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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의 문화 탐구/영화 속의 숨은그림 찾기

[은지영] Cookie 할머니의 유산 (Cookie's Fortune)

영화 속의 숨은 그림 찾기

Cookie 할머니의 유산 (Cookie's Fortune)

그렇다면, 나의 양심은 선(善)합니까?

 

감독 Robert Altman
개봉연도 1999년
MPAA 등급 PG-13
주요 등장 인물

Camille Dixon
Cora Duvall
Emma Duvall
Jason Brown
Willis Richland
Jewel Mae "Cookie" Orcutt
검사 Otis Tucker
보안관 대리 Lester Boyle
변호사 Jack Palmer
Manny Hood

Glenn Close
Julianne Moore
Liv Tyler
Chris O'Donnell
Charles S. Dutton
Patricia Neal
Courtney B. Vance
Ned Beatty
Donald Moffat
Lyle Lovett

미국 미시시피주의 한갓진 한 마을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 <Cookie 할머니의 유산>은 코메디라는 형식을 취하고는 있으나, 부활절을 앞두고 일어난 Cookie 할머니의 자살사건을 통해 일곱가지의 큰 죄 가운데 으뜸인 '교만/자만'과 '율법주의'라는,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를 보여줍니다. Altman 감독은 미국 남부특유의 순진하고 소박한 정서와 Holly Springs 마을의 정경만큼이나 나른한 휴머(humor)로써 이 영화를 수준높은 코메디작품으로 완성시키고 있는데, Liv Tyler나 Chris O'Donnell같은 배우의 이름에 속아(?) 영화를 고르신 젊은 관객들은, 특히 영화의 첫부분을 넘기기가 매우 고통스러울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일단 고비를 넘기고 나면, 시종일관 마음 깊은 곳을 간질거리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야속하게 먼저 가버린 남편을 그리워하던 Cookie 할머니는 결국 권총자살로 인생을 마감하고 마는데 유감스럽게도 그 시신(屍身)은 평소 사이가 좋지 않던 조카 Camille에게 처음으로 발견됩니다. Camille은 '가문의 명예'니 '자존심'이니 하는 것에 강박적으로 연연하며, 파이프담배를 피우는 할머니를 늘 못마땅해 하던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급기야 그 죽음을 강도살인으로 위장하기에 이릅니다. 그는 "우리 가문에서 자살이란 있을 수 없다. 미친 사람만 자살한다"는 말을 주문과 같이 되뇌이며 자신이 언제나 제멋대로 휘둘러 오던 동생 Cora까지 그 위장극에 끌어 들입니다. 그런데 살인사건이라면 응당 범인이 있어야지 않겠습니까. 한집에 기거하며 사랑으로 할머니를 보살펴오던 흑인 아저씨 Willis가 -너무나 당연히, 온 집안에 널려있는 아저씨의 지문 덕분에- 용의자로 지목됩니다. 증거를 은폐하기 위해, Willis를 유산 상속자로 지명한 할머니의 자살편지(suicide note)까지 씹어삼킨 Camille은 뻔뻔스럽게도, 억울한 누명을 쓴 Willis에게서 이제 재산까지 가로챌 궁리까지 합니다. 할머니의 유일한 피붙이인 자신(과 Cora)이 유산을 물려받는 게 당연하다는 논리지요. 그런데 마을을 떠나있다 때마침 돌아온 Cora의 열여덟살 난 딸 Emma가 Willis의 결백을 주장하며 모든 정황에 이의를 제기합니다.
 
게다가 평소 Willis의 사람 됨됨이를 잘 알고 있는 마을 사람들이 한결같이 그를 변호하며 나서고, 동네 보안관들과 변호사가 그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 다니게 되면서 Camille의 음모가, 그리고 그간 베일에 가려있던 가문의 '그다지 명예롭지 못한' 비밀들이 백일하에 드러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살인사건에는 응당 범인이 있어야 하므로', Camille은 자기가 꾸민 위장극의 결과를 뒤집어 쓰고 감옥살이 신세가 돼 버립니다. 재미있는 것은 변호사가 쿠키(cookie)단지 안에서 찾아낸 또 다른 유서에 따라 할머니 유산이 제자리를 찾아가게 되는 결말입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인과응보'(因果應報)요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고 할까요.
<Cookie 할머니의 유산>에는 크고 작은 비중의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여 영화에 맛을 더해주고 있지만, 그 핵심을 이루는 축(軸)은 Camille과 나머지 주요 등장인물들로 대립되는 두 종류의 인간 군상(群像)입니다. (파이프) 담배를 피우는 Cookie 할머니는 기독교에서 금기시하는 자살이란 죄를 저지릅니다. 'Tom Brokaw' 이전에는 -우리나라로 따지면 MBC 뉴스데스크가 시작되는 밤 9시 이전에는- 비록 안 마신다고 해도, Willis는 실수로 깨뜨린 술병 생각에 하루밤을 못 참고 술집에서 슬그머니 또다른 한 병을 들고 나올 정도로 술이라면 사족을 못 씁니다. 주차위반 딱지를 수없이 떼고 벌금 한번 안 내고도 태평한 Emma는 미성년임에도 Willis와 맞술을 하고 남자친구인 Jason과도 육체적으로 벌써 깊은 관계입니다. 그렇다면성경에서 하지 말라고 금하는 것만 골라서 다하는 것 같은 이들은 진정 못된 무리입니까?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이들이 성경에서 "하라"고 명하는 일 또한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들은 자기 이외의 사람에게 관심을 갖고 있으며, 자기 이외의 사람을 사랑으로 돌보고 너그러움으로 용납합니다. 사람을 다르다고 깔보고 자기보다 더 낮게 여기는 일도 없습니다. 이들에게서는 훈훈하고 정겨운 '사람 냄새'가 납니다.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友愛)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롬12:10)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엡5:2)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 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요일4:7-8)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 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엡4:2-3)
서로 인자(仁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 같이 하라 (엡4:32)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 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약4:6)

