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Kosta: 오랜만에 뵙습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 근황을 말씀해 주시지요.
성인경: 서울 후암동에서 12년 남짓 청년 대학부에서 일하다가, 강원도 양양으로 이사한지 2년 다 되어 갑니다. 아시지만, 서울이란 곳이 청년들 만나기도 쉽고 찾아오기도 쉽지만, 제가 원하는 intensive하고 personal 만남을 가지기는 참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고민하고 있었는데, 강원도 양양에 오색 밑에 카페가 하나 생겼어요. 카페 주인이 좋은 조건으로 라브리를 초청하셔서, 그리로 이사했죠. 그곳에서, 제가 서울에서 만나던 청년의 십분의 일을 만나지만, 인격적이고 조용하고 심도 있는 만남을 가질 수 있어서 훨씬 좋습니다.
eKosta: 라브리 사역을 시작하신 지가 벌써 그렇게 되었군요. 어떻게 처음 라브리에 연관이 되셨는지 말씀해주십시오.
성인경: 라브리를 처음 만난 것은 프란시스 쉐퍼 책을 통해서입니다. 먼저 '이성에서의 도피', '진정한 영적 생활' 등의 책을 읽고 라브리의 본산지인 스위스나 영국을 가봐야 되겠다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총신대를 졸업하고 스위스, 영국 라브리에 가보게 되었는데 그게 처음입니다.
eKosta: 쉐퍼의 책을 접하신 것은 신학교 다니시던 때인가요?
성인경: 신학교 들어가기 전이고 라브리를 접한 것은 신학교 다닐 때입니다. 그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쉐퍼책을 읽었으니까요. 영국의 라브리에 가서 공부하면서 이렇게 일을 하는 게 내가 이 시대의 청년 대학생을 돕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었습니다.
영국 라브리와 스위스 라브리에 4년 정도 있었고 주로 영국 라브리에서 공부했습니다.
eKosta: 자, 그럼 이코스타의 독자를 위해서 라브리에 대해서 설명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성인경: 라브리는 국제적인 기독교 공동체고 연구 센터인데요, 누구든지 정직한 질문을 가진 자라면 와서 질문하고 공부하며 쉴 수 있는 연구 단체입니다. 현재 스위스, 영국, 미국 보스턴과 로체스터에 있는데 예수님을 믿는 사람도 오고, 믿지 않는 사람도 올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와서 기독교에 대해서 질문할 수 있고 신앙의 기초를 놓을 수 있는 곳입니다. 오랜 신앙을 가진 사람은 기독교 세계관, 문화관, 철학을 공부할 수 있는 곳입니다. 기본 프로그램은 성경공부를 하는 것과 기독교 세계관을 공부하는 것, 진로와 인생에 대해 상담하는 것, 영적인 지식과 부흥을 도와주는 곳입니다. 기본 방법은 성경을 공부하고 세계관을 공부하면서 영적인 부흥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eKosta: 라브리에 대해 처음 들었을 때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답을 미리 정해놓지 않고 스스로 문제를 찾고 해결해 가는 것이 순수하고 솔직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지금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라브리에 참여하는지, 참여하는 기간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성인경: 라브리는 많은 사람들을 수용하지는 못합니다. 극소수의 사람이지만 진리를 찾고 인생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청년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주로 열 명에서 스무 명까지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한국 라브리의 경우는 더 작은 규모로서 될 수 있으면 열 명 이하의 청년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을 주고, 같이 일하고,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지금 제일 큰 라브리는 스위스 라브리이고 미국의 보스턴의 라브리가 삼십 명 정도 된다고 들었습니다. 영국 라브리도 스무 다섯 명 정도의 학생이 있습니다.
eKosta: 보통 머무는 분들이 어느 정도 기간을 머무는지 궁금합니다.
성인경: 기간은 자유입니다. 보통 일주일에서 5주 6주 7주정도 머뭅니다.
eKosta: 한국에서 처음 라브리를 시작하실 때의 동기와 현재 어떤 방식으로 운영하시는지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성인경: 제가 라브리를 시작한 것은 영국 라브리에 가서 공부하면서 제 자신이 신앙 생활을 하면서 잘못된 것을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매우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특히 영성에 대해서 잘못된 가르침이 굉장히 많다는 것입니다. 경건주의적인 영성이 있고 이원론적인 영성이 있었는데, 한국 교회에서도 유교적인 불교적인 영성을 가르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그곳에서 공부하면서 심각하게 도전을 받았습니다.
