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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초점

[조한상] 역사의 공동체, 우리의 공동체

이코스타 2004년 2월호

들어가며

이것은 누구나 경험이 있는 일이 아닐까. 이를테면, 뭔가 새롭게 깨닫고, 그 일을 시작하고 애쓰다가, 문득 멈추어 살펴보니, 사람들이 나를 비웃는 것만 같고, 뭔가 잘못 되 있는 것도 같고, 또 너무도 외로울 때가 있을 때 말이다. 하지만, 조금만 돌아보면, 그 일이 결코 나만의 깨달음도 아니요, 나 혼자 가고 있는 길도 아닐 뿐만 아니라, 수 많은 우리의 신앙의 선조들이 끊임없이 이루기 위해 그토록 애써오던 바로 그 일이라는 것을 깨닫고 얼마나 위안이 되었었던가. ‘초대교회의 공동체로 돌아가자’는 일은 더욱 그러하다.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님이 임재하신 후 시작되었던 성령 공동체는, 초대교회를 거쳐 속사도 시대에도, 또 기독교가 국교화된 중세에도, 종교개혁 시대에도, 근세에도, 그리고 지금 바로 우리가 사는 이 세대에 이르기까지 단 한번도 중단된 일이 없이 이어져 오고 있다.

이번에는, 성령 하나님께서 어떻게 교회의 역사 속에서 자신의 공동체를 위해 일하셨는지를 살펴보고, 그 역사를 통해 지금의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점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하지만, 이 글의 목적이 공동체의 역사를 공부한다기 보다는, 그 역사를 통한 우리에게로의 적용을 생각해 보는 것이기에, 순서를 다소 바꾸어 보고자 한다.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점들을 우선적으로 언급하고, 그 역사의 사건들을 간단하게 짚어 보았으면 한다.

1. 공동체성 회복의 움직임이 시작했던 때의 특징

(1) 조직교회의 부패에 대한 개혁이었다
교회사에서 볼 때, 공동체성의 회복을 위한 움직임이 있을 때마다 예외 없이 볼 수 있는 현상은 당시 조직교회가 부패했다는 것이었다. 정치적인 다툼이 있거나, 도덕적인 타락이 있어, 개혁에 대한 요구가 팽배해 있을 때였다. 모든 개혁이 공동체성을 띠고 이루어 진 것은 아니지만, 상당히 많은 부분 공동체성을 포함했었다.

(2) 영성 회복에 대한 움직임이었다:
겉으로 보기에 공동체성 회복에 대한 운동은 조직 구성에 관한 문제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 그 내면의 동기들을 살펴보면,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회복하고자 하는 영성에 관한 관심이었슴을 알 수 있다. 급진적으로 세상을 변혁시키려는 사람들이 간혹 있기는 했지만, 주로 공동체성을 추구한 무리들은 예수그리스도의 진정한 제자가 되려는 몸부림으로부터 시작했었다.

(3) 기존 질서로부터 배척 받았었다:
초대교회와 같은 공동체성을 찾고자 하는 노력들은, 늘 기존의 세력들로부터 배척을 받았다. 보수세력에게는 너무 진보라고 배척 받았고, 또 자칭 진보라는 세력에게는 보수 세력이라고 외면당했다. 어떤 움직임은 기존의 교회 질서 내에서 공동체성의 회복을 위해 힘썼고, 또 어떤 운동은 조직 교회 밖에서 이루어 졌으나, 양쪽 모두 초기에는 상당한 반대에 직면했던 경우가 허다했다.

(4) 철저했고, 가시적이었다.
공동체성 회복을 위한 움직임의 초기 단계에 나타나는 특징의 또 한가지는, 그들 모두가 철저한 순종과 헌신이 있었고, 눈으로 볼 수 있는 공동체로 세상에 드러났다는 점이다. 입으로만 회복과 갱신을 논하는 공허한 외침이 아니라, 삶으로써 그리스도인됨을 보이는 생활 공동체로 드러났었다. 각자의 소유를 공용하고, 시간과 노동으로 서로를 섬기는 가시적인 모임이었다.

2. 각 공동체 모임이 쇠퇴하게 될 때의 특징

(1) 교만해 진다.
공동체성이 강한 모임으로 세상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되고, 알려지게 된 모임들이 쇠퇴하게 되는 첫번 째 이유는, ‘우리는 다른 사람과 다르다’라는 교만이다. 하나님 앞에 철저히 낮아지겠다고, 또 완전한 제자의 삶을 살겠다고 시작한 공동체이었지만, 서서히 사람들로부터 칭찬과 존경을 받게 되고, 또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열매가 다른 사람들과는 사뭇 다른 상황이 장기화됨에 따라, ‘나는 다르다’라는 영적 교만함을 가지기 쉽다. 이 교만이 다른 모든 문제의 원인이 되기 십상임에도 불구하고, 눈에는 잘 드러나지 않기에 더 무서운 문제가 되곤 한다.

