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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신앙/반영운의 환경이야기

[반영운] 지속 가능한 개발의 문제점과 대책

이코스타 2002년 10월호

인류는 산업혁명 이후 경제적인 풍요만을 추구해 온 결과 삶의 질 저하를 비롯한 다양한 환경문제를 일으키면서 생존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로마 클럽은 1972년에 '성장의 한계'라는 보고서에서 전 지구적인 환경위기에 대해 경고하였다. 이 보고서에 의하면 세계의 인구, 공업화, 자원과 에너지의 이용은 기하 급수적인 성장을 계속하는데 이러한 성장률이 계속된다면, 앞으로 100년 안에 지구상의 성장은 한계점에 도달하고 인구와 공업력의 갑작스런 감소가 발생할 것으로 예측하였다. 로마클럽 보고서가 나온 지 20년이 지난 1992년에 UN은 점점 악화되어가는 지구환경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로에서 세계 179개국이 참여하여 지구환경문제의 해결방안을 논하는 유엔환경 개발회의를 개최하였다. 이 회의를 통하여 '환경적으로 건전하고 지속 가능한 개발(Environmentally Sound and Sustainable Development: ESSD)'을 이룩하기 위한 범 지구적인 목표와 행동강령 설정에 기본이 되는 의제21(Agenda 21)을 채택하였다. 의제 21에서 말하는 지속 가능한 개발이란 "미래의 후손들이 자신들의 필요(needs)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그 능력과 여건을 저해하지 않으면서도 현세대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개발'로 정의된다(WCED 1987:43). 지속 가능한 개발의 원칙은 다음과 같다.

  • 인류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면서 건강하고 생산적인 생활을 할 권리가 있다.
  • 각국은 자국의 자원을 개발할 권리를 지니는 동시에 다른 국가의 환경에 손상을 주지 않도록 할 책임이 있다.
  • 개발 권리의 행사는 현재와 미래 세대의 개발과 환경상의 필요성을 충족시키는 범위 내에서 가능하다.
  • 환경 보호와 개발은 일체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그러나 위 원칙에 근거하여 의제 21이 채택 된 지 10년이 지나고 있는 지금의 세계 환경 상태는 어떠한가? 지난 호에서 살펴 본 것처럼 세계는 각종 자연재해와 오염에 시달리고 있다.예를 들어, 브라질과 인도네시아의 열대림은 가공할 만한 속도와 면적으로 파괴되어 가고 있으며, 최근에 겪고 있는 전 지구적인 홍수 피해(전 세계 80개국 이상)는 더워진 지구 온도 때문이라는 분석도 조심스럽게 대두되고 있으며, 개발 도상국의 대도시는 극심한 대기 오염 피해를 겪고 있다고 보고 되고 있다. 게다가 무분별한 개발의 결과로 생겨나는 통제되지 않은 오염물질(유해폐기물)들이 주변 지역에 처리되지 않은 채로 배출되거나 주변 국가로 몰래 이동되어서 매장되기도 한다. 이러한 자연재해와 오염의 상당부분이 주의 깊지 않은 인간의 개발행위와 무책임한 관리에 기인하고 있음이 주지의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전 지구를 지속 가능하게 발전시키자는 목적에 의해 고안된 '의제 21'을 채택한 이후에도 환경이 계속 악화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본 고에서는 지속 가능한 개발을 개념적인 차원에서 검토하고, 지속 가능한 개발을 위한 대책들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개념적인 차원에서 지속 가능한 개발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지속 가능한 개발은 현대 산업문명의 지속적인 발전을 전제로 하는 제한적인 접근을 하고 있다. 즉 유한한 지구 시스템 내에서 어떻게 하면 산업사회를 지속 가능하게 할 수 있는가 하는 접근 방식을 취하고 있다. 지속 가능한 개발이라는 개념의 기저에는 현대 환경문제를 발생시킨 현대 과학기술문명에 대한 사상적 반성이나 환경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사상이나 철학의 추구 또는 선진국의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패턴의 변화를 전제하지 않는 상태에서 기존의 산업사회를 통해 현재 인류가 누리고 있는 혜택들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시도의 일환으로 보여진다(윤칠석, 2000). 다른 말로 표현하면 지속 가능한 개발이란 세계의 정치 경제적인 구도 속에서 볼 때 선진제국이 누리고 있는 생활수준, 사회제도 등을 크게 변경하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환경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근한 예로 최근에 온실가스 최대 배출국인 미국이 교토 협약에서 탈퇴한 것만 보아도 이러한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지금 요한네스버그에서 열리고 있는 환경회의에서도 역시 환경선언문 채택에 있어 미국의 부정적인 역할 때문에 고심을 하고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한겨레, 2002.8.27). 이러한 이유들로 지속 가능한 개발에 대한 개념적인 재고가 필요하다.