두 번째는 세계관 자체가 성경적 세계관이 형성이 되지 않고 세속적인 세계관이 마치 성경 적인 것으로 오해되거나 잘못 세뇌되어 있어서 세계관 자체가 개혁하고 바뀌지 않고는 성숙한 크리스천이 되기 힘들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게 제가 한국에 돌아가면 한국에서도 라브리를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한 동기입니다.
라브리는 가르치는 학생 숫자가 작고 규모가 작지만 큰 운동을 추구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극소수의 인재이지만 그런 사람들을 확실하게 키우는 것이 라브리의 원칙입니다.
eKosta: 시험 봐서 들어가야 하나요?
성인경: 아닙니다. 그렇게 많은 분들이 지원하진 않습니다. (웃음) 그러나 극소수가 머물고 있기 때문에 이번 학기에 못 받아들이면 다음 학기에 오라고 합니다. 기대하지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 한국학생만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학생, 아프리카 학생, 인도에서 오는 학생이 있어서 국제적인 공동체가 형성되고 있습니다. 매 학기마다 외국인 학생이 한두 명 씩 들어오고 있습니다. 참 감사합니다. 한국학생들이 외국 학생들과 공부하면서 타문화와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되고 한국의 문제를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영어 공부도 되고요. 외국학생과 같이 공부하는 것을 매우 반갑게 생각합니다.
eKosta: 머무는 동안 공부하는 내용은 주로 책과 토론을 통해서인가요?
성인경: 라브리의 공부는 대학원식 공부입니다. 학생이 라브리에 오면 먼저 라브리에 왜 왔는지 이유를 묻습니다. 공부의 방향을 지도교수와 간사들이 의논을 해서 교육과정을 짭니다. 기독교를 믿지 않는 학생이 오면 기독교란 무엇이냐, 성경이 뭐냐, 왜 기독교를 받아들여야 하느냐하는 과정을 짜고 디스커션을 만들어주고, 신앙을 가진 학생이 오면 기독교 세계관, 문화관 등을 공부하도록 합니다. 프로그램을 짜주고 디스커션을 짭니다. 라브리가 갖고 있는 커리큘럼을 틀로 강요하는 것이 아니고 개인적인 틀을 짜서 적합한 커리큘럼을 만듭니다.
때 로는 책을 추천하기도 하고 강의 테이프를 추천하기도 합니다. 리포트나 에세이를 쓰도록 하기도 합니다. 교육방법은 매우 다양합니다. 찾아오는 사람들의 관심이 어떠냐 에 따라서 따로따로 프로그램을 바꾸는 거예요. 서울에서 오는 학생들이 맞춤교육이라고 하더군요. (웃음)
eKosta: 라브리를 공동체라고 부르지 않습니까? 라브리에 와서 책을 읽고 씨름하고 고민하는 것뿐 아니라 공동체 생활을 통해서 많은 도전을 받을 것 같은데요?
성인경: 라브리에 와서 토론하고 공부하고 지적인 논쟁을 통해 변화되는 사람보다도 오히려 생활을 통해서 바뀌는 사람이 많습니다. 대단히 재미있는 현상인데요, 포스트 모던 시대가 왔고 포스트 모던 시대에 세뇌된 청년들이기 때문에 감각적이고 체험적인 인격적인 컨택을 원하고 이런 사람들과 같이 밥 먹고 같이 일하고 같이 놀고 토론하는 과정이 변화의 계기를 마련해주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어떤 법대생 친구가 신명기에 나타난 법 사상을 공부하겠다고 했었습니다. 일주일동안 밤잠을 줄여가며 같이 공부를 했었는데, 나중에 온 편지를 읽어보니 같이 밥하고 밖에 나가서 풀 뽑고 나무 심고 하는 시간이 자기 인생을 바꿨답니다. 처음에는 섭섭하기도 했어요. 열심히 가르쳤는데 그게 의미가 없었나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나 제가 곧 깨달았는데 이 친구를 변화시킨 것은 실제 삶이었다는 겁니다. 한번도 법학 공부하느라고 밖에 물줘 본 일도 없고 부엌에서 같이 밥해본 적도 없고 나무 가꾼다든지 꽃을 가꾼다든지 하는 경험이 없었던 거예요. 하나님은 공부라는 방법을 통해서 사람을 변화시키기도 하고 삶의 경험을 통해서 사람을 변화시키기도 하십니다. 그것이 공동체의 매력이고 파워이기도 합니다.
eKosta: 재정적인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십니까?