(2) 동기가 율법화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하게 지키고자, 말씀을 연구하고 세분화하고, 그 말씀대로 살려고 그토록 애썼던 바리새인들이, 그 말씀의 본질을 상실한 채, 얼마나 자신이 만든 원칙을 율법화하고 고착화시켰는지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똑같은 현상이, 공동체 운동에도 발생하여, 예수님의 철저한 제자가 되고자 했던 원칙들이 자꾸만 율법화되어 그들을 얽매고, 또 서로를 정죄하는 잣대가 되곤 했다. 물론 그 원칙조차 지키지 않아 문제가 된 경우도 허다하지만 말이다.

(3) 조직화하고 세력화한다.
공동체 회복의 움직임이 어느 정도 정착을 하게 될 때, 그 모임의 규모는 이미 상당히 커져 있기 마련이었다. 그 규모의 모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처음의 의도와 상관없는 조직이 생기게 되었다. 또한, 세상의 존경과 관심을 받으면서, 세상에 대한 영향력이 커지게 되고, 많은 경우엔 세력화해서 스스로 붕괴하고, 또 다른 갱신을 불러 일으키는 경우가 많았다.

(4) 물질이 문제를 일으킨다.
공동체성이 강했던 모임의 쇠락에는 늘 물질이라는 복병이 존재했다. 세상에 몸을 담고 사는 우리들에게 물질은 꼭 필요한 것이지만, 그 물질이 지나치면 패망을 불러오게 마련이다. 무소유 원칙을 세우고 시작했던 수 많은 공동체들이, 이후 자발적인 기증과 유산에 의해 재산문제가 발생하고, 또 그로 인해 타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는 것은 우리 인간의 죄성을 잘 드러내는 장면이라 하겠다.

3. 공동체 역사를 통해 우리가 배울 점.

(1) 공동체의 형태는 다양했다
때로는 교회의 조직 내에서, 때로는 조직교회 밖에서 이루어 지기도 했다. 혹은 수도원 공동체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했고, 또는 가난한 자와 함께하는 도시공동체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했다. 기혼자들 중심의 모임이 있는가 하면, 미혼자들만 모이는 공동체도 있었다. 현재 우리가 추구할 수 있는 공동체에도 여러가지 모습이 존재한다. 교회 내의 소그룹을 통한 작은 공동체의 실현부터, 가난한 자들과 함께 하고 삶을 나누는 생활 공동체, 더 나아가 형제 자매가 함께 하며 소유까지 나누는 수도원적 공동체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하지만, 어떤 형태를 취하던, 우리는 반드시 내 생명과 같은 공동체 안에 있어야만 한다.

(2) 때로는 비난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앞에서 살펴 보았듯이, 공동체성 회복을 위한 운동은 진보, 보수 양쪽으로부터 비난을 받기 일쑤였다. 만일 우리가 건강한 공동체성을 회복하기 위해 애쓰다 보면, 때로는 오해도 받고 비난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 어느 때보다도 공동체성의 상실이 심각한 현대 조직 교회 내에서 아무런 갈등없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면, 그것이 더 문제가 아닐런지 모르겠다.

(3) 물질까지 나누는 가시적인 형태여야 한다.
공동체는 이론이 아니라, 생활이다. 내 집, 내 가정, 내 지갑을 열 각오없는 공동체는 존재할 수 없다. 선조들이 그러했듯이, 철저한 순종과 눈으로 볼 수 있는 공동체만이 건강하다고 하겠다. 초대교회 사람들에게 개인 소유가 있었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확실한 것은 그들이 자신의 소유를 자기의 것이라 하지않았고, 그들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4) 공동체 모임의 쇠퇴기를 기억해야 한다.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고 애쓰고 나서, 우리는 늘 바리새인을 기억해야 한다. 나만 특별하다는 교만한 마음을 조심해야 하고,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모임이 조직화 되는 것을 우려해야 한다. 역사에서 보듯이, 한 개혁은 시간이 흘러 또 다른 개혁을 불러오곤 했다. 우리 스스로가 늘 개혁의 자세로 산다면, 건강한 공동체성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5) 바로 지금 이곳에서 시작해야 한다.
역사를 보면, 공동체성을 이룩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머뭇거리지 않았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작은 순종, 하지만 철저한 순종을 시작한 것이 커다란 결과를 이루게 되었다. 특히 유학생들이 빠지기 쉬운 오류 중의 하나는, 졸업한 이후로 모든 일을 미루는 버릇이다. 하지만, 적어도 공동체를 이루는 일은 졸업 후로 미룰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아직 학생이므로, 예수님에 대한 순종을 미룰 수는 없다는 말이다. 지금 내가 있는 바로 이곳에서 시작해야 한다. 철저하고 가시적이며, 또 갱신 지향적인 공동체가 이곳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4. 역사에서 살펴본 공동체들

