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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신앙/정진호의 떡의 전쟁

[정진호] 제 5 떡 - 광야의 축복 -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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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으로서 만나의 체험이 있는가? 하늘에서 공급되는 광야의 떡, 만나...... 떡의 본질을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만나를 알 필요가 있다. 만나를 알기 위해서는 광야 체험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광야 체험은 반드시 홍해 체험에 이어서 따라온다.

우리 가족이 미국과 한국에서의 삶을 접고, 중국으로 들어간 사건은 적어도 우리 부부에겐 영원히 기억되며 자손들에게 들려줄만큼 깊고 생생한 홍해바다의 체험이었다. 그러나 홍해 바다를 건넜던 이스라엘 백성이 그러했듯이 과연 우리의 믿음이 홍해를 건널만한 믿음이었는가 반문해 본다면 그렇지 않았음을 곧 깨닫는다. 10년전의 그 결단을 두고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우리 부부의 믿음에 탄복하며 더러는 칭찬한다. 그 당시 반대하고 이해 못하던 가족과 선후배들 조차 이제는 하나님이 행하신 일임을 인정하고 심지어 부러워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그 당시의 연약했던 믿음으로 어떻게 그 홍해를 건넜는지 기억하고 있는 우리는 그같은 칭찬을 들을만한 사람도 아니며 그런 믿음을 가진 적도 없음을 솔직히 고백해야만 한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스라엘 백성에 대하여 "믿음으로 저희가 홍해를 육지같이 건넜(히 11:29h)"다고 기록하지만, 그 사건의 경위를 자세히 미루어 살피면 결코 그렇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수시로 모세를 두고 원망하며 애굽으로 돌아갈 것?요구하던 그 믿음없는 이스라엘 백성을 강제로 등 떠밀어, 뒤에서는 바로의 군대가 무섭게 쫓아오고 앞에는 홍해바다가 가로막힌 절체절명의 순간을 연출한 후에, 어쩔 수 없이 건너게 하신 것은 바로 하나님 자신이셨던 것이다. 그리고 나서 세월이 지난 후에 오히려 슬쩍 "너희가 믿음으로 홍해를 건넜다"고 칭찬해 주시는 것이다. 자식을 세워주는 부모의 마음이다.

애굽의 노예 생활에 깊이 물든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을 돌려 애굽을 떠나도록 하는 것은 바로의 마음을 돌리는 일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애굽에 내려진 12가지 재앙은 비단 바로의 마음을 두렵게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떠나도록 허락하기 위한 것 뿐아니라 함께 그것을 목격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을 깨달아 알게 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죄와 욕심에 깊이 물든 인간들이 자기가 누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기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베데스다 연못가 행각 아래 들어누워 동냥으로 살아가던 삼십팔년된 병자는 죄와 죽음의 족쇄에 갇혀 있으면서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전형적인 표상이다. 그들은 이미 스스로 낫고자 하는 노력도 소망도 없이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노예적 근성에 물든 채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그 자리는 최소한 자신들이 먹어야할 끼니를 제공하고 비를 피할 장소가 되었다. 그곳은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안전한 장소처럼 느껴졌고 오랜 습관 속에서 그들은 오히려 그곳을 즐기고 있을 수도 있다. 자신이 이미 죽을 수 밖에 없는 심각한 병에 걸린 병자라는 사실은 일상 속에서 잊혀진지 오래다. 요행히 물이 동할 때 먼저 연못에 들어감으로 병이 나을 수 있다는 속설은 그들이 베데스다를 떠나지 못하도록 하는 구실에 불과했다. 따라서 몸을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삼십팔년된 병자에게는 자신이 병을 고치지 못하리라는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먼저 연못에 들어감으로 자신은 항상 그 자리에 머물러 있을 수 밖에 없다는 체념이 그를 묶어두고 있었다. 오직 그의 관심은 그 자리를 고수하며 하루하루를 연명할 떡을 구하는 것, 그것 뿐이었다. 이 상황 속에서 그가 자신이 누웠던 자리를 들고 벌떡 일어나는 기적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예수를 만나는 방법밖에는 없었던 것이다.