성인경: 라브리는 출판 수익금이 전부이고, 형제 자매들이 보내주시는 헌금으로 의존하고있습니다. 라브리는 영리활동이나 모금활동을 하지 못하게 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주시는 돈으로 먹고살고 있습니다. 대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학생들도 모집하지 않고 하나님이 보내주시는 학생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은 학비는 없고 밥값은 냅니다. 밥값도 없는 사람은 가능하면 장학금을 드립니다.
eKosta: 저도 시간을 내서 그곳에서 공부도 하고 일도 하면 참 좋겠습니다.
성인경: 예, 오십시오. (웃음)
eKosta: 프란시스 쉐퍼하면 생각나는 것이 저에게는 기독교 세계관과 영성이라는 단어입니다. 기독교 세계관을 많이 듣는데요 성목사님이 간단히 정의를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성인경: 기독교 세계관은 성경 적인 기초를 가진 지적 체계입니다. 우주의 문제든지, 사회의 문제든지, 역사적 문제든지 성경적 기초를 가진 지적 체계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기독교 세계관은 성경과 떨어져서 안되고 단순히 신학의 문제가 아니라 인생의 모든 문제를 체계적으로 학문적으로 성경적 관점으로 보는 것입니다. 기독교 세계관이 마치 인간의 이성, 논리에 세워진 지적 체계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닙니다. 인간의 지적 체계는 성경을 이해하는 도구에 불과합니다. 기독교 세계관은 하나님의 말씀을 합리적으로 인간의 문화, 역사에 적용하는 학문의 체계입니다.
eKosta: 기독교 세계관과 영성은 별로 상관이 없으며, 영성은 기도하고 찬양하는 것으로, 세계관은 지적인 요소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영성이 기독교 세계관의 핵심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영성에는 기독교 세계관이 핵심이고 기독교 세계관에는 영성이 핵심이지 않습니까?
성인경: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영성이 없는 세계관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에 베소서에서 '하나님을 믿는 것과 아는 것이 하나가 되게 하라' 라고 말씀하시는데, 말하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태도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영적인 세계와 지적인 세계가 하나가 되게 하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나라의 이원적인 세계관 때문에 신앙과 지성이 분립되는 것으로 말하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아주 잘못된 것으로 보고 있고 신앙과 지성이 하나가 되고 신앙과 생활이 하나가 되는 것이 바른 기독교라고 보고 라브리의 목표이기도 합니다.
eKosta: 기독교 세계관이 근래에 한국 기독교 내의 화두가 되고 있는데, 복상이나 기학연을 중심으로 토론이 이루어졌는데, 이런 현상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성인경: 기독교 세계관 운동의 이 세대들이 일 세대들이 한 운동에 대한 정직한 반성을 하는 단계라고 봅니다. 저는 아주 복음적으로 보고 있고 앞으로 이들이 잘 해주기를 바랍니다.
논 점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일 세대들의 세계관 운동은 지나치게 개혁주의적인 기독교 세계관을 한국에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게 마치 복음주의 전체를 대표하는 것으로 세계관으로 소개한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개혁주의라는 것은 화란이나 미국에서 말해지는 종교개혁에 기초를 둔 세계관 운동인데 이게 전체 기독교 세계관이라고 소개한 것은 잘못입니다.
제 대답은 기독교 세계관을 체계적으로 발전시킨 그룹은 이 그룹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거기에 얽매여서는 안되겠지요.
두 번째는 기독교 세계관의 내용을 너무 이성적으로 소개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실생활과 동떨어진 사변적이고 철학적이고 이론적인 논의가 많았다는 것입니다. 저도 책을 내러티브한 글로 써봤습니다. 이론적인 책도 써봤는데, 역시 이야기가 있는 책이 많이 팔리고 이해되었습니다. 이런 비판에 동의합니다. 듣는 사람이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전달해야하겠습니다.
