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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공동체/미주지역 학생사역

[이주연]유학생 사역과 말씀 묵상

(2004년 12월호에 실렸던 글입니다.)

말씀을 묵상하는 것은 특별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의 삶을 따르기로 결단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말씀을 통해서만 그 길을 갈 수 있다. 말씀 묵상이라는 주제는 두 가지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는 ‘말씀을 왜 묵상해야 하는가?’ 라는 말씀의 중요성의 차원과 둘째는 ‘어떻게 말씀을 묵상할 수 있는가?’ 라는 방법론적인 차원으로의 접근이다.

말씀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모든 만물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비롯되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다; 히브리서 11:3). 모든 것의 근본은 하나님의 말씀이시다. 우리가 이 말씀을 모르는 것은 하나님을 모르는 것이고 하나님이 태초에 계획하신 하나님의 영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만물을 붙잡고 계신다; 히브리서 1;3).

말씀 묵상이란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묵상하는 것이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한복음 1:1). 하나님께서 태초에 세상을 만드시고 죄로 인하여 사망에 이르고 타락한 인간의 마음을 회복하는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이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요한복음 1:4). 생명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가 묵상함으로, 즉 우리의 온 생각에 채움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생명을 누릴 수 있고, 어둠 가운데에 있는 삶에서 빛을 바라볼 수 있다. 또한 하나님이 본래 우리에게 주고자 하신, 참된 의미의 삶을 인식하지 못하던 눈이 띄어지며, 영적인 죽음에서 영의 세계를 볼 수 있는 영적인 생명을 얻게 된다. 곧 타락한 인간이 온전히 회복될 수 있는 길은 생명의 말씀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안에 채움으로, 즉 말씀을 묵상함으로 가능하다.

또한 말씀을 묵상하는 것은 우리의 구체적인 삶의 모습에서 유익을 준다. 말씀 묵상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를 형통하게 하신다. 여호수아에게 하나님께서는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며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여호수아 1:8)” 라고 말씀하신다. 두려워하였던 여호수아가 형통할 수 있었던 것은 그 힘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데서 비롯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시편 기자 또한 복 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시 1:2) 라고 기록하고 있다. 한편 이런 복이나 형통이 비단 한 개인에게만 머무는 것은 아니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시 1:3) 한 사람의 형통은 또한 그 열매를 통해 다른 사람의 삶에도 형통을 가져올 수 있다. 여호수아의 형통을 통해 이스라엘 민족을 구했듯이, 한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함으로 얻는 삶의 형통은 우리 주변의 많은 영혼들에게도 함께 할 것이다.

말씀 묵상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을 닮아갈 수 있다. 우리 안에 말씀이 없을 때, 우리의 모습을 디모데전서 기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에 착념치 아니하면 저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훼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려… (디모데전서 6:3 5). 우리가 말씀에 붙들리지 아니하면 타락한 죄의 본성에 지배를 받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살아 있고 운동력이 있는 말씀이 우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할 때 (히 4 :12), 우리는 육신에 노예된 자가 아니라 온전히 말씀에 붙들려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갈 수 있게 된다.

그럼 어떻게 하면 더욱 하나님의 말씀의 깊은 묵상 가운데로 들어가며 그리고 온전히 그분의 진리를 깨달을 수 있을까?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은 영이시고 인간은 육의 세계에 있기 때문에 인간의 지혜로는 영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을 수 없다 (고전 1:21)는 것이다. 어떻게 영이신 예수 그리스도, 즉 말씀을 우리가 이해하고 마음에 담을 수 있을까? 요한복음 3장 5 6절에서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고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즉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듭나지 않으면 영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다. 우리가 회개를 통해 거듭날 때에 비로서 영이신 말씀을 깨닫게 된다. 우리는 또한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말씀을 깨닫게 된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요14:26). 묵상에는 반드시 성령님께서 함께 하셔야 한다. 말씀과 성령님은 함께 하신다. 말씀 충만이 곧 성령 충만이라고 할 수 있다. 묵상을 할 때는 먼저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기도로 시작해야 한다. 그러면 성령께서 말씀을 조명해서 깨닫게 해주신다. 말씀을 사모함은 곧 성령을 사모하는 것이다.

말씀이 궁금해서 처음 보기 시작한 성경책에서, 나는 끊임없이 발견하는 보물 같은 말씀을 만나며.. 말씀을 묵상하는 것은 보물을 찾는 것과 같다는 다른 분들의 말씀에 깊이 공감을 하게 된다. 기도 가운데, 묵상 가운데, 그리고 삶의 현장 구석구석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그분의 뜻을 알려주심을 경험하게 된다. 말씀으로 충만한 것이, 예수님을 내 안에 가득채우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를 경험하게 하신다. 그러나 그것 또한 하나님의 크신 은혜임을 고백한다. 말씀을 사랑하게 하심도 하나님의 은혜임을 안다.

특별히 유학생 사역 중에서 말씀 묵상의 중요성은 더 없이 크다. 우리가 미국 유학을 오게 되면 배울 것이 많고 해야 될 일들이 상대적으로 많게 느껴지기 때문에 딴 짓(?)은 되도록 하지 않고 영어 공부나 다른 학위 공부에 더 열중하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나님을 묵상하고 그분을 알아가는 것보다 학위를 따고 영어를 마스터하는 것이 더 중요하게 느껴지게 된다. 그러나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고 말한 바울의 고백처럼 (빌3:8) 말씀 속에는 세상의 어떤 지식이 줄 수 없는 귀한 보배가 숨겨져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