반면 독실한 기독교신자로 행세하는 Camille은 Cookie, Willis, Emma뿐 아니라 자기가 종처럼 부리는 동생 Cora, 그리고 다른 이웃들을 깔보고 무시합니다. 부활절 기념 교회성극으로 자기가 연출 중인 '살로메'(Salome)를 연습시키는 그의 모습은 거만하기 짝이 없습니다. 교회 광고판에 "Oscar Wilde와 Camille Dixon의 살로메"(Salome by Oscar Wilde and Camille Dixon)라고 해서, 극의 원작자 옆에 자신의 이름을 달아야만 만족할 정도로 허황된 명예욕이 넘칩니다. 외로움을 견디다 못해 자살한 가족의 죽음을 대하고도 애통해하기는커녕 동네망신이라며 거짓을 꾸미는데 혈안이 됩니다. 아니, 애통해 할 양심이 있었다면 단 하나뿐인 친척 아주머니를 처음부터 버려두지도 않았겠지요. 자기 때문에 억울하게 살인범으로 몰린 Willis에게도 미안한 마음은 털끝만큼도 없습니다. 게다가 한술 더 떠 자신의 마음 속에서 어느새 살인범으로 둔갑해 버린 그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까지 드리는 장면에는 보는 관객도 기가 딱 막혀버립니다. 살인사건(?)현장의 증거보존을 위해 경찰이 둘러놓은 접근금지 테이프도 그녀의 '막가'파(派)적인 위세 앞에는 무력할 따름입니다. Cookie 할머니의 저택을 태연자약하게 차지하고 앉아 어느새 귀족흉내를 내며 사교활동에 여념이 없는 Camille은 한마디로 '진실치 못한', '양심불량'(良心不良)의 인간입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先鋒)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잠16:18)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虛榮)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 을 낫게 여기고 (빌2:3)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마6: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無禮)히 행치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고전13:1, 4-6)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요일4:20)
너희가 사람의 과실(過失)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마6:14-15)

그런데 교만하고 무례하며 용서에 인색하고 악한 것을 꾸며내는데 능란한 인물 Camille은 평소 그가 한심한 인간들이라며 정죄하고 경멸했던 죄인들보다 더욱 심각한 죄인이었음이 드러나게 됩니다. 동생의 남편과 불륜을 저질러 딸을 낳고 그 딸을 동생의 딸로 위장한 과거가 밝혀진 것입니다. 평생 고개를 못 들 상대인 동생에 대해 가책은 커녕 업신여기기 일쑤고 낳자마자 저버린 친딸에 대해 연민은 커녕 눈에 가시처럼 대할 뿐입니다. 성경은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엡5:8-9)고 명령하는데, 외양(外樣)은 빛의 자녀로 가장한 채로 온갖 어두움을 행한 것입니다. 그러고도 자신을 착하고 의롭고 진실하다고 착각하며 행동으로 드러나는 다른 사람들의 죄를 정죄하다니, 알고보니 양심불량이 아니라 '양심불감증'(良心不感症)입니다. "중심(中心)에 진실함을 하나님께서 원하신다"(시51:6)고 했듯이 그분의 자녀된 자는 중심이, 그 마음이 성결해야 할 것이며 남의 눈에 든 티끌보다 자기 눈에 든 들보를 더욱 부지런히 돌아보아야 할 텐데 말입니다.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 (약4:8)
비판(批判)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든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외식(外飾)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 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마7:1-5)