셋 째로 서구적인 이론 틀을 한국 사회에 그대로 가져온 것이 아니냐 하는 겁니다. 한국적인 문화 컨택스트가 통일문제, 빈부격차문제, 민주화문제, 여성문제 등 한국 사회의 당면문제를 토론하지 못하고 서구 사회의 문제에 주로 매달려 있지 않았나 하는 것입니다.
저 의 대답은 세계관 운동이라는 것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는 겁니다. 지적 유산이라는 것이 단기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일 단계로서는 외국의 책을 번역하고 그대로 수용하는 단계가 있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것을 바탕으로 한국 사회에 맞는 발전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차세대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일세대의 운동으로는 역할을 다한 것이 아닌가 봅니다.
eKosta:기 독교 세계관에 대한 정리 감사 드립니다. 마르크스주의를 공부하는 친구들 옆에서 기독교 세계관을 공부하던 386세대와 달리 요즘 젊은 세대들은 다른 지적인 배경을 갖고 있는데요, 어떻게 요즘 세대의 학생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언어로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성인경: 제 현재 결론은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내러티브한 이야기가 있는 책을 계발해야겠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동성애문제라든지 페미니즘 문제라든지 통일문제라는지 이런 삶 속의 문제를 터치하면서 왜 이런 대답과 공부가 필요한지 그 밑의 근본적인 원리를 가르쳐주는 방법입니다.
두 번째는 시간을 벌고 효과적인 공부를 위해서는 아주 정교하게 다듬어진 이론화 작업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계관 공부의 초기에는 동기부여를 위해서 이야기가 있는 책이 필요해요. 그 다음에는 정교한 이론화 작업을 해야 학문적 발전이 있습니다.
바 울 사도의 기독교 세계관 작업이 바로 그것이라고 봅니다. 신약성경을 보면 콘텍스트를 보면서 대답을 해줍니다. 고린도전후서를 보면 성 문제가 심각할 때 기독교적인 성담론을 제시합니다. 한편 로마서나 갈라디아서를 읽어보면 짜임새 있는 지적 토론과 논쟁과 합리적인 접근을 합니다.
포 스트 모던시대가 감각적이라고 해서 자기가 아무리 피부적으로 세대가 감각적으로 흘러간다 할지라도,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합리적인 존재라는 거죠. 지적인, 이성적인 존재예요. 그래서 접촉단계, 혹은 초기단계, 동기부여 단계에는, 굉장히 재미있는 혹은 실제 삶과 연관된 이야기가 있는 세계관 접근을 해야 하고, 어느 정도 그 단계를 벗어난 성숙한 사람에게는 훨씬 더 논리와 이론이 겸비된 조직적인 지적 설계, 지적 체계를 가진 작업 필요하다고 봅니다. 두 가지가 다 필요하다고 봅니다.
eKosta: 사실 코스타의 대상이 대학원생들이고 코스타 정신에도 기독교 세계관에 입각한 학문을 하는 사람들을 배출하자는 내용이 있습니다만, 실제로는 판이하게 다른 전공을 갖는 대학원생들에 코스타가 구체적인 기독교 세계관을 잘 제시하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참여하는 대학원생의 입장에서는 내 학문분야에서 기독교적 세계관을 가지고 공부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 같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조언을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코스타를 통해서 예수님을 영접하거나 선교에 헌신하는 일도 참 감사하지만, 대학원생들답게 자신의 분야에서 기독교적 조망을 가지고 학문을 공부하는 일이 절실한데, 그런 부분에 대해서 코스타에 바라는 점이랄까, 조언하실 내용이 있으신 지요?
