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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신앙/이시훈의 살며 생각하며

[이시훈] 암흑

이코스타 2004년 4월호

06년 6월 6일 밤에 세계 3차 대전이 일어났다. 전 세계는 핵폭탄에 의해 가루가 되었고 핵미사일이 태양의 중심을 타격했다. 지구는 완전한 어둠과 추위 속에 빠져버렸고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게 되었다. 이 모든 일은 까미유가 잠든 사이에 일어났다. 그가 깨어났을 때는 이미 세상은 암흑 그 자체가 되어버렸다. 이제 그가 어둠 속을 헤치며 살아갈 수 있는 힘은 오직 그의 손에 있는 검에 의지하는 것이다. 이상한 소리를 내거나 불쾌한 냄새를 풍기는 괴물들이 지구를 점령했기 때문에 까미유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검을 내리치며 거리를 다닐 수밖에 없다. 자신을 공격하려는 괴물들을 먼저 공격하는 법을 익혀가면서 그는 자신을 지켜갔다. 어느 날 아침 몇 명의 강도들이 그를 공격해서 난투를 벌였지만, 결국 그는 납치당하여 낯선 곳으로 끌려가게 된다.

그곳에서 에테르 냄새를 풍기는 한 사람이 그에게 말한다.

삼차 대전은 일어나지 않았고 태양도 지지 않았으며 다만 까미유가 시력을 잃었을 뿐임을.

그가 싸웠던 괴물들은 그가 차에 치거나 건물에 부딪치지 않도록 도우려는 손길들이었으며

그의 검은 양로원에서 준 지팡이였음을 설명해준다.


위의 내용은 프랑스의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암흑'이라는 짧은 소설을 요약한 것입니다. 짧은 내용 속에 함축된 의미에 동감을 하게 됩니다. 주인공 까미유는 아마도 늘 핵전쟁에 대해 걱정하고 두려워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 두려움은 늘 그의 생각을 차지하고 있어서 언젠가 그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헛된 믿음을 갖게 했고, 그가 시력을 잃은 밤, 꿈속에서 전쟁을 경험하였을지도 모릅니다. 자신의 환상을 실제로 일어난 일로 믿은 그에게 세상은 암흑이 되어 버렸습니다. 살아가는 일에 대해 늘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으로 걱정, 근심을 쉬지 않는 우리의 모습이 그에게서 보입니다. 때로 그 걱정, 근심은 구체적이지도 않고 어떤 확실한 근거도 없이 우리를 덮치고 스스로 만든 그물 속에 갇히게 만듭니다.

자신의 내면의 빛을 지워버린 것을 세상에 빛이 사라졌다고 공포에 떠는 모습.

어둠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만나는 괴물의 실체는 자신이 만들어 낸 공포와 죄의 형상일 것입니다. 얼마나 자주 우리는 내면의 등불을 잃어버리고 방황하는지, 오해와 편견 때문에 사랑의 손길을 뿌리치며 살아가고 있는지 반성해봅니다. 세상의 어둠의 세력과 싸우기 위해 그가 휘두르는 검은 자신을 지키기 보다는 상처 입히는 도구가 되어버리는 것조차 깨닫지 못하고 더 강한 검을 구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지는 않는지요.

명예의 검, 권력의 검, 물질의 검을 구하여 휘두를 때마다 우리 안에 있는 빛은 점점 더 흐려져만 가고, 어느 날 갑자기 그 빛이 완전히 소멸되어 버려 우리는 빛의 존재 자체를 망각하곤 합니다. 내 안에 환한 불이 켜 있을 때 세상의 모든 것을 분명하게 바라 볼 수 있습니다. 불의와 정의로움, 선함과 그릇됨, 진실과 미혹의 분별도, 아름다움을 구하는 식견도 눈과 마음이 밝고 맑을 때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내 안에 있는 따스하고 밝은 불빛은 다른 사람들과 한 사회에 영향력을 미칩니다. 근심보다는 희망을, 불안보다는 평강을, 다툼보다는 이해와 화해를, 인내와 온유의 밝은 빛이 넓게 퍼져나가 다른 이들의 가슴에도 환한 등불 하나를 켜주는 시대를 꿈꾸어 봅니다. 어둠 속에 숨어있던 정결하지 못한 모든 것들이 밝은 햇살 앞에 그대로 드러나듯이, 우리 안의 부정한 것들도 빛의 씻김을 받으면 더욱 아름다운 존재가 될 것입니다.


자신이 투명한 사람만이 다른 사람도 투명하게 바라볼 수 있듯이, 자신의 안에 빛을 가진 자는 타인의 내부에서 빛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우리가 처음 지음 받은 모습의 본질에 더욱 가까이 갈수록, 우리를 지으신 분의 성품을 알아갈 수록 그 빛은 선명하고 강하게 다가옵니다. 그러나 그 빛의 세계를 발견하는 것, 그 길을 향해 걸어가는 것은 고난의 훈련의 과정을 필요로 합니다. 어둠에 익숙한 눈이 처음 빛을 바라볼 때 느끼는 통증과 혼란의 과정을 통해서 눈은 서서히 빛에 더 친숙함을 느끼게 되며, 이제는 감출 수 없는 많은 것들에 대해서 단단히 자신을 지켜나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손에 물리적인 힘을 발휘하는 검이 아니라, 어둠을 물리치는 말씀의 검을 주셨습니다. 나와 세상의 어둠을, 불의함을, 거짓됨을 잘라내는 검을 꼭 잡고 이 거칠고 오염된 세상을 걸을 때, 우리에게 더 이상 적은 없고 오직 사랑해야 할 이웃만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서로 내민 손길이 서로에게 등불이 되고 지팡이가 되어주는 세상에서 빛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