한편, Camille의 동생으로 등장하는 Cora는 미국의 몇몇 평론가들에게 "왜 나왔는지 모르겠다"는 평까지 들을 정도로 분석이 다소 까다로운 인물이지만 영화 속의 극중 극인 '살로메'의 전개과정과 비례하여 그 성격이 변화해 가는, 알고보면 가장 재미있는 인물입니다. 언니에게 주눅이 들어, 보는 사람이 답답할 정도로 말과 행동과 사리에 굼뜬 Cora는 자신의 의지와는 달리 언니가 꾸며낸 위장극에 말려들고 맙니다. 처음 연극연습을 시작했을 때도 자신의 배역인 살로메의 성격을 소화해내지 못하고 어설픈 연기만을 거듭하던 그는, 그러나 살로메란 인물이 점차 자신에게 녹아들면서 점점 말이 많아지기 시작하여, 부활절 성극무대에서는 온 몸과 마음으로 철저히 살로메가 되어 버립니다.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친 후 언니가 경찰에 끌려가는 장면을 본 그는 곧 모든 정황을 판단하게 됩니다. 자신의 증언 한 마디에 언니의 운명이 달렸음을. 자기 남편과 언니가 낳은 딸을 자식으로 떠맡았면서도 평생을 무시당한 지난 세월을 거짓증언으로 보상받을 것이냐,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실을 말함으로 언니를 용서할 것이냐. Cora는 살로메 무대의상을 벗지 않습니다. 자신의 의지와는 달리 공범이 되어버린 처음 위장극 때와는 달리 아주 적극적인 주역이 되어 언니에게 살인죄를 뒤집어 씌웁니다. 멋지게 복수하는 쪽을 택한 것입니다. 이런 결정은 '권선징악'의 결말을 이끌어 내는데 필수적인 역할을 하고는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짓되고 악한 선택입니다. 아무리 자의(自意)가 아니었다고는 해도 언니와 공모하여 남의 재산을 탐하고, 악을 악으로써, 죄를 죄로써 갚는 Cora라는 인물은, 그때 그때 내어놓지 못하고 쌓아놓은 분(忿)과 한(恨)으로 인해 뒤틀리고 비뚤어진, 왜곡된 자화상을 대표합니다.

겸손(謙遜)한 자와 함께 하여 마음을 낮추는 것이 교만한 자와 함께 하여 탈취물(奪取物)을 나누는 것보다 나으니라 (잠16:19)
내 마음이 악한 일에 기울어 죄악을 행하는 자와 함께 악을 행하지 말게 하시며 저희 진수 (珍羞)를 먹지 말게 하소서 (시141:4)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엡4:26)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마 5:44)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 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和睦)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마5:23-24)

영화 전편을 통해 대립하고 있는 두 개의 주류세력을 바라보며 성경이 비교하는 두 종류의 사람을 떠올립니다. "하나님이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하며 가슴을 치던 세리와 "나는 저 세리와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하며 자기 의(義)에 가득찼던 바리새인(눅18:9-14).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자와 그 여자를 예수 앞에 끌고 온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요8:3-11). 남녀 간의 자유분방한 육체관계가 어느새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미국이라는 나라에 살면서, 여자/남자친구와 동거를 하고 있는 크리스천들이 주변의 동성애자 친구들을 가리키며 지옥에 갈 거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상대적인 의로움을 내세우는 데 발빠른 인간의 모순된 모습을 봅니다. 오늘이라도 예수님이 오셔서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실 것만 같습니다. 내가 예수님을 안 세월이 길어질수록 왜 이렇게 눈에 거슬리고 마음에 안 드는 일은 늘어만 가는지. 분노하고 성낼 일들은 왜 자꾸만 많아지는지. 온유와 인자와 사랑과 인내의 모습보다는 내가 정한 율법의 수준으로 남을 정죄하는 바리새인과 같은, 사두개인과 같은 모습이 바로 지금의 내 모습임이 느껴질 때, "하나님이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하며 가슴을 치던 나는 어디로 갔는지 낙망스럽기만 합니다.

성경은 '우리 행동의 죄를 놓고 죄'라고 단언하기도 하지만 또한 "판단하지 말라, 정죄하지 말라"고도 명령합니다. 남을 징계하게 되더라도 자기 의를 자랑하기 위한, 징계를 위한 징계는 말 것이며 오직 죄인들을 회개로 이끌 징계를 하라고 명령하며(딤후2:24-25), 남을 징계할 때는 온유로 말하고 자신을 바로 세우기에 먼저 힘쓰라고 명령합니다(갈6:1-2). 그러나 오래 믿었다는 사람일수록 왠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모습을 갖는게 다반사니,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출21:24)라는 말씀은 스스로에게 적용할 것이며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할지니라"(마18:22)는 말씀은 타인에게 적용하라는 김동호 목사님의 글을 읽으며 수년전 혼자했던 다짐이 새삼 서먹하게 다가옵니다.

마땅히 주의 종은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며 거역(拒逆)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징계(懲戒)할지니 혹 하나님이 저희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 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 (딤후2:24-25)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 잡고 네 자신을 돌아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갈6:1-2)

내 모습은 누구에 가깝습니까? 내 모습이 영화 속의 Camille에 가깝든지, 다른 인물들에 가깝든지, 아니면 성경 속의 바리새인이나 사두개인과 비슷하든지, 세리나 간음한 여인과 비슷하든지, 우리가 따라야 할 양심은, "의인을 부르려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눅5:32) 이 세상에 오셔서, 정죄받아 마땅한 수가성의 여인에게 위로의 생수를 주신(요4:1-42)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선한 양심을 가지라 (벧전3:1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