성인경: 저는 일본, 중국 코스타를 다니다가, 미주 코스타는 처음 와 보았는데요, 참 심리학적이고 개인적인 접근을 많이 한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건 대학원생들이라 할지라도, 다들 공부하느라고 지치고 해서 외롭고 해서, 이곳에 와서 위로도 받고 마음에 힘도 받고 하려고 한다는 면에서, 그런 접근도 필요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대학원생답게 또는 학문의 발전을 위해서는 기독교 세계관을 좀더 체계적으로 교육을 받을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점에 대해 하고픈 이야기들이 있는데요, 사실 기독교 세계관에 입각해서 학문을 제대로 하려면요, 우선 사실 성경공부를 제대로 해야하고, 신앙의 베이직을 분명히 해야 하고요. 이런 점에서는 코스타가 참 좋은 것 같습니다. 신앙의 베이직을 잘 깔아주고, 순결한 삶에 대한 기초를 깔아주는 작업들을 잘 하는 것 같습니다. 아마 리더들이 이거라도 하자고 하는 것 같습니다. 이점에 대해서는 감사 드리고, 이 일을 계속하라고 권합니다. 기본이 안된 사람이 무엇을 하겠습니까? 하지만, 제가 더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그 다음 단계입니다. 그렇다면 신앙의 기초가 된 사람은 어떻게 할 것이냐는 겁니다. 그 사람들에게는 자신 학문 분야를 마음껏 최고의 수준까지 끌어올리라는 것입니다. 기독교 세계관 입장에서는 학문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기에, 자기 분야의 학문에 대해서는 비기독인보다도 더 탁월한 수준의 학문적 발전을 추구해야 하는데, 이것은 우리가 진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특권입니다. 하지만 현 학문이 상대주의적이고, 인본주의적이기 때문에 사실 전문가가 된다는 것은 이런 상대주의적이고 인본주의적인 것들에 노출된다는 것인데요, 그래서 어느 정도 선에서 타협하기 쉽지요. 그러지 말고요, 학문이 가지고 있는 치명적인 결함인 상대주의적이고 인본주의적인 것에 대해 비판적으로 다가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여기서 제가 말하는 비판이라 함은, 성경적인 기초 위에서 수용할 것은 수용하고, 비판할 것은 비판해서 버리자는 거죠. 고린도후서 10장을 보면, 이런 말씀이 있거든요,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대항하는 잘못된 이론과 세계관은 다 파하라고 하는데,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성경적인 기초에서 그 학문이 도저히 성경의 기본적인 맥락과 대치된다고 할 때는, 그 이론이 무엇이 문제인지 분석해서 밝혀줘야 합니다. 하지만, 고린도후서 10장에 또 보면, 모든 이론을 수용하라, 비판적으로 수용하라는 말이 있는데, 그 말의 핵심은 무조건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 기초해서 이것이 충분히 옳고 바른 데이터라면, 이것이 비록 비기독교인이 개발하고 발전시킨 것이라 할지라도 과감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거죠. 여기서 받아들인다는 것은 수용한다 몰입한다는 의미로, 즉 적극적으로 받아 들여야 한다는 거죠. 참 쉽지 않은 작업이지만, 대학원생이기 때문에 부탁드리는 것은, 세상의 학문이라도 옳은 것이라면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고, 비판할 것은 비판했으면 한다는 겁니다. 단지, 제발 예수 믿지 않은 사람들의 학문이라고 해서 쉽게 비판하거나, 수용하는데 두려움을 가질 필요는 없다는 거죠. 그러나 한가지 조심할 것은, 어떤 것이 너무나 비기독교적인 세계관이 농후할 경우에는, 수용하기보다는 버리는 쪽으로 하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제가 기본적으로 말씀드리는 것은, 대학원생답게 학문의 최고의 위치에 가려고 애를 쓰되, 비판적 사고를 가지고 공부를 하면 좋을 것 같다는 겁니다.
eKosta: KOSTA 에서도 그런 전공 분야에 대한 고민을 담아내기 위해, tmKOSTA를 열고 있지만 3년 되어 가는 tmKOSTA도 아직 갈팡질팡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학문에 대한 기독교적 사고는, 전공별 모임을 통해서만 배울 수 있지, 목사님께나 교회에서 배울 수도 없는데, 한 5년 10년 후에는 tmKOSTA 출신 졸업생들이 각 분야의 멘토로 섬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반면에 아직 기초가 부족한 학생들에게 전공분야로의 부르심, 즉 하나님의 소명이라는 점에 대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소명이 교회와 관련된 부르심만은 아닐텐데 갑자기 신앙이 뜨거워져서 공부를 포기하고 신학교로 가는 경우도 보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성인경: 소명은 Lordship하고 관련이 되어 있는데요, 만일 대학원생들이 예수님의 삶의 주인으로 인정한다면, 자신의 전공분야의 주인도 예수님이다라고 인정하는 것 아닙니까? 그렇다면, 당연히 자신의 전공의 발전을 기하고, 그것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첫 번째 소명입니다. 만일 대학원생이 자기 전공을 천문학, 혹은 물리학을 한다면, 그 분야의 학문적 업적을 쌓는 것, 말하자면, 박사과정 논문을 쓸 때, 후대의 수많은 사람들이 참고할 수 있는 좋은 논문을 쓰는 거죠.
eKosta: 그 자체가 소명이라는 거죠?
