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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초점

[김동민] 순결한 삶, 하나님의 마음

이코스타 2003년 12월호

당장 예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음악”이라는 요소의 중요성을 강조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지나치지 않다. 내가 음악을 전공하는 사람이 아니라도 아마 그렇게 말할 것이다. 그렇기에 음악에 소질이 있는 사람들은 늘상 교회 안에서 대접 받는 위치에 있게 되기 쉽다. 교만의 유혹의 최전방에 서 있는 셈이다.

내가 공부하고 있는 학교는 음악전공 학생만 2000명이 되는 미국 내에서 가장 큰 규모의 학교이다. 그러다보니 적지 않은 수의 한국 유학생들이 공부하고 있고, 자연적으로 이 지역교회는 음악적으로 보았을 때 비교적 풍부한 자원을 가진 편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교회에서 섬기는 이들 모두가 순수한 동기에서 예배의 도구로서 섬긴다면야 좋겠지만, 모든 교회들이 다 그런 것 같지는 않다.

화두, 영주권 이야기

캠퍼스에서 1시간가량 떨어진 한인교회의 지휘자로 섬기는 형제가 있다. 얼마 전 그 교회에 다니는 어떤 분을 통해, 그 형제가 교회를 통해서 영주권 신청이 들어간 지 1년이 넘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 이웃교회에서 지휘자로 섬기게 된지 얼마 되지 않은 어떤 형제도 영주권 신청을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지휘자로 섬기면서 교회에서 영주권에 필요한 지원을 해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게 뭐 이상한 일인가 하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지금 내가 섬기고 있는 교회는 캠퍼스에서 약 1시간 30분 북쪽으로 떨어진 인디애나 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되었으며, 여러 면에서 다른 지역교회에 선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교회이다.

"동민아, 너 지휘하는 교회가 젤 크고 재정도 안정된 교회잖아. 그런데 지휘자한테 영주권 안 해준다디? 너희 교회 정도면 도와줄 수 있을텐데..."

3년 전 룸메이트였던 형이 툭하면 내게 던졌던 이야기이다. 솔직히 난 교회를 통해 영주권을 받는 것에 대해서 별 관심이 없어서 요청한 적도 없었고, 교회에 이런 이야기를 꺼낸 적도 없었다. 그런데 들려오는 이웃 두 교회의 이야기를 듣고, 담임목사님을 찾아 이야기를 나누면서, 말로만 듣던 영주권에 얽힌 뒷이야기들을 듣게 되었다.

A형제 이야기

더욱 마음 아픈 사실은 “음악” 이라는 전공분야를 통해서, 예배에 쓰임받기를 소원하고 결단한 유학생들에게서 조차 이런 현실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한 형제와의 만남이 기억난다. A형제는 한국에서 명문 음대를 졸업하고 언론사가 주최하는 콩쿨에서 상위 입상을 하여 미국으로 유학을 와서 승승장구하고 있었고, 주변으로부터는 신실하고 모범적인 그리스도인으로 인정을 받아 교회의 두터운 신임을받던 형제였다.

내가 A형제를 만났을 당시는 그 형제가 이곳에서의 학업을 잠시 중단하고 다른 지역에 갔다가 다시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었다고 했었다. 잘 알지도 못했던 A형제와의 짧은 시간의 대화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형제가 신실한 그리스도인일 것이라는 첫 인상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 형제가 공부를 중단하고 다른 지역에 갔다는 이유를 듣고 나서였다. 당시 A형제는 영주권을 해주겠다는 교회를 찾아 학업까지 중단한 채 부인과 아이들과 함께 다른 지역으로 갔었지만, 생각처럼 되지 않았는지 status문제로 다시 학교로 다시 돌아왔다는 것이었다. 얼마 후, 다시 그 형제의 모습을 볼 수 없다고 알게 되었을 때 이미 A형제는 영주권을 보장해 준다는 어느 교회의 전도사로 가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접할 수 있었다.

