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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공동체/성경강해

[조경호] 회복되는 하나님의 나라, 치유되는 자아. (두 개의 세계...어두움과 빛)

KOSTA 성경강해

회복되는 하나님의 나라, 치유되는 자아.

두 개의 세계...어두움과 빛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인 생의 삼분의 일을 억압상태에서 보낸 김대중 대통령은 북한송금사건으로 더 큰 고통의 여생을 보내야 할지도 모른다. 국민의 분노와 실망이 그를 외롭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 퍼주기’ ‘현대 봐주기’로 이어진 북한과의 평화유지비의 비밀 송금에 대해 대통령 국민담화가 발표되었지만 의혹은 풀리지 않았다.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은 지난 50여년 동안 갈라진 남과 북에 금강산으로 가는 비포장 도로와 대북 사업 교역의 물꼬를 텄지만, 월 스트리트 저널이 지적한 대로 ?김정일 돈 바치기?로 만들어진 남과 북의 평화였는지도 모른다. 그리스도인들도 보이지 않는 두 세계에서 사는 사람들이다. 옛사람과 새사람의 이중 자아와 어두움과 빛의 이중세계에서 우리는 하나님나라를 회복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이 이 세상에서 실천해야 할 거룩한 햇볕정책은 무엇일까?

1. 이중 세계의 속성.

에 베소는 로마 제국의 종교적 도시였다. 학문과 철학의 도시 아덴과 상업과 교역의 도시 고린도와 더불어 에게해 3대 도시 중 하나였다. 에베소의 ‘아데미 숭배’는 여사제들과의 혼음으로 도시 전체가 섹스의 쾌락에 빠져 있었다. 바울이 어두움의 속성으로 지적한 ‘음행, 더러움, 탐욕’은 모두 타락한 성적 욕망을 드러낸 부끄러운 단어들이었다.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의 마땅한 바니라”(5:3) “너희도 이것을 정녕히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를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5:5-6).

어두움의 열매

 

빛의 열매

음행

참예하지 말라

착함

더러움

시험하여 보라

의로움

탐욕

 

진실함

세상은 성적 탐욕의 늪 속에 빠져있다. 한국은 여성부에서 최근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매년 섹스산업에 허비되는 돈이 24조원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섹스산업에 종사하는 여성이 50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으며, 청소년 원조교제, 보도방..같이 숨겨진 일들은 통계에 잡히지 않았다고 했다. 20-30대 여성 25명 중 1명이 쾌락산업에 빠져있다. 섹스의 쾌락의 끝은 에이즈의 증가로 이어진다. 매일 전세계에서 1만5천명이 새로 감염되고 있으며, 한국은 매일 1명이 감염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전세계 에이즈 감염자는 2001년 말 3610만명으로 보고되었으며, 청소년 감염자도 매년 300만명이 증가하고 있다. 피어트 유엔 에이즈국장은 ‘미국에서 매년 비만 치료와 예방에 쓰는 돈 520억 달러 중 30억 달러만 있어도 아프리카 에이즈 감염률을 낮출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세계인구 2.7%가 에이즈로 숨지고 있으며 매년 그 숫자는 크게 증가하고 있다.

빛의 자녀들은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으로 사는 하나님의 백성들이다. 도덕적 실천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사람이 살면서 인가다운 삶을 사는데 반드시 요구되는 도덕성과 윤리적 실천력을 소유한 새로운 하나님의 피조물들이어야 한다.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5:8-10). 영국의 철학자 버트런트 러셀은 15살까지 교회를 출석했으나, 이후 교회를 떠나 무신론자가 되었다. 러셀은 기독교인을 이렇게 정의했다. “이웃을 사랑하고, 고난당하는 자를 동정하고, 잔인성과 가증한 악에서 자유를 원하는 사람들이다.” 그는 무신론자를 자처했지만, 그가 말한 기독교인의 세가지 정의는 그리스도인들이 잃어버린 자아상을 지적한 말일지도 모른다. 한국 사회는 도덕적 아노미anomie 상태에 빠졌다. 권력남용, 이권개입, 불법정치자금, 뇌물수수와 청탁, 분식회계와 주가조작, 부정과 사기.. 청와대에서 검찰, 언론까지 범국민적으로 확산되었다. 지난 30년간의 압축, 고속성장과정에서 한국사회는 너무 많은 것을 잃어야했다. 근면, 성실의 도덕적 가치관은 퇴색하고, 물질과 쾌락 추구가 새로운 삶의 목적으로 자리 잡았으며, 도덕적 나침반이 멈춰버렸다. 국제 경쟁력의 원천인 반부패와 투명성에서 한국은 하위그룹에 밑돌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 도덕성을 상실해버린 무기력한 교회가 있다. 교회는 한국사회의 도덕과 윤리 붕괴를 저항할 힘을 이미 잃어버렸다.

