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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신앙/유학생의 삶

[유영진] 부활을 생각하며

유학생의 삶 (7)

부활을 생각하며

"More than that, I count all things to be loss in view of the surpassing value of knowing Christ Jesus my Lord, for who I have suffered the loss of all things, and count them but rubbish so that I may gain Christ ... that I may know Him, and the power of His resurrection and the fellowship of His sufferings, being confirmed to His death; in order that I may attain the resurrection from the dead." (빌립보서 3:8, 10-11)

오랜만에 파란 하늘을 바라보면서, 학교로 출근을 하였다. 광현과 동현을 학교에 내려놓았다. 동현이는 언제나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정신없이 학교로 뛰어 들어갔다. 어제 새로 산 운동화를 신고서, 자랑을 하기 위해서 바지를 두 번 접어 입고는 학교로 갔다. 그 뒤를 광현이는 천천히 따라 걸어 들어간다. 나를 쳐다보고는 씩- 웃는다. 창문너머로 “I love you"라고 말해주고는 학교를 향해서 떠났다. 학교에 오니 봄방학이라 6층이 조용하다. 이번 방학에는 밀린 paper를 반드시 끝낼 결심을 하고는 office로 들어섰다. 얼마 전 새로 산 Power Book을 켜고, 커피를 옆에 놓고서, 브라암스의 음악을 켜놓고 부탁 받은 글을 쓰기 시작한다. 글을 쓰는데, 선배교수 Fred가 들어와서 다음주에 같이 점심을 먹자고 약속한다. 창 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오늘따라 유난히 눈이 부시도록 파랗다.

삶이 아름답다. 순간 순간 지나칠 적마다, 다시 보지 못할 찰라가 아쉽다. 사진에도 담아보고, 비디오도 찍어보고, 일기로도 적어보고, 마음속에 소중히 담아보기도 하지만, 너무나 빨리 달려만 가는 시간이 안타깝다. 요즘은 평균수명이 늘어서 80세까지 산다고 가정하고 계산을 해보면 평생에 가질 수 있는 주말의 숫자가 4160이다. 그 중에 이미 1800여 번을 사용하고 이제 약 2300여 번이 남았다. 아쉽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그 아쉬움은 더욱 커가겠지 하고 생각해 본다.

삶과 그 속의 만남과 경험이 소중한 만큼, 그리고 인생의 끝과 그로 인한 헤어짐이 아쉬운 만큼, 부활에 대한 소망과 기대가 커짐을 느낀다. 얼마 전 읽은 C. S. Lewis의 글이 생각난다. 죽음에 대한 철저한 경험과 인식이 없이는 부활의 감격과 감사를 느낄 수 없다고 했던 말.

2000년 전, 목숨을 걸고, 가족과 온 재산을 버리고 따르던 예수가 죽은 지 삼일만에 다시 살아난 사실을 본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에게 부활의 사건은 현실이었다. 귀신들렸던 막달라 마리아, 그녀에게 부활한 예수는 자신이 의지할 수 있는 오직 단 하나뿐인 희망이었다. 자신의 모든 credential을 버리고 예수를 전하기 위해서 평생을 투자한 바울에게, 예수의 부활에 동참하는 것이 오직 단 하나뿐인 유일한 삶의 목표였다. 자신들의 삶 가운데서 기대하고 의지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빼앗기고, 목숨마저 위협받으며 신앙생활을 하던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에게 사도 요한을 통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약속은 바로 부활하신 예수였다. 그들의 눈앞에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예수, 그분의 부활은 그들에게 있어서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그 부활의 현실이 그들의 삶을 붙잡았다. 그 부활의 현실이 그들을 흥분케 했다. 그 부활의 현실이 이 땅 위에서의 기쁨과 고통을 극복할 수 있게 했다. 그 부활의 소망만이 그들에게 있어서는 유일하고 가치 있는 투자의 대상이었다.

오랫동안 예수님을 믿는다고 생활을 해왔으나, 부활은 나에게서 관념적인 대상에 불과했다. 삶의 소중함을 깨닫지도 못했고, 죽음의 현실성을 피부로 느끼지도 못했으며, 그로 인한 나의 한계성을 철저히 인식하지 못했다. 그래서, 부활의 약속은 그저 하나의 신학적인 관념에 불과했다. 부활은 나의 삶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다. 부활은 그저 부활절 설교와 성경공부의 주제에 불과했다. 천국과 영생의 소망보다는, 이 땅에서의 죄 사함과 축복 받고 능력 있는 삶의 약속이 나에게는 더 매력적인 약속으로 들렸다. 그러나, 이제는 부활이 부활절뿐만 아니라 365일의 나의 생활 속에서 소망이 되고, 그 부활이 단지 신학자들의 입에서 나오는 신학적인 관념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의 구체적인 삶에 활력과 의미를 주는 현실이 되었다. 삶의 기쁨과 고통, 아름다움과 잊어버리고 싶은 모든 구석들이 부활이라고 하는 렌즈를 통해서 바라볼 때, 나의 이 땅위에서의 삶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가지게 된다. 붙잡고만 싶었던 것들을 이제는 지나가는 흐름 안에서 아름답게 볼 수 있고, 피하고 싶었던 것들을 담담하게 하나의 과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을 얻는다. 이전에는 생각 없이 스치던 대상들이 부활의 렌즈를 통해서 볼 때, 새롭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단장을 하고 나에게 다가온다. 이제 어렴풋이 나마, 사도바울이 그토록 알기 원하고 동참하기를 원했던 예수님의 삶과 부활, 고통과 죽음의 의미를 알 것 같다.

유학생활, 무척 바쁘다. 힘들고 정신이 없다. 당장 눈앞에 와 있는 시험과 논문, 세미나 발표와 교수와의 만남이 삶의 모든 것인 양 다가오기 쉽다. 내가 현재 하고있는 일이 나의 삶을 사로잡기 쉽다. 그럴 때, 부활의 예수그리스도를 새롭게 만나보기 바란다. 전쟁의 소문이 사방에서 들려오는 이 때에 부활절을 맞이하여 그 어느 때보다 주님이 주시는 소망의 메시지가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