유혹, 그리고 그릇된 결정의 결과

이 글이 비리를 파헤치는 성격의 글이 아니라, 더 이상의 구체적인 언급은 하지 않겠지만, 현실적으로 볼 때에 여간 큰 교회의 full time음악 사역자가 아닌 이상, 혹은 교회가 한 사람을 전적으로 키워낼 장학사업의 목적을 가지고 지원하지 않는 이상, 이 일은 부끄러운 과정을 거치게 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일단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으려면 교회로부터 일정 수준의 사례를 지급 받아야 하는 것이 기본이고 이는 법적으로 문서화되어 있어야 한다. 이 금액은 어지간한 교회에서 떠안기엔 너무나 큰 부담이다. 사실 이민교회는 물론이고 한국에 있는 대형교회에서도 full time음악 사역자를 두는 경우는 흔하지는 않다. 특수한 경우가 아닌 이상은 full time으로 까지 사역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단순하게 한 사람의 잘잘못이 아니라, 교회 전체가 부정한 덫에 스스로 걸려드는 일이다. 약간의 편법으로 어렵지 않게 영주권이 해결도 되고, 교회의 입장에서는 헌신된 일꾼이 부족한 어려움을 쉽게 해결할 수 있는 현실적인 묘안처럼 보여 진다. 그러나 이것은 그릇된 결단이다. 이는 찬양이 순결한 제물로 드려져야 한다고 부르짖는 사역자들의 발목을 잡히는 것인 동시에, 가장 정직하고 성결 해야 할 예배를 담당하는 “말씀”과 “찬양”이라는 제일 중요한 부분의 치명적인 오점을 자초하는 것이다. 이것은 기독교인으로서의 윤리의 차원을 뛰어넘어 더욱 심각한 문제를 잉태하기도 하여, 실제로 이일로 교회 안에서의 사역이 dry해지고 목회자와 성도들 간의 불신을 초래하는 경우들을 심심치 않게 접하게 된다.

온전한 신뢰와 하나님의 인도하심

영주권을 무기로 일꾼을 확보하여 현실적인 어려움으로부터 회피하려는 교회도 문제이겠지만, 이를 공공연하게 요구하는 쪽 역시 문제이다. 이러한 케이스는 비단 음악을 전공하는 사람들에게 뿐만 아니라 신학을 전공하고 부교역자로 사역하는 유학생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는 이야기를 들어왔다. 순결하게 살아드리는 삶을 잠시동안 포기했을 때 얻게 되는 이익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그 현실적인 유혹을 무시하기란 쉽지 않다.

나 역시 주변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 부럽게 들려질 때도 있다. 어려움이 있을 때, 하나님의 마음을 잠시 잃어 버렸을 때, 비전에 대한 소망함이 없을 때가 그런 경우이다. 공부를 마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고, 어차피 그 기간동안 교회 성가대에서 섬겨야 하니 현실적으로 딱 들어맞는 장사가 아닌가 하는 계산이 머릿 속에서 맴돈다. 그럴 때 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하나님께서 나를 이곳에 머무르게 하시려는 계획이 있으시다면 길거리에서 쓰레기를 줍는 일을 하게 하실지언정, 순결한 삶을 저버리고 쉬운 방법을 택하게 하시지는 않을 것이다' 라는 생각이다.

순결한 삶, 하나님의 마음

온전한 삶으로 드리기를 고민하는 그리스도인들이라면 이러한 상당히 현실적인 필요들 앞에 순결한 마음을 유지하기 위한 의지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동시에 우리의 길을 인도하시고 열어주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한다면, 현실의 벽이 아무리 높고 두터워 소망이 없어 보인다 할지라도, 쉬워 보이는 길을 선택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여러분은, 흠이 없고 순결해져서, 구부러지고 뒤틀린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없는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면 여러분은 이 세상에서 별처럼 빛날 것입니다. (빌 2:15-표준새번역)

하나님은 일꾼을 부르신다. 하나님은 세상을 변화시키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 나가길 소원하고 우리들 가운데 헌신할 자를 세우신다. 설교자로, 교육자로, 과학자로, 예술가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영역 가운데 신실하게 사용하실 순결한 그리스도인을 찾으신다. 이 세상에서 별처럼 빛날 그런 흠 없고 순결한 자를 찾으신다.

에필로그

글이 영주권이라는 한 가지 이슈에만 집중이 되어진 것 같아 아쉬운 감이 있다. 혹시나 이 글이 건강한 교회나, 올바를 경로를 통하여 교회의 사역자로 헌신하는 더 많은 분들을 색안경을 쓰고 보게 만들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가 된다. 다시 한번 이야기하지만, 우리 주변에는 아직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순결한 동기로 교회 안과 밖에서 헌신하고 있음을 감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