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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신앙/토론토에서 온 편지

[박총] 묵상 몇점 이코스타 2003년 11월 讀者前 上書 잘 지내고 계신지요? 우리네 삶이라는 것이 그렇듯 늘 만사형통하지는 않아도 세상이 줄 수도 살 수도 없는 그 평강으로 인해 안녕(安寧)하시리라 믿습니다. 그러고 보니 어느새 이곳 토론토에서 아홉 번째 안편지(內簡)를 드리는군요. 요 몇 달 새 제 영혼 안팎의 풍경들과 어우러진 묵상 몇 점을 그려내 보도록 하지요. 전태일은 과연 자살하였는가? 아, 이 어쩐 일인가. 생활고를 비관한 주부의 투신부터 현대 정몽헌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까지 조국에서 들려오는 도미노 식 자살 소식은 탄식을 절로 나오게 한다. 가히 자살공화국이라 할 만 하다. 혹자는 정몽헌 씨가 자신과 회사 안팎에 얽힌 문제들을 다 끌어안고 간 점 때문에 그 아버지인 정주영 씨로부터 시작된 현대가의 파.. 더보기
[박총] 제로섬 게임이냐 윈윈 전략이냐 이코스타 2003년 10월 가을걷이철입니다. 한국은 올 여름 내내 비가 잦고 또 태풍의 피해도 커서 흉년이 될 거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접하는 소식마다 단조(短調, minor)풍의 우울한 얘기가 많아 한국에서 하듯 거의 매일 같이 조국 걱정을 합니다. 저 희집 올 농사는 풍작이었습니다. 특히 토마토, 방울토마토, 오이는 풍성한 소출로 제법 많은 교회 식구들 및 동네 이웃들과 나눠 먹었습니다. 내년 농사를 위해 지금은 한창 씨앗을 받고 있습니다. 해민이랑 하얀 편지 봉투에다가 나팔꽃, 금송화, 토마토, 해바라기, 코스모스 등의 씨를 모아서 이 또한 원하는 이웃들과 나누려고 합니다. 참, 그리고 뒤뜰 베란다에 널어둔 박하(薄荷, peppermint)도 거의 다 말라갑니다. 건조가 끝나면 박하잎을 가루로 만.. 더보기
[박총] 적음직한 날들, 나눔직한 이야기들 이코스타 2003년 9월 고백컨대, 저는 삶을 기록해두지 않으면 못 견디는 사람입니다. 쓰는 것이 생활에 큰 분깃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주님과 함께 또 사랑하는 이들과 더불어 엮어지는 매 순간순간이 하나 같이 가슴 벅찰 정도로 행복하고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꼬박꼬박 적어두지 않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고스란히 잊어버릴 정도로 흥겹고 신나는 일들이 차고 넘치는 것이 바로 저의 삶입니다. 말하자면 적음직한 삶이지요. 그런 재미난 일들의 연속이기에 제 삶에는 권태란 없습니다. 아내도 저의 이러한 점을 늘 신기하게 생각합니다. 제가 살아온 시간들을 부지런히 이야기로 변환하는 또 다른 까닭은 “시간은 이야기로 엮일 때 비로소 인간적 시간이 된다”고 말한 리쾨르(Paul Ricoeur)에게 십분 동의하기.. 더보기
[박총] 아내의 안식년을 챙겨주는 유학을 꿈꾸며 이코스타 2003년 8월호 저희는 지금 유학(留學) 중입니다. '유학' 하면 어떤 그림이 떠오르는지요? 1990년대 들어 조기유학, 단기유학 같은 말이 등장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제는 유학이라는 말이 담아내고 있는 의미의 스펙트럼이 대단히 넓어진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아직도 '유학' 하면 대개는 한 남자가 한국에 돌아가 교수가 되기 위해 학위를 따는 과정으로 받아들여지기 마련이지요. 이를 위해 할 수 있는 한 이름 있는 학교에 입학해야 하고,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죽어라 공부해야 하는 장면이 자연스럽게 뒤따릅니다. 남편이 거의 모든 시간을 책과 씨름하는 동안 여성 배우자 역시 이질적인 문화 속에서 살림하고 애들 키우면서 나름의 고생을 하게 됩니다. 부자가 아닌 이상에야 유학 기간 내내 돈에..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