2. 빛의 자녀들의 의무.

“너 희는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저희의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움이라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이 빛으로 나타나나니 나타나지는 것마다 빛이니라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취시리라 하셨느니라(5:11-14).” 4세기 중엽, 안디옥에서 출생한 로마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의 주교 크리소스톰은 그가 살던 도시가 사치와 쾌락의 극에 달하자, 그는 금욕적인 삶을 살면서 세상을 책망했다. 좋은음식을 찾지 않았고, 화려한 옷을 거부했다. 기도와 명상으로 살면서, 자신의 것을 늘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다. 그가 가진 것은 몸에 걸친 옷이 전부였다. “깨어있으라. 욕심이 많은 사람들은 정신차려야 한다. 돈을 쥐려는 마음으로 하늘의 것을 움켜쥐어야 한다. 세상의 것은 나눠지면 적어지지만, 영적인 것은 나눌수록 늘어안다. 나누지않으면 가난해지고, 결국 주님께 큰 책망을 받을 것이다” 온 도시가 그의 말에 떨었으며, 황제도 그를 두려워했다. 오늘 세상은 더 이상 교회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세상이 교회를 비웃고 손가락질하고 있다. 한국교회는 대형교회 세습으로 한동안 곤혹을 치루었는데, 김동호 목사의 연봉 파문으로 또 다시 세상의 가십거리가 되고, CCC의 세습 움직임으로 또 다른 소용돌이가 일고 있다. 여중생 장갑차 희생사건으로 촛불시위가 연일 계속되는 가운데, 한기총이 시청 앞 광장에서 연 기도집회가 교회의 명예를 땅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책망하라. 참예하지 말라. 세상을 변화시키는 그리스도인의 사명과 책임은 책망하는 삶의 실천에 있다. 어둠을 몰아내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한가지는 빛이다. 빛이 비치면 어둠은 곧 사라진다. 더 이상 존재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이 빛의 열매를 실천해야 한다. 1998년 중국에 취임했던 주룽지 총리는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이렇게 말했었다. “내 것을 포함해 관 100개를 준비하라. 청렴한 정치 이뤄지지 않으면 경제강국의 꿈은 이뤄질 수 없다. 국가가 바로서기 어렵다.” 그는 취임직후 ‘밀수와의 전쟁’을 시작으로, 2000년 ‘부패관료와의 전쟁’을 계속 이어갔다.

세상은 빛을 찾고 있다. 기독교를 외면한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방식도 ‘빛’의 원리여야 한다. 스티브 쇼그린 목사는 섬김의 전도를 통해 복음이 닫혀버린 세상에 새로운 빛의 전도를 실천하여 사람들에게 복음을 듣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체험하게 하고 있다. 무료 세차, 상점 포장 도와주기, 상점 유리창 닦아주기...등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여 불신자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30대 한 남자가 주일 아침, 교회 앞을 서성거렸다. 손에 빈 콜라캔을 들고.. 안내위원이 “제가 버려드릴까요?” 미소를 지으며 묻자 그 청년은 “아닙니다. 이 콜라 캔을 저는 간직하고 싶습니다. 제게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준 소중한 기념물이니까요” 그는 전날, 무료로 나눠주는 콜라 캔을 받아들고, 처음 자신에게 사랑과 친절을 보여준 전도팀에 대한 호기심으로, 교회까지 찾아오게 되었노라고 말했다.

