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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신앙/이영길의 기독유학생의 삶

[이영길] 시간을 보는 시각

예로 부터 지금까지 시간이라는 주제는 많은이들로 부터 뜨거운 관심을 가져 왔다. 시간과 관련된 주제로 출판된 수없이 많은 책들과 논문들이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시간에 대한 기존의 생각은 산업혁명이후부터 계속적으로 효율성, 생산성 및 속도에 대한 개념과 그 틀을 같이 하고 있어서 많은 이들로 부터 잘못된 생각을 갖게 하는 경우가 많다. 이와 관련된 중요한 질문은 다음과 같다: 더 적은 시간에 더 많은 것을 생산해내기 위해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더 많이, 더 빨리 할 수 있다고 하는것은 한 인간에게는 남다른 능력이고 성공을 가늠해주는 중요한 척도로 작용한다. 누구누구는 박사학위를  3년 만에 했다더라. 그런데 누구 누구는 9년이 지나도 마치지 못하고 있다. 분명 3년내에 마친 박사는 능력이 있는자이며 성공한 자로 얼른 구별 될 수 있다. 반면 9년동안 학위가 마쳐지지 않은 학생은 무능한자로 보여질 수 있다. 사실 게을음으나 자포자기로 미루어지는 공부가 있기도 하다. 주변을 바라 보았을때 늦게 마친자가 빨리 마친자보다 더 탄탄한 지식체계를 쌓아가고 또 자신의 학문분야에 좋은 영향을 미친 경우를 자주 보았다.

개인을 떠나 집단의 차원도 마찬가지이다. 어느 교회는 개척한지 2년 밖에 안되었는데 교인수가 벌써 1만명이나 되었다. 그런데 어느 어느 교회는 1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교인수가 약 500여명 밖에 안된다. 2년에 1만명 가진 교회는 분명 성공한 교회이고 많은 교회가 닮아 가고 싶어하는 모델이 될 수 있을것이다. 반면 10년간 500명의 교인을 갖춘 교회는 얼핏 다른 교회가 닮고 싶지 않은 모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어느 교회가 요한계시록 2-3장에 나오는 칭찬 받고 책망 받는 교회가 될지는 모를 일이다. 계시록에서 칭찬 받은 교회는 그 크기와 빠른 성장 때문에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뭏든 시간에대한 관점은 어떤 잣대 (Yard Stick)을 가지고 인생을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인생을 많이 살면 70-80년 밖에 살 수 없는 사람들에게 이같은 속도와 생산량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살아서 숨쉬는 제한된 시간내에 더 많은것 보아야 하고, 해야하고, 경험해야 하고, 소유해야 하며, 또 맛을 보아야 한다. 그래서 이들이 취할 수 있는 것은 자기몰입적인 달음질을 하는것이다. 달리 표현하면 "허무를 위한 달음질"이 될 수 있다. "조금 더"는 끝이 없기 때문이다. 더 이루었지만, 나 보다 조금 더 이룬 삶 앞에 편안함을 느끼지 못한다. 충분히 이해가 되어 질 수 있는 삶의 모습이다.

그러나 인생의 주기가 영원이라는 차원에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보다 중요한 문제가 있다. 시간의 속도와 생산량의 문제는 별로 중요한 관심거리가 아니다. 중생한 (born-again) 그리스도인들은 시간의 방향성에 더욱 관심을 갖는다. 나의 삶이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느냐가, 방향과 관계없이 얼마나 빨리 달리느냐 보다 더 중요 하다. 그리고 불필요한것을 얼마나 많이 그리고 빨리 (How much and how fast) 생산할 것인가에 대한 관심보다 "무엇" (What)을 "어떻게" (How)  생산하는냐를 더 중요시 여긴다. 이들은 자신을 위한 확장보다, 천국의 확장이 더 중요하다. 그리고 그 천국확장을 위해 자신의 능력을 하나님께 드리면서 성령의 도우심으로 일한다. 이들은 또한 자신을 평가해줄 절대평가자가 누군지를 확실히 안다. 현세에서 사람들로 부터 받은 찬사 대신, 그리스도의 재림시 주님앞에 섰을때 주님의 평가에 더 관심있다.

나는 지금까지 이야기를 중심으로 다음과 같은 두가지 Formular를 제안해 본다: 

      1. 삶 = 생산량 (업적) ÷ 속도 (속도가 빠를 수록 삶의 숫자가 많고 그것이 삶을 결정한다)
      2. 삶 = 방향 x 믿음 (삶의 올바른 방향과 믿음의 충돌이 삶을 결정한다)

나를 기쁘게 하는 공식은 무엇인가? 살아가면서 중요시 여기는 것들은 과연 무엇인가? 후회없는 삶이란 무엇일까? 이두가지 공식을 놓고 생각해볼 일이다. 첫번째 공식으로 살때 나의 삶과, 가정, 이웃은 어떤 모습일까? 더 많이, 그리고 빨리 돈 벌어 더 많이 빨리 쓰고, 더 빨리 인생을 마칠것인가? 더 빨리 인생을 마치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같은 삶이 사회에 기여하는것은 무엇일까? 더 많은 그리고 빠른 생산을 통해 더 빠른 그리고 많은 소비를 조장하지 않는가?

가야할길이 분명하고 그 길을 믿음으로 걷는자에게는 샬롬의 삶이 있다.

"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 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을 망하리로다" (시편 1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