우리가 소유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초대교인들이 겪는 의문에 대한 희망을 주는 말씀이라고 있겠다. 어떤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최후의 승리는 우리의 것이라는 점을 격려라고 한다. 예수가 누구인가, 실패한 메시아가 아닌가 하는 질문에 대해서 그의 부활과 함께 진정한 메시아이고 메시아의 승리가 고난의 현장 이곳에 이미 존재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예수님의 반복된 인사의 말씀은 단순한 안부를 넘어서 부활의 사건의 의미를 계속해서 강조하고 있다.

 

사도들이 전하는 예수님의 평화의 복음을 내일부터 계속 살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