성인경: 그렇죠. 그 자체가 하나님이 주신 일이라는 겁니다. 학위를 받는 수단으로 대충 논문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학문적 업적을 내어놓는 것, 이것이 하나님이 부른 1차 소명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그 전공을 살려서 평생에 학문적 업적을 남겨 놓는 것이 하나님의 중요한 소명이라는 겁니다. 또 하나, 전공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전도도 하고 양육도 하는 것 또한 하나님의 중요한 부르심입니다. 하지만, 부탁컨대, 전공을 소홀히 하면서, 전도하고 사람을 키우는데 만 너무 신경 쓰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만일 그 전공분야를 자기가 최선을 다 않고 포기한다면, 그 분야를 누가 점령하겠습니까? 폴 존슨이라는 역사학자가 이런 분석을 했는데, 200여 년 전에 서양 기독교는 각 전공분야의 예수님의 Lordship을 포기함으로써, 모든 분야가 다 세속화되는 길을 열어 주었고, 아직도 그 주도권을 회복하지 못했다고요. 그 분은 말하기를, 그 영역에 대한 주도권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200년이 더 필요할 것 같다고요. 그런 의미에서, 주님은 우리의 삶의 영역 중에서, 특히 전공분야에서 주님의 영광과 주권이 드러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 대학원생들, 교수님들, 연구원들에게 이런 특별한 사명을 주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쉽지 않은 소명입니다. 부탁입니다. 자신의 분야에 학문적 업적을 나타내십시오. 요한계시록 14장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너희들의 업적이 따라오리라. 그 업적은 전도한 업적뿐만이 아니라, 예술가면 좋은 예술적인 작품을 만든 것, 과학자는 과학적 업적을 남겨 놓은 것, 이런 것들이 어디까지 따라 오느냐 하면, 하나님나라까지 따라온다는 겁니다. 그렇게 되길 바랍니다.
전 공만 공부할 수는 없죠. 자기의 취미생활도 하고 다른 사람도 돕고, 전도도 하고 말입니다. 나는 예수 믿는 대학원생들만큼 행복한 사람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미국 이곳에 와 있는 사람들은, 한국 청년 1000명중의 한 명 정확한 통계는 모르겠지만, 정말 특권을 받은 사람들이죠.
eKosta: 기독교 세계관에 입각한 학문에 관해 자주 듣는 얘기 중에 학문의 탁월성을 추구해야 하며 비기독교인들 보다 더 뛰어나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데요,
성인경: 맞아요. 그런 얘기 들으시면 스트레스 많이 받으시죠? (웃음)
eKosta: 현실적으로 어려운 점을 꼽자면 학문의 구조 자체가 타락한 상태여서 경쟁구조 속에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탁월해지려면 경쟁구조 속에 빠지게 되고, 또 그 경쟁 속에 있다보면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동기가 소멸되어 지는 듯한 강한 느낌이 들거든요.
성인경: 그래서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탁월성만이 우리의 목표는 아니에요. 그 점을 이해해 주셨으면 참 좋겠어요. 학문을 할 때, 탁월성이 중요한 기준이지만, 그것이 다는 아닙니다. 그 기준들을 이야기해보죠. 탁월성은 추구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 탁월성 추구와 동시에, 그에 따르는 도덕성을 동시에 추구해야 합니다. 만일 탁월성을 위해서 다른 사람의 학문적 업적을 도용한다던가 하면, 그 탁월성은 하루아침에 무너지게 됩니다. 탁월성이라 하면, 그에 따르는 다른 기준이 있는데, 그것은 도덕성입니다. 탁월성이라 하면,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다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거기에는 또 다른 하나의 기준, 즉 독창성이랄까 창의성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탁월하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 보다 더 우수하고, 최고의 것을 추구한다기 보다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누구도 만들지 못한,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독창적이고 창의적인 새로운 것을 의미하죠. 탁월성을 최고의 것을 찾아야 한다는 수준차이를 생각하기보다는 독창성이라는 기준을 추구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또 하나의 기준을 말하자면, 종교성입니다. 말하자면, 탁월하고 윤리적이고 독창적인데, 만일 신앙적으로 문제가 있다면, 그런 업적의 탁월성, 독창성은 인정받지 않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아무리 탁월하고 독창적이어도 신앙적으로 문제가 있다면, 과감히 포기해야 합니다.