예수를 만나는 체험, 그것은 바로(Pharaoh)의 통치와 바알(Baal)의 노예로 살아가던 자들에게 임하는 해방 선언이다. 떡의 노예로 살아가던 자들을 향해 외치는, 자유인으로의 부르심이다. 유월절 어린양의 흘린 피를 통해 죽음과 삶의 경계를 너머선 후, 홍해 바다를 건너게 하신 은혜의 체험이다. 아직 자유인이 되기에 불충분하며 부자격하며 준비되지 않은 사람을 오직 예수의 피로 자유인으로 법적 선언을 해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홍해 바다는 십자가 안에서 누리는 일회적인 구속의 사건일 뿐아니라 앞으로 지속적으로 임할 광야 생활에 대한 시작의 종소리이기도 하다. 따라서 법적인 자유를 너머서서 생활 속의 자유인이 되는 것은 지속적인 훈련을 필요로 한다. 광야 생활, 그 특별한 체험을 통해 비로소 진정한 자유의 의미를 배워간다. 떡으로부터의 자유...... 그것은 하나님이 자녀들에게 주고 싶어하는 아주 특별한 선물이기도 하다. 떡은 숭배의 대상이 아니라 자녀들이 누릴 권리이기 때문이다.

우상이 되어버린 떡에는 힘이 있다. 떡이 우상이 되면 스스로의 권리를 행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인간은 떡에 예속된 노예로 전락한다. 주종관계가 뒤바뀌게 되는 것이다. 인간이 떡을 숭배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떡은 단순한 물질을 너머 인격적, 영적인 존재로 탈바꿈한다. 예수가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라고 말했을 때 사용한 단어가 그당시 사람들이 섬기던 물신(物神) 맘몬(Mammon)이었음을 상기해야 한다. 떡은 더 이상 경제적인 문제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지배하고 조정하고 또한 파멸로 인도하는 영적인 존재로 군림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 이외의 피조물에게 속박을 느끼는 순간부터 자유를 갈망하게 된다. 하나님의 형상에서 온 자유의 영을 받아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많은 종교와 철학에서 이 문제를 끊임없이 다루어 왔다. 어떻게 떡의 속박에서 벗어날 것인가? 떡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한 노력으로 불가(佛家)에서는 무소유(無所有)를, 도가(道家)에서는 무위(無爲)을 이야기한다. 떡을 외면하든지 떡을 무시함으로써 떡을 초극(超克)하고자 하는 것이다. 전자가 적극적 도피라면 후자는 소극적 도피다. 그러나 성경의 가르침은 다르다. 떡은 경계의 대상도 경시의 대상도 아니다. 떡은 떡일 뿐이다. 떡은 떡으로서의 존재가치를 지닌 피조물로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다. 그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홍해를 향해 떠나라 하는 것이다.

(2)

해방의 기쁨은 잠시...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 앞에는 광야가 펼쳐진다. 광야는 두려움과 불안을 가져오고 곧바로 모세를 향해 원망의 목소리를 발하게 된다. 차라리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가 더 좋았다고 회상하기 시작한다. 비록 노예생활이었지만 애굽의 고기가마 옆에서 떡과 고기를 배불리 먹던 기억이 나는 것이다. 그들의 원망에 하나님은 여호와의 영광을 나타내시며 하나님의 방법으로 응답하신다. 도저히 광야에서 기대할 수 없는 신비한 방법으로 아침마다 만나를 내리시는 것이다. 작고 둥글며 서리같이 세미한 것, 진주처럼 빛나며 꿀처럼 달콤한 그 만나를 처음 대하였을 때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이 어떻했을까? 만나는 단순한 일용할 양식 그 이정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돌보심을 나타내는 세미한 음성이요 속삭임이었다. 너는 내 것이라... 내 백성이라... 이제 내가 너를 먹이고 돌볼 것이다 하며 어루만지시는 임마누엘의 체험이었다.

