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삶과 신앙/이시훈의 살며 생각하며

[이시훈] 찬양의 의미

이코스타 2004년 5월호

바이올린 경연대회를 하루 앞둔 딸아이가 열심히 연습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기특한 마음에 음료수를 들고 방에 들어가니 딸아이는 찬송가를 연주하고 있었습니다. 딸아이가 고등부 찬양팀에 가입한 이후로 우리 집에는 늘 그 애가 연주하는 찬양이 흐르고 있어서 무척 감사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피아노나 바이올린 선율에 노래를 따라 부르다 보면 긴장했거나 예민했던 신경이 부드러워지고 마음이 따듯해지는 경험을 자주하곤 합니다. 그러나 그 날은 바로 대회 전날이라서 저는 어느 부모나 그렇듯이 잔소리를 하게 되었습니다. 대회 출전곡을 더 열심히 연습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지적을 하게 되었던 것이지요. 딸아이는 주일날 연주할 찬양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는 자신의 주장을 펼쳤습니다.

저는 그날 딸아이와 모처럼 긴 대화를 나누게 되었고, 우리가 흔히 범하는 오류와 편협한 사고에 대하여 깊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중요한 상을 수여하는 시상식에서 수상 소감을 말할 때 많은 크리스쳔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표현을 합니다. 자신이 이룩한 성과라고 자만하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에 대한 감사로 받아들이는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우리가 자랑스러운 무언가를 이루었을 때, 좋은 것, 귀한 것을 구했을 때, 남들 보다 앞서게 되었을 때 그 모든 소중함과 기쁨을 하나님께 돌린다는 귀한 의미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러나 가끔 저는 선뜻 동감할 수 없는, 무언가 마음에 걸리는 듯한 느낌에 빠지곤 합니다. 과연 우리가 빛나는 자리에서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불쑥 밀려오기 때문입니다.


특별한 재능도 없고 그다지 뛰어난 점도 없어서 남의 주목을 받기는커녕 어느 자리에서나, 있는지 없는지 구별되지 않는 평범한 사람들, 모든 것이 평균적인 기준에 못 미쳐서 열등감을 느끼거나 소외 당하는 사람들, 병들거나 장애를 가진 사람들, 가난과 무지에서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일이 없는 것일까요? 세상에서 죄인으로 낙인찍힌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어둠의 존재들인 걸까요? 하나님의 전존재가 영광 그 자체임이 확실하다면, 아름답고 뛰어난 존재만이 그 영광의 한 부분을 반사하고 있는 걸까요?

주변의 모든 부모님들이나 제 자신을 살펴보면, 아이들이 좋은 성적을 받아 오거나 무언가 재능을 발휘해서 상을 받거나 남들에게 칭찬 받을 때 기쁨과 보람을 느낍니다. 자랑스러움과 기대감으로 벅차기도 하지요. 그러나 제 경우 가장 행복하고 오래가는 기쁨은 아이들의 사랑을 확신하고 교감하는 일인 것 같습니다. 비록 아이가 조금 부족할지라도, 말썽을 부릴지라도, 남들에게 칭찬 받지 못할지라도 자식을 미워하거나 부끄러워하는 부모는 없을 것입니다. 아프거나 장애가 있어서 생활을 힘들게 할지라도 다만 같은 공기를 마시며 함께 있다는 것 만으로도 감사하고 그 존재가 귀한 것이 모든 부모의 사랑일 것입니다. 자식 앞에서 모든 부모는 어떤 어려움도 극복하는 강함과 한없이 양보하고 용서하는 약함을 동시에 보여 줍니다. 그 모든 힘은 '나의 피와 살을 나눈 나의 존재의 일부!'에 대한 끝없는 사랑에서 비롯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고백할 때, 어린 아이처럼 하나님께 완전히 의존할 때 더욱 깊어지는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게 됩니다. 바로 그 순간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하나 자랑할 것도 칭찬받을 것도 없는 존재이지만, 그 얼굴을 바라볼 때 내게 반사되는 빛이야말로 영광을 드러내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지금 있는 이대로의 모습, 내 삶 그 자체가 하나님의 영광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살아있다는 것의 오묘함과 살아가는 일들의 질서와 모든 관계와 모든 느낌들의 총체적인 주권이 내게도 있다는 것, 하나님의 형상과 속성을 부여받았다는 것을 느낄 때, 어느 한 순간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의 찬양은 하나님의 공평하신 사랑에 대한 감사와 살아있음에 대한 기쁨, 그 영광을 나누는 감격의 표현인 것입니다. 어떤 형태로든 주어진 상황과 시간이야말로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값진 선물이기에 어느 한 순간도 헛되이 보내려하지 않고, 매 순간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 주어진 순간을 진심으로 즐기고 충만하려는 것이 은혜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합니다. 살아있음의 모든 행위와 느낌들이 우리의 찬양이고, 모든 순간이 하나님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딸아이와 이야기하면서 찬송가를 연주하는 것 만이 찬양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어떤 곡을 연주하던, 그 연주 실력의 깊이와 상관없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연주는 모두 찬양이라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크고 아름다운 나무에 활짝 핀 꽃들 만이 아니라 발에 밟히는 잡초들도 바람이 불면 소리를 내며 자기 몫의 찬양을 올려 드립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자신에게 주어진 길에 최선을 다하는 것을 기뻐하시지만 그 성과의 크고 작음을 견주어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 아니라 무조건의 사랑을 주시는 신실하신 분입니다. 가장 낮은 곳에서 간절하게 하나님을 찾는 목소리에 영광의 빛을 비추어 주시는 공평하심과 자비하심을 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