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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신앙

[이영길] 인생의 실라버스를 철저히 읽고 따르는가? 학기말이라 분주하다. 한학기 내내 학생들이 열심히 준비한 텀 페이퍼를 채점하여 학생들에게 돌려 주는 과정에서 몇 학생과 심각한 대화를 나누었다. 학생들은 대화중 눈물을 흘리기도 하였고 (여학생들은 잘 운다), 몹시 흥분하며 화를 내기도 하였다 (남학생의 경우 잘 흥분하지만, 이 부분은 남.녀가 비슷하다). 한결같이 나의 기대치가 너무 높다고 비판도 하였다. 개별적으로 이루어진 만남이었지만 이 아이들이 가지고 있었던 공통점 하나를 전에와 마찬가지로 금년에도 발견 하였다. 즉 실라버스 (Syllabus; 강의안) 를 대충 읽음으로 오는 문제인 것이다. 학생들이 텀 페이퍼를 작성할때 범하는 몇가지 실수중 하나는 실라버스를 주의깊게 읽지 않는 것이다. 보통 실라버스 에는 교수의 강의 계획서와 기대 및 텀 페이퍼.. 더보기
[최주희] 자존감을 높이기 위하여 자존감은 어린아이에서 시작하여 어른에 이르기까지 늘 따라다니는 신앙의 중요한 이슈이다. 낮은 자존감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상처는 가족 및 여러 관계에서 일어난 아픔이 원인이 된다. 또한 상처의 치료방법으로 강조되는 내적치유는 주로 상담과 기도에 의존한다. 모두 의미 있는 접근이다. 하지만 낮은 자존감의 원인에는 상처만 있는 것이 아니며, 자존감 회복을 위해 할 수 있는 것도 상담과 기도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다른 중요한 요소들도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한국 교회는 자존감이라는 주제를 다루는데 있어서 상처와 내적치유만 지나치게 강조한 면이 없지 않다. 결과적으로 진정한 자존감의 회복은 이루어지지 않고 상처와 내적치유를 각각 한손에 부여잡은 채 여전히 자신의 문제 속에서만 맴돌고 있는 것이다. 신앙의 진보,.. 더보기
[이영길] 신앙생활에서의 미끄러짐 나는 가끔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한다. 죄가 관영하는 이 세상에서 미끄러짐 없는 신앙생활을 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나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실천하며, 거룩한 신앙인으로 책망할것 없는 삶을 살아가면 얼마나 좋을까? 숨쉬기를 할때 들숨과 날숨을 의식하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들이마시고 내어 밷을 수 있듯, 주의 말씀을 그렇게 자연스레 순종해 가며 살아가면 얼마나 좋을까? 너무 야무진 공상일까? 위의 질문 뒤에는 나의 미끄러짐으로 인한 아픔이 숨어 있다. 내게 있어 미끄러 졌다는 것은 하나님을 따르며 순종하는 삶에서 벗어났다는 표현이다. 그것은 크게 벗어났던 작게 벗어 났던지간에 내게 있어서는 미끄러짐이다. 특히 같은 상황에서 똑 같이 미끄러 넘어졌을땐 더욱 더 처절하게 느껴져서 나의 한심한 신앙생활로 인해 눈물을.. 더보기
[최주희] 사랑하며 죄를 보며 사람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은 ‘사람을 향하신 주님의 사랑’을 더 깊이 발견하는 축복을 가져다준다. 동시에 사랑하는 과정에서 발견하게 되는 ‘자신의 죄성’에 당황하기도 한다. 결국 사랑은 우리에게 하나님 마음을 발견하는 기쁨을 주기도 하지만 깊은 내면의 성찰도 가져다주어 우리를 성숙케 하는 것이다. 민수(가명)는 고아원에 있는 아이로 오랜 기간 우리 가정과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마음만큼 자주는 아니지만 정기적으로 우리 집에 와서 함께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명절을 같이 지내기도 했는데 그 아이와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지금은 군대 간 아들 진호가 초등학교 1학년 때의 일이었는데, 새벽녘에 갑자기 ‘쿵’하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 나 침대에서 떨어졌어!” 아이의 방에 달려가 안아주며 “저런 놀랬.. 더보기
[최주희] 작은 섬김 큰 열매 10년 정도 여러 명의 개척교회 목사님 자녀들에게 영어공부를 가르친 적이 있다. 개척교회 목사님들의 빠듯한 재정으로는 남들 다하는 영어 과외공부 시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영어를 가르친 아이 중 특별히 기억나는 재미난 아이가 있었는데 바로 성환(가명)이다. 성환이는 성격이 배우 밝고 귀여운 아이였지만 공부 중에도 일어나 여기저기 움직이고 숙제도 자꾸만 잊어버리곤 했다. 여러 말로 타일러 보지만 잘 먹히지 않아 좋은 방도를 궁리하였다. 그것은 성환이가 바람직한 행동을 할 때마다 그것을 포착하여 마음껏 칭찬하며 숙제 해 올 때마다 예쁜 스티커를 공책에 붙여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스티커가 20개가 모이면 문방구에 가서 평소에 사고 싶었던 3천 원 정도의 물건을 사 주는 것이었다. 성환이는 이런 .. 더보기