중국으로 가기로 모든 것이 결정되고 마침내 떠날 날을 기다리고 있던 어느 날, 평소에 우리 가족을 아껴주던 한 여집사님이 집을 찾아왔다. 아이와 아내를 위해 눈물로 기도를 해주던 그녀는 일어나면서 하얀 헌금 봉투를 내놓았다. 처음 당해보는 일이라, 나는 그 봉투를 받아들고 일 순간 무척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분의 고마운 마음을 모르는 것도 아닌데, 한편으론 야릇하게 마음이 상했다. 마치 내면 깊숙한 곳에 감추어두었던 남에게 보이기 싫은 치부가 들어난 것 같은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누군가 건드려서는 안될 내 자존심을 건드린 것 같은 아주 묘한 느낌이 들었다. 예민한 아내 역시 그 느낌을 받았는지 집사님이 집을 떠나자마자 곧 울음을 터뜨렸다. 서럽게 엉엉 우는 아내를 안아주며 토닥거려 달래는 동안 나는 문득 깨달았다. 앞으로 우리가 걸어갈 인생이 어떤 모습으로 전개될 것인지를...... 그동안 살아오면서 나와 내 아내가 스스로의 힘으로 살 수 있다고 믿고 살아가던 그 아성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이제는 더 이상 내가 벌어서 먹고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 철저하게 하나님을 의존하여 살 수 밖에 없는 그 땅으로 떠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아내의 울음 앞에서 초라해지고 상실감에 빠져 있던 나에게, 그 순간 어디에선가 은은하게 내면의 깊은 곳을 어루만지며 들려오는 음성이 있었다.
"진호야, 많이 아프냐?"
내가 아내를 달래며 어루만지는 그 손길로 하나님이 나를 만지고 계셨다.
"그 자존심, 네가 빼앗기기 싫어하는 그 자존심도 이제 나를 위해 내려 놓아라."
그리고 출렁이는 감동으로 위로의 성령님이 찾아오셨다.
"아무 염려하지 말아라. 이제 앞으로는 내가 너희를 책임지겠다."

하나님은 그 약속을 지난 10년간 신실하게 지키셨다. 그 신실한 하나님을 체험했기에 이제는 앞으로 다가올 또 다른 10년이 두렵지 않다. 연변과기대의 모든 재정은 전 세계에 흩어진 동역자들의 후원에 의해 이루어진다. 해외에서 들어간 교직원 역시 자원봉사 시스템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연변과기대의 교직원들은 반드시 자신의 가정을 후원할 후원자들을 스스로 확보하지 않으면 안된다. 서른이 너머 늦깍이 신앙생활을 시작한 탓에, 교회 배경도 별로 없고 동역자를 구하기도 힘들었던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처음 작정하고 기도했던 만큼의 후원자를 정확히 붙여주셨다. 더러는 세월이 지나남에 따라 열정이 식은 사람들이 빠져나가고 기억속에서 잊혀져간 사람들도 있었지만 또 그만큼 새로운 단체와 개인들을 붙여주셔서 항상 우리가 필요한 만큼의 물질로 채워주셨다. 북경의 한 컨퍼런스에서 처음 만나서 사귀게된 L박사님은 우리 가정이 재정적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어떻게 알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방법으로 우리를 도와 주었다. 초창기 연변과기대의 재정상황은 아직 체계가 잡히지 않아서 우리 가정의 후원계정을 통해 학과 살림을 운영해가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내 자신 역시 내 구좌에 잔고가 남아있는 한 그것을 어떤 모양이든 사용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서서 공적인 일임에도 불구하고 학교재정보다는 개인 재정을 써서 활동하는 일이 더 많았다. 그 당시는 항상 마음 속에 넘치는 은혜가 있었기에 풍성함이 있었던 것 같다. 학교일로 출장을 가도 내 구좌에 돈이 남아있는 한 으례 자비로 다녔고, 주말마다 학생들과 교직원들을 집으로 초대하여 먹이는 것이 너무나 기뻤다. 모든 것이 너무나 당연했고 항상 감사했다.

삼년 후, 하나님의 뜻에 의해 한동대에서 연구년을 가질 때, 한국에 IMF 사태가 터졌다. 나는 마침 한국서 월급을 받게 되어 그 어려움을 무사히 통과했지만 중국에 남아있는 동역자들의 어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특별히 한국에서 건너간 가정들은 후원이 끊기고 대폭 삭감되었다. 그들의 어려움을 전해들은 나는 어려운 가정 한 가정을 택하여 익명으로 조금씩 돕기 시작했다. 그것은 물질적 도움 이전에 한 몸을 이룬 지체와 동역자의 어려움을 함께 느끼기 위한 내 마음의 표시였다. 그러던 중 우리 가정도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우리 가정의 재정 상태도 악화되었다. 어느 달은 마침내 (-) 밸런스를 기록하게 되었다. 그러자 먼저 떠오른 것이 우리 가정도 이렇듯 힘든데 어떻게 남을 도울 형편이 되겠는가 하는 생각이었다. 후원회에 연락을 하여 그 가정 돕는 것을 중단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이 더 답답하고 불편했다. 이 작은 어려움에 쉽사리 흔들리는 내 자신의 믿음없음 때문에 더 그랬던 것 같다. 며칠을 기도하는 가운데 다시금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던 믿음으로 다시 회복이 되었다. 그리고 후원회에 재차 연락하여 그 가정 돕는 것을 계속하겠다고 부탁했다. 그러자 다시 평화와 기쁨이 밀려왔다. 그것이 바로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의 마음이라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 달부터 우리 가정의 재정은 신속히 회복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우리는 매년 돌아가면서 한 가정씩 돕는 일을 멈추지 않고 있다.