(1)고대사에 나타난 공동체들
기독교는 국교화되면서, 상당 부분 세속화하게 되었다. 이에 대항하여 대대적으로 수도원 운동이 일어난 것이다. 국교화로 인해 대중은 교회로 들어오는데, 수사들(Monks)은 자신의 영성을 지키기 위해 광야로 빠져나가는 아이러니가 벌어지게 된 것이다. 수도원 주의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안토니우스와 파울 등은 은둔 생활을 하는 은수자였던 반면, 파코미우스같은 수사에 의해 공동생활을 하는 수도원이 생겨나게 되었다. 4세기경에는 이집트에 활발하게 진행되던 수도원 운동도 눈에 띤다.

(2) 중세사에 나타난 공동체들

-  480년에 태어난 성 베네딕투스는 서방에서 수도원을 개혁한 인물로 꼽힌다. 처음에 은수자였던 그는 수도원 규율집을 만들어 더 유명해 졌는데, 그 규율은 ‘영구거주’와 ‘철저한 순종’을 기초로 하였다.

-  그 후, 8세기 초 교황청은 추문으로 얼룩지고 있었고, 수도원 생활 역시 지상 최고의 이상으로 예찬되며 세속화하고 있던 시기가 있었다. 그 무렵, 한 수도원에서 대대적인 개혁 운동이 시작되고 있었는데, 그것이 끌루니(Cluny)회였다. 베네딕트의 규율을 준수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시작했던 이 수도회는, 후에는 기독교 이상을 사회로 스며들게 하여 변화를 추구하기까지 이르렀다. 베네틱트 수도원과는 달리, 토지에 토지 경작자들까지 함께 증여받은 그들은, 노동의 시간이 줄어들고 남은 시간을 끊임없이 중보기도에 할애했다. 하지만, 후에 수많은 선물과 유산으로 수도원이 많은 재물을 소유하게 되었고, 이 개혁운동은 실패하게 된다.

-  12세기에는, 끌루니회가 너무 세속적 관습을 좇아 생활하며, 자신의 영성을 위한 기도에는 힘쓰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고 있었다. 그런 수도원의 세속화를 개혁하기 위해, 시토회(Cistercians)가 생겨났다. 그들은 노동을 다시 강조하였고, 후에는 교황보다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기에 까지 이르렀다.

-  수도원들의 수사들이 귀족 출신으로 구성되어, 더 이상 수도원들이 시대의 물결을 막을 수 없게 되자, 프란체스코와 도미니쿠스 같은 사람들에 의해 새로운 흐름이 전개되게 되었다. 물질 소유를 하나님과의 일치의 장애물로 보고, 자발적으로 가난해 지는 것을 택했던 그들은, 후에는 세상 속으로 들어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한 희망이요, 선교 기구였다. 하지만, 프란체스코의 탁발공동체 역시, 조직화와 물질의 문제에 연루되면서, 대체로 기존의 수도회들이 걸었던 길을 걷게 되었다.

-  프란체스코와 동시대를 살았던 발도(Waldo)에 의해 생겨난 발도파는 성경을 자국어로 번역하였을 뿐만 아니라, 성직자, 수도사들을 넘어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청빈과 순종의 도전을 제공하는 역할을 감당하였다. 성프란시스코가 교회의 울타리 내에서 교회를 갱신하려고 했다면, 발도파의 경우는 비제도권의 평신도 갱신 공동체였다. 비록 이로 인해, 지금도 많은 교회사에서는 이들을 ‘이단’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말이다.

(3)종교개혁 시대의 공동체
공동생활로 대표되는 수도원이 개혁의 주 대상이었던 종교개혁은, 공동체라는 관점을 강조하지는 못하였다. 하지만, 당시 로마 카톨릭과 종교개혁자들 양쪽으로부터 박해를 받았던 재세례파에 대해서는 재조명을 해 볼 필요가 있다. 당시 재세례파는 종교개혁의 내용에 대해서는 대부분 동의하였으나, 기존 정치권을 안고 개혁을 효과적으로 수행하려는 의도에 대해서는 반대하였다. 그들은 형식적인 세례를 받음으로써 구원을 보장 받는다는 당시의 관행을 반대하고, 진정한 의미의 세례를 다시 받을 것을 요구하였다.