또 한가지 말씀드린다면, 사상적으로도 전통의 기독교 정신과 배치가 되지 않아야 한다는 겁니다. 이런 것을 보편적 학문 정신이라고 봐야 합니다. 이런 기준들을 함께 보아야지, 학문의 업적을 탁월성의 측면에서만 본다면, 경쟁의 구조 속에서 문제를 야기 시킬 수 있겠죠.
eKosta: 세계관과 학문에 관한 중요한 얘기들 감사합니다. 혹시, 이번 코스타에서 예수님을 처음 믿게 된 분들이나 침체기에서 회복된 분들에게 하고픈 이야기가 있으신 지요? 사실 코스타의 약발이 얼마나 갈까라는 문제의식이 있는데 eKOSTA도 그런 배경에서 코스타의 감동과 결단을 현장으로 연결하자는 뜻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 글이 언제 실릴지는 모르지만, 그 때, 여기 휘튼대학이 아닌, 현장에 가 있을 분들에게 한 말씀해 주시지요.
성인경: 제일 먼저 이야기 드리고 싶은 건, 영적인 실체, 즉 spiritual reality가 순간 순간 하나님께 붙어 있으려고 애쓰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까 프란시스 쉐퍼의 책에서 제일 중요한 테마가 영성이라고 했는데, 쉐퍼뿐만 아니라, 기독교의 영성은 일회적인 은혜의 충만이 아니라, 십자가의 능력과 성령의 능력을 순간 순간(moment by moment) 적용하는 거죠. 예를 들면, 비디오가게에서 영화를 빌릴 때라도, 어떤 비디오를 볼까, 포르노 영화를 볼까, 로맨스 영화를 볼까, 혹은 액션 영화를 볼까 결정할 때도, 순간 순간 바르게 결정하려고 하고,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를 생각하는 겁니다. 공부할 때, 데이트할 때, 인터넷 검색할 때, 친구랑 교제할 때, 혼자 있을 때, 순간 순간 주님의 십자가의 능력을 의지하고 사는 것이 무엇인가를 기억한다면,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놓치지 않았다고 봅니다. 또 하나를 추가한다면, 규칙적인 기도생활, 규칙적인 성경 묵상, 또한 규칙적으로 예수 믿는 분들과 교제해야 합니다. 만일 그런 생활 없이, 약발이 1년 동안 갈 것이라고 생각하면 착각입니다. 규칙적으로 자기의 경건의 삶을 늘 조심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eKosta: Tony Campolo박사님도 언급하셨듯이, 함께 자신의 삶을 체크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겠습니다. 이민교회들이 참 어렵지만 그 가운데서도 서로의 신앙을 점검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성인경: 특히 double check을 받을 수 있으면 더 좋겠죠.
eKosta: 사실 이민교회들이 참 어렵거든요. 그런 중에서도 서로의 신앙을 점검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성인경: 하지만, 기억해야 할 점은 그 checkup은 이차적입니다. 아무리 친구가 자신의 삶을 점검해 준다해도 24시간 해 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일주일에 한번, 많아야 매일 점검 받을 수 있지만, 제가 말씀드리는 핵심은, 순간 순간 자신의 신앙을 점검하는 것, 이것이 기독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그걸 놓치면, 기독교 영성의 핵심을 놓치게 되고, 신앙생활의 본질을 잃어버립니다. 라브리에서 하는 일이 바로, 그것을 회복하자는 겁니다. 청년들이 죄를 처음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할 때는 예수님의 능력을 의지하지요. 하지만 그가 공부하고 하나님 제게 새로운 insight와 탁월성과 독창성을 지금 주십시오 라고 할 때,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의 머리만 의지한다는 거죠. 아시겠죠? Moment by moment trust라는 것이 기독교 신앙의 essence인데, 그걸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거죠.