중국에 오기 전에는 대학 강의와 개인 렛슨으로 항상 자신이 번 돈을 충족히 가지고 살아가던 아내가 중국 생활을 시작하면서 처음 겪어야 했던 어려움 중 하나가 재정문제였다. 이제는 항상 모든 재정을 남편에게 의존적으로 타서 생활할 뿐 아니라 그나마도 항상 부담감을 가지고 물건을 사야만 한다는 사실이었다. 하기사 그 당시 연길의 백화점에서 무엇 하나 사려고 해도 살만한 물건도 없었지만, 미국과 한국서 자기가 벌어서 원하는대로 쇼핑을 하고 지내던 그녀에게는 그 생활이 여간 답답하지 않았을 것이다. 더구나 자신의 음악적 재능을 제대로 발휘도 못하는 상황 속에서, 배우는 학생들이 자신이 받고 있는 렛슨이 얼마나 값비싸고 소중한 것인지조차 알지 못하고 더러는 약속 시간을 안지키고 빼먹거나 하면, 아내는 집에 돌아와 공연히 나에게 종알대곤 했다. "이 녀석들이 도대체 뭘 몰라도 한참 몰라. 미국서 한 타임 렛슨에 백불씩 받던 그 비싼 렛슨을 자기 맘대로 빼먹고..."
그러나, 기특한 것은 지난 10년간 더러는 힘들어 해 가면서도 그 공짜 렛슨을 한번도 멈추지 않고 꾸준히 제자들을 키워냈다는 것이다. 아내에게도 홍해를 건널 때 자신이 받았던 은혜가 얼마나 컸던지, 만나는 모아두어서는 않된다는 점과 거저받은 것을 거져 주어야한다는 광야생활의 원칙만은 분명히 서 있었던 것 같다. 오직 그날 먹을 양식을 그날 공급해주는 일용할 양식에 대한 훈련, 광야의 만나는 우리 부부의 물질관을 서서히 바꾸어가고 있었다.

(3)

모든 종교에서 출가(出家)는 매우 중요하다. 그것은 소명(召命)의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교에서의 출가와 성경에 나타난 출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불교의 출가가 세상의 모든 명예와 소유와 욕심을 버리고 속세를 떠나는 것이라면, 성경에서 출가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소유를 지닌 채 떠난다. 어디 그 뿐이랴? 싯달타는 왕자의 지위와 처자를 모두 버리고 속칭 속세의 인연을 모두 끊고 집을 나섰지만, 아브라함은 자신의 모든 소유뿐 아니라 아내와 조카까지 데리고 집을 나선다. 불교의 출가가 속(俗)을 버리고 성(聖)을 취하는 것이라면, 성경에 나타난 기독교적 출가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세상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삶의 방식과 거처를 옮길 수는 있어도 성속(聖俗)의 구분이 있을 수는 없다. 베드로가 예수를 만나 그물과 배를 버려두고 떠나는 장면은 사람을 낚는 어부로 부르시는 소명 앞에서 자신의 삶의 방식을 전환한 것이지 세상을 등지고 산으로 들어가기 위한 불교적 출가와 동일시 할 수 없는 것이다. 베드로를 비롯한 여러 사도들도 사역 현장에 아내를 데리고 다녔음을 기억하라.(고전 9:5) 또한 예수가 제자도를 가르칠 때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마 19:29)"고 하신 말씀이나, 누가복음 14장에서 부모, 처자, 형제, 자매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며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제자가 되지 못한다고 하신 말씀도 의미를 바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모든 소유를 버려야만 제자가 된다고 하신 말씀이 아니라, 그 모든 것 보다 복음이 우선해야 한다는 말씀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 어떤 것도 복음보다 더 소중하게 여길 수 없다는 말이다. 복음은 곧 생명을 의미한다. 따라서 어떤 소유 가치도 생명가치 보다 앞설 수 없다는 예수님 특유의 강조적 어법이다. 예수의 가르침 속에는 가족과 소유를 버리고 산 속으로 들어가라는 불교적 출가의 개념을 어느 곳에서도 발견할 수 없다. 소유를 인정하되 그 소유를 언제든지 포기할 수 있도록 생명 가치 앞에서 상대화 시키는 것이다.