세상에 보여주어야 할 빛은 하나님의 사랑이다. 가난한 이웃에 대한 사랑이며, 도덕적 실천능력일 것이다. 단순히 술, 담배를 하지 않는 것이 기독교의 윤리 기준은 아니다. 술, 담배를 끊는 것이 기독교는 아니다. 세상에 교회와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보여주어야 할 ‘빛의 열매’는 세상이 결코 흉내낼 수 없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이다.

3. 빛의 자녀들의 삶.

“그 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5:15-21).

지혜-시간-주의뜻-성령충만 앙드레 모로아는 “인생을 영위하는 기술은 하나의 공격 목표를 정하고 거기에 힘을 집중하는 것이다. 역사의 인물들의 공통점이 여기에 있다. 그들은 자기 인생에 목표를 정하고 그 한가지 일에 전력을 다했다”고 인생의 바른 태도를 설명한다.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취시리라” 세상의 돈과 명예와 부를 좇는 ?죽은 자의 삶?에서 그리스도 중심의 삶을 실현하는 바른 인생의 목표를 설정할 수 있는 지혜가 오늘의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 요구된다. 신학자 존 데이스빗은 “우선순위를 잘못 선택하면 삶의 목표에서 멀어진다.”고 경고하고 있다. 챨스 휴멜도 “우리들의 삶에서 만나는 온갖 딜레마는 시간과 물질의 부족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일의 우선순위를 잘못 선택한데서 온다.”고 지적했다. 19세기 아프리카 선교사 리빙스턴은 의사로서 스코틀랜드에서 장래가 보장된 뛰어난 청년이었다. 그러나 그는 화려한 미래를 포기하고 아프리카로 가기로 결심하자, 그의 형이 이렇게 동생의 어리석음을 비웃었다. “너는 네가 원한대로 네 인생이 아프리카 정글의 미개인들과 매장되지만, 난 영국에서 가장 뛰어난 의사가 될 것이다.” 수세기가 지난 오늘, 리빙스턴의 유골은 영국으로 옮겨져, 정중하게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안치죄었지만, 그의 형에 대해서는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누가 더 어리석은 사람이었을까? 십자가에 죽으신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체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어리석다. 삶의 지혜가 없다.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도 찾을 수도 없다. 여리고의 삭개오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그는 스스로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다. 창고 문은 열리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진 삭개오의 소유는 무엇이 인생의 참된 목적인가를 그림처럼 보여주고 있다. 어디서 그 인생의 목적을 찾았는지를 우리에게 암시해 주고 있다. 현대사회는 급하게 발전하고 있다. 자연과학 계열의 지식은 3개월 시차를 두고 변화하고 있다. 3개월전 논문은 이미 휴지조각이 되고 만다. 인문과학도 6개월을 넘기지 못한다. 인터넷이 학문의 속도를 더 빠르게 진행시키고 있다. 선진국의 학문이 당일에 인터넷을 통해 전세계인들이 함께 읽고 있다. 학문에서의 답보는 곧 퇴보다. 인생에서도 자기중심의 삶을 곧 퇴보다. 모험없는 인생은 어리석다. 하나님의 뜻을 찾으라. 무엇을 위해 살것인가를 결단해야 한다. 주님은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노라”고 고백하셨다.

