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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공동체/성경강해

[김철수] 복음과 그리스도인의 능력

8. 하나님의 의
바울이 사용한 하나님의 의(義)라는 말은 법정적인 용어로서, 불의(不義)에 반대되는 개념입니다. 불의는 곧 죄로서, 하나님 앞에 자신의 도덕성이나 선행으로, 즉, 자신의 의로써 나아가 보려고 하는 인간의 교만을 가리킵니다. 다시 말하면, 자신의 선(善)을 의지하고자 하는 인간의 본성에서 나오는 “자기 의”가 불의의 개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의는 인간의 의에 대조되는 개념으로서 바울이 사용하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 나님의 의는 죄가 전혀 없는 무흠의 완벽한 상태, 즉, 거룩으로서의 의를 말하며, 이것은 곧 구약에 계시된 하나님의 의입니다. 따라서 이 의는 하나님이 세상을 정죄하고 심판하실 때에 사용하시는 기준입니다. 곧, 하나님의 완벽한 의가 하나님의 심판의 기준치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의”라고 하는 말은 결코 인간들에게는 복음이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인간들에게는 슬픈 소식입니다. 바울은 복음을 설명하기 위해서 슬픈 소식으로부터 자신의 논의를 시작합니다. 그러면 바울을 비롯하여 구약 성경을 알고 있던 당시의 유대 기독교인들이 이해하고 있었던 하나님의 의의 개념이 어떠했는지 좀더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9. 조건 언약으로서의 율법
갈라디아서 3장 10절에서 바울은 구약의 율법이 갖는 기능 혹은 성격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신명기 27:26을 인용하면서 바울은 그 누구도 만일 이 율법을 항상 모두 지키지 못한다면 율법이 기록하고 있는 [하나님의] 저주 혹은 진노 아래 있다고 하였습니다. 즉, 율법은 인간을 정죄하기 위하여 주어진 것입니다. 저는 크리스천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신명기 28장 초반에 나오는 축복의 내용을 본문 전체의 문맥을 잘 살펴보지 않고 그냥 좋은 말씀이라고 좋아만 하는 것을 종종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 좋은 본문의 내용들을 좋아하기 전에 염두에 두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28장 1절 서두에 나오는 조건 부분입니다. 즉, 어떤 조건을 만족시킬 때에만 축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1) 28:1의 서두를 보면,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이라는 조건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15절 이하부터 그 나머지 절들과 그 다음 장들은 율법을 지키지 못할 경우에 어떠한 일이 벌어질지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의 모든 명을 순종치 않을 경우에는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심판과 저주의 내용들을, 그 끔직한 상황들까지 포함하여, 아주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10. 율법과 하나님의 의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을 맺으실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언약을 지키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알고 계셨다는 사실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아래 11항에서 좀더 다루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이야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가 하나님 율법의 모든 내용들을 완벽하게 지킬 수 있겠습니까? 상식적으로도 불가능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은 율법에 대하여 오해하는 것을 봅니다.“그래도 열심히 지키다 보면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실 것이다”든지, 혹은 예수님 당시 어느 젊은 청년의 대답처럼 “어려서부터 율법을 다 지켰다”고 함으로써 종교적 형식으로서 율법을 이해한다든지 하는 것입니다.(2) 그러나 하나님의 율법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성품을 계시하고 있으며 엄격하고 엄중한 언약서입니다. 거기에는 에누리가 없습니다. 이 언약은 조건 언약으로서 하나님 수준의 의에 이르기 위하여 모든 율법을 항상 다 지키든지, 아니면 그렇지 못하여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저주를 받든지 둘 중의 하나밖에는 없습니다. 불행히도 하나를 어기면 전체를 다 어기는 것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조건 언약의 결과는 축복 아니면 저주인데, 이스라엘 역사가 보여주듯이 죄인들 편에서 본다면 축복보다는 하나님의 심판과 저주를 받을 확률이 월등히 높습니다. 물론 제사제도를 통하여 회개하는 백성들을 끊임없이 용서하시며 역사 속에서 회복을 이루셨지만, 율법이 증거하는 하나님의 의는 인간에게는 죽음의 선포나 다름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율법은 죄인들에게는 무서운 신적 계약서입니다.

하 나님의 복음은 바로 이 무서운 하나님의 진노가 담겨 있는 율법서에서부터 시작해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10절에서 이미 본 바와 같이 이 거룩한 율법서에 기록된 모든 내용들을 항상 다 지키지 못한다면 아무리 하나님의 이스라엘 백성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다는 것이 율법서의 메시지입니다. 에베소서 2:3에서 바울이 명확하게 말해 주듯이 우리는 본질상 하나님의 진노의 자녀인 것입니다. 그러나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은 이스라엘 혹은 인류에게 진노하시는 것으로 끝나기 위함은 아닙니다. 나중에 살펴보겠지만 도리어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즉, 당신의 진노로부터 구원하여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이 구원은 조건언약인 율법으로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 구원이 율법과 연관하여 어떻게 이루어지는가에 대하여서 점진적으로 설명하려는 것이 본 글의 목적입니다.)

11. 율법의 목적과 기능
신명기로 다시 돌아가서 31장 16절을 봅시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말씀하실 때에 모세의 죽음 후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간 뒤 이방신들을 좇으며 하나님을 배신할 것을 미리 예견하십니다. 20절에서도 이스라엘이 배부르게 되면 하나님의 언약을 어길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세 역시 31장 27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같은 말로 전합니다. 모세가 생존하였을 때에도 끊임없이 여호와를 거역했던 백성들이 모세가 죽은 뒤에는 오죽하겠느냐는 내용으로 모세가 걱정하며 말하고 있습니다 (31:29 역시 참조). 여기서 볼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을 제대로 지키지 못할 것을 아시면서도 언약을 체결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단순히 진멸하시기 위해서 함정에 빠뜨리신 것일까요? 아니면 정말 이스라엘이 율법을 지킴으로써 하나님의 축복을 계속 받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이스라엘의 타락성에도 불구하고 율법을 주셨을까요? 둘 다 아닙니다. 율법은 구원의 조건이 아닙니다. 이러한 조건적 언약체결은 앞으로 나타날 하나님의 무조건적 언약체결, 곧 그분의 전적인 자비/은혜에 대한 복선입니다.(3) 그러면 조건 언약인 율법의 기능은 무엇인지, 그 목적을 다음에 계속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계속)


(1) 신명기의 내용은 계약서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모세 당시 속국과 종주국의 왕 사이에 맺어지는 계약의 형태를 띠고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놀랍게도 당시 모세를 비롯한 유대인들이 잘 알고 있는 언약의 형태를 사용하셔서 당신의 뜻을 계시하시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2) 일반적으로 종교적 사고구조에 익숙하다 보면 사람들은 종종 마태복음 5장 48절의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의 말씀을 오해하여 자신도 모르게 율법적으로 적용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이에 대해서 다음에 좀더 자세히 다루게 될 것입니다.

(3) 조건언약인 율법을 옛언약(구약 Old Testament)이라고 부르며, 앞으로 설명할 무조건적 언약을 새언약(신약 New Testament)이라고 합니다.