eKosta: 마지막 질문입니다. 사모님께서는, 라브리로 이사하실 때 혹은 라브리 사역을 하실 때, 반대를 하시지는 않으셨는지, 아니면 동역자로 잘 도와 주시는지 궁금합니다. 저희 KOSTA에서도 보면, 마지막날 mission calling을 하면, 남편은 마구 뛰어 나가지만, 아내는 그냥 앉아 있어서, 나가지 못하는 경우도 꽤 많이 있거든요. 특히 유학생들 중에는 아내들이 공부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거든요. 공부 않는 아내들이 갖는 어려움, 외로움, 또 자아에 대한 실망을, 남편들은 어떻게 사랑하고 섬겨야 하는지, 또 남편들은 공부만이 길이다라는 답말고,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목사님의 조언을 듣고 싶습니다.
성인경: 재미있는 질문이네요. 저는 사실 제 아내와 10년 이상 함께 동역 하는 거예요. 그렇다고 해서 제 아내가 일만하고 공부를 하지 않느냐 하면 그것은 아니거든요. 아내들이 공부를 안 하고 있을 때 콤플렉스를 가질 수 있는데, 제가 부탁드리는 것은, 아내들도 대학원 같은 전문적인 공부를 하지 않더라도, 계속해서 관심을 가지고 자료를 모으고 생각하고 글도 쓰고 발표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으면 참 좋겠습니다. 제 아내 이야기를 하면, 제 아내는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거든요. 그러면서 결혼해서 아이를 셋을 낳았고, 또 라브리가 교육기관이다 보니까, 계속해서 청년 대학생들이 오니까, 그들을 어떻게 가르치는 것이 교육적인가에 관심을 가지게 됐어요. 그래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 삶 속에서 기독교 세계관 교육을 가르치는 법이었어요. 제 아내의 강의 제목을 그대로 인용하면 '생활 속의 세계관 교육'이죠. 말하자면, 한두 가지 관심분야를 자신이 정해서, 꾸준히 자료도 모으고 독서해서, 교회에서 발표할 기회가 있으면 발표하고, 히어링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하고, 글 쓸 수 있는 시간이 있으면 글도 쓰고 했으면 좋겠어요. 제 아내는 사실 공부할 기회를 놓쳤어요. 하지만 교육학 전공한 사람 못지 않게, 교육학에 관한 많은 글도 썼지요. 이건 상아탑에서 배운 것이라기보다는 현장에서 깨달은 진리이죠. 자기가 수천 명의 청년들 밥해주면서, 그들에게 어떻게 복음을 전할까 를 고민하면서 깨달은 거라고 할 수 있죠. 특별히 학교 가서 공부를 않더라도, 생활 속에서 공부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루터가 말했듯이, 가정이 최고의 영성 훈련 장소예요. 남편과 아이들 키우면서, 신학교 못지 않은 영성 훈련소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온갖 유동적인 상황 속에서 믿음으로 살아가는 훈련을 하는 곳이 가정이거든요. 재정문제, 부부관계, 자녀교육문제 등을 통해서 말입니다. 그래서 아내들이 전공분야에 대한 관심뿐만 아니라, 영성을 발생시키는 곳이 가정이라는 것을 인식하면, 콤플렉스를 느끼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 아내도 좋은 모델이 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많은 사람들이 능력이 있으니, 가서 공부하라고 많이 권했지만, 자신은 생활 속에서 공부를 하겠다고 거절을 했지요. 그런 것도 가능하다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러나. 기회가 주어지면, 아내들도 전문분야를 공부할 수 있으면 좋죠.
eKosta: 하지 못한다고 안달하지 않고, 주어지면 또 열심히 하고요.
성인경: 남편들은 아내들의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고, 배려를 좀 더 했으면 좋겠어요. 저희 라브리는요, 남편과 아내가 함께 오면 반반씩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줍니다. 만일 오전에 남편이 공부하면, 오후에는 남편이 아이들을 보고, 아내들이 공부합니다. 그리고 아이들을 보는 것이 가장 힘든 노동이기 때문에, 부부들에게는 노동하는 시간을 전부 면제해 줍니다. 저희 라브리는 부인들에게 똑같이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줍니다. 부인들이 똑같은 레포트를 쓰면, 그들에게 먼저 발표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줍니다.
eKosta: 오늘 해 주신 많은 말씀 다시 한번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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