성령충만을 유지하라. - 예배. 찬양. 감사. 복종. 황성주 박사는 그의 책에서 “나는 주님 때문에 팔자 고친 사람이다. 내가 올 수 있는 곳보다 훨씬 멀리 온 사람이다. 내가 가진 능력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성취했다. 내가 누릴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이 누린 사람이다. 오직 주님 때문에.. 주님으로 인해 변화받게 하시고, 최고의 행복을 경험하게 하셨다. 이젠 그 행복이 흘러 넘쳐 행복의 전달자로, 기쁨의 발산자로 살게하신다. 차고 넘치는 은혜, 사역의 확대, 비전의 확대, 인맥의 확대로 나타났다”고 자신의 인생을 설명한다. 2003년 2월.. 러시아 코스타에서 황박사는 만났을 때 그는 “호산나 네트워크를 인수하고, 크리스챤 여성 잡지 레베카를 인수했다”고 말하면서, 인도와 아프리카 등 사랑을 실천하는 사역을 설명하며 흥분에 넘쳐 있었다. 그는 이 시대의 ‘사랑의 전달자, 행복의 전달자, 복음의 전달자’이셨다. 바울은 “술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충만을 유지하라”고 권면하고 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삶은 인간의 능력과 도덕적 의지와 자기 훈련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신에 감동된 사람들만이 살 수 있는 삶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성령충만을 유지하는 4가지 비밀을 가르치고 있다. “①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②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③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④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1) 예배에 힘쓰라.
매 주 드리는 예배를 통해 영혼과 몸의 안식을 계속 얻는 사람들이 매일의 삶에서 성령 충만한 사람으로 살 수 있다. 아브라함은 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았다.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며 하나님의 지시하는대로 따라갈 수 있었다. 죠지 물러가 하루 16시간 넘게 일하는 한 형제를 방문했다. 그 형제는 심한 피곤과 영적 메마름에 지쳐있었다.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기쁨을 상실하자, 모든 삶이 균형을 잃고 말았다. 뮬러는 그 형제에게 “일하는 시간을 조금 줄이고, 하나님 말씀을 읽고 기도하는 시간을 가져라. 하나님을 예배하는 가운데 속사람이 힘을 얻게 하라”고 권면했으나 “이렇게 일해도 먹고 살기 힘든데..일하는 시간 줄이면..” 그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기쁨을 잃고 있었다.

(2) 찬송을 힘쓰라.
하 나님은 ‘이스라엘의 찬양 중에 거하시는 분’이시다. 성령충만과 찬양은 영성의 두 날개와 같다. 사울 임금이 악신으로 고통당할 때 다윗의 수금을 타는 찬양으로 평온함을 얻곤 했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감옥에서 찬양하고 기도할 때 감옥터가 흔들리고 하나님께서 놀라운 구원을 베푸셨다.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서 구원받으면서 빌립보 간수와 그 가족도 구원을 받는 성령의 능력이 빌립보교회의 시작이 되었다. 미국 프린스턴 신학교 한 교수님이 갑자기 이상한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책상에 앉아있거나, 거리를 걷든지 혼자 중얼렸다. 궁금한 학생들이 질문하자 교수는 “며칠전 꿈을 꿨는데, 갑자기 베드로가 ‘찬송가 279장 불러봐’ 말하는데 우물쭈물거리자 ‘형편없는 신자구만, 찬송도 못부르면서 어떻게 천국 오려구해. 다음에 와..’ 놀라 깨서 찬송가부터 찾아봤지. 그날부터 매일 찬송가를 부르며 찬송이 충만해지도록 애쓰게 되었네” 웃으며 대답했다. 찬송으로 충만한 사람들이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들이다.

(3) 감사를 힘쓰라.
감 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거룩한 제물이다. 감사는 중요한 경건의 훈련이다. 감사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믿음의 열매다. 자신의 삶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의탁한 사람들은 모든 일에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 사람이다. 작은 감사를 잘 실천하는 사람들이 주님을 닮았다. 글로벌화. 디지털화로 대변되는 21세기는 최고의 경쟁력을 가진 제품만이 생존하는 시대다. 세계일류기업의 뚜렷한 특징은 ‘연구개발, 제품개발, 생산, 마케팅’ 등 기업활동 4단계중 하나이상의 독특한 강점을 갖고 있다. 미국의 델 컴퓨터는 인터넷 마케팅으로 세계 컴퓨터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노키아는 직원 32%가 R&D 연구원들이다. 그리스도인의 독특한 강점은 ‘감사하는 마음’이다. 감사는 성령의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영적 성품이기 때문이다.

(4) 복종하라.
바울은 복종의 인간관계를 가정과 사회를 중심으로 가르치고 있다. 다음 시간에 ?복종의 사회학?에 대해 함께 나누고자 한다. 성령충만한 삶을 잃어버리고, 무기력하고 피곤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는 이유는, 인간관계의 파괴에서 비롯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