둘째, 지속 가능한 개발은 인간 중심적인 세계관이다. 지속 가능한 개발은 미래세대와 현세대의 인류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으로 그 목적을 삼고 있다. 즉, 지속 가능한 개발은 환경이라는 말 자체가 품고 있는 것처럼 인간을 둘러싼 것들을 인간이 지속 가능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대책을 논의하고자 한 담론으로서 이해된다. 따라서 인간 이외의 생명체나 자연자체의 내재적인 가치는 그 논의의 대상에서 제외된 듯 하다. 예를 들면 자연의 내재적인 가치를 경제적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것을 이용하여서 각종 개발 사업을 허가하거나 수행함에 있어서 단기적인 개발 이익을 우선시 하고 있다. 이러한 태도는 자연을 대하는 인간의 자세가 지나치게 오만함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보여진다.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인간은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에 대한 선한 청지기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모든 만물이 조화를 이루어 살 수 있게 하시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잘 알아서 관리해야 함에도 어쩐지 우리 인간은 그러한 존재인식에 있어서 많이 결여된 듯 하다. 결국 이러한 인간 중심적인 가치관에서 비롯된 무분별한 개발 행위들로 인간은 물론 지구 전체가 파멸하게 될 위기를 맞게 되었다. 궁극적으로 선진국이든 후진국이든 할 것 없이….

셋째, 지속 가능한 개발은 생산지향형 시스템을 기반으로 설정된 개념이다. 의제 21에서 사용되고 있는 지속 가능한 개발은 그 기저에 인간의 필요에 대한 되돌아 봄이 없이 필요(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생산을 정당화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생산 지향형 사회경제 시스템을 그대로 고수하면서 과학기술적 대응을 전제로 한 사후 환경관리 대책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자연의 정화능력과 개발 수용능력을 신중하게 검토하지 못한 결과 생겨나는 무분별한 개발을 막자는 선언은 있으나 정작 구체적인 강령으로 들어가면 결국 인류의 생산활동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은 찾아 볼 수 없다. 오히려 생산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한 기술적인 대안을 찾고 제시하고 있다.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틀에서 움직이는 생산지향형 사회경제 시스템은 인간 생활의 향상, 자유의 획득 등의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기도 했으나 일부 선진국이나 중산층 이상에 제한된 것일 뿐 대부분의 개도국이나 가난한 사람들은 과거보다 악화된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다. 대량생산 및 대량소비가 인류 진보에 있어서 필연적인 과정이라고 할 수도 있으나 앞으로 전개될 사회에도 여전히 필수 불가결한 시스템인지는 재고가 필요하다.

그러나 지속 가능한 개발이 품고 있는 두 가지의 중요한 개념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의 무한한 필요(욕구) 속에 세계 빈곤 층의 필요를 담고 있다는 것과 현재와 미래 세대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환경능력의 한계에 대한 인식이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면은 비록 위에서 지적한 문제점들에도 불구하고 지속 가능한 개발이 가지고 있는 장점이자 앞으로 추구해야 할 방향성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지속 가능한 개발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대안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의제 21이 담고 있는 긍정적인 면을 살리고 부정적인 면을 보완하는 대안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인간 중심적인 세계관을 피조물의 공생 세계관(Symbiosis World View)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제까지는 자연을 인간의 필요를 채우는 도구나 재료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행동하였다면 이후로는 모든 피조물이 서로 상호 연결되어 공생하고 있다는 인식에서 출발해야 한다. 인간의 필요에는 아무 가치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들도 생태계 자체에서는 그 자체로서 소중한 존재임을 인정해야만 한다. 여기에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 무생물이 포함된다. 기독교적인 개념으로 정리하면 인간 또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 중의 하나로서 피조물의 생태를 이해하고 그에 맞게 잘 보살펴서 스스로의 필요만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생태계의 조화를 깨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필요를 충족해야 한다. 그러려면 인간 자신은 물론 자연 만물에 대한 면밀한 연구와 세심한 관심이 필요하다. 하나님을 창조주로 인정하는 세계관에 기초할 때에야 마치 창세 때에 세상에 질서가 생긴 것처럼 비로소 지구 상에도 질서와 조화가 생겨나게 될 것이다.