[최주희]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훈련 나에게는 중증 뇌성마비 장애를 가진 남동생이 있었다. 출산 시 호흡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고 신생아 황달을 심하게 겪으면서 장애를 가지게 되었다. 동생 정원이는 평생을 누워만 있었으며, 소변과 대변을 받아내야 했고, 밥도 안아서 먹여주어야 했다. 뿐만 아니라 언어 장애도 심해 자신의 의사를 말로 표현할 수 없어서 그저 Yes, No 만 눈치로 표시하였다. 정원이가 10살 되던 해 까지 어머니는 그를 치료하기 위해 정신없이 방황했었다. 좋다는 의사, 좋다는 약, 좋다는 종교는 다 거치며 동생의 회복을 위해 온 정성을 다하셨다. 아직도 내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는 것이 있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의 일로 기억되는데, 우리가 대구에서 살 때 어머니는 추운 동지에 팔공산에 올라가 찬물로 목욕을 하시고 불공을 드.. 더보기
[이영길] 내 이름으로 사랑해 보거라! 캠퍼스에서 지체들을 만나면 그들의 손에 이끌려 자주 별다방 (Starbucks Coffee Shop)으로 가곤 한다. 구석에서 커피 홀짝 꺼리며 나누는 여러 대화들이 있지만 그중 흔한 문제가 관계에 대한 것이다. 여러 지체들을 만나 그들의 대인관계의 여려움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어려움을 격고 있는 씨름 하는 대상은 다양하다: 지도 교수, 교회의 어느 집사님 혹은 지체, 같은과 학생, 실험실의 어떤 괴팍한 녀석, 아내 혹 남편, 소그룹의 리이더...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내가 경험한 어느 동료 교수와의 문제가 늘 생각난다. 그래서 인지 그들이 격고 있는 아픔을 잘 이해 할 수 있고, 또 그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 줄 수 있다. 그러나 그들에게 들려 주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나의 블로그에 이미 다.. 더보기
[이영길] 당신의 전공은 무엇인가? 누구를 만나면 흔히 받는 질문이 직업에 관한 것이다. 어떤일에 종사하냐는 질문에 나는 흔히 대학 교수라고 짦게 대답하곤 한다.그러나 대학교수라는 대답과 함께 금방 되돌아오는 질문이 하나 더 있다. 전공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역시 주저치 않고 "치료레크리에이션" 혹은 "레크리에이션 치료"라고 대답하곤 하였다. 미국에서 대학교수로 지내면서 나의 대답은 적어도 이랬다. 그리고그같은 대답은 나의 삶의 상태를 정확히 반영 하고 있었다. 나를 나로 정의 지을 수 있었던것도 바로 전문 분야와 그 분야에종사하는 교수라는것으로 나를 철저히 국한 시켰던 것이다. 내가 예배자로,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야하는 귀한 사명은 교회나성경공부에서나 고백해야하는 그런 악세사리로 여긴것이다. 누구든 이제.. 더보기
[이영길] 날마다 더 작아 지고 싶다 어릴땐 더 크고 싶었다. 나보다 좀 더 크다고 뽐내는 이들의 머리를 주어 박고 싶어 서였다. 좀더 커지니, 그것 보다 더 크고 싶었던 것이 나보다 더 큰 이들이 있어서 였다. 1984년 겨울에 미국으로 유학을 왔다. 어릴때 처럼 몸이 더 크고 싶어 서가 아니 였다. 사회적으로 크고 싶었고, 영향력의 힘을 키우고 싶어서 였다. 그래서 학교 선정할때도 내게 능력의 키를 더해 줄, 영향력의 힘을 더해 줄 그런 학교를 찾았다. 지도 교수도 그렇게 힘있고 능력의 키가 큰 자를 선택하려고 했다. 대학 교수가 되어 서도 마찬가지 였다. 처음에 Florida International University로 가게 되었다. 별로 알려 지지 않은곳이였다. 하바드 대학이나 MIT, UCLA, 예일 등 좋은 브랜드 네임의 학교가.. 더보기
[이영길] 어떤 포기 1997 년의 일이다. 그때 나는 오하이오대학의 교수로 있었다. 쿼터 (Quarter)제도 였기에 모든것이 빨리 돌아가 사실상 강의하기에 몹시 바빴다. 한 쿼터에 4개의 과목을 가르쳤다. 어떤 강의는 50분 강의 였기에 일주일에 세번 들어가야 하는데 그같은 강의가 두개, 또 일주일에 두번 들어가는 강의 두개. 이같은 스케쥴에 의하면 출근하고 부터는 점심식사 및 한.두개의 회의 참석을 제외하고는 강의실에서 살아야 하는 몹시 바쁜 하루 하루의 일정이었다. 조교수 였기에 테뉴어 (Tenure)도 생각해야 했고, 또 열심히 공부해서 내 분야에서 제일 좋다는 대학으로 가고 싶은 욕망도 있었다. 나는 그 당시도 또 지금도 연구활동과 글 쓰는것에 대해서는 각별한 생각과 야심이 있었다. 그같이 바쁨에도 불구하고 매년..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