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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신앙

[이영길] 영어로 고생하는 흩어진 나그네들이여 오래전 이야기이다. 어느날 사랑하는 어떤 형제가 나의 사무실에 들렸다. 너무 반가웠다. 반가움과 동시에 또 놀라버렸다. 형제의 머리털이 보이지 않아서 였다. 머리털 다 어디에 두고 왔냐고 물었다. 형제는 머리털 없는 머리를 극적거리며 "지난밤 삭발배 버렸어요!"하고 대답했다. 삭발을 해야할 어떤 큰 결심이 있냐고 물었다. 형제가 삭발은 한것은 영어 때문이었다고 한다. 영어가 자기때문에 고생하고, 자기도 영어때문에 고생한다는 이야기다. 맞는 말이다. 미국온지 6개월정도 밖에 안되었는데 유창하게 나오지 않을 것이다. 특히 대학원 수업은 토론위주인데 강의 들어갔다가 기침한번 하지 못하고 알아듣지 못하는 영어를 듣고 나와야 하는 아픔은 너무 크다. 나의 경우도 마찬가지 였다. 미국유학 첫학기 수업에서 강의실이 .. 더보기
[이영길] 시간을 보는 시각 예로 부터 지금까지 시간이라는 주제는 많은이들로 부터 뜨거운 관심을 가져 왔다. 시간과 관련된 주제로 출판된 수없이 많은 책들과 논문들이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시간에 대한 기존의 생각은 산업혁명이후부터 계속적으로 효율성, 생산성 및 속도에 대한 개념과 그 틀을 같이 하고 있어서 많은 이들로 부터 잘못된 생각을 갖게 하는 경우가 많다. 이와 관련된 중요한 질문은 다음과 같다: 더 적은 시간에 더 많은 것을 생산해내기 위해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더 많이, 더 빨리 할 수 있다고 하는것은 한 인간에게는 남다른 능력이고 성공을 가늠해주는 중요한 척도로 작용한다. 누구누구는 박사학위를 3년 만에 했다더라. 그런데 누구 누구는 9년이 지나도 마치지 못하고 있다. 분명 3년내에 마친 박사는 .. 더보기
[이영길] 자신감이 아니라 겸손으로 Part II 따라서 우리는 겸손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아야 자신감 추구 보다 겸손을 더 추구하는 삶을 살게 된다. 겸손에대해서는 이미 앤드류 머레이가 쓴 "겸손"이라는 소책자도 있어 사실상 그 책을 읽는것이 매우 도움이 될것이다. 따라서 이 브로그에서는 그곳에 나온 내용을 인용하거나 반복하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그 소책자를 꼭 읽기를 권하고 싶다. 겸손은 먼저 자기중심적 태도가 아니라 사실을 사실대로 보는 정직한 태도이다. 과학하는 사람, 공부하는 사람이 마땅히 취해야할 자세가 될 수 있다. 겸손한자는 공부할때 내가 어떤 주제를 남보다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느냐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대신에 겸손한자는 "그 주제의 실체는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갖게 된다. 학회에서 논문을 발표한다던가, 토론에 참여해 보면 겸손한자와 .. 더보기
[이영길] 자신감이 아니라 겸손으로 Part I 얼마전 한 청년과 상담하며 귀한 시간 가졌다. 많은 이야기를 주안에서 나누다가 형제가 조심스레 묻는다. “교수님, 자신감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매사 너무 자신이 없어요.” 자신감이 없는 나에게 자신감을 물어 오다니... 남들이 보면 나는 몹시 자신있는 사람같아 보인다. 많은 사람앞에서 설교도 하고, 학회에서 편안히 질문도 하고 토론도 한다. 어떤 발제자들는 내가 나타나면 공연히 긴장마져 된다고도 한다. 강의실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학생들이 볼때는 백과사전같이 모든것을 다 알고 있는 교수같아보인다. 허긴 많은 논문도 쓰고, 잘팔리는 책도 쓰고, 또 많이 읽히는 책의 챕터 (Chapter)도 집필했다. 그러나 강의실 들어가며 마음이 쿵쾅거리는 조그만 긴장감을 그들이 어찌 알랴. 분명 나도 그형제 처럼 자신있는.. 더보기
[최주희]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을 정의하고 논하려고 한다면 아마 밤을 새워도 다 정리하기 어려울 것이다. 어린아이에서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평범한 성도에서 목회자나 신학교 교수에 이르기 까지 하나님의 사랑을 보는 관점은 다양하고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역사와 문화를 넘어서는 초월적인 하나님의 존재를 생각할 때 찬송가 가사처럼 바다를 먹물로 삼아도 다 기록할 수 없다. 이처럼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언급할 때 우리의 한계를 넘는 깊음과 넓음을 인정함에도 불구하고, 오늘 날 한국기독교를 바라볼 때 한 가지 염려 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너무 한 면으로만 치우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즉 용납과 용서, 필요를 채우시고 보호해 주심, 장래를 인도하시고 축복해 주심 등에 대해서는 많이 강조한다. 이로 인한 결.. 더보기
