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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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현실적으로 세상에서 크리스천 의료인에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지 생각해보자. 세상은 크리스천 의료인에게 늘 하나님을 묵상하고 기도할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세상이 원하는 것은 단순하다. 실력 있고 인간다운 의료인을 원한다. 다시 말해, 전문적인 지식과 실력, 그리고 고도의 직업 윤리 의식을 갖춘 사람이 바로 이상적인 의료인상이다. 실력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들 크리스천을 포함한 어느 누구도 믿음은 좋지만 수술 못하는 외과의사보다 믿음은 부족해도 수술 잘 하는 외과의사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의료인의 직업윤리를 Medical Professionalism이라고 한다. 미국 내과의사 협회 (American College of Physicians)에서 지적한 Medical Professionalism의 덕목은 겸손 (Humility), 정직 (Honesty), 이타성 (Altruism), 공감능력 (Compassion), 그리고 예의 바름 (Courtesy)이다. 의료인이 이 사회 배출되는 데 있어서, 사회는 우리에게 사회가 의탁한 면세 교육 기관을 제공했다. 예비 의료인은 사회의 공인 하에 시체를 해부할 수 있다. 환자는 의료인과 교육 중인 예비 의료인에게 자신의 치부를 노출시키며 자신의 비밀과 걱정을 떨어놓는다. 그리고 환자는 의료인의 선한 의도를 한치의 의심도 없이 믿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는 의료인의 행위를 평가하거나 판단할 수 있는 의학적 지식이 없다는 것이다. 이 모든 사실은 왜 의료현장에 고도의 윤리성이 요구되는지 말해준다.
EBM이라는 말이 유행한다. Evidence-based Medicine 근거 중심 의학을 주로 지칭하지만, Etiquette-based Medicine을 칭하기도 한다. 후자는 2008년 Dr. Kahn이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NEJM)이라는 저널에서 처음 사용한 용어이다. 아무리 최신 의학정보를 바탕으로 진료를 한다 하더라도 최소한의 예의가 사라진 오늘날의 의료 현장에서 정말 필요한 것은 에티켓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입원환자를 진료할 경우, 최소한 노크부터 하고, 들어가도 되는지 묻고, 웃는 얼굴로 자기 이름을 소개하며 악수를 청하는 의료진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세상은 이런 기본적인 에티켓을 잃지 않는 의료인을 원한다. 나아가 우는 환자에게 휴지를 손에 쥐어주며 등을 토닥여 줄 알며, 환자가 누워서 잃어나 앉을 수 없다면 무릎을 꿇어 환자의 눈높이에서 대화를 할 줄 아는 그런 의료인을 원한다.
크리스천 의료인과 하나님의 기대
사실 세상의 기대에 부응하는 의료인으로 살아갈 수만 있다면, 내심 더 바랄 것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의 기대는 더 크시다. 먼저, 하나님은 실력을 넘어 정성을 요구하신다. 마태복음 5장 16절은 우리 착한 행실을 사람들이 보고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말씀한다. 골로새서 3장 23절은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고 말씀한다. 참으로 엄청난 권면이다. 또한, 마태복음 10장 42절은 소자에게 냉수 한 그릇 주는 자가 결단코 상을 잃지 않을 것임을 말씀하고 있으며, 나아가 25장 40절에서는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예수님 자신께 한 것이라고 하셨다. 같은 맥락으로 마태복음 25장 35절 역시 주릴 때, 목마를 때, 나그네 되었을 때, 벗었을 때, 병들었을 때, 그리고 옥에 갇혔을 때 우리가 이웃을 돌본 것이 곧 주님을 돌본 것이라고 말씀한다. 이 얼마나 충격적인 발언인가? 이런 의미에서 우리 크리스천 의료인은 의료현장에서 환자를 섬긴다기 보다 예수님을 섬긴다고 말하는 것이 보다 성경적일 수 있다. 설대위 (David Seel) 전 예수병원 원장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과연 나는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 환자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이 내게 환자로 오신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기억할 수 있을까?”
다음으로 하나님은 직업 윤리의식을 말씀하시지 않고, 우리의 소명과 사명을 말씀하신다. 우리는직업(occupation)이 아닌 소명(vocation)으로 우리 의료인을 부르신 하나님을 묵상해야 한다. 에베소서 2장 10절은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하신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라고 선포한다.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한다. 주님은 의료를 우리의 생계 유지 수단이 아니라, 당신께서 예비하신 우리 각자의 십자가로 보길 원하신다. 십자가란 쉽게 말해, ‘자원해서 감당하는고난’이다. 따라서 의료란 우리가 자원하여 감당하는 사명이자 자발적인 섬김이어야 한다.
우리가 마지막 때에 주님 앞에 섰을 때 주께서 물으실 것은, 의료인으로서 우리의 십자가를 얼마나 충실히 감당했는가 일 것이다. 내 문제가 아닌 우리 이웃의 문제, 우리들의 환자, 보호자, 동료 의료인들의 문제를 얼마나 성실히 풀다가 왔는지 주님이 제일 먼저 물으실 것이다. 우리가 ‘의료계’라는 선교지의 ‘중보기도자’로서 얼마나 신실하게 우리의 환자와 보호자를 위해 열심히 기도해왔는지 주님은 알고 계신다. 과연 우리가 가슴으로 품고 기도하는 환자와 동료 의료인의 수가 몇 명이나 될까?
내외적 장애물 극복하기
크리스천 의료인을 향한 세상의 기대, 나아가 하나님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열심으로 살아보지만 현실은 참 만만치 않다. 여러 가지 장애물이 말 그대로 산 너머 산이다. 외적으로 불합리한 의료 제도, 부족한 의료 자원, 힘든 근무 시간, 종교 다원주의 등의 장애물이 있다면, 내적으로는 의료인의 태만, 권태감, 자조감, 그리고 명예와 권력에 대한 탐욕 등의 장애물이 있다.
대표적인 예가 서론에서 제시한 것처럼, 환자가 인격체로 보이지 않고 일의 하나로만 보이는 경우이다. 환자나 보호자가 대화하기 어려운 상대인 경우, 환자나 보호자는 의료인들 사이에서 소위 서로 ‘씹는’ ‘가십거리’로 전락하고 만다. 믿기지 않겠지만, 의료인들의 대표적인 대화 주제는 누가 더 ‘짱돌 환자’를 많이 보게 되어 누가 더 ‘재수가 없는가’ 이다. 스스로 냉소적이고 자조적인 대화를 통해 자기 연민을 충족하는 과정에서, 환자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보다 내가 어떻게 하다가 이렇게 더 힘들어졌는지가 관심의 초점이 된다. 슬프게도, 어떤 의료인들에게 환자는 자기 논문을 위한 케이스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않기도 한다. 또 어떤 의료인들에게는 환자 한 명을 더 보는 것은 더 많은 금액의 리베이트를 위해 머리 수를 채우는 것을 의미한다. 참으로 어려운 현실이다. 크리스천 의료인으로서 다시 한번 이러한 장애물을 뛰어넘을 능력을 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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