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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신앙/이시훈의 살며 생각하며

[이시훈] 백설공주 이야기 2

이코스타 2002년 6/7월호

백설 공주의 왕실에서의 삶은 어쩌면 무척 외롭고 고립된 생활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녀의 곁에는 늘 자상한 유모가 있고 작은 일 조차도 다 거들어 주는 시종들이 있었겠지요. 그리고 그녀의 아름다움과 총명함을 칭송하는 많은 사람들의 호의가 있었겠지요. 그러나 그녀는 어머니의 따뜻한 품을 그리워하는 마음과 아버지의 다정함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가득했을 것이라고 추측해 봅니다. 무엇보다 그녀와 새 왕비를 비교하는 사람들의 호기심과 새엄마의 광기 어린 질투심은 어린 공주의 마음에 커다란 가시로 자리하고 있었을 겁니다. 많은 사람들 속에 있으면서도 그 누구보다 고립되어 있고, 마음 한편에 언제나 깊은 그늘이 있었으리라 짐작합니다.

모든 환경이 열악하기만 숲 속에서의 생활이 처음부터 순조롭고 즐거웠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청결하지 못한 주변 환경, 비좁고 불편한 집안, 거친 잠자리, 형편없는 음식과 의복...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것들이 부족한 생활은 그녀를 절망하게 했을 것입니다. 게다가 왕실에서 특별한 잔치가 있을 때나 볼 수 있었던 어릿광대 같은 난쟁이들이 일곱 명씩이나.... 맙소사! 어린 공주가 느꼈을 막막한 절망과 공포를 상상해 보십시오.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동물들의 울음, 귀귀스런 바람 소리. 도무지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은 익살스런 얼굴의 난쟁이들, 이제 스스로 먹을 것을 해결해야하고 생존해야한다는 엄청난 부담.. 동화 속에 그려진 즐겁고 아름다운 숲 속의 생활이 결코 처음부터 가능한 것은 아니었음이 틀림이 없습니다.

난장이들은 사회적으로 어떤 존재들이었을까요? 그들은 어릿광대의 역활을 강요당하며 살아가는 천민 계급에 속한 자들이었고, 사회로부터 철저히 소외 받는 계층이었습니다. 그러한 그들이 스스로 사회를 등지고 숲 속 깊은 곳에 작은 오두막을 짓고 서로 도우며 살아갑니다. 매우 작은 형태의 공동체를 이루며 살고 있는 것이지요. 그들의 공동체 생활에 어느날 예쁘고 총명한 천사와 같은 공주가 끼어 들게 되면서 우리들의 동화는 꿈과 같은 드라마를 엮게 되는 거지요.

소외된 자들과의 공동체적인 삶은 공주를 변화시켰을 겁니다. 더 이상 절망에만 기대어 있을 수 없이 바쁜 생활이 시작된 겁니다. 광대로만 보이던 난쟁이들과 협력해서 더 나은 생활 환경을 이룩해 나가는 동안 그들을 동등한 인격체로서 재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왕실에서 수동적으로 받기만 하던 모든 것들을 스스로 구하는 능동적인 자세로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난쟁이들과의 따뜻한 관계와 한 가족으로서 동행하는 삶 속에서 소외된 이웃을 향한 사랑을 배우고 의식의 전환을 갖게되었습니다. 비록 우스꽝스러운 외모를 하고 있을지라도 그들도 자신과 같은 기쁨과 슬픔을 느끼는 존재, 사고하는 존재, 그 안에 하나님의 동일한 숨결을 간직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고난을 통해 공주는 매우 성숙한 의식을 갖게 되었고 무엇 보다 소중한 사랑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왕실의 공주라는 위치를 잃은 것은 커다란 상실로 보입니다. 그러나 공주가 내적으로 얻은 변화와 성숙의 의미는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것입니다. 받기보다는 베푸는 생활, 사랑을 주고 받는 삶, 실천하는 삶의 의미를 경험으로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지혜가 아무리 뛰어나고 성숙한 인격을 가졌다해도 우리는 유혹 앞에 나약한 존재입니다. 공주의 앞에 나타난 마녀의 유혹은 얼마나 달콤한 것이었는지요?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한 탐스러운 사과를 아무 의심 없이 베어먹은 공주는 영원한 잠 속에 빠져듭니다. 영원한 잠이란 의식의 무방비를 의미합니다. 잃어버린 자아, 사랑의 부재, 관계의 단절, 죄에 대한 불감증... 이러한 것들이 완전한 어둠, 영원한 잠으로 상징되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내재한 죄성으로 인해 영원히 잠들 수밖에 없던 우리에게 거룩한 입맞춤으로 우리를 깨워 주시는 백마 탄 왕자님을 만날 때 우리의 존재는 거룩함을 회복하게 됩니다.

우리들의 백설 공주는 드디어 왕자님의 손을 잡고 영원한 왕국을 향해 걸어가는 것으로 이야기를 마치렵니다. 혹, 당신은 잠자는 공주님이십니까? 이미 왕자님의 키스를 받았음에도 눈치 채지 못하고 계신 것은 아닌지요? 그의 이름을 조용히 불러보시길 바랍니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고린도 전서 13 :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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