[최주희] 진실을 보려는 눈 이웃을 사랑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먼저 하나님이 그들을 창조하셨고 생명주시기 까지 사랑하시는 대상임을 기억하며, 이웃을 귀하게 대하는 것은 사랑의 출발점 일 것이다. 또한 그들의 필요와 기대를 채우고 만족시켜주는 것도 중요한 사랑의 표현이다. 때로는 생각과 의견이 나와 다르더라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 역시 사랑이다. 뿐만 아니라 나의 마음 깊은 곳에 상처를 준 사람이라 할 찌라도 주님의 사랑과 능력으로 용서한다면 어쩌면 사랑의 극치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여기에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것이 있는데, 바로 사람들의 마음에 담겨져 있는 ‘진실을 보려는 눈’도 사람들을 서로 사랑하게 하는 중요한 연결고리라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일상생활에서 사람들과 부딪히며 일어나는 사건이나 상황을 .. 더보기
[최주희] 집사님, 축하해요... 덕용 집사님은 류마치스 관절염으로 고생을 참 많이 하신 분이다. 고등학교 때 발병한 이후 몸은 계속 쇠약해져 갔고 골격은 이상 징후를 보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결국 거동이 불편하여 직업을 가질 형편은 되지 못하였으나 장애인 복지 기관에서 자원 봉사자로 섬기며 지냈다. 덕용 집사님을 알게 된 것은 교회에서였다. 내가 출석하고 있는 대전 대흥 침례교회는 일찍부터 몸이 불편하신 분들에 대해 문을 활짝 열어 놓고 그분들을 섬기는데 앞장 서 왔다. 교회 시설이 행여 그분들에게 불편하지 않은지 끊임없이 정비하며, 수화 통역과 지적 장애아동을 위한 사랑부 예배도 준비하였다. 더욱이 교회 안에 마련된 장애우들을 위한 쉼터는 넓고 최신 시설로 만들어져 말 그대로 쉼과 회복을 제공하고 있다. 덕분에 장애를 가지신 분들이 .. 더보기
[최주희] 아들 이야기 나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다. 침례신학대학에서 선교학을 가르치는 남편(이현모 교수)과의 사이에 있는 유일한 자녀이다. 남편과 내가 어렸을 때에는 나라도 가난했고 우리들의 가정도 불우했으며 더욱이 신앙도 없는 가정이었기에 ‘행복한 가정’에 대한 느낌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우리 아들은 달랐다. 신앙적으로나 세상적으로 많은 것이 갖추어진 ‘행복한 가정’에서 마음껏 즐기고 누리며 큰 아쉬움 없이 자랄 수 있는 환경이었다. 우리는 이 아들에게 굳이 험난한 환경을 일부러 제공해주지는 않았으나 양육하면서 한 가지 강조한 것이 있다. 그것은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섬기는 삶’이었다. 즉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거나 무시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들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며 사는 삶이었다. 지금 기억하면 아.. 더보기
[최주희] 스스로 만든 상처 하나님이 우리 주변에 있게 하신 사람들을 사랑하는데 걸림돌이 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상처이다. 상처는 우리가 사람을 이해하고 섬기며 사랑하는 것을 근본적으로 막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런 '사랑 거부의 행위'를 타당화 시키며 합리화시키기도 한다. 그런데 먼저 우리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내가 생각하는 그 상처가 상처라고 표현하기에 타당한 상처이냐 라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이런 질문에 대해 본인이 상처를 받았다고 느꼈으면 다 상처인 것이지, 그것을 굳이 구분할 필요가 있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하지만 의외로 타인이 상처를 주었다기보다는 스스로 상처를 만든 경우가 더 많다. 이것은 상처가 아니다. 상처를 스스로 만든 상처와 상처라고 불리기에 타당한 상처로 나눈다면 후자는 십계명에 근거한다. 이것은.. 더보기
[최주희] 성 내 과 나는 사람들을 좋아하는 편이다. 그리고 어떤 직업 혹은 어떤 위치의 사람이건 별로 어려워하지 않는다. 하지만 수년 전만 해도 어려운 사람 두 부류가 있었다. 한 부류는 택시 기사 분들이고 다른 부류는 의사선생님이었다. 택시 기사 분들이 어려운 이유는 교통법규와 상관없이 속력을 내거나 빨간 불에도 마구 지나가는 담대함 때문이었다. 놀란 가슴으로 소리를 지르고 싶어도, 백미러로 보이는 기사님의 무섭고 짜증나는 눈빛이 나의 입을 막고 숨을 죽이게 했다. 물론 그렇지 않은 분들도 많이 계시다. 의사선생님들도 어려웠다. 흰 가운을 입은 최고의 전문가를 코앞에서 일대일 대면하는 것만으로도 주눅 들었다. 또한 과묵한 얼굴과 많은 사람들을 대하느라 지쳐있는 표정을 보는 것은 마치 질병을 가진 내가 죄인인 것처럼 느끼게..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