-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했다.
-  산상수훈이 삶의 기초가 되었다.
-  유아세례를 거부했다.
-  성직자, 공직자에게 높은 도덕성을 요구했다.
-  비폭력이어야 했다.

당시 재세례파는 철저한 공동체적인 삶, 즉 서로 물질을 나누며 그리스도의 형제애적인 사랑을 실제 그들의 삶 속에 실천하는 삶으로 기존의 교회에게 많은 영향도 주었고, 또 박해도 받았다. 이런 원칙을 기초로 살았던 그들의 삶은, 지금도 후터파와 메노파의 전통으로 이어지고 있다. 입으로만 고백하는 믿음이 아닌, 삶으로 드러나는 믿음을 추구했던 그들의 삶은 우리에게 많은 도전을 준다.

(3) 근세사에 나타난 공동체

-  지역 교회 내에서, 진정으로 헌신된 자들에 의한 작은 모임인 ‘경건한 모임’을 통해 초대교회 공동체의 모습을 이루어 보려 애썼던 야곱 스페너
-  교육체제의 철저한 변화로 독일 사회를 변화 시키고자 했던 프랑케의 교육공동체
-  진센도르프에 의해 ‘조’ 혹은 ‘속회’의 작은 모임으로 진정한 하나님의 가족의 모습을 이루기 위해 힘썼던 헤르후트 공동체.
-  준 수도회의 성격을 띠었던 존 웨슬리의 순회 평신도 설교단.
-  18 19세기의 공동체인 필거휘트 공동체, 에프라타 공동체, 처치 아미, 구세군 등에 의해 영성을 회복하고, 세상의 빛으로의 삶을 살고자 하는 공동체적 움직임은 계속되었다.

(4) 현대의 공동체들
지금도 세계의 각 곳에서는, 조직교회가 가지고 있는 한계성을 극복하고 성경에서 가르치고 있는 진정한 공동체성의 회복을 위한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다.

-   브루더호프(Bruderhof) 공동체: 재세례파의 후예로 초대교회의 원형대로 살고 있는 영국의 공동체

-   떼제공동체(Ecumenical Community of Taize): 20세기 초 전쟁으로 갈라지고 상처 입은 유럽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설립되어 하나됨의 참 의미를 보여주고 있는 프랑스의 공동체

-   베다니 공동체(Bethany Fellowship): 초대교회의 모델대로 공동체를 이루고 살면서, 그런 공동체가 세계선교를 위해 얼마나 강력하고 효과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미국의 공동체.

-   코이노니아 동역회(Koinonia Partners): 농촌에서 이루어져, 소외 받고 가난한 이웃들을 위해 사역하는 공동체의 본을 보여주는 모임.

-   라브리공동체(L’Abri Fellowship): 성경의 진리를 추구하는 공동체로, 지식을 통한 복음주의 전통과 삶의 조화를 보여주는 프란시스 쉐퍼에 의해 설립된 공동체

-   레바 플레이스 교회(Reba Place Church): 기성교회 내에서 부분적인 공동체를 이룸으로써, 도시공동체의 지역사회에 대한 역할의 모델을 제시하고 있는 공동체.

-   구세주의 교회(The Church of the Savior): 규모가 다소 커지면, 바로 분교회를 하면서 도시 내에서 소외된 자들을 위해 일하는 일반 교회의 공동체성의 본을 보여주는 교회.

이와 같이 현재 세계 도처에서 성경적인 공동체성 회복을 위한 움직임은 계속되고 있다. 물론 형태는 초대교회 형태의 공동생활로부터 작은 소교회 형태의 도시공동체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존재한다. 이외에도, 많이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소그룹의 형태로 진정한 의미의 ‘교회’ 갱신을 위해 애쓰고 있는 수많은 형제 자매들이 우리에게 희망의 소식을 전하고 있다.

맺는말

계속 언급하지만, 예수님께 철저하게 순종하고, 또 가시적인 나눔을 동반한 성령공동체는, 해도 되고 하지 않아도 되는 선택의 사항이 아니다. 비록 형태는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지만, 성도간의 죄의 고백과 나눔, 그리고 삶의 섬김이 있는 공동체는, 성령님께서 예수님의 몸 된 교회를 이끌어 오시는 방법이요,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헌신의 순간 결코 주저하지 않았고, 또 어려움이 있어도 그 일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믿기에 좌절하지 않았던 수많은 신앙의 선배들처럼, 지금 우리가 있는 바로 이곳에 작은 공동체를 위해 무릎 꿇고, 내 자신의 시간과 물질까지 내어놓을 순종의 자세로 작은 헌신을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역사를 이끌어 오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내게도 변함없이 역사하시는 모습을 보아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