떡을 의식적으로 물리적으로 멀리하는 불교식 출가라면 오히려 문제는 쉬워진다. 그러나 기독교의 출가는 떡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치열한 삶의 현장으로의 부르심이기에 더 어려운 것이다. 그곳에는 내가 스스로 취하는 떡으로 살아가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께 의존하여 살 수 밖에 없는 광야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비로소 떡으로부터의 자유케 되는 방법을 체험적으로 배워가게 된다. 그것도 한 두해가 아니라 사십년 간을 말이다.

떠나는 연습은 우리 인생에 항상 유익을 준다. 이사를 가건 이민을 가든 혹은 유학을 위해 새로운 소망을 품고 떠나든지 살아가던 거처를 한번씩 정리해 보는 것은 정말 필요하다. 묵은 삶의 찌꺼기와 먼지들을 털어내고 내가 진실로 가진 것들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는 중간 점검이 되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얼마나 불필요한 혹은 있으나마나한 것들을 껴안고 살아왔는지를 알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이시는 비전을 따라 안락한 삶을 뒤로하고 미지의 세계를 향해 발을 내딛는 것은 그 이상의 의미를 던져준다. 그것은 마치 영원을 향해 장막을 옮기는 순간을 미리 약간 체험해 보는 것과도 같다. 세상적 물질 가치의 덧없음을 조금씩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소유를 초월한 존재의 세계로 발길을 돌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10년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둘 때, 사람들이 가장 많이 던졌던 질문들이 있다. "노후 대책은 어떻게 할거냐?", "앞으로 자녀 교육은 어떻게 책임질거냐?" 그 질문들 앞에서 당황하며 두려움에 싸인 아내와 아이를 안쓰럽게 돌아보던 생각이 난다. 성령께서 담대한 용기를 주셔서 "우리 크리스천들은 이미 사후대책이 다 마련된 사람인데 왜 자꾸 노후대책 노후대책 합니까?"라고 반문했었다. 그러나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내 마음 속에도 막연한 두려움이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타고 다니던 차를 처분했다. 중국으로 이삿짐을 부치고 난 후 이튿날 아침, 텅빈 아파트에 기대어 앉아 세 가족이 서로의 얼굴을 물끄럼이 쳐다보던 때, 갑자기 밀어닥쳤던 상실감과 두려움을 잊을 수 없다. 마치 내 것인양 붙들고 살아오던 모든 것들을 청산하고 마침내 하나님의 손에 우리 가족의 전 존재를 의탁한 그런 기분이 드는 순간이었다. 사실 그 순간 우리가 떡의 문제를 초월한 사람들이었다면 마땅히 평온과 기쁨으로 충만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지 못했다. 그러나 그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우리 부부를 개인적으로 친히 찾아오셔서 세미한 음성으로 위로 하셨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내 속에서 낙망하며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시 42:5)"
그 말씀이 우리 부부를 여러 가지 어려움과 폭풍우 속에서도 지난 10년간의 광야 생활에서 흔들림없이 지켜주었다. 자기 소유의 차 없이 집 없이 살아가는 연길의 삶 속에서 나그네의 자유함과 천국의 소망을 배웠다. 큰 아들 다니엘은 반듯하게 잘 자라 주었고, 보석 같은 둘째 아들 데이빗을 얻었다. 비록 세상적인 건강보험(health insuarance)은 없었어도 10년을 건강하게 지낼 수 있었다. 물론 아직도 노후대책이 세워진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을 믿는 그 믿음은 더욱 투터워졌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만나를 내리실 때, 약속하신 40년 광야생활에서 뿐아니라 요단강을 건너가서 첫 유월절을 지킨후 그 땅의 소산을 먹기까지 닷새간 더 만나로 먹이셨던 그 세밀하신 하나님을 묵상하며 끝까지 책임지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알아간다.(수 5:12)

광야는 하나님을 경험하고 만나는 축복의 통로이다. 하나님만 바라는 삶... 그 속에서 우리는 일용할 양식을 통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그리고 떡에 대한 우리의 주권을 회복하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