둘째, 생산 지향적인 사회경제 시스템을 전환하여야 한다. 즉 대량생산, 대량소비, 대량 폐기의 시스템에서 자원의 낭비를 피하고 반복적으로 순환시켜 환경 부담이 적은 사회인 순환사회(Recycle Society)시스템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순환 사회에서는 폐기물의 개념이 기존의 '가치 없는 것'에서부터 '처분되는 폐기물'과 '이용가치를 갖는 폐기물'로 나누어 생각하게 된다. 따라서 생산을 할 때는 가능한 한 폐기물의 발생을 회피하고, 폐기물 발생이 불하피할 때에는 발생된 폐기물을 기술적, 경제적으로 무해한 방법으로 소재 또는 에너지로서 재이용하며, 재이용이 불가능할 때에는 환경에 적합하도록 처분하며, 제품 생산자는 제품의 제조부터 폐기까지 모든 책임을 지도록 하는 사회 경제 시스템의 구축이 필요하다. 이러한 순환경제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지속성을 고려한 재활용이나 자연환원 노력이 필요하며, 제도적으로는 환경부 및 환경문제해결을 위한 행정부서간 그리고 산학민관(産學民官) 간의 협력시스템 구축을 위한 환경조문의 강화가 필요하며, 과학 기술면에서는 순환형 과학 기술인 태양열 에너지 및 풍력, 조력 발전 등의 개발 및 보급과 환경산업의 육성이 필요하다.

셋째, 의제 21이 담고 있는 장점들인 빈곤개선에 효과가 있는 최소한의 성장률 확보를 위한 제 3세계의 성장회복, 자원 및 에너지 절약적 성장 질의 변경, 기본적 인간욕구의 충족, 인구증가의 지속가능 수준의 확보, 자원기반의 보호와 강화, 기술의 방향전환과 위험관리, 환경과 경제를 고려한 의사결정 등은 지속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이 중에서 제 3세계의 빈곤 문제 해결을 위한 꾸준한 노력과 환경과 경제를 고려한 의사결정의 지속적인 추진을 정책의 중요한 축으로 삼아야 한다.

넷째, 의제 21은 여전히 인간의 끊임없는 필요(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음으로 인해 인간 스스로 궁극적인 파멸을 불러 일으킬 소지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인간 스스로 환경의 중요성을 인식하며 모든 피조물의 존재 가치를 인정함으로써 환경인식의 혁명을 이루어 내지 않으면 결국 인류는 다가올 종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인식의 전환에는 여러 가지 시도들이 있을 수 있으나 피상적이거나 본질적이지 못할 수 있다. 여기서 기독교적인 세계관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역설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 중심의 세계관으로 돌아 올 때 비로소 인간은 모든 피조물의 고귀함과 각자의 위치와 역할을 인식하게 되어서 인간에게서 일어나는 탐욕적인 필요를 성령의 힘으로 억제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복음으로 변화한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하나의 중요한 현상 중에 하나로 이제는 환경에 대한 변화된 자세를 꼽아야 할 것 같다. 성령의 열매 중에서 가장 마지막에 등장하는 절제의 은사가 지금 이 위기의 시대에 절실하게 필요하다.

절제는 모든 영역에서 필요하지만 특히나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며 우리 각 개인과 공동체에게 관리하도록 맡기신 자연과 인간 사회를 사랑과 절제의 관점에서 세심하게 돌보아야 한다. 이러한 길이 우리와 우리 자손이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며 살아갈 수 있는 근본적이며 실제적인 길이다. 위에서 살펴 본 것처럼 지속 가능한 개발은 위기에 처한 지구를 구하기 위한 몸부림에서 나온 개념이며 전 지구적인 시도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의제21이 채택된 이후로 개념적인 반성과 차기 방향성을 찾고자 하는 노력이 끊임없이 계속돼 왔다. 이제 환경문제는 각 개인, 단체, 단위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생명체와 무생물체의 환경적인 악화를 통해 개발 지상주의적인 시도는 점점 그 정당성을 상실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인간과 생명과 무생물이 함께 공유하는 지구 호는 구체적으로 위에서 지적된 문제점을 충실히 극복함으로써 이뤄질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긍휼을 고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